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배진석 경상국립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86세대’가 세대적 정체성보다 이념 인식, 대통령 직무평가,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 20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점에 주목합니다. 생애주기별 세대 투표 추적 결과를 바탕으로, 86세대 모두가 완전히 50대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대에 비해 청장년 시절의 투표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아울러, 세대 간 차이를 넘어 세대 내 차이에 주목하여, 수입, 자산, 자가 소유 여부, 계층 인식 등의 투표 요인들을 고려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첨언합니다.

1. 들어가며

 

이른바 ‘86세대’는 한국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다. 이들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라는 민주화 시기에 청년 시기를 보내면서 정치적 정체성을 획득했다. 30대였던 2002년 대통령 선거 즈음에 이들이 보여주었던 ‘진보성’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늘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2007년 대선 이후에는 ‘86세대의 실종’이 회자되기도 했다. 이들이 과연 동질적인 집단인가, 이념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진보적’이었다가 ‘보수화’되었는가, 아니면 애초부터 ‘진보적’이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도 여전히 논쟁적이다.

 

2022년 대선은 이들이 모두 완전히 50대로 진입한 첫 번째 선거이다. 50대는 세대 연구에서 보수화의 분기점이다. 나이 든 세대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통설이다. 권위와 질서에 대한 애착은 보수적 가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성 권위를 거부했던 사람들도 대체로 다르지 않다. 소득이 증가하고 사회적 위치가 안정화되면 보수화를 피하기 힘들다.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진보라면 두뇌가 없는 것”이라는 경구가 널리 회자되는 이유이다. 이른바 ‘연령(aging)’효과이다.

 

‘86세대’는 연령효과를 부정할 수 있는 세대로 기대를 받아왔다. 나이 들면서 보수화되는 경향이 이 세대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였다. 이들이 청년 시기에 획득한 정체성은 연령 효과와 달리 나이 들면서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코호트(cohort)’ 효과이다. 미국의 뉴딜 세대처럼 말이다.

 

2022년 대선은 이 점에서 ‘86세대’의 보수화를 제대로 검증해볼 수 있는 선거다. 이들의 투표 선택과, 투표 선택에 미친 요인들을 점검하기로 하자. 논쟁적이지만 본 보고서를 마칠 때까지 출생 시점 단위로 10년씩 구분하는 방법을 쓰기로 하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86세대’는 ‘60년대생’이다.

 

2. ‘86세대’는 누구를 선택했나?

 

2022 EAI 대선 패널 조사는 방송 3사의 출구조사의 수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경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이 점을 감안하고 60년대생의 투표 선택을 구분하면, ‘반반’이다. 윤석열 후보가 다소 많은 표를 얻었지만, 60년대생의 표는 양분됐다. 세대 간 투표 성향의 차이도 이번 대선에서는 많이 완화됐다. “청장년층=이재명, 중노년층=윤석열”이라는 기대치와는 달랐다. 양자 구도였던 2012년 대선과 비교하면 이 경향은 분명하다. 2017년 대선에서 보였던 세대 간 투표 차이와도 구분된다. 대체로 2022년 대선에서 60년대생의 투표 선택은 전체 유권자의 투표 선택과 거의 일치한다([그림 1] 참조).

 

[그림 1] 최근 대선과 세대 투표 성향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크게 영향을 받은 변수는 주관적 이념 인식, 문재인 대통령 직무평가, 그리고 대북정책에 대한 선호였다. 나이나 세대, 성별, 지역, 교육 수준, 소득 등 투표 선택 결정요인으로 알려진 이른바 사회인구학적 특성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물론 선거 운동 기간에 불거졌던 양 진영 후보와 가족들의 도덕성 문제 등 정치적 공방과 관련된 이슈들의 영향력은 컸다. 이 모든 변수를 다 통제했을 때, 영향력을 행사하는 변수는 이념, 대통령 직무평가, 대북정책 선호였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보수적일수록,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를 잘못했다고 평가할수록, 그리고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유권자들은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다. 반대로 진보적일수록,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를 잘했다고 평가할수록, 북한을 화해 협력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유권자들은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내가 어느 세대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60년대생도 마찬가지였다. 세대적 정체성이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60년대생들도 다른 유권자들과 마찬가지였다. 이념에 따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따라, 그리고 대북 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 후보를 선택했다([그림 2] 참조). 이제 60년대생의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살펴보자.

 

[그림 2] 투표 선택 결정 요인

 

3. ‘86세대’의 투표 선택 결정 요인

 

60년대생 중 스스로를 이념적 중도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42%로 가장 높았다([그림 3] 참조). 보수는 32%, 진보는 25% 정도 되었다. 거의 유권자 전체 평균과 유사하다. 가장 진보는 0, 중도는 5, 가장 보수는 10으로 점수를 매겼을 때, 60년대생의 주관적 이념 인식 평균은 5.15였다. 중도에서 보수 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 유권자 전체 이념 인식 평균이 5.28이니, 거의 비슷하거나 미세하게 더 진보 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다. 평균이 4.79로 가장 진보적인 70년대생과 이보다 훨씬 보수적인 40~50년대생의 가운데에 있다. 보수화로 논란이 되고 있는 90년대생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이었다. 이 수치는 스스로 자기 이념을 평가하는 것이다. 실제 투표 선택이나 정책 선호와는 별개일 수 있다.

 

[그림 3] 세대별 주관적 이념 인식

 

60년대생들은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해 10점 만점에 4.8의 점수를 줬다([그림 4] 참조). 이 역시 유권자 전체 평균과 정확히 일치한다. 5점 중후반대로 평가한 70년대생이나 80년대생보다는 부정적이었지만 4점 초반대로 평가한 이전 세대보다는 긍정적이었다.

 

[그림 4] 세대별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60년대생들의 61%는 대북강경정책보다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선호했다([그림 5] 참조). 60년대생들보다 조금 더 진보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70년대생들과 같은 비율이었다. 이 비율은 유권자 전체 평균보다 10%p 정도 높았다. 10여 년 전부터 관찰된 이른바 역U자형 패턴이 그대로 나타났다. 청년층과 노년층이 강경정책을 선호하고 중년층이 화해협력정책을 선호한다는 의미이다. 청년이 화해 협력을, 중장년이 강경책을 선호한다는 기존의 공식이 깨진 결과이다. 성장과 복지에 대한 우선순위에서 60년대생들 중 39%가 복지를 우선시했다. 이는 전체 유권자 평균인 46%보다 낮았다. 특징적인 것은 60년대생들에게서 대북화해협력정책과 복지 우선 간의 차이가 가장 컸다. 대부분의 세대에서 이 두 변수 간의 차이가 거의 없거나 작았는데, 90년대생 이후와 60년대생만 둘 간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그림 5] 세대별 대북정책 및 성장-복지정책 선호

 

흥미로운 점은 이 패턴이 90년대생들과 정확히 반대라는 점이다. 부모세대인 60년대생들의 다수는 대북화해협력정책에 긍정적이지만, 복지우선정책에는 부정적이다. 반대로 자식세대인 90년대생들의 다수는 대북화해협력정책에 부정적이지만, 복지우선정책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이다. 이 점은 ‘세대 간 진보-보수의 주관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르다’는 선행연구와 일치하는 결과이다. 중장년층은 주로 대북정책에 따라 자기 이념을 규정하지만, 청년층은 복지-성장의 선호에 따라 자기 이념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생들은 이 두 변수가 모두 진보적 성향에 영향을 미쳤고, 60년대생과 90년대생들은 두 변수 간의 영향력이 상쇄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대북정책 선호는 투표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나, 성장-복지에 대한 정책 선호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종합하자면, 60년대생은 이번 대선의 투표 결정 요인 중 가장 부각된 주관적 이념 인식과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서 유권자 전체 평균과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대북정책의 경우 화해협력정책에 60년대생의 다수가 유권자 평균보다 다소 우호적이었다는 점이 특징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60년대생의 특별한 세대 정체성이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다른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70년대생이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할 때 세대적 정체성이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그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4. ‘86세대’는 보수화되었는가?

 

2022년 대선에서 ‘86세대’는 유권자 평균과 거의 비슷하게 후보자를 선택했다. 투표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주관적 이념 인식,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대북정책에 대한 선호는 유권자 평균보다 조금 더 화해협력정책을 선호했지만, 그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86세대’는 이전에 ‘진보적’이었다가 나이 들면서 ‘보수화’된 것인가? 혹은 다른 경로를 걸은 것인가?

 

민주화 이후 역대 선거는 이념적으로 출렁였다. 투표 선택만 놓고 봐도 양자구도일 때와 다자구도일 때가 다르다. 따라서 특정 정당에 투표한 비율만 놓고 ‘진보적’ 혹은 ‘보수적’ 투표를 했다고 단정 짓기 힘들다.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출렁임을 보정했다. 첫째, 보수우세율이다. 보수 정당 후보의 득표율이 우세한 만큼을 측정하는 것이다. 둘째, 전체평균중심화 기법이다. 선거 시기의 평균값에서 특정 세대별 평균값을 빼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적용한 그래프가 [그림 6]이다. 이에 더해 한 가지 방식을 추가했다. 선거 별로 세대 간 투표 선택의 특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별로 각 세대의 투표 선택의 특징을 찾아보는 방식이다. 특정 연령대에 각 세대들이 어떤 투표 선택을 했는지 보려는 목적이다.

 

[그림 6] 생애주기별 세대 투표[1]

 

붉은색으로 굵게 표시된 선이 60년대생의 투표 패턴이다. 가운데 0을 기준으로 아래에 있으면 진보적인 투표를 한 것이고, 위에 있으면 보수적인 투표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특징적인 지점은 60년대생의 투표 선택이 매우 완만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인 50년대생이나 40년대생과 비교하면 확연히 완만한 기울기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 효과와 다른 패턴이다. 60년대생의 정중앙인 65년생이 53세였던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평균보다 다소 보수적으로 투표했지만, 나머지 선거에서는 대체로 평균보다 다소 진보적인 투표를 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지점은 60년대생들이 청장년 시기에 보였던 투표행위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60년대생 이전 세대들이 청장년 시기에 보였던 투표 행위는 경험적 자료가 부재한 탓에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그 이후 세대들과는 비교가 가능하다. 같은 나이대로 비교했을 때 60년대생들보다 70년대생들과 80년대생들의 ‘진보적’ 투표가 확연하다.

 

정리하자면, 60년대생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투표 선택의 특성을 보인다. 청장년 시기에 보였던 투표 선택의 특성이 나이가 들면서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40~50대에 보이는 급격한 보수화의 징후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이전 세대와 분명 큰 차이가 있다. 동시에 60년대생들은 알려진 바처럼 청장년 시기에 ‘진보적’ 성향의 투표를 한 것으로 관찰되지는 않는다. 실제 민주화 이후 실시된 총 8회의 대선에서 1960년대생이 보수 후보보다 진보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선거는 세 번에 불과하다. 1997년, 2002년, 2017년 선거 때가 그렇다. 이번 대선을 포함해 나머지 5회의 대선에서는 보수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 이 세대가 진보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세 번의 선거는 전 세대가 진보 방향으로 이동한 선거였다. 반대로 이 세대가 보수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다섯 번의 선거는 전 세대가 보수 방향으로 이동한 선거였다. 이른바 ‘기간(period)’효과가 작동한 선거였다. 이런 착시현상을 교정해 살펴본 결과, 60년대생은 20~30대 청년 시기에도 전 세대 평균에 근접한 위치에서 약한 진보적 성향의 투표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이후에도 이 경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념 인식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그림 7]은 투표 선택과 마찬가지로 생애주기효과와 중심화기법을 사용해 세대별 이념인식을 추적한 그래프이다. 왼쪽 그림에서 60년대생은 20~30대였을 때 그 이전 세대인 70년대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인식했다. 다만 아래 그림의 실제 투표 선택은 70년대생과 꽤 큰 차이로 벌어진다. 60년대생은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인식했지만, 투표 선택은 이념 인식만큼 진보적이지는 않았다.

 

[그림 7] 주관적 이념 인식과 투표 성향

 

요약하자면, 60년대생의 보수화 속도는 매우 완만하다는 점에서 세대효과로 불릴만 하다. 다만 스스로 진보적이라 인식했던 것만큼 투표 선택이 진보적이지는 않았다. 민주화 이후 총 8회의 대선 여론조사 결과상으로는 그렇다.

 

5. 나가며: 여전히 ‘86세대’인가?

 

이번 2022년 대선에서 ‘86세대’의 세대적 정체성이 투표 선택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다른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유권자들은 세대적 특성으로 투표하지 않았다. 이념적, 그리고 정책 선호의 이질성이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이념 인식, 대통령 직무평가, 대북정책 등이 그것이다. 수입, 자산, 자가 소유 여부, 계층 인식 등의 이질성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의 제약으로 이 변수들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 합리적 해석일 것이다. 결국 ‘아무개’ 세대가 한 묶음일 수는 없다. 최근 학계에서 세대 간 차이보다 세대 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서두에 ‘86세대’라는 표현이 논쟁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편의상 10년 단위로 세대를 구분하는 방식이 학계에서는 충분히 비판받고 있지만, 그 방식대로 이른바 ‘86세대’의 정치적 특성을 추적해봤다. 이 ‘세대’는 여느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86세대’ 대신 ‘60년대생’이라는 표현으로 복귀를 논의해봄 직하다. ■

 


 

[1] ‘보수 우세율’과 ‘전체평균중심화’ 기법을 사용하였다.

 


 

저자: 배진석_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미국 텍사스대학교(오스틴) (University of Texas,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민주화와 신생 민주주의 맥락에서 선거, 정당, 여론 등이다. 동아시아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서 2013년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ADN),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DRN) 창립 당시 실무를 담당한 바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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