언론보도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려면

  • 2002-11-11
  • 변상근 (중앙일보)

[변상근의 Global Eye]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려면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만든다"고 한다. 대통령의 실패는 곧 나라의 실패고 국민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이익 집단들의 돈선거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에서 대통령은 "돈으로 산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 경우 대통령 선출은 미인 선발도, 경마도 아닌 "거대한 경매"가 된다.

 

윈래 "프레지던트(President)"는 회의를 주재(preside)하는 사람에서 유래됐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최고 조정자로, 그 힘은 국민에 대한 설득에서 나온다. 이 "미스터 프레지던트"가 어쩌다 다스리고(統), 거느리고(領), 그것도 모자라 큰 대(大)까지 앞에 붙어 우리 위에 군림하게 됐는가.

 

"대통령"호칭은 1885년 미.일 수호통상조약에서 일본인들이 처음 사용해 우리에게 건너왔다. 이승만은 서울의 한성 정부 시절 미국식으로 "집정관 총재"라는 직함을 썼다.

 

이 "대통령"이라는 세 글자가 권위주의적 대권 신화와 상승작용을 불러오면서 대통령의 기능과 역할을 잘못 설정해온 것이 우리의 대통령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킹 메이커 행세나 자천타천 후보들이 저들끼리 일삼는 단일화 책동들은 "대권병 환자"들의 정략적 놀음일 뿐 진정한 대통령 만들기와는 거리가 멀다.

 

때마침 동아시아연구원의 대통령개혁연구팀(위원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구상"이라는 정책 보고서를 각계에 배포하고 지지와 동의를 구하는 이색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존 헌정 질서의 틀 안에서 대통령의 역할과 권한 및 책임을 재규정하고 재조정해 우리도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그 성공의 요건으로 이들은 세 가지를 주문한다. 민주적 덕목과 자질을 가진 지도자로 국민을 설득하는 정책 세일즈맨이 그 첫째다.

 

검찰.국정원.감사원 등 소위 권력기관은 대통령 영향권 밖에 두고 권한에 비례하는 책임으로 국정 운영 시스템을 재구축함이 그 둘째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셋째, 즉 "국회 및 언론과 국민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대목이다.

 

국회가 정쟁만 일삼고, 언론이 센세이셔널리즘에 젖어 있고, 국민이 정책 논의에 관심이 없는 한 아무리 대통령과 국정 운영 시스템이 훌륭해도 그 대통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선을 40일 앞둔 지금 이들 요건에 비추어 보면 성공한 대통령을 가질 전망은 비관적이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민주당원들이 자기 후보 지지율을 열심히 깎아 내리고 있는데도 여태 30%대에 머물러 있다. "3金"식 세몰이와 줄 세우기가 되풀이되고, 급조 정당들은 정체성과 구성원의 동질성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의 95%는 정책에 관심이 없고 지역 대결 구도와 본능적 충동에 따른 선택으로 흐르고 있다. 빌 클린턴이 미덥지 못한데도 "부시가 아니기 때문에"클린턴을 당선시킨 1992년 미국 대선을 연상시킨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언론의 역할은 지대하다. 불행히도 우리의 경우 "실패한 대통령 만들기"에 급급해온 인상이 짙다. 폭로와 흑색선전 등 네거티브 캠페인은 독자적으로 검증해 선거에의 악영향을 배제 내지 최소화시키는 것이 언론의 기본 임무다.

 

이들의 중계 보도만 일삼을 경우 파당적 대결구도를 심화시키고, 유권자의 독자적 판단을 흐리게 하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주의를 부추긴다. 높은 기권율 속에 낮은 지지율로 당선될 경우 "대표성의 위기"가 따라다니고 "그들만의 잔치"가 돼 대립의 골은 깊어진다.

 

이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실패한 대통령들을 만들어낸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 보는 일이야말로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변상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