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논평] 아베 정권과 일본 헌법 개정
논평·이슈브리핑 | 2018-04-03
이정환
[편집자 주]
이와 달리, ‘자위대’에 관한 9조의 개정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의 의견이 쉽게 통일되지 않았다. 결국, 3월 22일 전체회의에서 9조 개정 문제를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본부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9조 개정에 대한 자민당 내의 논쟁
자민당 당내 9조 개정에 대한 논쟁 구도는 9조 1항과 2항을 유지한 채 9조 2를 신설하는 헌법개정추진본부의 개정안과 9조 2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개정안의 대립 속에서 진행되었다.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논의 과정에서 호소다 본부장과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부총재 겸 헌법개정추진본부 특별 고문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후자를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개정추진본부의 개정안은 2017년 5월 아베 총리의 비디오 메시지에 이미 담겨져 있었다. 즉, 9조 개정에 대해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자민당 주류에서 9조 존치 및 9조 2 신설안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고, 헌법개정추진본부의 논의는 이를 당론으로 공식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시바가 원론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지난 1년여 동안의 자민당 내 9조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아베를 필두로 한 주류파가 9조 존치안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자민당은 이미 당론으로 확정된 헌법 개정안을 갖고 있었다. 2005년 창당 50주년에 발표한 ‘신헌법 초안’이 자민당이 공식화한 첫 개헌안이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28일 ‘주권 회복의 날’에 발표한 ‘일본국 헌법개정 초안’은 자민당의 공식 개정안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2012년에 채택한 ‘일본국 헌법개정 초안’에는 현행 9조 2항의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의 조문을 ‘전항의 규정은 자위권의 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로 수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9조 2를 신설하고 ‘국방군’을 보유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즉, 2012년 초안에는 전력보유 금지의 문구를 삭제하고 국방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현재의 자위대를 일반 군대로 공식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가 총재로 재임하던 야당 시절에 당론으로 정해진 것이나, 2012년 자민당 헌법개정 초안 내용은 아베를 비롯한 현재의 자민당 내 주류파가 동의하고 주도했던 것이었다.
2012년 초안과 비교해 봤을 때, 현재 아베를 중심으로 한 주류파가 택한 9조 내용 전체의 존치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9조 2항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남아있는 한,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 또한 9조 2를 신설하는 것만 동일할 뿐, 2012년 초안의 9조 2의 국방군 규정과 2018년 헌법개정추진본부 조문안의 자위권과 자위대 관련 규정은 내용상 의미가 다르다. 현재 아베가 이끄는 주류파는 헌법 개정의 목표를 자위대를 위헌 상태에서 명백히 벗어나게 하는 데에 두고 있다.
한편, 이시바는 자위대의 존립근거를 실질적인 군대로 명확히 규정한 2012년 자민당의 당론을 다시금 제기하고 있다. 전력불보유 내용이 남아있는 한 자위대의 존립근거를 헌법 조문에 추가한다고 해도 전력불보유와 자위대의 근본적인 갈등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모를 리 없는 주류파가 전력불보유 내용의 9조 2항을 존치하고자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연립여당인 공명당을 배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을 함에 있어 현행 헌법의 3대 원칙인 국민주권주의, 항구 평화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환경권 등의 인권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공명당으로서는 9조 2항의 삭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이다. 또한, 2014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 변경과 2015년 안보법 재개정으로 인해 자위대의 실제 군사활동에 있어서 이미 현행 헌법이 별다른 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자위대의 국방군 변경 여부가 안전보장 측면에서는 큰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 성격은 이미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 따라서 전력(군대)이 아닌 자위대의 존립 근거만 추가해 자위대를 위헌성에서 벗어나게만 하자는 것이 자민당 주류파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 변경보다 헌법 9조의 개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의 공식화를 선호했던 이시바에게 아베 주류파의 9조 존치와 9조 2의 자위대 근거 규정 추가 시도는 안전보장에 대한 편법적 우회를 위한 선택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정국과 헌법 개정의 가능성
2017년 5월 아베 총리가 2020년 신헌법 시행을 목표로 제시했을 당시, 2017년 가을 임시국회에 자민당 중심의 헌법개정안을 제출하여 양원의 심의를 거쳐 발의 후 2018년 상반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불거진 모리토모 학원 문제, 가케 학원 문제, 이나다 도모미(稲田朋美)를 비롯한 내각 인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해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7월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2017년 하반기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선택했다. 비록 중의원 조기 선거 실시로 헌법 개정 일정이 지연되기는 했으나, 중의원 선거결과 개헌세력이 2/3 이상을 유지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헌법 개정의 모멘텀은 유지되었다.
올해 자민당 내 아베 주류파의 구상은 3월 당대회 이전에 당내 헌법개정 논의를 마무리 짓고, 그 후 총무회를 통해 당론을 확정하고, 가을 임시국회 때 개정안을 발의하여, 2019년 상반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자민당이 3월 25일 당대회를 기점으로 당내 헌법개정 논의를 마무리 지으려는 이유는 일정 때문이다. 늦어도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동시에 치러져야 한다는 판단에서이다. 내각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헌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3월 2일 모리모토 학원 관련 조작 문제가 불거진 후 아베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내각지지율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당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지난 3월 25일 도쿄 그랜드 프린스 호텔 신타카나와에서 개최된 자민당 제85회 정기 당대회에서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성과와 생산성 향상, 임금상승, 농업개혁, 관광진흥 등의 정책과제에 대해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후, 자위대의 위헌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그러나 당대회 당일 이시바 전 간사장은 헌법 개정에 대한 당내 의견수렴 절차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자민당 내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도 모리모토 학원 사태로 빚어진 정권의 신뢰하락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의 신뢰 없이 헌법 개정은 없다고 언명하였다.
헌법 개정은 아베 정권의 정치적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아베 정권에 대한 높은 지지도는 아베의 지도력에 대한 자민당 내의 높은 구심력이 기반이었지만, 현재 아베 총리는 그 구심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9월에 있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의 승리는 당연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일본 국내정치적 상황은 헌법 개정의 가능성을 더욱 어둡게 할 것이다. ■
저자
이정환_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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