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 향상 움직임과 그에 대한 반발이 함께 확산되면서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졌고, 인종, 성소수자, 여성, 이민 등 현안을 둘러싼 논쟁이 유권자의 이념과 정당 지지를 가르는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2024년 대선에서 정체성 정치가 부각된다면 공화당의 역풍에 의해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의 역풍을 최소화하면서도 그간 추구해 온 정치적 올바름 추구 기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효과적 선거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합니다.

Ⅰ. 왜 여전히 바이든인가?

 

2024년 대통령 선거는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 간 재격돌이 될 예정이다. 동일한 두 정치인이 대선에서 연속으로 맞붙은 경우는 1952년과 1956년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와 스티븐슨(Adlai Stevenson Ⅱ) 간 대결 이후 처음이다. 또한 전직 대통령이 재도전하는 경우는 1912년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이후 처음이다. 이렇듯 흥미거리가 없진 않지만 미국 유권자들이 보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극도로 심각해진 정치 양극화 시대에 이미 잘 알려진 두 후보들 간 경쟁은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볼 수 있었던 미래 지향적 메시지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게다가 두 후보 모두 고령인 점도 문제다. 특히 올해 82세가 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는 어렵다. 대체 왜 민주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도전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케리(John Kerry)는 전당대회에서 오바마(Barack Obama)에게 기조연설을 맡겼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는 일리노이 주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신참 정치인이었다. 전국 단위 지명도가 없었던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 능숙한 연설 솜씨를 뽐내면서 통합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언론과 유권자의 관심을 샀다. 이 여세를 몰아 2008년에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클린턴을 민주당 경선에서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공화당 매케인(John McCain) 후보를 꺾고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오바마는 전국 단위 득표율 약 53%를 확보했고, 당시 경합주로 알려져 있었던 플로리다와 공화당 텃밭이었던 노스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를 가져갈 정도의 압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4년 후 2012년에 많은 어려움을 물리치고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다. 이 때도 전국 단위 득표율이 약 51%였을 뿐만 아니라 확보한 선거인단 수도 332명이었기 때문에 낙승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하고 재선까지 성공시킨 민주당은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진보적 합의(liberal consensus)가 생겼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되었던 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서 2016년에는 클린턴을 당선시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고, 더 나아가 히스패닉, 아시안, 성소수자 등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판단에는 백인 비율이 점점 줄고 있는 사회인구학적 변화에 대한 인식이 작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때 미국의 주류였던 백인 고졸 중산층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이었던 이들이 2016년 트럼프 쪽으로 돌아섬에 따라, 민주당의 계획과는 달리 첫 여성 대통령 배출은 실패하게 되었다.

 

2016년 예상치 않은 패배를 겪자 민주당 내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정치인들은 난감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소득,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는 마땅한 정치인이 당 내에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한 유력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전통적 지지 세력이었던 백인 중산층에게 호소력이 약했던 인물들이었다. 흑인 남성(코리 부커 Cory Booker), 흑인 여성(카말라 해리스 Kamala Harris), 백인 여성(에이미 클로부차 Amy Klobuchar,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 성소수자(피트 부티지지 Pete Buttigieg), 히스패닉 남성(훌리안 카스트로 Julián Castro), 아시아계 남성(앤드류 양 Andrew Yang) 등으로 구성된 진영으로는 트럼프에 맞설 수 없었다. 따라서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 때를 기준으로 보면 퇴행적으로 보일 수 있는, 고령의 백인 남성 정치인인 바이든과 샌더스(Bernard Sanders)가 끝까지 경선을 치렀고, 결국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본선에서 트럼프를 꺾게 된다.

 

2024년 현재 이러한 구도는 여전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합주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의 핵심 유권자 집단인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인종 소수자 혹은 성소수자 후보가 나서서는 안된다.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진보 세력이 이끈 소위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현재 제동이 걸린 상태이다. 정체성 정치가 부각되면 공화당의 역풍이 거세질 것이고, 이는 곧 민주당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간신히 민주당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이 바이든이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난 십여 년간 변화한 민주당의 정체성에 또 다른 변화가 요구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Ⅱ.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

 

2024년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쟁점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 위해서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이념 갈등의 양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보아 공화당과 민주당, 혹은 트럼프와 바이든 간의 입장 차이가 상당하고, 각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언사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경향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그러한 현상이 최근 미국 정치에서 자주 관찰되는지에 대해서는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논의의 핵심에는 사회문화 현안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인종, 성소수자, 여성, 이민 문제들이 그것이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입장 차이는 경제 현안 및 국제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도 관찰 가능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은 사회문화 현안에서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회 소수자의 지위에 있었던 인종, 성별, 성지향성 기준 소수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목소리가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였고, 그에 대한 반발 역시 거세지고 있는 현상이 현재 미국의 정치 양극화의 특징이다. 사회문화 현안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은 유권자뿐 아니라 정치인들 간에서도 관찰된다.

 

1. 인종 문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반기면서 탈인종(post-racial)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사회 내 인종주의 강화로 이어졌다. 우선 공화당 측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공화당 매케인 후보의 선거 운동 도중에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라는 가짜뉴스가 퍼진 바 있을 정도로 오바마에 대한 이질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오바마에 대한 반발은 2012년 재선 이후 더욱 본격화되었다. 예를 들어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음모론(birther conspiracy)이 공화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퍼졌다. 이 음모론을 유포한 주동자 중 한 명이 바로 트럼프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자신의 인종을 내세우는 것이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인종 간 갈등을 자극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인종 관련 발언을 자제했다. 그러다가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 시작한다. 2012년 17세 흑인 소년을 살해한 히스패닉계 백인 용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촉발된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운동은 2014년 미주리 주와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경찰의 가혹행위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 2015년 볼티모어 경찰 구치소에서 벌어진 흑인 용의자의 의문사,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시에서 일어난 백인 우월주의자의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 등을 거치면서 꾸준히 그 세력을 확장했다.

 

인종 갈등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더욱 심화된다. 트럼프는 2017년 버지니아 주 샬롯빌에 모여 시위를 벌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인종 갈등은 2020년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사건으로 정점에 이른다. 소위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대통령을 자처한 트럼프는 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인종 문제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눈에 띄게 변화한다.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노예제도가 철폐된 상징적인 날인 6월 19일(Juneteenth)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한 바 있다. 사실 흑인 여성 해리스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2. 성소수자 문제

 

성소수자 문제는 최근 미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1996년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연방법(The Defense of Marriage Act: DOMA)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간 결혼으로만 한정했다. 하지만 이후 일부 주에서는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2015년 연방대법원은 기념비적인 판결(Obergefell v. Hodges)을 통해 주 정부가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주요 언론은 이 판결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여 보도하였지만, 사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이 판결에 불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evangelical Christians)이 이에 반발하였다.

 

이러한 반발을 의식한 듯, 이후 연방대법원의 행보는 조금 다른 면을 보였다. 예를 들어 2018년 연방대법원의 판결(Masterpiece Cakeshop v. Colorado Civil Rights Commission)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빵집 주인이 동성커플에게 결혼 케이크를 만들어 주지 않는 행위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유는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개인의 종교의 자유에 근거하고 있다. 이어 2023년 연방대법원은 또 다른 판결(303 Creative LLC v. Elenis)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기반하여 동성커플을 다르게 대하는 행위가 수정헌법 1조 위반이 아님을 재차 확인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내용은 2022년에 연방의회를 통과한 법(Respect for Marriage Act)이다. 이 법은 기본적으로 동성간 결혼은 합헌이라는 2015년 연방대법원 판결의 내용에 충실하다. 그런데 개인의 종교의 자유 혹은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침해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명기한, 이 법의 제 6조가 흥미롭다. 정리하자면 동성간 결혼은 연방 차원에서 합헌이지만, 개인(혹은 비영리 종교단체)이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커플을 이성커플과 ‘다르게 대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말이다.

 

3. 여성 문제

 

최근 여성운동이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MeToo(미투) 운동에서 비롯된다. #MeToo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는 2017년 헐리우드의 거물인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추행과 성폭행이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MeToo 운동은 원래 시작된 영화계를 넘어 군대, 사기업, 교회, 실리콘밸리, 스포츠 업계, 정치권 등으로 확산된다. 이에 정치권과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낡은 성추행 및 성폭행 기준들이 강화되고, 성평등 교육도 엄격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MeToo 운동이 잠잠해지기 전인 2022년에 연방대법원은 1973년 여성의 임신중절권에 관한 기념비적인 판결(Roe v. Wade)을 뒤집는 판결(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을 내린다. 여성의 임신중절권 부여 여부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 차원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상당수의 주에서 1973년 판결 하에서 용인되었던 여성의 자율권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크게 침해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실제로 공화당이 주 의회 다수당인 주에서 조금 더 제한적인 낙태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2024년 4월에는 애리조나 주에서 강간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도 중단하기 어렵게 규정한 1864년 법을 부활시켜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둘러싼 갈등도 공화당-민주당, 보수-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4. 이민 문제

 

현재 미국의 이민정책 기조는 1965년에 통과된 연방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표방한 경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멕시코-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 이민자들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상식적인 판단에 따르면 이러한 불법 이민자들을 모두 색출해 추방하면 되겠지만, 그 규모가 크고 국경을 완전히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부시 행정부는 조금 더 유연한 접근법을 사용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그것은 1.5세 불법이민자(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이끌려 불법적으로 이민하여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미국 영주권을 주려는 시도였다.

 

이렇게 유연한 이민 정책을 고려한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히스패닉 유권자를 공화당 지지층으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던 것이다. 사리분별이 가능한 어른이 불법이민을 했을 경우에는 처벌하되, 사리분별이 불가능한 어린 나이에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의 공교육을 받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삶을 영위하는 히스패닉에게는 법적으로 미국 영주권/시민권을 취득할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었다. 이 법안(The 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 The DREAM Act)은 오랫동안 의회에서 논의되다가 공화당 보수 세력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하고 오바마 행정부 때 좌초된다.

 

이 법안의 기본 취지에 동감하고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은 법이 통과되지 않자 행정명령(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DACA)을 통해 그 법의 일부 내용을 집행한다. 이 행정명령은 1.5세 불법이민자들의 영주권 취득 가능성은 제외한 채,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 갱신 가능한 노동허가증을 발급해 준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이 행정명령을 폐지하겠다고 주장하고 실행에 옮기려고도 하였으나 연방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함에 따라 아직까지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될 수 있는 대로 이민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 텍사스 등의 보수 색채가 짙은 주의 공화당 주지사들은 불법이민자를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와 같이 이민 친화적인 주로 이동시켜 국경 보호를 강화하자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등, 이민 문제는 언제든지 핵심적인 정치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Ⅲ. 민주당이 나아갈 길

 

정리하자면 최근 미국에서는 (1) 공권력에 의한 흑인 차별 및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한 진보 진영의 저항, (2) 성소수자 권익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움직임 및 그에 대한 보수 진영의 저항, (3)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법적, 정치적 논쟁, (4) 이민(특히 불법이민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공화당-민주당, 보수-진보를 나누는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한마디로 ‘문화 전쟁(culture war)’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미국인이란 누구인가’ 혹은 ‘미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수 측에서는 흑인, 성소수자, 이민자의 권익 향상이 미국인의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권익 향상이 (특히 낙태권 관련하여) 미국의 종교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다 포용적인 정체성을 지향하는 진보 측의 생각은 이와 확연히 다르다.

 

문제는 공교육에서 불거졌다. 인종, 이민, 여성, 성소수자의 권익 증진을 강조하는 커리큘럼에 대한 반발이 여기저기서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 건국을 주동한 사람들이 모두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원래 미국은 충분히 인종평등적이지도 않았고 성평등적이지도 않았다는 역사 교육, LGBTQ로서의 성정체성이 어린 나이에 주체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는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교육 등이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이념 갈등 상황을 보수적인 공화당 정치인들이 효과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좋은 예로 버지니아 주지사 글렌 영킨(Glenn Youngkin),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Ron DeSantis)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노골적인 반격이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인종, 성정체성, 미국의 위상(애국심)과 관련하여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간에 큰 격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한 정치인들이 주 차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전국 단위에서도 효과적인 전략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때 공화당 경선의 선두주자로 지목받던 드산티스의 유일한 강점이 정체성 정치에 대한 강경한 대응이었는데, 그가 힘 한번 못 써보고 경선에서 탈락한 사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 준다.

 

미국 민주당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다양성, 형평성, 포괄성(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가져오는 역풍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사회문화 현안을 선제적으로 제기했을 때 가져올 반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6년 대선 이후 제일 중요한 유권자 집단으로 떠오른 저소득층,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의제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 변화에 걸맞은 정치인이다. 고령의 백인 남성이 주는 이미지가 민주당이 여성, 성소수자, 인종소수자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에 적당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취임 이후 통과시킨 기념비적인 법안들(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육성법, 인프라법 등)을 모두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내용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한 것도 바이든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러한 민주당의 태세 전환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백인 노동자, 인종 소수자, 성소수자를 모두 품되 우선순위만 바뀐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한 집단을 품기 위해 다른 집단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면 이것은 민주당이 단호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참고 문헌

 

Judis, John B., and Ruy Teixeira. 2023. Where Have All the Democrats Gone? The Soul of the Party in the Age of Extremes. New York: Holt.

 

Lilla, Mark. 2017. The Once and Future Liberal: After Identity Politics. New York: Harper.

 

Sides, John, Michael Tesler, and Lynn Vavreck. 2018. Identity Crisis: The 2016 Presidential Campaign and the Battle for the Meaning of America.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Sides, John, Chris Tausanovitch, and Lynn Vavreck. 2022. The Bitter End: The 2020 Presidential Campaign and the Challenge to American Democrac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하상응_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hspark@eai.or.kr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