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왕적 대통령 이렇게 바꾸자] 9. 참여교수 좌담

  • 2002-10-29
  • 박신홍기자 (중앙일보)

중앙일보가 창간 37주년을 맞아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金炳局 고려대 정외과 교수)과 함께 기획한 "제왕적 대통령 이렇게 바꾸자" 시리즈는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를 마감하고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성공한 대통령의 역사를 만들기 위한 각종 제안을 쏟아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프로젝트의 의의와 핵심 메시지, 현실적 장애요인 등을 짚어보고 오는 12월 대선에 대한 고언(苦言)을 내놓았다.

 

▶박세일 교수=그동안 정치권은 권력투쟁과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데만 온 신경을 모아왔습니다. 성공한 정권이 되기 위한 준비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민도 후보의 과거 경력을 중심으로 대통령을 뽑는 데만 급급했지, 미래의 국가경영 능력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 등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대통령이 계속 나오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인이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병국 교수=기존의 개헌론이나 대통령제 개혁논의는 한결같이 대통령 권한의 축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갖춰야할 정책기획.조정 역할은 간과했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은 마땅히 축소해야겠지만 정책기능은 보완해야 합니다.


▶이홍규 교수=민주화에 따라 국민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했으며, 정보화.세계화로 인해 정밀한 국가전략과 정책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대통령이 이 모든 업무를 다 챙길 수 없습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국가경영에 있어 큰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전략적 지향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미국의 성공적 대통령에게서 보듯 몇개의 프로젝트에 대통령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金=이제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공약을 내놓을 텐데 1백대, 2백대 공약이라며 쏟아내는 것들을 모두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후보는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렇게 많은 공약을 임기 내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황성돈 교수=맞습니다. 정치만 한다면 5년이란 대통령 임기가 결코 짧지 않겠지만 정책을 다루기엔 너무 짧습니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모든 부처를 총괄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은 그만이 감당할 수 있는 핵심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총리에게 맡겨야 합니다.


▶金=대통령 입장에서는 총리에게 내정 책임을 맡기는 데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한을 위임하지 않으면 과부하가 걸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종섭 교수=이제 대통령을 권력의 관점이 아닌 기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여기에 맞춰 제도를 개선하고, 인력도 충원해야 합니다.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도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할 부분이죠.


▶朴=대통령의 도덕적 자질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직해야 하며, 많은 사람을 포용해야 합니다. 또 자기를 낮추고 참모들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진정한 리더십이 나올 수 없습니다.


▶李=이 사회가 "더불어 사는" 사회임을 인식시키고, 국가전략과 정책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국회.관료를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설득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리더가 그 설득의 전면에 나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특히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정책과제일수록 그러할 것입니다.


▶黃=대통령이 최고 정책설득자가 돼야 합니다. 대통령의 모든 일정도 대통령 프로젝트와 연계해야 합니다. 수시로 의원들의 비공식 모임에 참석해 설득에 나서야 합니다. 기존의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대통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주력해야 합니다.


▶金=청와대 수석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몇 개의 프로젝트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기존 정부부처나 싱크탱크의 인적자원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수석들은 "정직한 중재자"가 돼야 합니다.


▶黃=그동안 청와대가 정치권력의 사령탑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바뀔 때가 됐습니다. 정책 리더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강화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담당 부서가 청와대의 핵심부서가 돼야 합니다. 정치담당 부서는 정책기능을 보좌하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金=지금은 정치부문만 과도하게 비대해져 정책기획과 관련해선 각 수석실 간에 역할분담도 제대로 안되고, 협력도 안됩니다. 이번 시리즈에 대한 독자들의 가장 흔한 질문이 "그런 주장은 이미 다 아는 것 아니냐"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청와대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체계적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청와대에 한번만 가보면 맘속에 그리던 모습과는 딴판이라는 사실을 금세 실감할 수 있습니다.


▶鄭=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대통령 프로젝트"죠. 이것이 대통령 개인의 이념이나 사상, 주관적 판단에 좌우돼서는 안됩니다. 시대적 요구에 맞는 어젠다를 발굴하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 이를 구체화해야 합니다.


▶朴=대통령 프로젝트는 국회나 시민사회를 포함한 사회 각계각층의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일관성있게 끌고가야 하는 과제를 뜻합니다. 풀지 않으면 국가발전에 큰 장애가 되는 과제, 20~30년이 지난 뒤 돌이켜볼 때 지금 반드시 풀었어야 할 문제, 모두가 큰 문제라고 느끼지만 한두 부처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이런 게 대통령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 교육개혁이 구체적 사례가 될 수 있겠죠.


▶李=정치라는 게 단기적 이익에 매달리기 쉬운데, 대통령은 장기적 관점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동안 민주적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좋다는 제도는 다 해봤지만 실패가 많았습니다. 결국 소프트웨어가 문제라는 뜻이죠. 조직의 운영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은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鄭=인사도 거기에 맞춰 개선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임명하느냐가 국가정책의 명운을 좌우합니다.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만들어 장기적 전망을 갖고 체계적으로 인력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 기조 위에서 대통령의 철학.비전.정책 등과 합치되는 인물을 총리나 장관에 임명해야 합니다. 지난 경험에 비춰볼 때 비선(線)이나 대통령 친인척들의 개입은 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합니다. 인사청문회를 대폭 확대해 정무.고위직의 국정수행 능력과 도덕적 자질을 검증할 필요도 있습니다.


▶朴=역대 대통령들은 어떻게 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준비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없듯이 성공한 지도자도 아무나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무엇보다 국가운영의 비전과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비전과 능력을 가진 최고의 인재들을 찾아 반드시 팀을 만들어 써야 하는데 거의 그러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과 국정운영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혼동했습니다. 정치적 성공조건은 알았지만 정책적 성공조건은 몰랐던 겁니다.


▶李=대통령이 참모의 보좌를 받는다고 하지만 미래는 불확실하고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때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반대의 성격과 배경을 가진 사람을 늘 옆에 두고 지속적으로 그 사람의 고언을 듣는 게 필요합니다.


▶黃=대통령의 실패가 계속된 것은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대통령은 비전과 전략,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는 지금까지 이 두 가지를 균형있게 갖춘 대통령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대통령 후보들이 전부 "우선 되고 보자"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당선된 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미리 준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정치는 망가지고 전략과 비전은 실종됩니다.


▶朴=지금이라도 대통령 후보들은 기존의 정책팀 안에 당선된 뒤 정권을 인수할 준비팀을 미리 만들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권력운영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고, 주요직 인사는 어떻게 하며, 대통령 프로젝트는 무엇을 어떤 순서에 따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팀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후보는 이것을 모두 참조해 차기 국정운영의 그림을 하루 빨리 그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선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金=차기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선 뒤 첫 6개월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기간에 패자와 신뢰관계를 재구축해야 이후의 국정운영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야관계가 정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그러면 대통령이 국정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선거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누가 당선돼도 신뢰 구축이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진정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신뢰를 깨는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EAI 프로젝트 참여 교수=박세일(朴世逸.서울대.위원장).김병국(金炳局.고려대.간사).김판석(金判錫.연세대).모종린(牟鍾璘.연세대).박재완(朴宰完.성균관대).염재호(廉載鎬.고려대).이홍규(李弘圭.한국정보통신대).장훈(張勳.중앙대).정종섭(鄭宗燮.서울대).최병선(崔炳善.서울대).황성돈(黃聖敦.한국외국어대)

◇ 토론 참석자=강경식(姜慶植.전 대통령 비서실장).강봉균(康奉均.전 재정경제부 장관).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김영수(金榮秀.전 문화체육부 장관).김정렴(金正濂.전 대통령 비서실장).김충남(金忠男.전 대통령 사정비서관).노재봉(盧在鳳.전 총리).박철언(朴哲彦.전 정무장관).사공일(司空壹.전 재무부 장관).이종찬(李鍾贊.전 국가정보원장).이홍구(李洪九.전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