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본 스페셜리포트 시리즈의 총론으로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과 김양규 EAI 수석연구원은 미중 전략 관계의 변화과정과 양국의 핵무기 경쟁 본격화 양상을 분석하고, 핵 분야에서 협력을 통한 미중 ‘대타협’의 길을 모색합니다. 저자들은 핵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통제되지 않은 경쟁과 대립 속에서 핵전쟁까지 갈 수 있는 파국을 맞이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미중 협력을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 (1) 미중 간 신(新) 뉴스타트 조약(New START: 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2) 인도-태평양 비확산 구상(Non-Proliferation Initiative), (3) 핵테러 방지를 위한 핵안보 구상(Nuclear Security Initiative), (4) 한반도 비핵화안보구상(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itiative)을 미중 양국에게 제안합니다.

I. 미중 전략 경쟁의 군사화와 불투명한 미래

 

 

미국과 중국의 양자관계는 전략경쟁으로 규정된다. 전략적 핵심이익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전면적 대립으로 갈 수도 있고, 건전한 경쟁과 협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통제되지 못한 경쟁과 대립 속에서 핵전쟁까지 갈 수 있는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고, 1972년 미중 데탕트를 통해 전략적 협력의 계기를 마련했듯이 신데탕트의 대타협을 이룰 수도 있다.

 

양국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쟁이 대립과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방지, 핵비확산, 기후변화 및 보건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신기술 규제레짐 수립을 위한 협력 등의 공통이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가운데 군사적 충돌이 전면적 대립으로 가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은 회담을 통해 위기안정성을 확보하고 소통의 길을 열어놓는 방안을 연구하며 고위급 인사들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양국 간 전면적 디커플링보다는 상호의존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줄이면서 협력의 방법을 찾는 기미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경쟁은 상당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회색지대, 통상전력 부문은 물론 핵전력과 신무기 부문까지 군사분야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중 전략경쟁이 군사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중 간 경제, 기술 경쟁도 많은 국가들이 우려하는 대상이지만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는 생사의 문제가 될 것이다. 미중 간 군사충돌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은 특히 이러한 사태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가 위협이 날로 증대하는 가운데 미중 간 협력의 부재 자체가 인류 절멸의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두 핵국가의 군사충돌은 국제정치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중 간 협력의 증진, 더 나아가 대타협을 통한 협력 기반 조성은 전 지구적 사안이라고 하겠다. 양국은 1972년 데탕트의 경험을 통해 전략적 상호이익을 도모한 전례가 있고 이러한 이익 조정과 공생의 비전은 양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군사충돌을 막아야 하는 미중 양국과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과연 미중 간 대타협, 더 나아가 새로운 공생의 세계질서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이 과정에서 한국이 협력 촉진의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도록 한다.

 

II. 미중 전략 관계의 역사적 변화과정과 현재 국면

 

 

역사적으로 미중 관계는 적대관계로부터 전략적 협력관계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진동해 왔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은 전쟁의 교전국으로 실제 전투를 벌였는가 하면, 1972년 닉슨의 베이징 방문 이후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미중 데탕트는 미소 양국 간 핵균형 및 핵감축 노력과 같은 관계 변화, 냉전기 양대 진영 내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 변화 및 결속력 약화, 그리고 1960년대 유럽에서 보이듯이 진영을 넘어서는 국가들 간의 새로운 전략적 관계 설정이라는 큰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냉전의 종식이라는 거대한 변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은 대체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미중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과 협력을 유지했다. 1997년 10월 클린턴-장쩌민 정상회담 이후 “건설적 전략 동반자(constructive strategic partnership)”의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했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미국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양국 간의 상호 이익에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뒷받침한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 모델을 비판했다.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추진해온 도광양회(韬光养晦)의 국가 전략을 점차 분발유위(奮發有爲)와 같은 적극적인 지구적 영향력 확보 전략으로 변경한 것이다.

 

오바마 후진타오 시대에 긴장이 팽배했지만, 대체로 2010년대를 통해 양국 간의 협력을 모색하는 소위 신형 대국관계를 유지했다. 현재 미중 전략 경쟁의 시대를 본격화한 것은 2017년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고,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채택한 이후이다. 미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중국을 관여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였고, 중국이 자신이 성장해온 국제 질서의 틀인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를 벗어나 중국 중심의 대안적 세계질서를 이루고자 한다는 인식을 굳혔다.

 

그 결과 중국에 대한 무역분쟁에서 시작하여 경제 전반과 가치, 규범, 그리고 군사 안보에 이르기까지, 미중 간에는 경쟁과 대결의 관계가 자리 잡게 된다. 하노이 회담에서 시작된 미중 간 전략 경쟁과 소위 디커플링의 시대는 트럼프 정부 전 시기에 걸쳐 전선이 확대되고, 대립과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며, 가치의 진영화로 양립이 어려운 관계로 치닫게 되었다.

 

바이든 정부 등장 이후 미중 관계는 여전히 경쟁으로 특징지어지지만, 2022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위기관리와, 전략적 협력과 경쟁의 복합 시대를 열기로 합의하였다. 지난 5년간의 하노이 패러다임이 대립으로 치닫는 전면적 경쟁의 시대였다면, 2022년에 시작된 발리 패러다임은 위기를 관리하고 외교적 방법으로 양자의 차이를 조정하는 전략적 조정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조정기는 관계의 완전한 탈동조화보다는 위험감축 혹은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정의된다. 이 시대는 지나치게 안보화된 모든 이슈를 적절히 탈안보화하고, 충돌의 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외교적 대화의 메커니즘을 복원하면서, 양자 간의 경쟁을 통한 보다 나은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중 간에는 양자관계에 대한 근본적 시각차가 존재하며, 위험 관리가 실패할 경우 군사 외교적 충돌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군사력 사용의 문턱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반대하는 세계 여러 국가들의 비판 의식도 강해졌다. 중국은 미국이 추구하는 국제 질서가 앞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중국 주도의 대안적 질서를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력과 경쟁의 관계를 추구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군사 안보적 대결을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특히, 대만 해협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중국의 현상 변경 정책이 향후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장하면서, 미중 관계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2027년 창군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소위 강군몽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고, 이후 세계 최강 수준의 군대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군구를 개편하고, 변화하는 신기술의 패러다임에 맞게 지능화전과 다영역작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민군 기술 융합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군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III. 미중 핵무기 경쟁의 본격화 및 신기술의 파괴적 영향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더불어, 미중 군사 충돌을 결정할 궁극적 차원은 역시 핵군사력의 균형이다. 현재 중국은 대만해협과 같은 주권적 영역의 분쟁 문제, 그리고 남중국해와 같은 회색지대에서의 영향력 확보, 더 나아가 지구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기존의 미국 국익을 침해할 경우,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대립이 불가피할 수 있다. 통상 무기를 사용한 저강도 분쟁이 확전을 거듭할 경우, 전면적 통상전에 이어 결국 핵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미중 양국의 군사력을 총량 데이터 차원에서 비교해 보면 군사비 측면에서 미국은 2022년 기준 8조 10억달러를, 중국은 2조 9천 3백억 달러를 지출하여 대략 8:3의 비율을 보이고, 핵탄두수로는 미국 5,428개, 중국 350개로 15:1을 배분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총량지표는 중국의 군사비 지출 통계의 신뢰성 문제, 총량 통계가 실제 해당 지역 내 투사할 수 있는 실제 역량으로 단순 치환되기 어려운 문제, 그리고 동맹국 역량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한계를 가진다.

 

핵능력 차원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어 중국이 섣부른 군사행동에 나서기 어렵게 만드는 억제력을 미국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전략폭격기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중국 잠수함의 소음이 심해 대잠전에 취약하고 H-6N 전략폭격기 능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중국의 2차 공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은 이동발사대(TELs)와 지하시설(UGF) 등을 활용한 핵자산 생존능력 강화의 성패에 달려있다. 이러한 제한적 핵운반능력 문제에 더하여 핵탄두 보유량이 현재 400기를 넘지 못하는 한계까지 있어, 과연 미중이 상호취약성(mutual vulnerability)을 공유하게 만드는 최소억제(minimum deterrence) 수준의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중국 스스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미중 전략을 비교해보면, 미국이 추진하는 ‘통합억제’는 잠재적 적국으로 하여금 적대 행위의 비용이 그 편익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매끄러운 역량의 조합(the seamless combination of capabilities)”이다. 이는 통합억제가 군사영역(domain, 육해공, 우주, 사이버, 비군사), 지역(예. 유럽과 인태), 분쟁 스팩트럼(무력분쟁~회색영역), 정부 역량(외교, 정보, 경제), 그리고 동맹 역량을 모두 통합하는 형태의 “총력억제(all of us giving our all)” 전략임을 의미한다.

 

중국 역시 “전역연동(全域联动),” “기계화, 정보화, 지능화의 통합(机械化信息化智能化融合),” “합동작전 지휘체계를 최적화하고 정찰 및 조기경보, 합동타격, 전장지원, 종합지원체계 및 역량강화를 추진한다(优化联合作战指挥体系,推进侦察预警、联合打击、战场支撑、综合保障体系和能力建设)”는 표현에서 보이는 ‘통합역량’ 구축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추구하는 통합억제와 본질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통합억제’와 중국의 ‘지능화전’을 겹쳐서 볼 때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세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먼저, 양국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중국 중 한 국가가 통합역량 시스템 구축에 성공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소 데탕트의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했던 ‘2차 공격능력’과 ‘상호취약성’에 기반한 ‘핵균형’이 미중간에는 수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보유한 핵 자산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use-it-or-lose-it)’는 강박에 쉽게 빠지게 되어 미중 간의 재래식 국지전(예. 대만해협)이 순식간에 핵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으로 만약 중국의 지능화전 구축 노력이 미국의 통합억제 태세 구축과 비슷한 수준으로 동시에 발전하게 되면, 쌍방이 모두 적의 공격 시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타격함으로써 공격 시도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1차 공격능력을 보유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이 경우 과거 2차 공격능력에 기반한 ‘상호 취약성’ 공유와 전혀 다른 형태의 군사질서를 가져오게 되는데, 인류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형태라 정확한 모습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양측이 모두 ‘경보즉시발사(预警反击, Launch on Warning)’ 교리를 채택함으로써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 새로운 형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형성될 수도 있지만, 오판이나 사이버 공격에 따른 인공지능 오류로 인해 재래식 국지전이 빠르게 핵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세 번째 가능한 미래는 앞의 두 시나리오와 달리 미중이 신기술과 핵전략의 결합을 규제하는 레짐 구축에 합의하여 통합안보 역량 구축의 무한경쟁에 빠져드는 것에 일정부분 제동을 거는데 성공한 경우이다. 이 경우 미국이 선제타격으로 ‘거부에 의한 억지’를 달성할 수 없는 수준으로 중국이 핵탄두 보유수를 확대하여 최소억제 역량 구축하게 되어 미중 핵 불균형 문제가 일정부분 해소된다. 여기에 탈동조화(decoupling) 또는 리스크 경감(de-risking) 전략의 여파로 미중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자국 중심주의적인 국내정치 분위기가 완화되는 변화가 동반되면, 미중은 과거 미소처럼 MAD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 역량만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핵능력 자원 투입을 막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핵군축 합의는 양국 간의 취약성을 공유하면서, 서로 간의 안보를 위해 생존을 넘어선 불필요한 핵 군비 경쟁을 막고자 하는 상호 이익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이는 냉전기 미소 간에 적용되었던 전제인데, 현재의 미중 핵경쟁은 상황이 다르다. 즉, 인공지능과 우주 전력, 사이버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대방을 고도의 군사정보와 초정밀 타격에 의해 선제공격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국 간 보복 공격 능력 보유에 기초한 상호확증 파괴의 가설은 무너지게 된다. 현재 신기술의 발전으로 핵전력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결합될 때, 향후 상호억제의 가설이 어떻게 변화될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핵무기 경쟁과 더불어 신기술 경쟁을 무한으로 벌여 나갈 때, 상호 확증 파괴를 기준으로 한 전략적 안정성은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예상할 수 없는 군비 경쟁으로 양국의 안보는 심각히 훼손되고, 의도치 않은 핵전쟁으로 전 세계의 안보를 해칠 수 있는 상황이 예견되는 것이다.

 

현재는 미중 모두 신기술과 핵전략을 결합한 통합안보역량 구축에 승산이 있다는 판단하에 군비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국면이다. 아직은 미중 간 핵불균형은 명확한 상황이기에, 이러한 불균형이 미중 전략 경쟁을 전면적인 군사충돌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과 기술력 발전 수준을 볼 때, 2030년대 미중 간 핵전력 균형은 일정 부분 이루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고,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회색지대 영역과 통상전쟁 영역에서 더 공세적으로 나오게 만드는 유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중이 신기술 규제레짐 합의에 실패한 상황에서 2040년대 핵 역량을 포함한 미중 군사력 균형이 이루어질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충돌 양상은 근본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IV. 핵과 신무기 경쟁에서 생겨나는 협력의 필요성

 

 

미중 간 핵무기를 둘러싼 경쟁이 지속될 경우, 전략적 안정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양국은 핵무기 증강을 추구하는 군비 증강의 불안정성을 보일 것이며, 미중 간 군사 충돌이 핵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기 불안정성 또한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미중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올 핵무기 증강 및 핵전쟁의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은 양국의 공통된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중 양국은 협력의 동기가 강하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기후 변화와 같은 문제는 인류 공멸의 문제로서, 미중이 협력하지 않으면 양국은 물론 전 인류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신기술의 통제 역시 무한경쟁으로 귀결될 경우, 양국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 필요성을 가장 피부로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역시 핵전쟁의 가능성이다. 미중 간의 핵무기 경쟁은 비단 양국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시아 국가들,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중 핵무기 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양국의 동맹국과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의 군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 증강 및 핵사용의 문턱이 낮아지는 환경 속에서 고도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전략적 불안정성을 가져오는 요인이며, 무엇보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부추기는 동인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양국이 지금의 전략 경쟁이 핵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엄청난 향후 위험성을 공히 인식한다면, 협력의 유인은 다른 어떤 영역에 비해서도 강할 수밖에 없다.

 

과거 1972년의 미중 간 데탕트가 냉전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다른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소련에 대한 공동 견제의 전략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라면, 현재에도 유사한 전략적 협력의 유인은 존재한다고 본다. 미중 간에 앞으로 도래할 상호 확증 파괴의 전략적 균형점의 도래, 그리고 핵경쟁과 신기술이 접합된 새로운 안보 위협의 증가, 인도태평양 국가들 전체의 핵무장을 촉진할 수 있는 핵 군비 경쟁의 환경 강화, 이를 막을 수 있는 지구적 비확산 레짐의 급속한 무력화 등을 고려할 때 미중 간 협력의 유인은 전략 경쟁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미중이 우위를 추구하는 세력균형의 경쟁을 벌여도 공동이익을 위한 이익균형은 가능하며, 이 과정을 통해 장기적인 관계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반면 협력의 실패는 곧 핵전쟁의 위험 증가로 인한 양국 안보의 근본적 위기 및 인류 공멸의 가시화라는 점에서 부정적 의미의 협력 인센티브도 존재한다.

 

V. 미중 협력을 위한 4대 이니셔티브

 

 

이러한 위험을 막고 미중 간 미래의 위험을 미리 인식하여 협력을 가시화할 수 있는 제2의 데탕트의 전기를 핵 분야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핵분야의 미중 협력은 비단 양국 간 안보이익을 넘어 동북아, 인도태평양지역,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안정과 핵비확산, 핵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미중 협력을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 ① 미중 간 신(新) 뉴스타트 조약(New START: 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② 인도-태평양 비확산 구상(Non-Proliferation Initiative: NPI), ③ 핵테러 방지를 위한 핵안보 구상(Nuclear Security Initiative), ④ 한반도 비핵화안보구상(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itiative)을 미중 양국에게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미중 간 신데탕트의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첫째, 미국과 중국이 미래 리더십을 둘러싼 힘의 우위 경쟁을 벌이더라도, 여전히 공통의 이익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세력균형과 이익균형이 항상 일치할 필요는 없다. 또한 양국 내에는 상호협력을 중시하는 다양한 행위자들, 예를 들어 기업과 시민사회 그룹들이 존재한다.

 

미국은 현재 중국에 대해 공정하고 규범에 기반한 경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패권경쟁의 논리를 막연하게 상정하여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국내정치는 중요한 변수이다. 1972년 데탕트 당시에는 닉슨이 중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차이나에서 효율적으로 철군하면 재선 가도에 도움이 될 만큼 국내 정치 상황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미중 경쟁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경쟁을 벌이는 구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중 데탕트보다는 과대 균형(overbalancing)이 나타나기 쉬운 구조이다.

 

반면, 중국은 미중사이의 경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내심 중국 역시 미국과 긍정적 의미의 경쟁을 이미 수행하고 있으며, 경쟁을 통해 중국 역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전반적 국력에서 열세에 처한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다가 예상치 않은 국력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불안이다.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는 내적으로 효율적인 정책결정구조를 유지해왔지만, 경제발전이 저하되고 민주화 요구가 증가할 경우 내정의 불만을 회유하기 위해서라도 강경한 대외정책을 추구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미중 양국 내 국내정치구도가 대타협의 협력 가능성을 줄이지 않도록 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힘의 균형과는 별도로, 양자의 상대적 이득 격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익의 균형은 존재할 수 있다. 특히 전쟁을 통한 공멸이야말로 미국과 중국 모두가 경쟁 국면에서도 반드시 유념해야 할 상황이다. 따라서 미중 간 경쟁이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군사적 안정과 공멸 방지의 인식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둘째, 냉전기 미국과 소련 간의 핵 군비 통제 협상의 여러 측면을 면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미국과 소련 간의 전략무기 감축 협정에 대해 검토해보면,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지점에 이를 때, 군비통제 협상을 추구하는 것이 양국의 안보 이익에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에는 미중 간 핵전력 불균형이 크게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향후 중국의 핵능력 증강 과정에서 상호확증파괴의 균형점은 곧 다가올 것이다. 미중 양국 간의 핵전력 전망을 정확히 제시하여, 2030년대에 도래할 핵 군비 통제의 필요성을 사전에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양국의 핵 전문가들이 군비통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로드맵을 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한 매우 구체적인 전략대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중 간 핵 타협이 존재하지 않으면 양국의 의도와는 별도로 동북아의 여러 국가들,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이 핵무장 시도, 혹은 핵능력 증강의 정책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개발은 물론이고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국, 일본, 대만의 핵무장을 향한 가능성도 본 연구에서 제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양국 간 힘겨루기 속에서 핵 부분의 비확산 레짐을 동북아,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지구적으로 확립하지 못한다면 이는 양국의 안보 이익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양국은 양자 핵군비통제뿐 아니라 지역적, 지구적 차원의 핵 비확산을 위한 전격적인 노력을 시작하도록 협력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미중 간 핵 협력은 비단 핵무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핵 안보와 핵 테러 방지,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미중 양국은 핵 안보 및 핵 테러 방지를 위한 노력을 비교적 다양한 형태로 기울여 왔다. 앞으로도 다자적 차원에서 이들 이슈를 둘러싼 협력이 국제 안보 질서 유지에 매우 긴요함을 인식하고 협력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VI. 미중 대타협을 위한 실행방안

 

 

미중 양국의 상호 공멸을 가능하게 하는 핵전쟁의 위험을 감축하는 노력은 보다 광범위한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양국의 생존에 핵심적인 핵군사력을 비롯한 군사분야에서 시작하여 전반적인 협력의 기반을 다지고, 이어 광범위한 핵심이익의 조정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1972년의 데탕트를 돌아보며 현재와 비교해 보는 방법도 유용하다. 즉, 2023년 현재의 관점에서 미중 간 대타협의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1972년 당시 미중 간 타협은 양국 간 패권 경쟁이나 전략 경쟁을 상장할 수 없을 정도로 미중 간의 국력 격차는 매우 컸다. 미중 간 상호 의존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데탕트 이전에 미중 간 이해 갈등의 요소도 직접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이 미국 국력을 추월할 만큼 강력해졌고 미중 간 심화된 상호작용이 존재하고 있어 갈등의 요소가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고 보아야 한다.

 

1972년의 데탕트가 미중소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지금은 미중 양국이 공동의 적 혹은 위협으로 삼을 만한 강대국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72년 당시에는 닉슨이 중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차이나에서 효율적으로 철군하면 재선 가도에 도움이 될 만큼 국내 정치 상황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미중 경쟁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경쟁을 벌이는 구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중 데탕트보다는 과대 균형(overbalancing)이 나타나기 쉬운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대타협을 위한 기본적 요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 및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합거시이행의 와중에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닉슨의 “평화의 구조” 전략과 일치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둘째, 미국 동맹국들의 이해관계 다변화, 진영 내 결속의 가변성이라는 점에서 1960년대와 유사하다. 미중 양국의 경쟁에 따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양분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진영을 넘는 상호의존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중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국가들의 입장을 반영하여 일정 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의 경우에도 여러 동맹국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대중 전략의 다변화도 필요하다. 더불어 한국의 입장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바이든 정부, 혹은 미국 집권당의 이익과 대중 데탕트의 정책이 보완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고찰과 논리가 필요하다. 미국의 최종적인 대중 전략의 모습에 대해 많은 논란과 담론 경쟁이 있는 가운데, 미국 내 대중 데탕트, 대타협, 관여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학파, 세력 등에 대한 조사, 고찰이 필요하다.

 

향후 미중 간 대타협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촉진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중의 핵 경쟁이 가시화되고 그 위험성이 충분히 예상 가능하므로 경쟁 더 나아가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와 군축의 필요성 논의는 가능하리라 본다. 미중의 전략 경쟁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공유하는 이익이 매우 클 뿐 아니라, 협력의 상호 이익이 매우 크므로 지정학적 고려 이외의 상황에서 타협과 협력의 요구 목소리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대로 미중이 신기술 규제레짐 구축에 실패한 미래 시나리오 1과 2의 결과는 미중은 물론 인류에게도 파국적이다. 미중이 2030년대까지 신기술 및 핵역량을 결합한 통합안보역량 구축 경쟁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2040년대에까지 미중 군비경쟁이 지속될 경우 미중은 자기파괴적 경쟁의 결과를 미리 깨닫고 2030년대 말 즈음에는 핵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는 AI와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이 중국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지만, 그러한 우위가 중국으로 하여금 공세적 핵전략 채택을 강요하고, 취약한 우주 영역에서 인공위성 파괴나 기능 정지에 나서도록 자극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거부에 의한 억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미중 신기술 규제레짐 구축이 가능해 질 것이고, 여기에 미중의 국내정치 및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면 미중 핵군축 협상과 대타협의 조건이 마련된다.

 

미국과 중국의 핵군축 협정, 혹은 미소 간 모델을 발전시켜 ‘신 뉴스타트 조약’의 내용을 양국이 추진할 수 있다. 양국의 핵군축을 위해서는 핵탄두 숫자의 상호 감축은 물론, 상대방의 핵무기 및 운반체계를 정찰 감시하고, 이를 초정밀도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군사 강대국들은 정밀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바, 만약 정밀도에 대한 제한이 없다면, 제 1격으로 인한 상대방의 핵무기 제거가 가능하다는 의구심이 증대될 것이다.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상호 군축도 필요하다. 만약 발달된 미사일 방어 체계로 상대방으로부터의 핵 공격 취약성이 약화될 경우, 상호 확증 파괴의 가설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한 향후 급속도로 발전할 인공지능이 핵지휘통제 체제와 연결될 경우 ‘핵전쟁의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동인식을 기반으로 한 신중함과 공포의 균형 전제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감시 정찰 기능은 우주 공간 및 사이버 기술과 연결되기 때문에 향후 미중 간의 핵 군축은 사이버와 우주 영역에서의 군사 기술의 투명성 증가 및 상호 감축의 기준 마련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둘째, 인도-태평양 비확산 구상을 위한 미중 합의를 추진해야 한다. 지역 핵비확산 레짐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1) 미중 및 역내 국가 군 지휘부 및 국방부 차원의 위기관리 소통 메커니즘 마련 및 활성화, (2) 미중 및 역내 국가의 정치·군사적 레드라인 재확인 및 도발 행위 자제, (3) 핵무기 배치, 미사일 방어체계 및 첨단무기 운용·관리에 대한 민관 대화 개시 등의 위기관리 및 신뢰구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 번째, 핵 테러리즘과 안전을 둘러싼 미중 간 협력의 의제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부상한 원전에 대한 국가 군대의 공격 위협에 대한 대응과 동북아 지역 핵경쟁으로 인해 심화되는 핵확산 위협 및 핵안보·안전 문제 심화에 대한 대응 등 미중 공동이익 영역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미중 핵 경쟁이 진영 논리에 빠져 명백한 공동이익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협력 동인이 약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테러와 인권 문제가 결부되어 미중이 원천적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핵안보 문제에 대한 정교한 의제 설정도 필요하다.

 

네 번째,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미중간 타협을 추진해야 한다. 양국 모두 북한의 비핵화가 서로의 이익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한다. 북한이 핵 국가로 공인받을 경우 한국은 물론 일본 역시 핵무장의 길로 갈 수 있으며, 미국이 추진하는 지구적 비핵화레짐은 크게 손상될 것이다. 중국 역시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또한 지구적 비확산 레짐에 중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역시 난처한 일이다.

 

북한은 향후 체제 보장을 위해 발전권과 생존권을 요구하고 있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동북아 모든 국가들에게 큰 과제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주장하는 권리와 체제보장을 제공하는 데에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있다. 비핵화된 북한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지정학적 중립을 지켜, 지금의 미중 전략 경쟁에 커다란 상대적 이득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다면, 미중의 협력 가능성은 높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가 미중 양국에게 지구적 비확산 레짐을 지키고, 양국의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협상의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VII. 미중 대타협과 한국의 고려사항

 

 

안보 분야의 미중 협력 다른 분야의 대타협으로 확대된다면 보다 안정적인 국제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1972년의 경우를 보면, 미국과 중국은 대만 문제 및 한반도의 안보 문제, 미국과 중국의 상호 인정 및 경제를 비롯한 포괄적 상호 이익을 추구하면서 협력을 이끌어냈다. 지금 미중 양국은 과거 5년간의 디커플링 시도를 넘어, 시장에 기반한 상호의존이 완전히 단절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중 간에 추진되고 있는 위험감축 혹은 디리스킹 패러다임은 미중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전략협력을 강화하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맞게 공정한 시장관행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경제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옐런 재무장관도 건설적 관여를 통해 미중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군사안보적 함의를 가진 경제협력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미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은 핵과 지역안보 차원의 협력의 토대가 이루어진다면, 경제 협력의 걸림돌도 상당 부분 제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보적 함의를 가진 민간 품목이 아니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자신의 경제 발전을 좌절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목적 하에 높은 관세 부여 및 첨단 기술의 디커플링을 추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중 간 상호 의존 관계가 유지되고 무역 부문에서의 관세 인하 협정을 진전시키면서, 신기술을 둘러싼 안보 경쟁이 안보 협상 속에서 해결될 수 있다면 첨단 기술의 디커플링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핵심 안보 이익에서 출발한 상호협력의 토대 위에서 경제와 정치, 사회를 포괄하는 대타협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상호 공존하고 공생하는 전반적인 정치관계를 재설정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할 것이다.

 

과거 데탕트 경험을 돌이켜보면 주변 강대국들간 관계 재조정은 한국의 이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강대국들 간 전쟁 방지, 특히 핵전쟁 방지는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북핵 고도화 과정 속에서 강대국 경쟁이 북핵의 증강 및 비핵화 회의론을 부채질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과거 미중의 데탕트가 냉전의 긴장완화라는 점에서 한국에게 유리할 것 같았지만 데탕트에 이른 과정과 데탕트 국면 자체에서 한국이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데탕트가 안겨준 교훈은 강대국 정치의 변화가 한국과 같은 상대적 약소국의 외교대안의 폭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중 관계 정상화는 물론 닉슨 정부의 급속한 아시아 후퇴전략,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측하고 대비하기 어려웠다. 전략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한반도 미니데탕트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은 데탕트 국면을 활용하여 한국에 대한 평화공세를 가속화하고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이 원하는 통일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남북 간 상반된 입장에서 비롯된 잠정적 미니 데탕트는 오래갈 수 없었다. 북한은 평화공세를 통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1973년 8월에 일방적으로 남북 대화 중단을 선언하여 한반도에서의 데탕트는 막을 내린 바 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혹은 동북아 지역 여러 국가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미중 간 핵전쟁 방지, 무력충돌 방지, 갈등의 안정적 해결과 위기방지를 촉구하면서도 미중 간에 추구될 수 있는 대타협의 과정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야 한다.

 


 

전재성_동아시아연구원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양규_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사.

 


 

담당 및 편집: 박지수,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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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프로젝트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미중 핵경쟁과 동아시아 안보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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