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양규 EAI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재정의하고 대남 노선을 전환한 배경에는, 미국의 확장억제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핵 역량을 갖추지 못한 북한이 차선책으로 한국에 대한 위협을 구사하는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 전략”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저자들은 한국이 미국과의 핵 협의 및 통합 안보 역량 강화를 통해 북한식 핵위협 전략에 대응하는 한편, 비핵 북한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보장하고 정보화·지식화를 지원하는 복합 모델을 마련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자생과 공진을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북한이 “적대적 국가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선포하고 전쟁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국내외 논의가 혼란스럽게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우선 지난해 12월 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제시된 대남노선의 변화를 북한의 대남노선 변천사의 맥락에서 간단히 정리한다. 다음으로, 북한이 새롭게 제기한 “대한민국의 궤멸”을 미국 바이든(Joe Biden) 행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맞춤형 확장억제 전략으로 제시한 “김정은 정권의 종말”과 연관하여 검토한다. 끝으로, 현재와 같은 종말과 궤멸의 담론을 넘어 새로운 한반도 평화 번영 체제 구축을 위해 한국이 추진해야 할 바람직한 대북 4대 복합 정책을 제시한다.

 

1.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 대한민국의 궤멸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연말 회의에서 “불신과 대결만을 거듭해 온 쓰라린 북남관계사를 랭철하게 분석한데 립각하여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할데 대한 로선”을 제시했다(「조선중앙통신」 2023/12/31). 그 이유로 한국의 보수나 진보 정권은 모두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흡수통일’이나 ‘정권 붕괴’를 추구해 왔으므로 북한의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조국 통일로선”과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문화적으로 “양키 문화에 혼탁”되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에 불과한 한국과는 “더는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조선중앙통신」 2024/01/15)에서 최대 적국 한국과 이웃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어, 물리적 충돌에 의한 확전 및 전쟁 발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미국에는 상상해 보지 못한 재앙과 패배를 안길 것”이라고 공언했다. 2월 8일 국방성 연설에서는 한국을 북한에게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한국의 영토를 침공하는 것을 “국시”로 정했으며,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과 형식상의 대화나 협력을 추진해야 했던 “비현실적인 질곡을 주동적으로 털어버렸고”, “언제든 치고 괴멸시킬 수 있는 합법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미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 때부터 전통적 의미에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억제와 방어를 위한 핵무기의 “제1의 사명”과 구분해서, 한국에 대한 공세적 차원에서 핵 무력의 “제2의 사명”을 언급하고 있다. 2022년 9월 8일에 2013년 4월 1일에 채택했던 제1 사명 중심의 핵 무력 정책 법령을 개정하면서 새롭게 제2 사명으로서 “전쟁 억제가 실패하는 경우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을 격퇴하고 전쟁의 결정적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작전적 사명을 수행한다”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2022년 핵 무력의 제2 사명을 언급할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의 괴멸’을 본격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북한의 대한민국 궤멸론은 대남노선의 전환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표현이다.

 

북한 대남노선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첫 시기는 1948년 이후 추진했던 ‘전쟁통일노선’으로 그 구체적 모습은 1950년의 한국전쟁이었다. 두 번째 시기는 1964년 제4차 당대회 때 처음으로 ‘혁명 통일론’이 제시된 것이다. 이러한 노선 전환의 핵심 요인은 국제 변수였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월남전 개입을 시작했지만, 중소 분쟁이 심화하는 속에 북한은 제2의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 통일노선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한국보다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북한은 전쟁 노선 대신 혁명노선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3대 기본 원칙인 반외세·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도 이러한 노선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북한은 세 번째 시기로서 전쟁통일 노선과 혁명 통일노선에 이어 북한식 맞춤형 대남 핵 위협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전쟁통일 노선과 혁명노선과는 다른 차원에서 북한이 제시한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주목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2. 대남노선 전환의 핵심: 대북 확장억제와 김정은 정권의 종말

 

북한 대남노선의 전환은 북한 국내 정치, 남북 관계, 국제정치 차원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속에 진행되고 있지만, 특히 국제정치 차원의 변화에서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10월 27일 핵태세재검토(Nuclear Posture Review: NPR)를 포함한 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 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맞춤형 대북 억제 전략을 제시했다(U.S. Department of Defense 2022/10/27).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국에게 핵을 사용하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므로 북한이 “핵을 사용한 뒤 살아남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월 31일에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주권국가의 ‘정권 종말’을 핵전략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기도하는 경우 자기도 대등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라고 담화를 발표했다(「조선중앙통신」 2022/10/31).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한국을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핵 무력의 “제2의 사명” 결행을 언급하며 이는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선중앙통신」 2023/01/01). 현실적으로 미국에 대해 실효적 핵억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북한은 ‘김정은 정권 종말’의 대응으로 한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북한 핵 무력의 공격 대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더 구체적인 대응은 2023년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선언 발표 이후 나왔다. 4월 2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조선중앙통신」 2023/04/29). 이 문건에서 북한은 세 가지를 분명히 하였다. 첫째, 워싱턴선언은 “가장 적대적이고 침략적인 행동의 지가 반영된 극악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약화된 산물”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의 창설로 인해 북한은 “새로운 안전 환경에 상응한 보다 결정적인 행동에 림해야”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둘째, 북한 입장에서 “반드시 계산하지 않을 수 없고 좌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로 “적국 통수권자가 전세계가 지켜보는 속에서 《정권종말》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직접 사용”한 점을 지적하였다. 셋째, 북한은 “핵전쟁억제력 제고”와 특히 “억제력의 제2의 임무에 더욱 완벽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규탄하는 전국 집회를 열었고, 5월 3일 청년 학생 집회에서는 한미 정상을 겨냥한 허수아비 화형식까지 진행하였다.

 

이후 북한의 대응에는 ‘정권종말’이라는 표현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2023년 9월 2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지난 세기에 우리 국가의 물리적 제거를 국책으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전쟁까지 강요했던 미국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우리의 《정권종말》을 실현하기 위한 침략전쟁각본을 부단히 개악하면서 《대한민국》과의 공모밑에 우리 국가에 대한 핵무기사용을 목적으로 한 《핵협의그루빠》를 가동”시켰다고 비난하며 북한 핵무력 고도화와 핵무력 정책법의 헌법화를 정당화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2023/09/28). 2023년 12월 말 북한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통해 밝힌 근본적인 대남노선의 변화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맞춤형 확장 억제 전략인 “정권종말”을 지적하고 있다.

 

2022년 10월 미국 정부가 “정권종말”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이후 북한은 한국을 북한 핵무력의 제2사명을 결행할 수 있는 적국으로 규정하고, 같은 민족인 ‘남조선’ 대신 다른 적대 국가로서 ‘대한민국’으로 부르고 있다. 미국이 ‘정권종말’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은 핵무력의 제1 사명으로서 미국의 억제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2 사명으로 한국에 대한 핵위협을 최근 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닥에는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 전략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서로에 대하여 핵 공격을 받은 후에도 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2차 공격 능력을 안정적으로 보유하여, 쌍방이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능력을 갖추게 되자, 공멸을 피하려고 서로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피하려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핵 혁명(Nuclear Revolution)”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상호확증파괴를 토대로 한 “상호취약성(mutual vulnerability)”의 공유다(Jervis 1989, 23-38). 따라서 북한이 미국에 대해 상호확증파괴 능력을 갖춰서 북미 관계의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정권 종말’을 위협하는 수준과 같이 미국 ‘핵심 지도력의 종말’이나 국민 상당수의 생명과 재산을 볼모로 잡는 ‘대도시의 파괴’와 같은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핵 능력 차원에서 북미 간의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의 통계를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으로 미국은 실제 발사할 수 있는 핵탄두를 1,770개, 격납고에 보관된 핵탄두를 1,938개 보유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발사할 수 있는 탄두는 없고, 보관 중인 탄두는 30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단순 탄두 수로 비교할 때 북한은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인 셈이다. 특히, 실제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 탄두의 경우 북한은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회원국인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에 100기를 배치하고 있고, 미국 본토에 100기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B61-3과 B61-4의 구형 탄두를 B61-12의 신형 탄두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B61-12는 고도의 정밀유도가 가능한 저위력 전술핵으로 과거와 달리 최소한의 방사능 낙진과 함께 지하 목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운반 수단도 과거와 같이 B-2 전략 폭격기뿐만 아니라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에 탑재하여 적 지휘부와 주요 군사시설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SIPRI 2023, 247-259).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동맹역량과 함께 인공지능으로 첨단화되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여 육·해·공·우주·사이버의 다중 군사 영역에서 무력 분쟁뿐만 아니라 회색 영역의 혼합 전을 동시에 치르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전략을 추구할 수 있는 복합 안보 역량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White House 2022/10/12, 22). 한마디로 핵무기의 독점적 전성시대는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미국의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라는 대북 맞춤형 확대 억제 전략도 이러한 통합억제 능력을 기반으로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U.S. Department of Defense 2022/10/27, 8).

 

미국의 이러한 역량 진화에 대해서 북한은 무엇보다도 절대 존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먼저 고민하고 있다. 북한의 국제정치연구학회 연구사 리지성은 최근 로동신문(2024년 2월 2일)에서 영국의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에 보도된 미국의 전술핵 영국 재배치를 소개하면서, 미국 괌 기지의 B-2 스텔스 핵전략 폭격기가 B61-12를 탑재 운용하여 한반도지역 작전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경계심을 보이면서, 북한의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 역량은 미국의 핵심 국익에 해당하는 주요 군사 및 비군사 시설을 실질적 공격 목표로 삼아서 미국을 현실적으로 위협할 수 없다. 미국에 대한 2차 공격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과 상호취약성을 공유할 수 없으며, 따라서 안정적 상호 억제력을 구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명확한 한계 때문에 북한은 현재 보유한 핵탄두와 운반 수단으로서 제1의 사명 대신에 ‘대한민국의 궤멸’이라는 제2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궤멸’은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라는 미국의 대북 맞춤형 확장억제 강화에 대한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 전략이다. 이러한 핵위협 전략을 주장하기 위해서 같은 민족인 남조선 대신에 전혀 다른 적대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궤멸을 강조하고 있다.

 

3. 한국의 대북정책: 대북 통합억제의 강화와 비핵 북한의 복합적 체제보장

 

북한은 역사적으로 대남노선을 국제, 남북, 국내의 삼대 혁명역량 강화라는 틀 속에서 전개해 왔다. 북한이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두 개의 적대 국가’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궤멸’이라는 맞춤형 핵 위협론에 대해 한국이 국가지를 모아 현명하게 대응해서 한반도와 지역 질서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도록 풀어 나가려면, 단순히 북한의 국내 정치적 필요, 남북한 관계의 변화, 국제정치적 요인을 평면적으로 연결하여 북한의 대남노선 변화를 보려는 현재의 노력을 넘어서야 한다. 북한의 전략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고, 새로운 대북정책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2023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통합억제와 연계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조치는 불가피하다. 워싱턴선언과 핵협의그룹의 창설은 최근 B61-12 탄두 생산 및 배치, 그리고 이를 운반하는 핵심 체제로 F-35의 중요성 증가로 인해 북한에게 가장 치명적인 정권종말 위협의 신뢰 증대를 가져왔다. 냉전 당시 미소가 쌍방의 핵심 군사 시설이나 대도시 및 산업시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대규모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상호확증파괴 체제를 구축했던 것과 다르게, 북한에 대해서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북한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의 초보적인 자체 핵무장 논의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으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도 유럽과 다른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현실에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한미 핵협의체의 진화를 통해 미국의 통합억제력 구축 노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한국은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을 포함한 복합 군사 전략의 가성비를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첨단 기술 기반의 통합 안보 역량을 강화하여 새롭게 열리고 있는 알고리즘 전쟁(algorithmic warfare)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둘째, 북한 핵 능력의 1차와 2차 사명을 대북 통합억제 전략으로 현실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과 함께 북한 비핵화의 가성비를 극대화하기 위한 복합적 노력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한미의 통합 확장억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아무리 핵 능력을 고도화하더라도 그 효용성은 앞으로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더라도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스스로 갖지 못하면 현재의 끊임없는 악순환 고리를 끊기는 어렵다. 북한은 효용성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핵무력의 강화를 위해 국가 자산을 엄청나게 낭비하면서, 동시에 핵 개발에 따른 경제제재를 벗어나지 못하는 속에 2025년의 제9차 당대회를 앞두고 최대의 문제인 경제 발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북한이 더 강력한 군사도발 이후 외교적 담판으로 경제제재를 풀려고 하면, 한미 동맹은 더 강력한 통합억제력을 구축할 것이므로, 결국 북한은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2021년 제8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생존권 담보를 위한 핵무기 고도화를 선언한 만큼,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비핵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북미와 남북의 양자 체제보장, 중국·러시아·일본 등 관련 국가들의 다자 체제보장, 마지막으로 유엔과 같은 세계적 체제보장을 포함하는 대북 복합 안전보장 체제 구축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비핵 북한의 발전권을 보장하는 복합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이 국내 정치적으로 2025년 제9차 당대회에서 발표해야 할 최대의 과제는 경제 발전의 성과와 미래다. 현재로서는 2020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선포된 “정면돌파전”이 강조하는 것처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에 기반한 경제 모델을 주축으로 하고, 러시아나 중국과 제한적인 교류 확대를 통해 경제 발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엄중한 경제 상황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자력갱생 모델의 한계는 명확하다. 중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선례에서 보듯 북한식 개혁개방 노선의 선택은 불가피하다. 북한의 21세기 선진화를 위한 개혁개방의 길이 매력적인 제3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전 세계가 공동 참여하는 경제협력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넷째, 비핵 북한 정보·지식화의 복합지원이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새로운 문명 표준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 진화를 기반으로 한 정보·지식화다. 북한도 21세기 문명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예외가 아니다. 북한 스스로 21세기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효용성이 격감하고 있는 핵 무력 대신에 비핵 생존 모델을 구축하고 동시에 북한식 21세기 개혁개방 모델을 통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21세기 정보·지식화의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21세기 진화생물학 연구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자생(self-organization)과 공진(coevolution)의 경쟁적 공생 노력이 없는 생명체는 더 이상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 스스로가 자생과 공진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한국형 통합억제의 확장, 비핵 북한의 생존권 복합보장, 비핵 북한의 경제 선진화 추진, 21세기 정보·지식화의 복합지원이라는 4대 전략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종말’과 ‘대한민국의 궤멸’이라는 공멸의 담론을 넘어 새로운 한반도 평화번영 체제 구축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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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vis, Robert. 1989. The Meaning of the Nuclear Revolution.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 2023. SIPRI Yearbook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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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선_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양규_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사.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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