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α or ACU, 중국 위안화 기축통화에 대한 논의
G20의 런던 정상회의가 세계경제 회복과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구축을 위한 6개항2)에 대해 합의함으로써 글로벌 공조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였다. 특히 이번 런던회의를 전후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G7 국가들이 주도하던 세계경제의 정책적 의사결정 구조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G7에서 G20으로 확대된 것 자체가 이러한 변화를 반증하고 있다. 즉, 세계경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신흥 경제국들의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바로 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회담 시작 전부터 ‘달러의 기축통화Anchor Currency체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위안화의 기축통화 논의’에 불을 당긴 중국이 2조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앞세워 IMF에 400억 달러의 기금을 출자하겠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역할을 자처하고(有所作爲: 할 일은 하겠다) 나선 중국의 부상은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경제위기의 극복 방안과 함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중국 위안화의 기축통화 문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반대로 공식의제로 채택되지 않아 달러체제를 바꾸려는 중국의 첫 시도는 무산되었다. 중국 역시 위안화 대신 달러를 대체할 초국가적 기축통화로 SDR Special Drawing Rights: 특별인출권의 사용을 주장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SDR 역시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기축통화를 둘러싼 달러와 위안화 간 화폐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비록 위안화의 공식적인 기축통화 논의는 실패하였으나, IMF 의결권의 조기 조정이라는 실리를 확보함으로써 사실상 위안화의 기축통화 지위 구축을 위한 발판은 마련하게 되었다.
여하튼 글로벌 경제위기로 달러화의 위상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1980년대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달러화가 위협 받자,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의 대폭절상으로 위기를 넘겼을 때와는 달리, 이번엔 중국이 미국의 뜻대로 위안화를 대폭 절상할 생각도 없고, 미국의 캐시카우Cash Cow 산업인 자동차 빅3 조차도 파산지경에 놓이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을 발판으로 20세기 이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던 과거사에 비추어 볼 때, 21세기 세계의 공장으로서 연간 3,000억 달러 정도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 영국과 미국에 이어 21세기의 경제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기축통화 도전은 이미 충분히 예견되어 왔던 일이다. 단지 이번 위안화의 기축통화 논의는 지난 3월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이 전인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외교역에서 위안화의 결제가능성’4) 과 주위천朱玉辰 중국금융선물거래소 총경리의 위안화 기축통화 가능성5) 언급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G3를 넘어 G2로의 비상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중국은 이미 지난해 12월 중국의 광둥성廣東省 및 창장長江 삼각주와 홍콩, 마카오 간에 그리고 광시廣西장족 자치구 및 윈난성雲南省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대외무역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한 바 있다.6) 이어 금년 4월에는 상하이上海·광저우广州·선전深圳·주하이珠海·둥관东莞 등 5개 도시에 대해서도 대외무역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함으로써7) 사실상 위안화의 영역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울러 한국, 홍콩, 말레이시아, 벨라루스,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6개국과 6,500억 위안에 달하는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를 체결8)함으로써 인민폐人民幣의 기축통화 만들기를 위한 물밑 작업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경제의 위상이 크게 실추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세계경제의 25%를 차지하는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서 달러는 여전히 가장 파워풀한 국제통화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 유럽, 중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들이 대미 무역 흑자를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연간 8,00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 적자를 견디며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배출구)으로서 구매력을 갖고 있는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중국의 달러 흔들기의 주된 목적은 국제사회에서의 중국 위상 강화와 아직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위안화의 기축통화 준비를 위한 장기 포석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당초 2013년까지로 예정된 IMF의 의결권voting power 조정 작업을 2년 앞당겨 2011년 1월까지 완료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위안화 지위를 격상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의결권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중국은 IMF내 추가출자로 또 다시 지분확대가 가능한 반면, 미국의 지분축소라는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06년 9월 싱가폴 IMF 총회에서 중국(+0.88%p)과 한국(+0.61%p), 터키(0.15%p), 멕시코(0.27%p) 등 신흥경제국의 의결권은 확대된 반면 미국과 영국의 지분은 각각 -0.29%p와 -0.64%p 감소한 바 있다. 또한 의결권 조정과 함께 달러(42.2%), 유로(36.3%), 엔화(12.4%), 파운드화(9.1%) 등 4개 통화로 구성되어 있는 SDR9) 바스켓 통화Basket Currency에 위안화가 참여하는 ‘4+α’를 요구함으로써 4개 통화 중 하나로 SDR의 분담금을 부담하는 현 시스템 내에서 먼저 실질적인 기축통화의 입지를 구축하는 카드를 동시에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단 기간 내 위안화의 기축통화 논의가 어려운 상황임을 누구보다 잘 숙지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위안화의 기축통화 논의를 통해 최소한 달러화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장기적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것과 위안화의 기축통화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서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아시아통화기금AMF10)과 아시아 단일통화ACU 논의에서 일본 엔화에 앞서 상대적 경쟁우위를 선점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분명 중국은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 무대에서 미국과 함께 G2로 급부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완전한 태환화가 이루어 지지 않은 위안화의 기축통화논의는 시기상조이며, 또한 기축통화로서 인정되기까지 “달러화가 갖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와 관성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는 가장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더욱이 이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중국이 갖추어야 할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의무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개인의 인격이 있듯이 국제사회에서의 가치 즉, ‘달러=미국’, ‘미국=자유와 정의’로 인식되는 국격은 바로 그 나라와 그 나라 화폐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분명 중국은 G2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에 이은 G2는 분명 일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국격은 경제 사이즈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바로 이것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교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