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김치욱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연구 분야는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네트워크 세계정치, 중견국가론이며, 최근의 주요 논저로는 “케인스주의의 부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치엘리트의 경제담론 분석,” “네트워크 이론으로 본 미-중 자유무역협정(FTA) 경쟁,”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거버넌스 변화,” “Toward a Multistakeholder Model of Foreign Policy Making in Korea? Big Business and Korea-US Relations”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2010년대 아시아의 무역관계는 중첩적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네트워크에 의해 규율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전략으로 양자 FTA를 사실상의 다자주의 레짐으로 바꾸는 일종의 양자적 다자주의(bilateral multilateralism)를 제시한다. 1990년대 경제적 기적과 신화를 차례로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2010년대 들어 ‘아시아의 세기’라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World Bank 1993; Krugman 1994; Bhagwati 1998; Kohli 2011; Bowring 2011). 국제정치 무대에서 아시아의 귀환은 행위자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보다 가시화되었고,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과 협력은 향후 아시아 무역질서의 향배를 결정할 동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국가들은 전후 다자주의 무역질서 하에서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에 입각하여 글로벌 공장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유럽이나 북미 등과는 다르게 역내 무역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다자제도를 수립하지 못하고, 대신 중첩적인 양자 FTA를 통해 자유무역을 관리해왔다. 한마디로 양자주의는 아시아 무역질서와 각국의 통상 정책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부상했다(Heydon and Woolcock 2009).

 

그런데 글로벌 차원에서 세력전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아시아 무역정치에도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한층 증폭되었다. 그동안 아시아의 FTA 무대에서 주인공은 중국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은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을 중심으로 공세적인 FTA 전략을 추진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인 영향권을 구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FTA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적어도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가 아시아에 대한 간여정책의 일환으로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미국의 대 아시아 서진(西進)정책은 클린턴(Hillary Clinton) 국무장관의 발언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TPP협정이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서 장차 다른 무역협정의 본보기(benchmark)로 기능할 수 있으며, 아태지역의 통합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의 기반(platform)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Clinton 2011).

 

한국은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FTA 게임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한-미 FTA는 2007년 서명된 지 5년만인 2012년 3월에 공식 발효되었다. 미국은 이미 호주(2005), 칠레(2006), 싱가포르(2004) 등 3개 국가와 FTA를 체결(발효)했으나, 동아시아 3대 경제 중 처음으로 한국과 양자 FTA를 최종 성사시켰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은 FTA 협상의 전단계로서 2010년 5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쳤으며 2010년 9월 정부 차원에서 국장급 사전협의를 진행했다. 한국 정부는 2012년 2월 한-중 FTA를 추진하기 위한 첫 번째 국내절차를 개시했다. 한중 양국은 한국의 국내 절차가 마무리 되는 대로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중•일 3자 FTA 협상도 점차 가시화되었다. 3국은 2010년 5월 시작된 산•관•학 FTA 공동연구가 2012년 3월 30일 종료했으며, 2012년 5월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FTA 협상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 도출될 것으로 점쳐졌다. 한국, 중국, 일본은 2012년 3월 21일 투자 자유화,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양자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을 교섭 5년 만에 전격 타결함으로써 3자 FTA 성사 가능성을 높였다.

 

이와 같이 2010년대 아시아의 무역 게임은 지역 다자제도의 형성 노력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양자 FTA를 중심으로 속도감을 더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글로벌 수준에서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경쟁, 그리고 한중일과 아세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아시아 FTA 게임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임할 수 있는가? 본 연구는 자유무역의 이익을 분배하는 국내 경제적 거버넌스의 구축과 기존의 양자 FTA가 사실상의 다자 무역레짐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소위 ‘양자적 다자주의’를 주문하고자 한다. 양자적 다자주의는 무역 거버넌스 아키텍처가 형식상으로는 양자적인 성격을 띠지만 그 실질적으로는 다자주의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II장은 FTA를 중심으로 짜여진 아시아 무역 거버넌스를 조명한다. III장은 FTA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사회연결망분석법(Social Network Analysis)을 활용하여 아시아 FTA 네트워크의 구조를 밝힌다. 이어 IV장은 한국의 FTA 전략으로서 양자적 다자주의의 필요성과 내용을 밝힌다. V장은 본 연구를 요약하고 양자적 다자주의의 한계점을 논함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II. 전환기의 아시아 무역 거버넌스

 

전후 아시아 무역질서의 변천 과정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다자주의의 실패와 양자주의의 부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10년대 아시아 국가 간의 무역관계는 양자주의에 의해 규율될 전망이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들이 양자 FTA 대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수준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체제와 함께 지역적인 차원에서도 다자주의를 지향했다(Asian Development Bank 2010).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주도로 아시아의 다자 무역협정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일본 경제학자인 기요시 고지마(小島清)는 1966년 태평양자유무역지대(Pacific Free Trade Area: PAFTA)의 창설을 제안했다. 이 구상은 훗날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nference: PECC)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프로세스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 받았다.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을 구성원으로 하는 PAFTA는 아태 경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했으며 유럽통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제안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소극성과 중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일본과 호주는 1967년에 태평양경제협의회(Pacific Basin Economic Committee: PBEC)를 만들었는데, 양국 간 상업적 협력체로서 제도화의 정도가 떨어지는 민간 경제협력체의 성격을 띠었다. 1970년대 일중 양자관계가 중요해지고 중국이 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다자협정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잦아들었다(Kojima 1971; Deng 1997). 그러다가 1980년 당시 일본 오히라 수상(大平 正芳)과 호주 프레이저(Malcolm Fraser) 수상의 제안으로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가 수립되어 지역협력의 에너지를 회복했다. PECC는 정부, 재계, 학계 간 3자 포럼으로 정보 교환과 소통을 통해 무역과 개발 이슈에 관한 태평양의 협력을 촉진하고자 했다.

 

이에 앞서 1967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을 구성원으로 하는 아세안(ASEAN)이 출범했다. 그러나 아세안은 출범 초기 컨센서스 중심의 정치안보 공동체로 인식되었고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6년 발리 정상회의에서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 PTA)을 도입했지만, 대상 상품의 범위가 좁고 회원국의 이행의지가 약하여 역내무역에 대한 영향은 미미했다. 이후 1992년 아세안자유무역협정(ASEAN Free Trade Area: AFTA)을 체결하여 향후 15년 이내에 아세안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2008년까지 아세안 역내관세율을 0.5퍼센트로 인하하는 동시에 각 회원국의 비관세장벽도 점차로 철폐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로 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포괄적인 다자 무역레짐을 향한 노력은 1989년 APEC의 수립으로 가시화되었다. 1993년 미국에서 개최된 1차 APEC 정상회의는 단일시장의 건설이라는 비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개최된 제2차 정상회의에서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 목표를 설정한 ‘보고르 목표’를 채택했다. 1단계로 APEC 회원국 중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선진국들의 경우 2010년까지 역내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고, 2단계로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멕시코 등 나머지 회원국들은 2020년까지 역내 무역자유화에 동참토록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후 연례 APEC 정상회의에서 APEC 경제통합을 심화하는 각종 행동계획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2011년 현재 APEC은 여전히 역내 무역자유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APEC 2011).

 

아시아 지역에서 다자 무역협정의 공백은 양자 FTA에 의해 채워졌다. [그림 1]과 같이 아시아 국가들은 2011년 현재 250개의 FTA를 이미 체결했거나 협상 또는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FTA의 태반은 양자 협정인데, 1990년 3개에서 170여개로 급증, 전체 FTA의 6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의 양자주의는 역내 다자주의 틀인 APEC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유럽과 북미의 지역주의가 확산되는데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다. 아시아 밖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유럽연합, 미국, 일부 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FTA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양자 FTA 확산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1992년의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를 제외하면 2000년 이전에 양자 혹은 복수국간(plurilateral)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아시아 국가는 없었다. 일본과 한국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여전히 다자주의를 지지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 중 양자 무역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WTO 협상이 지체되고 APEC이 동력을 잃어감에 따라 점차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한국은 1999년 칠레 FTA 협상을 개시했고, 일본과도 준정부간 수준에서 FTA 논의를 시작했다. 일본은 싱가포르가 FTA 카드를 제시했을 때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2002년 서명했다. 이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역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멕시코와의 FTA 협상으로 관심을 돌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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