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은 2019년 9월 ‘BTS매력론’ 연구팀을 발족하여 문화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및 국제정치학적 시각에서 BTS현상을 분석한 단행본 『BTS의 글로벌 매력 이야기』 출간에 앞서, 세 번째 워킹페이퍼 시리즈로 “BTS가 오른 세계 무대, 매력외교의 신지평”을 아래와 같이 발간하였습니다.

본 연구는 BTS 현상이 갖는 매력을 국제 관계적 측면에서 살피며 한국의 공공외교를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기존의 한류 외교가 보인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한 후, 매력적인 한국 공공 외교를 위해 스토리텔링의 힘, 향상심 자극과 연대의식 고양의 노력, 보편적 메시지 발신, 취향 공동체와의 연계, 초국적 문화 네트워크 형성, 지역적으로 차별화 된 외교 전략을 강조합니다.

 

 


 

※ 아래는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전문은 상단의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공공외교와 매력

외교의 성패는 그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물리적 자원뿐만 아니라 가치, 이념, 문화, 지식, 외교술 등 비 물리적 자원의 적절한 조합과 투사에 달려있다. 특히 상대국 대중을 향한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비 물리적 자원의 활용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 주변 대국에 비해 물리력이 열세인 중견국으로 공공외교의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물리력의 열세에 있는 국가들은 당장 생존과 직결된 안보 및 경제 현안에 대응하느라 공공외교처럼 장기 투자와 효과를 기하는 외교에 큰 자원을 투자할 여력도, 여유도 없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일찍이 공공외교에 주목하고 투자를 거듭해 온 데 비해 중견국들이 비교적 뒤늦게 공공외교의 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중견국은 강대국의 공공외교 모델을 답습하기보다는 자국의 가용 자원을 정확히 평가하고 전략적으로 배분, 동원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기해야 한다.

한국은 뒤늦게 공공외교에 관심을 기울여 2010년을 ‘공공외교 원년’으로 선포하고 정무 외교와 경제외교와 함께 공공외교를 한국 외교의 3대 기축으로 설정하고, 공공외교 역량 강화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외국 국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한국의 역사, 전통, 문화, 예술, 가치, 정책, 비전 등의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증진시키고,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가브랜드를 높여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외교활동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공공외교의 핵심은 매력(魅力)에 있다. 글자 그대로 매력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죠세프 나이(Joseph Nye)는 이를 소프트파워(soft power)라 부른다. 진정한 공공외교는 자신의 매력을 담아 상대방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감하게 함으로써 국가 이미지를 향상하고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만일 상대국 대중을 끄는 그 무엇이 약하다면 공공외교의 효과는 떨어질 것이다. 한국 정부는 공공외교의 대표적 자산으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발전 모델, 침략의 역사가 없는 평화국가 이미지,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적 우수성을 꼽고 있다. 과연 한국의 이러한 가치와 문화는 타자에게 매력적인가. 이를 널리 알리면 국제적 공감대가 확산되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가 향상되고 궁극적으로 외교관계를 증진할 수 있을까.

매력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정서적이다.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에 호소하는 과정이고 타자(수용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효력은 상이하다. 매력이 관계적 성격을 갖는다면 자기의 어떤 모습, 가치, 실천이 수용자의 머리와 마음을 끄는지, 어떤 조건하에서 효과적으로 끌 수 있는지를 알아야 매력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외교의 출발점은 상대방이 공감하는, 혹은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안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한국의 문화적 매력을 재현하는 언어는 한류(K-Wave)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경을 넘어 유통되며 반향을 일으키는 문화 현상을 한류라 정의한다면, 한류의 어떤 측면이 상대를 매료시키는가. 2000년대 한류가 드라마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다면 2010년대는 K-Pop(이하 케이팝)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지구적 확산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듯 20년째 지속되는 한류는 한국의 국가 인지도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나아가, 한류가 과연 국가 인지도를 넘어 이미지를 바꾸고 있는지, 어떤 브랜드로 인식하게 하는지, 한류의 어떤 모습, 어떤 요소가 공공외교 차원에서 먹히는 것인지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한다.

매력은 저절로 존재하고 객관적인 경험에 의해 도출되지 않는다. 매력은 간주관적 사회작용의 결과이고 소통과 교환으로 만들어진다. 지속적인 소통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게 현실(reality)이라면, ‘매력적’인 현실은 아마도 세상을 특정하게 해석하고 있는 행위자들이 특정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두고 서로 소통하면서 결국 하나의 현실 즉, 진실로 수렴해 가는 결과가 아닐까. 따라서 한국이 한류라는 이름의 매력적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타자를 설득(persuasion)하기만 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에 관해 리오타르(Lyotard)에 따르면 설득은 논쟁을 통해 이루어지고 논쟁은 경험적인 증거에 근거한 추론(reasoning)으로 진행되는 것이나, 사실상 현실은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논쟁 당사자들은 증거 자체 혹은 무엇이 증거를 구성하는가에 관해 종종 합의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추론의 과정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행위자들은 추론 대신 문제의 현실을 자기의 이익에 맞게 구성, 재구성하려 하며, 그 행위자가 국가일 경우는 그 강도는 더더욱 세진다.

한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매력적’인 현실을 한류로 (재)구성하려는 과정에서 종종 타자(타국의 수용자)의 견해를 경시, 무시하고 자기 견해를 강조, 강요하는 우(愚)를 범하곤 한다. 사실 한류라는 현상을 포착하고 이름을 붙여준 곳이 주변국임을 상기한다면 매력의 생산은 타자와 자기 사이 소통과 교환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의 이른바 한류 외교는 일방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로 공공외교의 중심은 정부가 나서서 한류의 주역과 그들의 문화콘텐츠를 해외에 홍보하고 수출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한류가 전 세계로부터 매력을 획득하는 과정, 매력 인자(gene)와 활용방식 등을 이해하고 차용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BTS의 매력은 기왕의 한류 외교 혹은 한류 공공외교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는 BTS가 이뤄낸 빌보드 앨범 및 HOT 100 1위와 같은 성과 때문이 아니라, BTS가 보여준 차원이 다른 매력 생산과 유통 방식 때문이다. BTS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매력은 스토리텔링에 있다. 이들은 흔한 청춘의 삶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성장과 성공담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솔직함과 진정성(authenticity)을 담아 전달하여 상대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고 현실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둘째, BTS의 스토리텔링은 보편적이고 동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BTS 멤버들이 겪는 삶의 주요 환경은 한국이지만 그들이 문제 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슈들은 전 지구적 문제들이 주를 이루고, 국경을 넘어 특별히 청년세대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셋째, BTS는 보편적 메시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특수성을 보인다. 발언의 주제로 삼는 것들이 보편적인 데 비해, BTS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특수한 취향 공동체의 열광을 이끌어 내어 존재감을 알리고 그를 바탕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루는 전략이다. 그 결과, BTS는 전 세계 흩어져 있는 팬덤 ARMY(이하 아미)라는 취향 공동체를 동류의식과 연대의식으로 엮어 엄청난 초국적 문화네트워크를 만들어내었다. 넷째, BTS의 콘텐츠 생산, 전파, 수용의 모든 과정은 생산자(BTS)와 소비자(아미)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참여와 소통, 교환의 양방향 소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한류가 제왕적 프로듀서를 정점으로 하향식(top-down)으로 철저히 통제되는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을 내세운 것과는 달리 BTS는 아미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SNS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BTS의 사례를 통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BTS의 매력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매력 전략 즉, 진정성과 보편성의 스토리텔링, 네트워크의 지구적 확산 전략과 수평적 참여 등을 참고하여 BTS형 공공외교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 저자: 손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 최근 저서로는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019(32):6),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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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프로젝트

문화와 정체성

세부사업

BTS 매력론

미래혁신과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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