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EAI 사랑방, 그 후! - 19기 전선미(푸단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졸업,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

  • 2023-01-05
  • 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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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런 것 같지 않다” 동주(東洲) 이용희 선생님의 말씀처럼, 학(學)을 통해 접한 국제정치와 현실에서 마주한 국제정치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고 상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국제정치학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마주한 현실의 개별성과 특수성 때문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제정치학의 기능과 목적, 그리고 우리의 국제정치에 대한 지적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지적 고민은 쉬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국제정치학과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과 환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알고 싶고 찾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EAI 사랑방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만청(晩靑) 하영선 교수님께서 이끄시는 사랑방은 ‘지적 유격 훈련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혹독한 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국제정치의 진경(眞景)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아니 어쩌면 망자와의 대화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만날 수 조차 없었고 또 어느 날은 만났지만 제대로 된 대화는 할 수 없었습니다. 연거푸 실패의 고배를 마시던 중, 만청의 ‘사랑의 국제정치학’을 지적 만남의 가교로 삼아 새로운 방식으로 지적연애를 시도하였습니다. 우리는 국제정치학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변용을 다루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 국제정치를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근대 유럽과 국제정치사상을 시작으로 한국의 세계정치학까지 이어진 지적 여정을 통해 마키아벨리부터 동주까지 깊고 넓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겪었던 절박한 현실을,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절망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던 꿈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가엽기 그지없던 짝사랑을 끝내고 제대로 된 지적연애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물상과 심상을 통합하여 들여다보려는 지적연애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한계에 봉착해야 했고, 각자의 한계 내에서 성장하기 위한 지독한 성장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딘 후에야 짙은 매화향기를 만들어 내듯, 사랑방의 지적유격훈련을 견뎌낸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향기를 발산할 수 있는 초보적 수준의 자격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19세기 박규수의 사랑방이 그러했듯, 21세기 만청의 사랑방 역시 좁게는 개인의 인생을 바꿔놓고 넓게는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방의 가치와 정신을 자재삼아 마음 한 켠에 저만의 사랑방을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에 마음을 베이고 때로는 뜨겁고 무모한 열정에 마음을 데이겠지만, 저는 이 곳에서 마음껏 꿈꾸고 답을 구하고 또 위로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삶, 앎, 꿈, 함’의 여정이 설레고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른에게 가르침을 받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기회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깊은 울림과 가르침을 주신 만청 하영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인사 올립니다. 아울러 사랑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주신 EAI 모든 관계자분들과 함께 완주한 사랑방 19기 동기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인사 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사랑방 20기 여러분들! 미리 환영합니다.

 

EAI 사랑방, 그 후! - 19기 전선미(푸단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졸업,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