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다를 보면 2012년이 보인다

 

2012년 총선, 대선이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다. 전초전인 10. 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비록 야권 단일후로라고나 하지만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동안 침묵해온 중도, 무당파 층이 ‘안철수 현상’을 계기로 자기 목소리를 표출하는 새로운 상황까지 등장한 것을 고려하면 2012년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의 국민여론 속에서 부각되고 있는 어젠다를 살펴보면 선거의 전체적인 구도 및 각 진영의 강점과 약점, 각 당이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선거는 다수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집약되는 핵심 어젠다를 누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며 이 어젠다를 누가 잘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표심을 결정하는 최대변수 중의 하나이다.

 

역대선거 어젠다 경쟁의 특징 :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 구도가 지배

 

역대 선거에서의 어젠다 경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적 어젠다가 선거국면을 좌우했다. 직선제 개헌 이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5대까지는 정치어젠다 중에서도 특히 민주냐 반민주의 대결구도가 대선의 핵심 어젠다였다. 16대 대선에서는 개혁과 보수의 어젠다가 충돌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에서야 참여정부 심판론이라는 정치 어젠다 외에 경제 살리기라는 정책 어젠다가 주효했다.

 

둘째, 역대 선거에서의 어젠다 경쟁은 기본적으로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보수의 라는 이분법적 대결구도 하에서 전개되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약화되고, 정치사회적 분화가 심화되면서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와 같은 제3세력이 간간이 등장하고 진보진영의 독자세력화 노력이 가시화되었지만 기존의 이분법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셋째, 크게 보면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정착된 현존 정치경제시스템의 틀 내에서의 어젠다 경쟁이었다. 제3세력이 기존 정당의 내부권력투쟁 과정에서 분화되었거나 진보정치를 표방한 민주노동당 역시 제도권 정당화를 목표로 하면서 현존 제도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전반적인 사회 환경이나 유권자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2007년 17대 대선 전까지의 역대 선거 어젠다는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3김의 시대가 마감되기까지는 강한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압도하면서 어젠다 경쟁이 선거결과에 영향력 자체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상충적인 어젠다 경쟁구도

 

국민여론을 살펴보면 2012년 어젠다 경쟁구도는 역대 선거를 지배했던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경쟁구도를 뛰어넘는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특정 이념에 치우침이 없이 유연한 정치적 선택을 하는 스마트(Swing, Middle, Ambivalent, Responsive, Tricky)한 유권자들이 서 있다. 스마트유권자는 과거처럼 특정 정당의 동원의 대상이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이슈와 상황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진보-보수의 특정이념, 여야를 오가며 자유롭게 정치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를 말한다. 이들이 전체 유권자층의 다수를 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선거의 향방이 이들의 선택에 따라 좌우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정치적, 정책적 선호에 부합하는 어젠다가 2012년의 핵심 어젠다로 부각될 것이다. 2012년을 좌우할 핵심 어젠다가 무엇일지 정치어젠다, 정책어젠다로 나누어 살펴보자.

 

3대 정치 어젠다 : 정권교체론 vs 정치세력교체론 vs 정치시스템교체론

 

정치영역 어젠다를 보면 참여정부심판론이 지배했던 2007년 대선과 달리 2012년에는 다차원적인 어젠다들이 상호 충돌하면서 복잡한 경쟁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세계금융위기와 국내 체감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2007년 못지 않은 정권심판 여론이 고조되어 있다. 2007년 4월 동아시아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 “참여정부 심판론”에 공감한 비율이 58.4%, 5년이 지난 2011년 4월에서 “MB 심판론”에 공감한 비율이 61.9%로 나타났다. 2007년과 같은 정권교체 어젠다가 2012년 정국의 핵심어젠다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현 야권은 일찌감치 후보단일화를 통해 정권연장론 대 정권교체론의 어젠다 구도를 만들겠다는 전략에 올인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내년 어젠다 경쟁은 야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다. 현 정부 심판론 못지 않게 현 야당을 대안으로 보는 데 회의적인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를 예를 들면 “정부여당 견제위해 야당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견제론에 대한 지지는 2010년 6월 6.2 지방선거에서 51.8%였지만 2011년 9월 조사에서 40.8%로 떨어졌다. 전국적으로도 2007년 참여정부 심판론은 45-50%를 상회하는 한나라당 지지로 이어진 반면, 현재의 MB 심판론은 야당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민주당 지지율은 20%대 전후로 지지부진하다. 기존 정당 모두에 대한 불신이 바로 안철수 현상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러한 정당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은 여야에겐 자성과 내부개혁을 서두르라는 강력한 경고 메세지를, 밖으로는 제3세력의 등장을 요구한다. 전체국민의 과반이 여당과 야당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자기반성과 당내 개혁’을 꼽았고, 서울시에선 “새로운 정치세력을 밀어줘야 한다”는 ‘세력교체론’에 대해 무려 59.5%가 공감했다.

 

[그림1] 정권심판론 및 제3정당 필요성 인식

 

 

정권심판론/야권통합론 제3정당 필요성

자료: 동아시아연구원·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주목할 점은 ‘정권교체’ 및 ‘정치세력 교체론’의 근저에 깔려 있는 정치경제시스템 교체의 요구이다.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불공정 경쟁과 양극화를 구조화하는 현 사회경제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국내외에서 확인되고 있다. 제2의 사회계약을 주장하는 월가 점령시위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4.0’, ‘분노의 사회’,‘제2의 사회계약론’ 다양한 시스템 개조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의 정당체제 내에서 대안을 찾지 못할 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정당과 같은 기존 정치제도를 활용한 전통적 정치참여방식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촛불시위나 희망버스 같은 비전통적 정치참여방식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는 현재 어떤 정치세력도 어젠다화하지 않아 잠재적 어젠다로 묻혀 있지만 현 시스템의 불신의 강도를 고려할 때 폭발력 있는 어젠다로 부상할 수 있다.

 

3대 정책어젠다 : 경제양극화 · 경제성장 · 삶의 질

 

거시적 차원에서 국가경제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민생체감경제가 심각해지면서 2012년 정국에서 정책 어젠다에 대한 비전제시 없이 유권자의 표심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이로한 조짐은 이미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에 치러진 6.2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바 있다. 여권의 안보이슈 및 북풍의 어젠다화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한 것은 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이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적해온 내셔널 어젠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양극화 및 경제성장 어젠다를 최우선 국가어젠다로 꼽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림2] 차기정부 최우선 국정과제

 

자료: 동아시아연구원·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 정기조사 12월 조사

 

주목할 점은 우선, 노무현 정부시기까지는 주로 “진보=양극화, 보수=성장 우선”의 이념적 이분법 구도가 작동했다면 현 정부 하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야권이 주장하는 보편복지에 대해서는 우려와 경계하는 여론이 다수여론을 점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 시기까지 경제 어젠다의 프레임은 주로 국가 및 사회적 차원에서 형성되었다. 진보의 ‘선(先)복지확대론’이나 보수의 ‘선(先)성장 트리클다운(trickle down)' 노선 모두 국가적 차원의 경제 어젠다’이다. 2011년 초 전세대란, 물가대란에 구제역파동까지 벌어지며 개개인의 ‘삶의 질’에 대한 국가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한편 천안함, 연평도 사건 직후 조사에서는 국가안보 강화 및 남북관계 어젠다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커지기도 했지만, 이후 점점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이후 남북간에 특별한 긴장국면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역시 “경제양극화 ․ 경제성장 ․ 삶의 질”의 문제가 2012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정책 어젠다가 될 것이다.

 

2012년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여권은 박근혜 전대표의 비상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며 현재 심화되는 정권교체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쇄신 작업에 몰두하고 있고, 야권은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등이 중심이 된 민주통합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를 중심으로한 통합진보당을 결성하여 체제 정비를 마치고, 모처럼 차기 지도부 선출과정에 유권자들의 투표참여의 길을 열어두면서 활력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여야 공히 여론이 기대하는 어젠다 경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10.26 서울시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다수 국민이 바라는 사회경제적 불안 해소 요구와 복지 확대 요구를 ‘복지포퓰리즘’으로 치부하며‘정책대결’외피를 쓰고 일관된 네가티브 공세로 일관했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선거 이후 선거과정에서의 여당의원실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난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과 정부 최측근, 친인척 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냉소가 급격히 심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표 및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복지확대, 맞춤형(선별) 복지’로 다수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 정책 포지션을 이동하고 야당보다 먼저 ‘자성과 개혁’의 어젠다를 선점함으로써 어젠다 경쟁의 전열을 정비해가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지가 보수층과 한나라당 지지층의 경계를 넘어 중간층의 지지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 정부 하에서 정부여당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과 차기 선거를 앞두고 친이-친박계간 상호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집권여당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제1야당 민주당은 정치세력교체의 여론에 의해 타격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러나 자기당 후보를 내지 못할 정도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당내의 자성과 치열한 자기 개혁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민주당의 ‘자기개혁’을 통한 정당정치에 대한 신뢰회복 방안을 마련하고 나아가 ‘시스템 변화’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시급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치적으로는 이미 시효가 다된 ‘민주 대 반민주’ 라는 구식 어젠다로 회귀하고 정책적으로는 주민투표과정에서 된 ‘보편복지노선’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기존 야당 지지층의 상당수가 안철수 원장 지지로 흡수됨으로써 당 지지층의 이완이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세력교체론에 대응할 수 있는 자성과 개혁, 시스템 개혁의 비전 및 관성적 보편복지노선을 뛰어넘는 정책 대안 마련이 관건이다.

 

한편,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경고와 새 정치에 대한 기대를 이전 받으며 일약 차기 대선의 선두주자로 나선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강한 바람을 유지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제3세력화 흐름 역시 몇 가지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12월 초 기자회견에서 “총선 출마 및 제3신당 창당, 생각한 적이 없다”며 못을 박은 반면 대선 출마여부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긴 바 있으며 최근에는 국정현안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고 있다. 정치적 결단과 권력의지를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으로 꼽는 한국사회에서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정치적 스탠스로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박원순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어느 정도 확인 되었지만 반한나라당 전선에만 집중하자니 새정치를 바라는 세력교체 여론의 이탈이 발생하고, 세력교체 여론에 충실하자니 민주당의 반발과 정권심판 여론이 반발한다. 둘째, 양 어젠다가 상충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선택의 결단이 미뤄지면서 초기의 우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만약 안철수 원장이 차기 대선에 나올 경우 박원순 후보가 겪은 딜레마를 그대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 하에서 정치권 앞에 대선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2012년 총선, 대선은 역대 선거에 비해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유권자의 기대가 집중되는 선거가 될 것이다. 각 정치세력은 10.26 재보선,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복합적인 어젠다 수요를 정확히 읽고 자성과 결단을 통한 비전 마련에 전념해야 한다. 여론에 부합하는 새로운 어젠다 개발과 대안 제시에 성공해야 선거 뿐 아니라 이후 국정운영에서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기대할 수 있다. 여론과 동떨어져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경우 누가 승리하건 취임 초부터 유권자들의 강한 불신과 견제 속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부담을 지게될 지 모른다. 2012년이 국민과 정치가 모두 승리하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더 큰 분발과 자기개혁을 기대한다. ■

 

* 이 글은 <핫 이슈 시사 2012> (시사저널 엮음, 2011) 에 실린 원고를 <시사저널사>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출판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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