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변동요인으로 본 2012 대선 예측

 

 

 

 

본 보고서는 <월간중앙> 10월호 대선특별기획“안철수 지지층이 적대적 이분법을 깨뜨렸다”(9.18)을 수정 보완한 것임

 

 

 

1. 민주화 이후 대선의 특징 : 불확실성과 역동성

 

선거가 9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90일 전후면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과 민주당은 이미 5월에 대선후보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확정해놓은 상태였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신한국당은 7월, 새정치국민회의는 5월에 이회창, 김대중 후보로 자당의 대선후보로 확정하고 이미 실질적인 대선경쟁이 한창이던 시기다. 2000년대 이전까지의 대선은 상당히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양상인 셈이다.

 

그러나 2002년 16대 대선은 현재와 같은 불확실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전환점이었다. 16대 대선만 하더라도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것이 4월 27일, 이회창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것이 5월 10일이다. 그러나 2002년 선거는 역대 가장 역동적인 선거였다. [그림1]에서처럼 같은 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이 패배하자 노무현 후보 책임론이 불거지고, 후보교체론까지 등장했다. 월드컵 4강 열기는 정몽준 후보를 급부상 시켰다. 4-5월까지 40-50%를 넘나들던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이후 20%대로 하락하고, 정몽준 후보가 8-9월에는 노무현 후보 지지율을 추월했다. 이에 노무현 후보가 후보단일화라는 승부수를 던져 11월 25일 여론조사로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함으로써 최종승자가 되었다.

 

5년 전 2007년 대선은 또 다른 의미에서 불확실성이 컸던 선거였다. [그림2]에서 확인되듯이 8월 20일 경선으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시점으로 보면, 이명학 후보 지지율과 박근혜 후보 지지율을 합하면 60-70%가량이었다. 8월 20일이 실질적인 17대 대선 선거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구여권의 경우 기존의 민주당에 열린우리당이 갈라지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는 등 자기분열을 계속했고, 경쟁력 있는 후보가 없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경선주자였던 손학규 후보를 영입하는 등 상식적으로 예상하기 힘든 일들이 집중적으로 펼쳐졌다. 여기에 당시 반한나라당, 비민주 정서에 기댄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출마하면서 지지부진한 후보단일화 논의 속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선출은 10월 15일로까지 미루어졌다. 승부의 균형추는 이미 기울었지만, 안정과는 거리가 먼 선거였다.

 

민주화 이후 역대 선거들을 관찰해보면 선거 시기에 나타나는 불확실성, 불안정성의 진원지가 주로 새누리당에 대항하는 진영 내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전신인 민자당 합당 이래 당의 대선후보는 소위 ‘대세론’의 주역이었다. 반면, 민주당 진영의 경우 항상 열세 속에서 연합의 정치공학과 이벤트 드라마의 합작에 의해서만 유력주자가 부상할 때 승리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새누리당의 후보가 안정적 우세를 지키는 것이 기본전략이라면 야권은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을 역동적 변화라는 긍정적 에너지로 이끌어낼 때 승리의 비결이 있었던 셈이다.

 

[그림1] 2002년 16대 대선 시기 지지율 변동

 

[그림2] 2007년 17대 대선 시기 지지율 변동

 

2. 민주화 이후 대선 불확실성의 구조적 요인 : 불균형적인 여야 대결구도

 

그렇다면 왜 여권은 안정유지 전략을, 야권의 대선전략은 불확실성에 기반한 드라마 전략을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구조적 요인으로는 한국에서 민주화이후 새로운 정당체제로의 이행을 종결짓고 이후 선거에서 상당기간 반복되는 정당 경쟁구도를 결정하는 소위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를 통해 형성된 정당구조가 불균형적인 영남-호남 지역정당체제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에서 박정희 정권시대 지역기반인 대구경북을 자신의 기반으로 삼은 민정당,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한 통일민주당, 충청을 기반으로 한 공화당, 호남을 기반한 평민당의 4당 중 평민당을 제외한 나머지 세 정당이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집권세력으로 통합되면서 비호남 거대여당과 호남기반 소수야당의 지역구도가 고착된 것이다.

 

특히 대립적 지역대결구도를 형성해온 영남-호남의 인구비중에서의 불균형은 기본적으로 다수득표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선거에서 호남 인구의 2.5배에 달하는 영남에 기반한 정당은 출발부터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정착된 셈이다. 결국 여당은 이러한 잇점을 살려 지역연합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선거를 안전하게 이끄는 전략이 되는 셈이다. 반대로 야권은 이러한 불균형적인 지역연합구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도록 흔드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김대중 후보의 DJP 연합, 노무현 후보의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라는 연합전략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철학과 경험이 이질적인 연합에 성공하고서도 김대중 후보나 노무현 후보가 겨우 수십만표의 차로 간신히 집권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기존의 정당구도가 얼마나 현 야당에 불리한 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구조는 여야 모두에게 기회와 도전요인을 동시에 제공한다. 새누리당의 경우 출발부터 유리한 포지션을 점하고 독자적인 집권이 가능하다보니 정당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제도화하는 데 유리하다. 여유가 있다 보니 정당의 정체성 관리가 안정적이다. 당장 2012년 대선후보 선정과정에서 소위 비박주자들의 100%국민참여경선제도 요구에 대해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의 독단적 정치로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 민주당 경선룰이 필요에 따라 오락가락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폐해를 보면 정당제도화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박근혜 대표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여야대결구도에서의 구조적 우위가 작용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포지션의 우위는 독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에 저항하는 안정희구전략의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보수적 기득권 논리를 강화시켜 위기를 자초해온 것도 사실이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항상 선거승리를 위한 외부 세력과의 연합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 정체성을 강화시킬 수 없다. 또한 매 선거마다 달라지는 대상, 달라진 환경에서 연합을 추구해야 하다보니 당장 선거공천제도만 하더라도 제도화할 수 없다. 제도는 공천흥행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다. 2002년 노풍을 업고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이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강금실 후보를 영입하기 위한 전략공천으로 무력화되기도 하고, 통진당과의 연합을 위해 100% 여론조사 방법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룰이 고무줄로 적용되는 조직에서 전략적으로 준비된 인재육성은 불가능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나타난 모바일 투표 잡음이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최근 수차례 전국선거에서 민주당이 준비된 역량있는 후보군을 내지 못해 ‘불임정당’이라고 조롱받는 주된 원인 중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 2012년 대선 불확실성 : 여당의 변화전략과 적대적 이분법 구도의 약화

 

2012년 대선도 이전 선거 못지 않게 안개 속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전 선거에서 보여지는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60%를 선회하는 가운데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그림3). 그러나 야권도 일방적으로 밀렸던 2007년도 대선과 달리 최소한 안철수 원장과 문재인 후보의 지지층을 합하면 박근혜 후보를 능가한다. 2007년 대선이 90일 앞둔 시점에 이미 승패가 갈려있던 선거였다면, 2012년 선거는 2002년처럼 선거 막바지까지 승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야 균형구도에서 치러지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다시 말해 이번 선거가 그 어떤 선거보다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불확실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역동성으로 표현되지만, 부정적으로 귀결되면 불안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이 2002년과도 다른 것은 여는 안정, 야는 역동적 변화의 구도에서 벗어나 이러한 불확실성과 역동적 변화가능성이 여야 진영으로부터 공히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3] 2012년 18대 대선 시기 지지율 변동: 안풍 등장 이후

 

박근혜 진영의 변화 가능성과 딜레마

 

새누리당은 여전히 대세론을 등에 업은 박근혜 후보의 우위를 지키려 하고 있고, 박근혜 후보와 엎치락 뒤치락 경쟁하는 안철수 원장과 민주당 후보의 단일화 여부를 승부처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 확정이후 보여준 박근혜 후보의 행보는 기존 대선과정을 통해 대세론에 대한 안주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대표는 올 1월 새누리당 비대위 위원장을 맡으며 당명교체 뿐 아니라 과거의 줄푸세라는 성장담론에 기초한 논리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야당 친화적 아젠다를 선제적으로 수용했다. 맞춤형 복지노선과 함께 유권자들의 변화하고 있는 선호에 맞게 자신도 변신하겠다는 메시지였다. 또한 지난 8월 20일 전당대회를 통해 봉하마을, 전태일 동상 방문 등 파격적인 국민통합행보를 시도했다. 박근혜 후보의 진정성에 대한 야당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56%가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62.7%가 앞으로 이러한 통합행보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근혜 대표의 변신을 불안감 보다는 역동적 변화로 보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의 절반 가까이도 통합행보를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정도다. 중간지대 유권자들은 물론 반대파까지 수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한다면 박근혜 대표의 확장성 한계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종길 공보위원의 위협파문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의 고수 등은 박근혜 후보가 보여주었던 변화의 메시지를 퇴색시켰다. 선거가 정치적 생명을 건 냉정한 전쟁의 장이라는 측면을 인정하더라도 “국민통합”을 내세우면서 검증이라는 명분하에 “상대후보 흠집내기”에 주력하는 모습은 과거의 안주전략에 주력했던 과거 한나라당의 대세론자들과 차별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일치는 박근혜 후보가 보여주었던 “예측가능성”의 장점을 침식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내내 강조했던 “공정사회, 중도실용노선”이 단기적으로는 지지율을 끌어 올리고도 이를 뒷받침하는 일관성을 보이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키는 프레임으로 작용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야권의 딜레마와 변화가능성 : 적대적 이분법 탈피가 안철수 현상의 핵심

 

반면 야권은 2002년 6월 지방선거 패배이후 이회창 후보에 줄곧 뒤졌던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재역전에 성공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야권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2012년과 2002년의 상황이 유사해보여도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2002년도에는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정당후보인 노무현 후보를 통해 표출되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역동적 여론은 장외의 안철수 원장에게 1순위 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주는 이미지는 무엇보다 기존의 적대적 이분법을 탈피한 인물이다. 국민들이 기존 정당과 정치에 실망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는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 대 보수, 여와 야의 극단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들 사이에서는 현실적 사고에 기반한 유연한 복합적 태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상충적이고 유연한 포지션이 안철수 원장의 이념적 포지션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기존의 정당들은 무엇보다 진보 대 보수, 여당 대 여당의 관계를 적대적 이분법으로 이해하고 갈등의 정치를 펼쳐왔다.

 

실제로 국민들이 정치와 정당을 보는 태도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그림4]처럼 노무현 정부시기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적대적 대안관계로 보았다. 즉 한나라당에 비판적이면, 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민주당에 비판적으로 한나라당을 선호하는 제로섬적 인식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림5]의 이명박 정부 시기의 양당에 대한 지지율 변화를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대로, 민주당은 민주당 대로 제각각 지지율이 변화한다. 즉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사라지고, 유권자들이 각각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수준에서 봐도, 동아시아연구원․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 패널조사 결과를 보면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호감도 점수를 교차해보면 새누리당에 호감을 가지면서, 민주당에 반감을 가지는 “일방적 새누리당 지지층”과 반대로 민주당에 호감을 가지면서 새누리당에는 반감을 갖는 “일방적 민주당 지지층”의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두 정당 모두를 싫어하거나 동시에 좋아하는 “상충적 태도갈등 유권자층”이 늘고 있으며 이들이 중간지대 유권자 층을 형성하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1/3 수준으로 늘었다. 이들의 선택이 대선을 좌우할 것이다. 적대적 이분법에 기초한 네가티브 전략으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데 한계가 있음을 4.11총선이 보여주었다.

 

[그림4] 노무현 정부 시기 주요 정당 지지율 변화(%)

 

 

[그림5] 이명박 정부 시기 주요 정당 지지율 변화(%)

 

 

2012 대선, 투표 일주일전 태도갈등 유권자가 결정

 

2012년 대선은 선거구도상 우위에 서 있는 새누리당의 대선주자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안정희구심리를 자극하는데서 벗어나 “변화”를 기본 컨셉으로 내세워 선거를 임한다는 점에서 역대선거와 구별된다. 야당도 기존 제1야당의 주자가 아닌 후보와의 단일화가 선거 승리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민주화 이래 야권승리의 비결이었던 네가티브에 기반한 “반한나라당 연대”에서 벗어나 포지티브한 가치에 기반한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 지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혜 후보가 선거 레토릭이 아닌 일관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안철수 원장과 야권의 대선주자가 반새누리당을 뛰어넘은 연대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2012 대선의 최대변수가 될 것이다.

 

이 변수들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에 긍정적이거나 동시에 부정적인 소위 양시·양비의 상충적 태도갈등 유권자들의 최종 선택에 따라 승부가 바뀔 것이다. 이들의 투표선택을 살펴보면 최종선택은 거의 투표일 일주일 앞두고 이루어진다. [그림6]의 19대 총선 시기 투표결정시기를 보면, “일방적 새누리당 지지층”이 일방적 민주당 지지층보다, 일방적 민주당 지지층이 태도갈등층보다 투표일로부터 오래전에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방적 민주당 지지층, 특히 태도갈등층일수록 선거 막바지에 투표를 결정하는 비율이 높다. 태도갈등은 무려 71.6%가 투표 일주일 사이에 자신이 지지할 최종 후보를 선택했다고 했다. 대선 한달 이전에 이번 선거에서도 그러한 패턴이 유지될 경우 지금부터 투표당일까지 각 후보는 피말리는 대결을 통해 현재의 박빙 대결구도에서 탈락하지 하지 않으면서도 막바지 승부처를 준비해야 한다. 2012년 대선의 불확실성이 각별한 관심을 집중시키는 요인인 셈이다. ■ 

 

[그림6] 4.11 총선 당시 정당태도 유형별 지지후보 결정 시점(%)

 

자료: EAI·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 2012 선거패널조사 2차 조사(2012.4), 정한울 박사학위 논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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