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논평 제35호] 아시아 공진질서 건축의 새 장을 열자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 논평·이슈브리핑 | 2014-07-08
하영선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이 단순히 화려한 잔치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만남으로 자리매김하려면 한중 양국의 3중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탈냉전적 공진 시각을 통한 새로운 한•미•중 관계 구축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형성된 아시아 냉전질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소련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아시아의 세력판도에서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성대국(守城大國)인 미국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신흥대국(新興大國)인 중국은 과거처럼 갈등과 충돌로 치닫지 않고 신형 대국관계를 건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정책이 냉전질서의 봉쇄정책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론이 국강필패론(國强必覇論: 국력이 강해지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한다)과 거리가 멀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방을 완벽한 친구로서 받아들이는 신뢰를 구축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양 대국은 본격적 신뢰구축의 강화책으로서 한중미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냉전질서에서 한중 관계와 한미관계는 불가피하게 상호 갈등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가 냉전질서를 하루 빨리 졸업하고 새로운 공진질서(共進秩序)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모두 한중 관계와 한미관계를 이분법적 갈등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복합관계로 이끌어 가려는 본격적 노력을 해야 한다.
중국은 한중 관계의 강화를 위해서는 동시에 한미관계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탈냉전적 공진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도 새로운 한중 관계의 진화가 전통적 한미관계를 퇴화시킬 것이라는 기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새로운 한미중관계 속에서 한국은 과거의 진부한 “친미론”과 “친중론”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한미일 전통 네트워크의 심화와 한중 신생 네트워크의 확대를 복합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다.
한•중•일 공진질서의 건축: 핵심이익에서 공생이익으로
한중이 함께 노력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한중일 공진질서의 건축이다. 중일관계의 공진 가능성은 대단히 어둡다. 중국은 친성혜용(親誠惠容: 친하게 지내며 성의를 다하고 베풀고 포용한다)을 기반으로 하는 주변외교를 천명하고 있으나 대일관계에서는 관련 도서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첨예한 핵심이익을 두고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한편 일본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안보전략을 내걸었지만 중국의 부상을 패권대국의 길로 해석하고 19세기 이래의 근대국제정치적 시각에서 대응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시장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이 함께 중국의 패권대국 부상을 막아야 다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은 20세기 상반기 일본 제국주의의 아픔을 공유하는 한국이 공동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야들은 새롭게 진화해야 한다. 19세기 동아시아가 서양의 근대국제질서의 긍정적 경쟁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해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면 21세기 동아시아가 근대 국제질서의 부정적 갈등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면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한국과 중국은 미국의 후원 속에 일본을 이끌고 동아시아 3국의 공동비전을 마련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전통적 정치, 경제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호 핵심이익의 갈등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억제해야 하며, 다음으로 환경, 문화, 지식 같은 신흥무대에서 공생이익을 최대한 키워 나가며, 보다 장기적으로는 3국의 미래를 짊어 질 젊은 세대들이 열린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 개별 국가, 아시아, 그리고 지구를 함께 품을 수 있는 복합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한•중 대북공조: 비핵화•평화정착의 공진노력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은 북한이 21세기 아시아 무대에서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자신있게 설 수 있도록 공동으로 지원해야 한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핵무기와 경제발전의 “병진로선”에 기반해서 선군정치의 황금기를 맞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핵비확산 체제의 국제정치 현실에서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는 한 21세기 세계경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설 수 있는 수준의 경제발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21세기 선진북한의 미래를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함께 노력해서 북한이 핵 없는 안보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진로선 2.0”을 새롭게 마련할 수 있도록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을 본격화하고 동시에 세계적 규모의 경제 지원체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 첫 걸음으로 한국과 중국의 정상은 북한,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 모두에게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밝히고, 6자회담을 재개해서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진의 노력을 본격화해야 한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아시아가 당면하고 있는 3대 난제를 21세기의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보려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은 한반도와 아시아 공진질서 건축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
본 논평은 환구시보(環球時報) 7월4일 자에 게재된 필자 시론의 한글 번역본임을 밝힙니다. (출처: http://opinion.huanqiu.com/opinion_world/2014-07/50472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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