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EAI 사랑방, 그 후! - 20기 김민수(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석사과정)

  • 2023-07-10

우리는 어떻게 서로 다른 국가나 세계관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이 질문에 답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제(國際; interstate)라는 환경을 쉽게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은 공생과 협조와 보편주의를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공존이 상대화된 타자들이 서로를 잠시 눈감아 주는 것만으로 결코 지속될 수 없다면, 근본적으로는 그들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질서의 내용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생각 역시 제가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 중 하나였습니다. 학부 때 동양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사상 속에서 이상의 문제의식에 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했고, 그 연장 선상에서 하영선 교수님의 사랑방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수업 조교를 맡고 있던 교수님의 추천만 믿고 무작정 시작한 사랑방 수업은 생각 이상으로 혹독했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준비해도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예습일기를 제출할 때마다 괜히 들어왔다는 후회가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고통과 인내 끝에 만나게 되는 과거-언젠가는 현재이자 현실이었던 시간들-는 지금과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는 좋은 양분이 되었습니다. 역사가 얄궂기도, 또 무섭기도 한 점은 여러 우연과 필연, 이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루고자 했던 꿈,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굴절된 이상 혹은 운 좋게 달성된 목표들이 모여 현재를 만들고 언젠가는 과거가 됩니다. 경쟁하면서도 협력하고, 갈등하면서도 공생하는 과거는 지금과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도저히 하나의 변수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현실이 우리가 놓인 환경이라면, 그에 대한 고민 역시 마찬가지로 복합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공부하면서, 심상과 물상이 복잡다단하게 직조해내는 수천 년의 동아시아 질서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방대한 역사가 주는 무게감은 쉽게 자만하지 않으면서 세상사를 신중하게 고민해야만 한다는 교훈 역시 주었습니다.

 

이렇듯 사랑방에서 공부하면서 현실이 단순히 물상으로만은 규정되지 않고, 심상과 물상의 복합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다시 앞으로의 질서를 꿈꾸고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중 경쟁의 가운데 행위자의 복합화는 어떤 질서로 더 많은 행위자를 포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경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차원의 공생을 가능케하는, 보편적인 질서-단지 물리적 범위로서의 보편성을 넘어서서, 도덕적 범주에서의 보편성-의 핵심적 내용을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자 합니다. 여전히 그 답은 제 손에 모호하게만 주어져 있고, 어쩌면 평생을 공부해도 완벽한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방에서의 경험은 ‘삶, 앎, 꿈, 함’의 여정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심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영선 교수님께서 평생을 한국의 국제정치를 고민하시는 데 쏟은 시간을 제가 받아갈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특별하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도해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을 함께 해준 20기 동학분들과 사랑방의 원활한 운영을 도와주신 EAI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