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은 외교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해법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이 한일관계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하에, 해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와 향후 과제를 짚어 보는 대담을 기획하였습니다.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과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외교적 합의를 통한 해결이 한일관계 정상화와 국제법적 정합성,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해법안 발표를 전기로 삼아 한일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얻는 경제 및 안보상의 국익을 복합적으로 고려하고, 한일 양국이 재세계화와 초국경적 위협 대응 등 공통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손열 원장: 지난 3월 6일 외교부에서 강제동원 해법안을 제시했고, 열흘 후에는 10년 이상 열리지 못했던 한일 양자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처럼 한일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으나, 한국 내에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남남갈등 못지 않게 일본 문제 관련 남남갈등도 강해서 해법을 놓고 “굴욕 외교”와 “미래지향적 외교”라는 상반된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한일관계 문제가 정치화되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여야 갈등이 증폭되면서 문제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하지 못하고 선정적인 레토릭(rhetoric)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오늘 대담에서는 현재 벌어지는 사안의 본질을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그 역사적 경위를 살펴본 다음,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4년 반 동안 진행된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협의를 복기하고, 합의 성립의 배경과 요인은 무엇인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이 논의가 선행되어야 정부 해법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등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덕 교수: 강제동원 문제의 근원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에서 찾을 수 있다.[1] 대법원 판결의 내용은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 대하여 국내에 투자한 일본 기업의 자산을 집행해서라도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1965년 체제’를 뛰어넘는 내용인데, 이전까지 한일 양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강제동원 피해 보상의 문제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것이었다. 참여정부 시기인 2005년 있었던 민관합동위원회의 최종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한일이 얽힌 과거사 사안 중 위안부 문제, 사할린 한인 문제,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 3대 사안은 여전히 일본이 법적 책임을 지니고 있지만,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한 기타 사안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입장 정리가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2012년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협정을 뛰어넘는 판결이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국제법인 청구권 협정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 판결이었다.

 

이와 유사한 소송이 일본에서도 2000년대부터 진행되었는데,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 요지는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고 할 수 없으나 소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즉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피해자들이 더 이상 소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인 청구권 협정의 내용, 그리고 같은 사안에 대한 일본 사법부의 판결과 상충하고 있다. 요컨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는 국내법과 국제법, 일본 법과 한국 법의 충돌 지점에 있는 이슈라고 할 것이다.

 

일본 정부나 기업은 각 원고에 1억 원 상당의 위자료를 지불하는 판결에 처음부터 응할 수 없음을 밝혔고, 한국 정부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크게 세 가지 해법을 이론적으로 검토하였는데, 첫 번째는 이 문제를 한국 법과 일본 법이 충돌하는 사안으로 보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등 제3의 법정에 공동 제소하는 방안, 그리고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일본은 중재위원회 구성을 통한 해결을 요구하였으나 한국 측이 이를 거절하면서 사법적 해결 방안은 사실상 포기되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강제동원 문제가 상정된다면, 쟁점 설정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여부를 묻고 싶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강제 노동이 반인도적 행위인지 여부, 반인도적 행위라고 간주하면 당시 국제법상의 노예 금지법 및 국제인도법에 근거하여 일본이 불법 행위를 한 측면이 있는지 여부를 질문하여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이러한 쟁점을 합의하는 일이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두 번째 해결법은 국내법에 따라 일본 자산을 강제집행하여 현금화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강제집행이 이루어질 시 다양한 차원에서 보복하겠다고 공언했고, 문재인 정부도 이 방법이 해법으로 마땅치 않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납득 가능한 해법이 될지 모르지만 외교적인 파장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여러 보복 수단을 강구할 뿐 아니라, 한일 투자협정 위반을 들어 국제법적으로도 여러 공세를 취했을 것이다.

 

세 번째 해법으로서 한일 양국 기업을 중심으로 기금을 형성하여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식이 부상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기금 조성을 통한 해결책을 고안하였으나 궁극적으로는 채택되지 못했다. 문희상 의장에 따르면, 기금 조성을 골자로 한 법안을 추진하였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에 거부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소위 ‘제3자 변제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때부터 널리 검토된 방안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는 놀랍거나 새로운 해법이 아니며, 법적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국민들은 일본의 피고 기업들이 피해자 지원 재단의 기금에 상징적으로라도 참여하고, 강제동원 자체에 대하여 일본 정부나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일본의 호응이 나오기 전에 한국이 선제적으로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국민들이나 야당이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그 밖의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손열 원장: 결국 강제집행을 통한 현금화와 사법적 중재 두 옵션은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교적 협의란 옵션을 통해 지금과 같은 안을 내어 놓은 것인데, 일단 외교적 협의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사안 자체를 놓고 한일 간 협상과 타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모든 이해당사자가 만족할 수 있는 협상안 도출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협상의 득실을 놓고 국내적으로 많은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한 수순이라 볼 수 있다. 다만 협상의 구도를 보면 한국측이 소위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는 한편 일본측에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상응조치의 핵심은 피고 기업들의 기금 참여와 일본 정부의 사죄 표명이라는 두 가지였다. 한국의 여론은 일본측 상응 조치가 미흡하다고 보고 있고, 따라서 향후 일본이 한국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호응 조치를 내놓을 수 있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이원덕 교수: 윤석열 정부의 이번 결정은 외교 협상의 형식을 취했지만 단독 결단의 성격이 강하다. 일본의 호응 내지 화답을 기다린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표현에서 나타나듯, 물컵의 반을 한국이 채웠으니 나머지 반을 일본이 채워 가야 한다는 숙제를 던진 것이다. 1년 가까이 당국자 간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일본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일본은 재판 결과와 관련하여 자국 기업이 움직이거나 정부가 사과하는 것을 법적 책임 문제와 연관하여 해석하는 원칙적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 정부 당국자는 해법 발표 열흘 전 양국 외교장관 회담 때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의 참여가 없으면 협상을 결렬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본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입장을 선회하여 단독 결단을 내렸기에, 한국 국민들로서는 그 맥락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 대법원 판결에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일본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상징적 참여 수준에 그친다면, 한국이 선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쥐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 간 역사 마찰 사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그 동안 한일 양국정부 모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은 법적으로 끝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이 문제는 일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제 규범이 중시하는 인권의 차원에서 한국이 먼저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고 그 다음 일본의 몫을 요구하면서 한국이 할 일은 했다는 모습을 보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일본의 주류 언론조차도 한국의 선제적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이에 화답하지 못하는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측면이 있다. 또 국제사회의 시각에서는 한일 양국이 이처럼 중대한 인권 문제를 방치해 온 상황에서 법적 논쟁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그다지 고운 눈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선제적 조치를 하고 일본에 화답을 요구하는 것이 의미있는 외교적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일본 측의 기금 참여, 사과 등 조치를 우선 받아낸 다음 한국이 해법을 내는 것도 현실적 선택으로 고려할 수 있었겠지만, 해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이나 야당이 기대하는 것처럼 일본을 무릎 꿇리면서 전면적 배상을 받아내는 일은 지금의 외교 현실을 감안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를 친일과 반일, 또는 저항민족주의 논리에 입각한 역사 청산의 문제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인 논리 구성이다. 더군다나 이 문제를 비분강개할 민족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은 현실과 대단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인권 문제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에, 반드시 역사 문제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성격의 이슈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일본 기업의 간접적, 상징적 형태의 참여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법원 판결에서 문제가 된 배상금은 기업 입장에서는 굉장히 적은 액수이고, 기업의 사회적 공헌 활동 차원에서 지불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두 기업 내에서 관련 논의도 있었지만,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역사적 명분 싸움으로 번져 오히려 기업 차원에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 면이 있다. 한국 정부의 선제적 조치로 그러한 긴장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기에, 일본 기업의 입장에서도 법적 책임 문제로 비화되지 않는다면 성의 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피해자 분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가 될 것이다.

 

손열 원장: 이번 해법에 반대하는 논자들은 왜 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이 기금을 마련하여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청구권협정 이래의 역사적 경위를 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원덕 교수: 그렇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 공개된 한일 외교 문서에서 드러났듯, 청구권협정 체결을 둘러싼 한일 정부 간 교섭에서 강제동원 문제가 거론되었다. 특히 1961년 제5차 예비회담 때 일본은 개인 피해자들의 미수금을 일일이 지불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한국 측은 그럴 필요 없이 일본이 전체적으로 보상 성격을 담은 돈을 지급하면 피해자 문제는 한국에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2] 이러한 약속하에 1965년부터 10년에 걸쳐 유상 및 무상 차관 8억 달러를 받은 셈인데, 피해자에 대한 조치로 1971년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사망자 8천여 명의 유족에게 각 30만 원을 지급하였다.[3]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은 대부분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댐 건설 등 경제 인프라 구축에 쓰였고, 10년이 지난 뒤에 피해자에 대한 조치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무상 차관 3억 달러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 특별법에 의하여 사망자 유족에게 지급되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정부 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계속했고, 2005년 외교 문서 공개 당시 이해찬 총리가 중심이 된 민관 위원회가 문서를 면밀히 검토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위원회에 참여했다. 그 결론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하여 일본에 더 이상 요구를 하지 않고 국내에서 처리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2007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약 5,800억 원을 피해자에게 추가 지급했다.

 

다만 2007년 지급도 강제동원 피해자 21만 명 중 사망자 및 부상자 유족에 한하여 각각 2천만 원, 1천만 원 가량이 지급되었고 생존자에 대해서는 1년 간 병원비 80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데 그쳤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원고는 대체로 그간 한국 정부의 보상 조치에서 누락된 분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늦게나마 피해자에 대한 보상 조치를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균형이 잡히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그것이 결국 대법원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대법원 판결에서 문제가 된 열다섯 분의 배상 문제는 전체 피해자 21만 명 중에서 상대적으로 경시됐던 분들의 이슈로 정의할 수 있다. 이 15명에 대한 배상이 바로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분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로 지원금을 포함하여 약 2억 7천만 원을 수령하게 되는데, 앞서 보상을 받은 사망자 및 부상자 유족들은 생존 피해자에게 더 큰 금액이 지급되는 데 불만을 갖고 새로운 특별법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의 조치에 따라 자신들에게도 유사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손열 원장: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안이 강제동원 문제라는 특정한 역사문제를 푸는 해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집행을 피하는 조치일 뿐이다. 더욱이 강제동원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양국간 인식의 수렴, 혹은 역사 화해란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조선의 노동자가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사실도 시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번 조치로 과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전기로 삼아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10여 년에 걸친 한일관계의 경색으로 양국은 정치, 경제, 안보 등 여러 영역에서 많은 비용을 치렀다. 따라서 이번 외교 협의의 성과 혹은 편익 계산은 단순히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싼 주고 받기의 득실을 넘어서 양국 관계 개선에 따른 편익 계산도 포함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이번 조치가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넓은 차원에서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한일 양국에서는 아주 좁은 시각에서의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사실, 정부가 해법안 발표 이전에 한일관계 개선에 따른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효과를 충분히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면, 그리고 발표 후 논쟁에서 이번 조치가 가져다 줄 국가 차원의 이득을 좀 더 입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소모적 논쟁을 다소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원덕 교수: 사실 한일 간에는 역사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 문화 등 여러 각도에서 복합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지난 10년 간의 한일관계는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어 있었고, 모든 영역에서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져 왔다. 복합 갈등의 발원지는 강제동원 문제였다. 특히 2018년 이후 강제동원 문제로 인해 일본이 수출규제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취했고 그 대항 조치로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을 종료하는 악순환이 진행됐다. 따라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면 당연히 수출규제 및 지소미아 문제가 해결되어 경제 및 안보 협력의 구도가 복원되는 측면이 있기에, 이번 조치는 갈등 국면을 협력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향후 과제가 많이 남아 있으나, 정부의 이번 결단은 관계 정상화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거론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번 조치는 양자 관계를 근본적(radical)으로 풀어 가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손열 원장: 한일관계가 비교적 원만하던 시기에도 역사 문제의 발생으로 전체적인 우호 관계를 가로막는 측면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일 간 국익 또는 외교정책 차원의 일정한 갭(gap)이 있었다. 즉, 한일 양국의 국가 전략 변화에 따른 정책적, 전략적 갭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지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등 북한 문제 풀기를 외교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 일본과 지역 정세 인식에서 상당한 갭을 보였고,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쿼드(Quad), 포괄적 ·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등 주요 역내 외교 사안을 놓고 서로 거리 두기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역사 현안이 돌출하면서 이러한 정책적 거리는 더욱 확대되어 서로 상당한 전략적 부담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강제동원 해법으로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지만, 이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여러 영역에서 상호 이견을 좁히고 신뢰를 쌓아 가는 대화의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 판결에서 강제동원 해법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 반 양국간 외교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이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원덕 교수: 4년 반 사이에 한국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따라서 각 정부가 추구하는 외교안보 전략의 목표가 달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었기에 일본과의 전략적 마찰도 불가피하게 감수했다고 본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따라 일본과의 충돌 지점이 상당히 줄어든 부분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역사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도, 이제 한일관계를 역사 차원에서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좁은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국력이 신장하고 한일 간 국력이 대등해지면서 역사 문제의 상당 부분은 이미 사실상 극복하고 있다고 본다. 역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일본 국민 개개인의 머릿속을 개조해야 하는데, 이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역사 문제에 대한 보편적 논리나 규범을 한국이 먼저 제시하고 일본을 견인해 나가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지금 일본에 굴복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권 문제 내지는 국가 폭력에 대한 피해 구제의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는 것이 일본의 폐쇄적 역사 인식을 견인하는 측면이 있기에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정의하고 싶다.

 

지금의 정세를 보면, 미중 전략 경쟁의 구도 속에 한일 양국이 동시에 놓여 있고 양국이 기본적인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부분이 매우 크다. 일부 상충하는 지점을 놓고 한일이 갈등을 벌이는 것은 한국의 국익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지향한다는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공간 범위를 확대하여 한일관계를 볼 필요가 있고, 역사에 매몰되어 큰 흐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일은 서로 다투기보다는 협조해서 얻어낼 이익이 더 많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결단에 의해 양자 관계가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한일 간의 대화를 통해 이익을 공유할 부분을 넓혀 가려는 노력이 앞으로도 요구된다.

 

손열 원장: 10년 전 한일 양국의 지식인이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성과를 출간한 바 있다.[4] 당시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한일이 양자 간 특수한 사안에 매몰되기에는 세계가 빨리 바뀌고 있고, 특히 중국의 부상이 한일의 미래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기에 중국을 아우르는 구상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향적인 미래 비전이 나오자마자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지면서 과거의 역풍을 맞아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후 10년 동안 한일 양국이 과거를 놓고 갈등하는 사이, 세상은 오히려 한일 간의 협력을 더욱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안보면에서 한일 간 이익 공유의 분면이 확장되어왔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탈세계화가 전개되며 통상 국가로 번영을 이룩했던 한일 양국의 대외 환경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 양국간 협력의 유인이 커졌다. 양국은 탈세계화에서 재세계화로 전환하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경제와 안보가 서로 연계되는 지구적 추세 속에서 양국은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상호 협력의 분면이 더 커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강대국의 과잉 안보 논리에 의해 경제적 상호의존이 제약되는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공통의 유인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기후 위기, 코로나 보건 위기 등 초국경적 위협에 공통으로 대처하는 데 있어서도 상호 이익의 수렴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한일 양국은 10년전에 비해 협력의 필요성이나 절박함이 더욱 커지고 협력의 분면도 더욱 넓어지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일 신시대 2.0”을 위한 노력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원덕 교수: 10년 전과 현재의 한일관계가 처한 양상의 변화를 고려하면,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에서 제안한 방향성이 결코 틀리지 않았고 그 필요성은 더 절실해졌다고 본다. 당시와 비교해서 가장 큰 변화는 미중 간 기술 경쟁의 양상과 세계 공급망의 혼란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심각하게 전개된 것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 상황도 예측보다 더 급격히 변화했다. 이를 고려하면 다층적인 한일 공조와 협력이 양국에게 더욱 절실한 시대에 성큼 다가왔다고 본다. 10년 전 제시한 선견지명이 역사 논쟁에 의해 매몰된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신시대 연구를 업그레이드 하여 한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적 논의 차원에서 제시할 필요가 있고, 정부 당국에서도 이러한 논의의 필요성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한일 수교 60주년이 되는 2025년을 목표로 삼아 한일의 전략적 협력 방안을 각 분야별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윤석열-기시다 파트너십 선언”의 형태로 정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2]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판결

[3] 박명희. 2018.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구제현황과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제1529호.

[4]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2011.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 (공생을 위한 복합 네트워크의 구축)』. 파주: 한울아카데미;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2013. 『신시대 한일협력 7대 핵심과제』. 파주: 한울아카데미.

 


 

저자: 손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이다. 최근 저서로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2021, 공편), 『2022 신정부 외교정책제언』(2021, 공편), 『BTS의 글로벌 매력 이야기』(2021, 공편),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2021, 공편),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3, 6 (2019),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저자: 이원덕_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일본 도쿄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교부, 통일부, 동북아역사재단,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의 자문위원이었으며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한국 측 간사(2009-2013)였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객원연구원, 도쿄대학 객원교수,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장, 현대일본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논문으로는 <한일 관계 65년체제의 성격과 한일 신시대의 과제>(2021), (2019), 저서로는 『한일회담』(2022), 역서로 『한일관계사』(2022), 공저로 『平成時代の日韓関係』(2020), 『일본, 한국을 상상하다』(2021)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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