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의 역사, 왜 알아야 하는가?

 

 

한국의 정당을 보면 누구나 암울한 현실에 한숨짓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이합집산하면서 마치 정당 명명을 다투기라도 하듯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고 그 이름에 익숙해질 즈음에는 또 다른 이름의 정당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민주, 자유, 정의, 평화 등 근대정치의 수사들이 어떻게 정당 이름으로 조합될 수 있는지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매번 새로운 이름으로 정당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 소속되어 있는 정치인들과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들 그리고 그 정당과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정치행태는 결코 새롭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보수당은 다르다. 근대 이후의 수 많은 변화와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보수당은 이름을 잃지 않고 살아 남았다. 역사 속에 영국 자유당이 사라지고 노동당이 새로이 등장할 때에도 보수당은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찌하여 국민들의 기억 속에 잊혀질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보수당이 영국 근대정치사를 꿰뚫어 생존해 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수당의 역사는 오늘의 한국 정치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교훈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피트에서 데이비드 카메론까지, 변화하는 보수당

 

 

"보수"라는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옛 것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미의 "보수"가 영국 보수당을 2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생존시켰던 핵심 요소일까? 역설적이게도 영국 보수당이 오늘날까지 의미 있는 정당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가 아니라 "변화"에 있었다. 그렇다고 "보수"의 탈을 쓴 "변화"는 아니었다. 그것은 질서와 안정, 제도와 유산을 지키면서 시대가 원하는 변화를 수용했던 유연함에 있었다.

 

역사는 변화의 연속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민의 요구 또한 변화한다. 만일 영국 보수당이 과거의 유산만을 지킨다는 원칙에만 집착했었다면 그 이름도 이제는 역사책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수당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토리에서 시작된 보수당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것을 수용하면서 생존의 기술을 터득하고 국민이 원하는 정책 대안들을 제시해왔다. 이념과 사상에 경도되지 않고 현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실용적 기회주의(pragmatic opportunism)야 말로 윌리엄 피트 이래 오늘의 데이비드 카메론까지 보수당이 유효한 정당으로 생존해 올 수 있었던 핵심 덕목이었다.

 

 

영국 보수당이 주는 교훈, 3가지 생존의 법칙

 

첫째, 보수당은 대단히 권력을 열망하는 정당이다. 보수당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고 그 이유도 대단히 현실적이다. 즉,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고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 권력획득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야 했기에 교조적이고 이념적인 독단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에 자신을 맞춰 가려고 했다.

 

디즈레일리 수상은 “빌어먹을 너의 원칙을 버려라. 그저 당에 충실해라”라고 말한 바 있으며, 대처 수상 시절 주요 내각 각료직을 역임한 노만 테빗(Norman Tebbit)은 “보수당은 무엇보다 권력 장악을 위해 애쓰는 정당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보수당은 어디에 그런 역량이 있는지 항상 주목하며 살펴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둘째, 보수당이 성공적인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까닭은 유연함 때문이다. 변화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않았다. 만일 보수당이 기득권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고만 했다면 영국 역시 프랑스혁명과 같은 급격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수당은 영국 사회에서 발생한 변화와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를 수용했다. 사실 보수당이 유연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당의 지도자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면서 과거의 정치적 갈등과 단절을 꾀하며 새로운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보수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한 정책에 대해 집권 후 이를 되돌리자고 하는 의견이 보수당 내에서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내 반대를 물리치고 변화된 시대에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이 성공한 보수당의 지도자들이었다.

 

 

셋째, 보수당은 당의 외연을 넓혀 왔다. 결코 배타적인 집단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토지소유계급, 귀족의 집단으로 출발한 보수당은 산업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사회적 힘으로 떠오른 상공업자들을 끌어들였고 이들과 하나로 융합했다. 노동계급에게까지 투표권이 확대된 이후 당 조직의 강화를 통해 이들을 보수당의 지지자들로 만들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새로운 세력을 당내에 수용했던 것이다.

 

상공업자 출신의 볼드윈 수상, 중산층 출신의 자수성가형 히스 수상과 대처 수상,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했던 메이저 수상 모두 보수당이 배출한 수상들이다. 보수당은 이처럼 귀족과 기득권층의 정당, 이튼과 옥스브리지 출신만의 배타적 정당이 아니라 다수를 포용해 낼 수 있는 정당으로의 변모를 위해 애썼다.

 

 

목차  

 

책을 내면서

 

일러두기

 

제 1 장 프롤로그_보수와 생존

제 2 장 보수당 이전의 보수파_토리에서 보수당으로

제 3 장 필 수상과 보수당의 등장

제 4 장 디즈레일리_보수당의 기반

제 5 장 자유당의 분열과 보수당의 행운

제 6 장 보수당의 분열과 관세개혁

제 7 장 보나 로와 아일랜드 이슈

제 8 장 제1차 세계대전과 연립정부

제 9 장 격변기의 보수당_대공황, 사회주의와 볼드윈

제10장 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

제11장 처칠과 제2차 세계대전

제12장 전후 합의체제와 처칠

제13장 이든과 수에즈 운하 사건

제14장 합의체제의 유지와 변화의 바람

제15장 막다른 골목

제16장 대처 시대_철의 여인과 신자유주의 혁명

제17장 유럽 이슈와 분열

제18장 다시 황야에서

제19장 에필로그_보수 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참고문헌

 

 

 저자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영국 London 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주임연구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한국의 선거정치》, 《한국정치 웹 2.0에 접속하다》 등 다수의 책을 썼으며 Electoral Studies 등 국내외 여러 저널에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정치학회,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정당학회 부회장으로 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단행본의 원고를 일부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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