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국정 운영을 평가하고, 향후 4년 간 역점을 두고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를 제언하는 스페셜리포트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 등 저자 7인(박원곤, 박재적, 손열, 이동률, 이승주, 하영선)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성과를 대미, 대중, 인도-태평양, 대일, 경제안보, 대북 전략의 차원에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정부가 추진해야 할 외교 정책 방향과 과제를 제언합니다. 저자들은 미국과 중국이 지난 5년 간 치열하게 대치한 디커플링 단계를 지나 현실적인 조정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중추국가 한국의 외교 전략도 양자택일이 아닌 가치와 원칙에 입각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추진방안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한국이 소다자 연대를 통해 자유주의와 다자주의 질서의 복원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하지 않는 국가들과 공통의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외교 환경은 과거 어느 정부와도 다른 복합적인 거시 이행과 중층적 위기의 국제 정세이다.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변화의 요인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여러 층위의 위기들이 다양한 형태로 뒤섞여 발생하므로 대처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향후 윤석열 정부가 추구해야 할 외교 정책의 과제는 1. 미래지향적 가치외교의 보완; 2. 한국형 통합안보 추진; 3. 호혜적 경제협력의 재세계화; 4. 첨단기술혁신외교의 강화; 5. 신흥외교의 선도적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대미, 대중 외교에서 실현하고 한국이 새롭게 제시한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더불어 대일 외교와 향후 대북 정책 및 남북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정책 목표를 제시해본다.

 

I. 대미 전략

 

한국은 이제 성숙한 중견국 혹은 신흥 선진국의 국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 단기적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데 국력, 자원을 모두 사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미래를 보고, 대전략에 준하는 계획을 세우고, 정책 자원을 늘려가야 하는 전략적 구상을 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를 뒷받침하는 가치와 정체성은 중요한 요소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평화, 번영의 가치를 제시하면서 글로벌 중추 국가의 외교정책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더불어 세계 시민으로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외교정책 방향을 강조하고 있다. 중견국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신흥 선진국으로서 세계의 주요 사안에 대해 한국의 가치와 정체성에 기반한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한국의 국력을 생각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치 외교와 국익 외교는 상반된 것은 아니며,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고, 또한 국익이야말로 중요한 가치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한 모범적 국가이며, 원조의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했다. 눈부신 경제 발전의 표본이자 문화 강국의 저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체성과 가치를 구체적인 외교정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하고 복합적인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모든 사안들에 일률적으로 같은 가치를 추구할 수 없고, 가치와 단기적 국익의 비중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미국은 현재 세계질서를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로 양분하여 인식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은 일견 타당하면서도 포용적 국제질서를 추구하는데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포용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국익에 맞는 질서의 성격과 다양한 국가들의 포용을 놓고 더욱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중국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하지 않는 국가들과 심도 있는 외교를 통해 국익을 조정하고, 공통의 이익을 창출하며, 한국이 추구하는 세계질서를 실현하는데 어떠한 관계를 맺어갈지 포괄적 밑그림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4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미 관계가 가치동맹이라는 기반 위에 안보·산업·과학기술·문화·정보 5개 분야에서 강화됐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육해공, 사이버, 우주, 전자기, 인지정보 등 다영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면서, 동맹국과 통합 억제를 추구할 수 있는 협력 체제를 이루고, 핵과 통상전력의 통합적 사용을 추구하면서, 군사적 방법과 비군사적 방법을 조합한다는 거시적 계획이다.

 

이러한 통합 억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무엇보다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신기술이다. 향후 세계 군사질서는 자동화 및 무인 전투, 그리고 다영역 통합성 등으로 실현되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미래의 군사질서 속에서 한국이 지속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한미 동맹은 활용 가치가 높은 중요한 정책 자산이다. 한국은 미래 군사질서에서 필수 불가결한 국력을 소유하기 위해 한국형 통합안보 체제를 꾸준히 구축해야 한다. 신기술에 기반한 통합안보와 확장억제가 결합될 때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사용 시도에 대해서도 미래지향적인 억제전략을 새롭게 수립할 수 있다.

 

한국의 통합안보 수립 노력은 비단 군사력의 발전뿐 아니라 군사 전략의 발전 및 비군사적 수단을 함께 고려하는 미래지향적 노력에서 가능하다. 한국은 현재의 세계 질서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왔고, 강대국 간 전쟁은 한국에게 반드시 피해야 할 미래의 조건이다. 현상 유지 속에 강대국 간 군사 충돌을 막고, 아시아 지역의 열전 지대가 군사적 충돌의 장으로 변하지 않도록 우리의 군사안보 전략을 추구해 가야 한다.

 

세계 경제 질서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화의 역풍에서 비롯된 반세계화의 흐름, 코로나 사태의 지속적인 영향, 그리고 미중 간 전략경쟁은 세계 경제 질서에 커다란 충격을 주어 왔다. 미국과 중국은 각자 회복탄력성이 있는 공급망을 각자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는 흔히 디커플링이라고 불리운다. 반세계화의 흐름과 함께, 미중 간 디커플링은 많은 국가들에게 경제적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대략 지난 5년간의 미중 간 디커플링의 추세는 점차 현실적으로 조정되고 있다.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상호 협력과 호혜의 미중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 설정이 이루어졌고, 외교 복원 및 초국가적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에서도 미중 간 공감대가 일정 부분 마련되었다.

 

미국은 작년 5월 블링컨 국무장관의 조지 워싱턴 대학교 연설 이후, 올해 4월 재닛 옐런(Janet Yellen) 재무부 장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보좌관의 연설에 이르기까지 대중 전략의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적 경제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며, 미국의 목적은 위험 감축(de-risking)과 다각화(diversifying)라고 대외 경제전략의 목표를 명시하였다. 그러면서도 안보적 함의를 가진 첨단 기술에서, 선택적이고 전략적 디커플링은 불가피하고, 중국의 불공정 경제 관행을 해결하기 이전에는 기존의 다자주의 경제질서와 재세계화로 가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적 관여와 건강하고 책임 있는 경쟁을 통한 협력 증진이 대중 관계의 핵심 목표라는 점을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밝히고 있다. 결국, 향후의 세계 경제 질서는 전략적인 재세계화의 흐름 속에 자유주의 질서의 복원을 조심스럽게 모색하면서, 각자의 국익을 치열하게 추구하는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협력과 경쟁의 복합 질서 속에서 미국 및 중국과 안보, 경제관계를 조심스럽게 재조정하며, 한국 번영의 축인 자유주의, 다자주의 질서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은 미국의 변화하는 산업정책 및 기술정책과의 조율과 협상을 필요로 하며, 중국과의 기존 경제협력 관계의 일정한 재조정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향후 세계 질서는 강대국 간 전략경쟁 및 충돌로 결정되기도 하지만, 인류가 당면한 초국가적 위협에 어떻게 공동 대처하느냐의 문제와 씨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그간 보건 위기 및 기후변화, 환경 위기와 핵 비확산 등 중요한 초국가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한국의 정책의 효율성을 배가시킬 뿐 아니라 세계질서의 증진에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비확산 분야는 북핵 문제와 맞물려 한국의 신흥 이슈 외교에 중요한 함의를 던져주고, 워싱턴 선언에서 한국은 핵 비확산 체제를 준수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이는 비단 대북 확장 억제에서 자체 핵무장을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핵이 확산되는 세계가 한국은 물론 인류에게 치명적이라는 인식 하에 핵 비확산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정책 방향을 준수하고 북한을 과의 길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정책적 목표이다. 초국가 위협에 대처하는 부문에서 한미 협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안보문제 및 대북 전략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II. 대중 전략

 

한중관계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의 고조, 세계경제 침체와 공급망 불안정,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북핵의 고도화 등 외생 변수의 영향으로 기존의 협력 방식은 약화되고 새로운 협력 동력은 미처 확보되지 못한 채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양국 간의 상호 부정 정서가 장기화, 구조화될 경우 한중관계는 관계 발전의 동기마저 약화되면서 만성적 갈등 관계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중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빈번한 인적, 물적 교류가 진행되고 있는 양자 관계인 만큼 부정 인식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상하기 어려운 복잡한 갈등과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가치와 체제의 이질성에 대한 ‘상호존중’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그동안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교류와 협력을 민간 영역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회복하여 상호 부정 정서가 고착화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미중관계는 전략경쟁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 향후에도 경쟁과 대립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미중 양국은 다른 한편 대화와 협상을 이어가면서 위기 관리도 모색하고 있고 환경 등 글로벌 이슈에서의 협력 필요성도 공유하고 있는 등 여전히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측면도 있다.

 

시진핑 체제는 권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성장률 저하 등 국내외의 복잡한 난제에 직면해 있는 까닭에 가능한 한 미국과의 본격적인 세력 경쟁을 지연시키면서 경제회복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압박과 공세에 굴복하지 않으려 저항하는 이른바 압박 대 저항이라는 프레임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인 정상 궤도로 회복’ 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요컨대 미중관계는 대립 기조 가운데 상황과 분야에 따라서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독일, 프랑스, 호주, 사우디, 일본 등 미국 주도의 탈중국 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도 중국과 일정한 협력 관계를 회복하고 있고 중국 역시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관계가 복잡하게 변화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한국의 대중외교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대미, 대일외교가 정상회담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만큼 이제 대중 외교와 한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 외교의 방향 설정과 전략 수립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한중관계의 포괄적 성격을 고려하여 정부 각 부처 간의 체계적인 협조 기제를 구축하여 부처 간 공조를 통한 정책 방안 수립이 요구된다. 특히 대중 외교는 미국, 일본, 북한 등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는 고차 방정식으로 상정하고 정책과 전략이 구상되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탈중국화 공세는 분야에 따라서 상이한 방식과 강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일부 영역에서는 미국과 중국사이의 타협이 모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한국도 이제는 본격적으로 탈중국화가 초래하는 손익 계산을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미국 주도의 탈중국화 동참 요청에 대한 한국 참여의 범위, 영역, 정도에 대해 내부적으로 종합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한중관계에서 갈등과 긴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의 갈등 및 분쟁 발생 가능 분야와 영역에 대한 사전 예방적 소통 및 사후 관리 채널 구축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이 한국과 협력의 동기를 갖게 하는 새로운 협력 의제들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중국 외교의 다양한 수단과 지렛대를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중국 정책 수단은 정치 안보 영역을 넘어서 경제, 과학기술, 환경, 문화, 가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종합적으로 발굴, 구축해야 한다.

 

한중 양국간의 초국경의 비전통 안보문제(환경, 보건, 해양 등)를 중심으로 협력의 기반을 확충해갈 필요가 있다. 상기 분야는 인접한 한중 양국간의 특성으로 인해 상시적으로 갈등을 초래할 예민한 현안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요한 갈등을 오히려 양국간 협력의 새로운 동기와 동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양국관계 회복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적 구도가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미중, 한중일, 남북미중, 남북일중, 남북한 미일 중러의 6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협력을 동시 병행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III. 인도·태평양 전략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1월에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을 내놓았고, 12월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서’를 발간하였다. 2023년 5월말에는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한국 정부가 다자 차원에서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포괄적 지역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의 원칙과 기조를 좀 더 선명하게 한 것은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지역 공간을 광의로 규정하는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 역내 포괄적 안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 표명, 역내 중견국과의 소다자 연합 추진을 특징으로 한다. 첫째,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가 포함될 수 있도록 인도·태평양 공간의 범위를 광범위로 설정하고 있다. 역내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을 중국 대 미국이 아닌, 중국 대 ‘서구(West)’로 접근하고 있으며, ‘서구’와의 안보협력을 증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2022년 6월에 개최된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Asia-Pacific Partners: AP4)가 초대된 것은 나토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이 연계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둘째, 한국은 그동안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법의 지배, 항행과 항공의 자유 등에 원론적 지지를 표명했지만, 역내 민감한 안보 이슈에는 거리를 두어 왔다. 이로부터 오는 비난을 불식시키고 한국의 안보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양안보 등 역내 포괄적 안보 문제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셋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심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경합이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역내 국가에 심각한 위협을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중국 중심에서 탈피한 역내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 연대도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간 우리 인도·태평양 전략의 얼개를 설정하였다면, 이제는 전략을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인도·태평양이 점차 블록화되어 가고 있으므로, 우리가 속한 미국 주도 네트워크 편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포괄적 안보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여 일정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중국을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미국이 주도하는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2022년 제3차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 정상회의에서는 ‘해양상황인지(Maritime Domain Awareness)’를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ndo-Pacific Partnership for Maritime Domain Awareness: IPMDA)’ 작업반을 발족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유럽도 ‘유럽연합 광역 인도양 주요 해로 기구(Critical Maritime Routes in the Indian Ocean: CRIMARIO)’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상황인지’ 능력 배양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등 쿼드 국가,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가 인도·태평양 지역 해양안보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핵심인 이들 국가와의 해양안보 협력을 늘려나가야 한다.

 

둘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주된 핵심 이익 지역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이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 이익이다. 따라서, 대만 통일이나 대만 독립과 관련된 직·간접의 의사 표명과 행동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미국과 중국이 파국을 치닫지 않는 한 상당 기간 대만 급변사태보다는 현상 유지가 더욱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대만 급변사태보다도, 미국과 중국의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력 과시(showdown of forces)’ 상황과 동중국해에서의 ‘해양순찰(maritime patrol)’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해양 순찰’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최근 미국이 필리핀이 수행하는 ‘해양 순찰’에 공동으로 참여하겠다고 명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이는 미국과 필리핀이 2014년에 체결한 ‘국방협력강화협정(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 EDCA)’으로 미국이 필리핀 군사기지 5곳에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있었는데, 필리핀이 2023년 2월에 미국에 군기지 4곳을 추가로 개방한 것에 대한 대가로 해석된다. 추가로 개방한 4곳 중 3곳은 대만과 가까운 루손섬에 위치한다. 필리핀은 호주, 일본과의 ‘공동순찰’도 협의 중인데, ‘인도·태평양 전략서’에서 역내 해양안보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높이겠다고 공헌한 우리에게도 참여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참여한다면 역내 비전통안보를 위한 기여라는 명분을 고수하여야 하고, 대만 사태를 염두에 둔 듯한 언급은 피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미·중 전략적 경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의 초석을 만들기 위해서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중견국인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우선, 한국·인도네시아·호주(Korea, Indonesia, Australia: KIA) 삼자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동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부상 및 아세안 지도국으로서의 위상과 상위 중견국인 호주와 한국의 경제·군사력을 고려하면 동 소다자 협의체가 역내에서 주요한 안보·경제 협의체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소다자 협의체로 한국·호주·아세안 및 한국·호주·태평양도서국 조합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호주가 동남아에서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수행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남태평양에서도 공동으로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한국과 호주가 정례적으로 ‘아세안 정책대화’를 개최하고 있는 것처럼, 남태평양 주도국인 호주와 협의하여 우리가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과 유사한 ‘남태평양 연대구상’을 제안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으로 한국, 일본, 역내 국가로 구성하는 소다자 협력도 가능해졌다. 만약, 한국·중국·일본 정상회담이 재개된다면 ‘삼국 협력 사무소(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 TCS)’를 플랫폼으로 TCS–아세안, TCS-유럽, TCS-PIF(Pacific Islands Forum, 태평양도서국 포럼), TCS-SCO(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상하이 협력 기구), TCS-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and South Africa,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 협력)와 같은 TCS +도 제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이어지는 KASI, ‘인도·태평양 전략서’,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등으로 역내에서 우리의 포괄적 지역 정책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 기대감이 높은 만큼 이제는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정부 내 각 부서의 인도·태평양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외교부를 주축으로 ‘전담 대응반(Task Force)’을 가동하고 있는데,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을 위한 독립 예산을 확보하고 담당 조직을 정비하는 것이다. 국가안보실에 ‘전담 통제부서(control tower)’를 설치하고, 외교부에 인도·태평양 대사직을 신설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IV. 대일 전략

 

윤정부 1년 외교정책의 핵심목표 중 하나는 한일관계 개선이었다. 집권 후 윤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조건으로 특히 강제동원 문제 해법에 집중하여 지난 3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여 일본측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이로서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된 반면 해법안에 대한 국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어,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일 외교의 진전과 함께 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되었다.

 

윤정부의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최대 요인은 미중 전략경쟁 변수이다. 올해 1월 미일정상회담, 2월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3월 한일정상회담, 4월 한미정상회담, 5월의 한일정상회담과 한미일 정상회담 등 지난 6개월간 촘촘한 일련의 회동은 중국의 전략적 도전에 대한 한미일 삼국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적 추세가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작년 12월 일본의 안보 3문서 개정, 한국의 인태전략 발표, 올 4월 일본의 FOIP(Free and Open Indo-Pacific,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개정 등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전략적 도전세력으로서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 한미일 안보 협력, 다른 한편으로 미중 경제/기술 디커플링의 진전에 따른 공급망의 재편 압력의 결과로서 한미일 경제/기술 협력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흐름은 대외적으로 미중관계 변수의 작동, 대내적으로는 한일 양국 정부 교체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하며, 향후 한일관계는 한미일 협력 틀 속에서 전개될 것이어서 한국 정부의 정책적 대응은 이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한다.

 

향후 윤정부 대일정책은 양자간 역사, 정치, 경제(한일FTA 등), 안보, 문화 이슈를 다루어온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다자적 시각에서, 다자 및 소다자틀 속에서의 파트너쉽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을 중심으로 하되 중국을 배제하지 않도록 신중한 외교 스탠스를 취해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대일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특히 한일 간 대중 레버리지(협상능력)의 격차가 존재하므로 양국간 긴밀한 대화와 조율을 통해 적절히 중국을 포용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둘째로 한일협력의 분면을 확대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기왕의 한일협력이 (전통)안보, 무역-투자 분야 자유화를 목표로 하였다면 미래 협력은 공급망 협력과 첨단기술 협력, 그리고 한일 양국이 당면하고 있는 공통위협으로서 기후변화, 감염병, 저출산 고령화(인구절벽)가 초래하는 의료, 재정 그리고 지방 소멸이란 도전 과제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미래지향적 협력과 함께 역사 문제에 대한 국내적 노력이 균형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야권은 한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거 직시 없이는 미래지향적 협력이 불가하다는 입장이고, 여권과 일본 정부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하면 과거를 넘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답은 미래를 지향하는 다면적 협력과 함께 역사문제 해결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다. 역사문제의 경우 일본 지도자의 사과 촉구 수준을 넘어서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는 조치들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럴 때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일본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면서 대일정책에 대한 국내적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이상의 과제를 보다 장기적 견지에서,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미래 신문명의 기준에 맞추어 미래세대를 위한 (가칭) ‘한일협력 Post-2025 미래비전’을 마련하는 작업을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V. 경제안보전략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다소 생소한 용어였던 경제안보는 어느새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그만큼 경제안보 전략의 초점이 총론에서 각론으로 이동하고, 보다 세밀한 전략과 체계적인 수행 메커니즘을 수립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한국 경제전략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안보 전략의 연속성과 변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연속성 측면에서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기본적으로 반응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국가의 경제안보 전략, 경제적 강압, 공급망 교란과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미 협력의 범위와 수준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주요국들의 경제안보 전략에 반응하는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해왔고, 이러한 성격은 현 정부에서도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연속성과 변화는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우선,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 중국의 경제적 강압, 일본의 경제안보 전략의 제도화, 유럽 연합(European Union: EU)의 전략적 자율성 등 주요국들이 경제안보 전략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대응에서도 집중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반면, 경제안보 전략이 이슈 또는 당면 현안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 차원의 원칙에 기반한 전략적 대응 면에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둘째, 대미 전략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기존 경제안보 전략은 대미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 관련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경험이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적 대응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셈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표면화된 공급망 교란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다변화라는 정책 방향이 설정되었던 데서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났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더라도 일본의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에 대하여 이른바 소부장 경쟁력과 자급도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대응한 것 역시 한국 경제안보 전략이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의 공세적 전략에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던 현실적 필요성을 대변한다. 한편, 현 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은 대미 전략이 중심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대중국 전략의 상대적 중요성이 다소 감소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다른 국가들의 경제안보 전략이 사실상 대중국 전략을 축으로 이루어진 것과 차별화된 특징이다. EU가 새롭게 추구하는 “위험 탈피”(de-risking) 전략은 중국 관련 리스크를 면민하게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구상이다. 사실상의 대중국 전략인 셈이다. 현 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의 사례에서 나타났듯이, 미국발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양면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대미 협력과 위험 관리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 이 과정에서 대중국 전략의 상대적 중요성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셋째, 한일 관계의 진전이다. 양국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은 경제안보 면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특히, 한일 양자 차원은 물론, 한미일 삼각 협력 차원에서 일본과 협력의 접점이 증가하였다. 한미 협력뿐 아니라, 한일관계의 개선도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선명성을 강화한 요인이다.

 

이번 정부에서 경제안보 전략의 방향성이 뚜렷해진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슈 중심적 경제안보 전략에서 탈피하여 원칙과 가치에 기반한 경제안보 전략으로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2023년 4월 미 재무장관 재닛 옐런과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의 잇따른 발언에서 확인되듯이, 미국은 EU와 보조를 맞추어 디커플링에서 위험 탈피와 다변화를 추구하는 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서 미묘하지만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안보 전략의 신중한 전환을 모색할 적기이다. 한국은 미국과 EU 등 주요국들의 경제안보 전략의 새로운 추세를 활용하여, 대중국 전략을 포함한 경제안보 전략의 전환을 위해 치열하고 체계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손익 계산에 체계적인 검토와 분석이 요구된다. 미국과의 협력의 수위를 높이는 데 따른 이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초점이 대중국 견제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때로는 미국과의 정책 연동(alignment)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선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이제 ‘시작의 시작’일 뿐이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이에 따른 정책 연동의 부담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둘째, 21세기 경제안보 전략은 상충되는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첨단기술의 자립을 높이는 것과 다른 국가들의 협력을 위한 포용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상충된 것처럼 보이는 목표를 하나의 틀 속에 녹여내고, 효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적 선명성과 유연성 사이의 균형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 협력 전략을 경제안보 전략에 반영하는 문제이다. 미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복귀가 난망한 상황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의 동력이 기대보다 다소 약화된 가운데,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 IPEF)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IPEF 역시 참여국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불명확하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어,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22년 인도태평양전략에서 표방하였듯이, 포용적 지역 질서의 수립을 위한 지역 협력 전략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미, 대중 전략은 물론, 아세안 및 인도를 포괄함으로써 경제안보 전략의 지평을 넓필요가 있다. 지역 전략의 추진을 위한 순차적 접근도 요구된다. 단기적으로는 공급망의 복원력 강화, 중장기적으로는 조기 경제 체제의 수립을 위한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넷째,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안보 전략과 경제외교의 조화가 필요하다. 경제안보 전략은 상대의 공세에 대응하는 방패, 그리고 때로는 사용해야 할 수도 있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외교는 방패와 창을 보다 효과적으로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경제외교의 핵심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일종의 공백이라고 할 수 있는 협력의 상대를 확보하는 데 있다. 유사 입장국과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유사입장국과의 협력은 경제적 강압을 방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효과를 제한하고, 우리가 공세를 취할 경우, 그 효과를 배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일본과의 관계에서 전략적 경제 협력은 주로 경제안보와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다. 전략 환경의 변화에 따른 세계화(특히 지구 공급망)의 조정이란 차원에서 양국은 전략 산업 및 기술 협력, 공급망의 회복력 확보를 위한 공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동시에 배타적 산업정책과 관리무역(managed trade)의 확대를 적절히 통제하면서 규칙에 기반한 자유와 개방의 국제경제 질서 회복을 위한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기존의 한일 협력이 무역과 투자 분야에서의 자유화를 목표로 하였다면 미래 협력은 공급망 협력과 첨단기술 협력, 그리고 한일 양국이 공통의 위협으로 당면한 인구절벽(저출산 고령화)이 초래하는 의료, 재정 그리고 지방 소멸이란 도전 과제에 대한 공통 협력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CPTPP의 가입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CPTPP는 점차 미국의 핵심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간 경제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의 두 파트너(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영국의 가입으로 미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고, 미국의 자국중심적 대외경제정책을 제어할 수 있는 유력한 다자조직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역시 가입의사를 밝히고 있는 바, CPTPP는 인태지역을 넘어 지구적 규칙, 규범 제정의 핵심 기제로 부상하면서 중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에 포섭하고 구조적으로 관여하는 기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윤정부는 미래지향적 견지에서 CPTPP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는 대내외적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자유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고도성장을 이룩하였고 또한 경제 강압의 피해를 경험한 한일 양국은 지구적 디커플링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자유주의에 기반하면서도 포용적이고 회복력 있는 세계화로서 재세계화(reglobalization)를 위해 공조해야 한다.

 

VI. 대북 전략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한은 2017년 12월 7기 5차 전원회의를 통해 수립한 강경 노선인 ‘정면돌파전’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2022년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재천명하고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갈 데 대한 구체화된 대미, 대적 대응 방향이 천명되였다”라며 행동 계획도 제시한 바 있다.

 

동 기조하에 북한은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거부하고 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밝힌 담대한 구상을 바로 다음 날 19일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는 제목의 김여정 담화를 통해 “가장 역스러운 것은 우리더러 격에 맞지도 않고 주제넘게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무슨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감하고 포괄적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줄줄 읽어댄 것”이라며 비판하였다. 담대한 구상이 제안하는 ‘안보-경제 교환’ 모델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난 1년 남북관계 악화를 추동한 핵심 요인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진보 정부의 ‘적극적 대북 관여’를 추진하였더라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섰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술한 정면돌파전에 따라 북한은 2019년 12월 이후 ‘무조건적 관여’를 시도한 문재인 정부도 철저히 배제한 바 있다. 따라서, 현 남북관계 악화는 북한이 사상투쟁, 자력갱생을 통해 핵을 최대한 고도화는 장기전인 정면돌파전을 수행한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문재인 정부의 ‘무조건적 관여’와는 차별화된 원칙을 담은 대북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핵을 최대한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억제력을 우선 강화하는 조치는 필수 불가결하다. 한미 워싱턴선언을 통해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한국형 3축 체제를 구축하는 등 대북 대비 태세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워싱턴선언이 대북 억제에 효과가 있음은 북한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 북한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으며 이는 북한에게 상당한 억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본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김여정은 “《워싱톤선언》은 가장 적대적이고 침략적인 행동 의지가 반영된 극악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약화된 산물”이라는 비판한 바 있다. 4월 30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서도 “《핵전력운용》과 관련한 협상에 괴뢰들을 적극 참여시키기 위해 《핵협의그루빠》를 내온다”라면서 “강화”된 확장억제를 비난하였다. 북한 스스로 워싱턴선언과 핵협의그룹의 실효성이 큼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은 상대적으로 제한된다. 담대한 구상의 3대 원칙인 억제, 단념, 대화 중 대화 노력은 사실상 실종되었다. 지난 워싱턴선언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북한과의 외교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었지만, 양국 대통령이 연설 또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존재감을 상실했다.

 

담대한 구상은 억제, 단념, 대화가 같은 국면에서 작동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바 있지만, 현시점에서 억제와 단념 후 대화를 한다는 태도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사실상 ‘선 비핵화, 후 보상’ 모델로 담대한 구상이 해석되고 있다.

 

대북정책의 핵심인 북한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보유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핵을 포기했을 때 주어지는 혜택도 최대치를 보장해 주는 이중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는 북한 핵 보유 비용을 부가하는 확장억제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 미국과 공조한 제재 강화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 부연하면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대북정책은 ‘밀고’ ‘당기기’인 억제와 대화가 같은 국면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하므로 다음과 같은 ‘담대한 구상 2.0’이 필요하다.

 

우선, ‘억제·단념’을 ‘대화’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대북정책에 명확한 메시지를 발신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선 비핵화 후 보상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억제와 대화가 같은 국면에서 동시에 작동함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더불어 억제·단념·대화의 3대 원칙에 발전(Development)을 포함한 4D로 재구성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미 공조를 보다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 의제 중 북핵 문제 비중을 늘리도록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미국 내 제기되는 다양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제안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부분 비핵화와 장거리 미사일 동결 등을 주창하면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주장은 수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 최종 목표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CVID)임을 미국 정부가 온전히 공유해야 한다.

 

비핵화를 통한 이익을 구체화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까지 대한국 방어 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면 북한에 제공할 상응조치와 관련한 내용을 단순히 한미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정교하게 연동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경을 위한 대북 경제협력 방안을 확장해야 한다. 남한 체제와 경쟁하는 북한의 특성을 감안하여 세계차원으로 확장된 협력을 통해 북한 경제가 발전하는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대중국 경제 의존에 민감하므로 국제기구를 활용하거나 다자경제협력체를 구축하는 등의 방안에 대한 수용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자생적으로 비핵 안보번영 북한을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셈법을 구상할 수 있는 지식 국가로 진화하도록 하는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핵을 국체로 삼고 과시의 정치를 시행하는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은 지난하지만, 북한이 향후 30년을 지금과 같은 선핵으로 유지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고 새로운 국가건설 모델을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저자: 박원곤_EAI 북한연구센터 소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저자: 박재적_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저자: 손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저자: 이동률_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저자: 이승주_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저자: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저자: 하영선_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담당 및 편집: 박지수,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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