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1월 20일 트럼프 공화당 당선자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강조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금 강조하며 자국의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손병권 중앙대 교수는 ‘통합’과 ‘애국심’으로 포장된 지나친 보호주의로 인해 미국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유보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태도는 국정운영에서도 대화나 협력보다는 상명하달식 권위주의 형태로 발현될 수 있어 정치적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당선자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긴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하나로서 반드시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

 

‘모든 규정은 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사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편의상 8년 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의 몇 문장을 먼저 소개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아래 문장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부분이다.

 

“공동의 방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이상 간의 (이분법적: 필자 삽입)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거부합니다.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 법치와 인간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 이러한 이상은 여전히 세계를 밝게 비추고 있고, 우리는 편의의 목적을 위해서 이러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하여 거대한 도시로부터 내 아버지가 태어난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오늘 목격하고 있는 모든 민족과 정부에게 말합니다. 미국은 평화와 존엄의 미래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 남녀,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세계를: 필자 삽입) 이끌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2009년 취임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미국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핑계로 미국의 건국정신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적 이상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이러한 미국적 이상의 구현자로서, 그리고 이러한 이상을 추구하는 세계 모든 국가와 사람들의 벗으로서 세계를 이끌어갈 의사가 있음을 천명하였다. 세계 공공재의 공급에 대한 미국의 국내경제적 제약이 상당히 컸지만, 이에 편승하여 일국중심주의로 회귀하기보다는 미국적 이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미국이 세계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취임식을 빌려서 다시 선언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8년 후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 우선주의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브렉시트(Brexit), 유럽의 반이민정서, 우익 포퓰리즘의 세계적 득세로 인해 일국중심주의의 발현에 의해 국제정치가 규정되어 가는 지금, 지난 20일 취임사에 나타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발 공공재 공급이 최소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취임사는 미국의 경제문제와 안보상의 위험에 기대어 미국이 전통적으로 수호해 왔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통합’과 ‘애국심’의 이름으로 유보될 수 있다는 점도 암시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과연 미국의 권위와 자존감을 되살리며 미국의 부흥을 도모하는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불능 상황으로 몰아넣어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오랜 고심 끝에 잘 준비되고 정제되어 나타난 연설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운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 문장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개념적 표현을 최소화하고 쉬운 단어를 사용한 점, 동일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점, 단문 위주의 문장을 많이 사용한 점, 강한 대조적 문구를 지속적으로 배열한 점 등은 선거구호의 연장선장에서 취임사가 작성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역대 다른 대통령의 취임사와 비교해 볼 때, 역사적 사례를 끌어오거나 상징적 혹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대통령 취임사에 어울릴만한 정선된 비전의 제시도 없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가 선거운동 연설문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차기 내각 구성 등으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없던 나머지 상당히 급히 취임사를 작성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트럼프 당선자 자신이 직접 취임사를 기초했거나 취임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전달했기 때문일 수 있다. 또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취향을 고려해 보건대, 연설문의 내용이나 단어 선택 자체에 대통령 자신이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빈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그의 성향에 따라, 취임사는 선거운동의 메시지가 재포장되어 전달되면 충분한 것이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통해 지난 한 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가 제시한 내용과 크게 차별화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통합과 단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의례적으로 삽입한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와 안보라는 두 가지 분야에서 다시 한번 미국 우선주의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대체로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사에 구체적인 정책 내용이 담기는 경우는 드물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미국 우선주의’나 ‘미국 상품 구입-미국인 고용’ 등 선거구호로 어울릴 만한 용어들이 ‘비전’과 ‘원칙’으로 재포장되어 생경하게 제시되어 있는 경우도 흔치는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은 2017년 국정연설에서나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국정 어젠다 우선순위 결정이 지체되거나 공화당과의 조율 지체에 따른 준비 부족으로 여기에도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2016년 선거운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그들’의 대립에 근거한 철저한 이분법적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 중산층을 지칭하는 ‘인민’ 혹은 ‘시민’의 희생과 ‘워싱턴 기득권 세력’의 편승, 미국의 일자리 상실 및 미국이 제공하는 국제적 안보협력과 타국의 경제적 번영과 미국 국방력에 대한 무임승차 등 대조적 항목을 담고 있는 트럼프의 연설은 미국 중산층의 희생과 미국의 손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이르러 미국 우선주의라는 비전 하에서는 이러한 중산층 및 미국의 일방적 희생이 종식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미국과 미국 중산층 편에서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국주의적 포퓰리즘 지도자의 모습을 여과 없이 국내외에 보여주고 있다.

 

한편, 당선 후 승리 연설 내용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의 당선과 취임이 지니는 ‘운동’적 성격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선거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자신의 선거운동이 단순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미국 중산층의 운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는데, 취임사에서도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시민 혹은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역사적인 운동이 시작’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제도권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타국의 성장에 기여한 미국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광의의 ‘보호주의’를 찬양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화가 가져온 긍정적 측면이나 세계화의 장기적인 전략적 필요성은 무시한 채, 세계화로 인한 미국의 일자리 상실 및 중산층의 몰락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역, 조세, 이민, 외교 등 각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면서 “보호는 위대한 번영과 힘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이 글의 모두에 소개한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의 국제적 리더십 발휘 의지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먼저 미국 우선주의의 경제적 측면과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연설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 인프라 구축의 시급성을 언급한 후, “미국 물건을 사고 미국 사람을 고용한다”는 아주 간명한 두 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군사적인 측면에서 급진 이슬람 세력을 발본색원할 것을 천명하고, 이와 함께 기존 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한 뒤, 타국 안보를 위해 미국의 안보와 국방지출에 소홀했던 점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안보상의 미국 우선주의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취임사의 내용에는 미국 국내 민주주의적 정치과정과 관련하여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은데, 이는 통합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연설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우리 정치의 근간은 미국에 대한 총체적 충성이다” 혹은 “서로에 대한 존중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서 나오며, 애국심에 마음의 문을 열 때 편견에 대한 여지는 없다”는 취지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어떤 각도에서 보면 애국심이나 통합을 위해서는 다원주의적 정치과정이 제한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어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빈 말’보다는 ‘행동’을 우선시하는 그의 취임사 내용이 야당인 민주당과의 대화와 협력보다는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과의 협조만을 통한 국정운영, 혹은 더 나아가 백악관을 중심으로 한 상명하달식 국정운영으로 발현될 수 있어 정치적 갈등의 심화가 예측된다. 취임 이후 곧바로 나타난 언론과의 전쟁이나 오바마케어(Obama Care) 수정, TPP철회를 위한 행정명령 서명 등은 다원적 정치과정을 혐오하는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이나, 규정, 절차나 심의보다는 직선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앙상한 일국주의적 미국 우선주의, 시민 혹은 민중과 기득권 세력을 구분하는 포퓰리즘, 미국의 희생과 세계의 대미 무임승차론에 대한 단선적 비판, 통합과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그 이면에 시사된 반다원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 트럼프의 정치성향 등이 과연 미국을 다시 부흥으로 이끌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게 될 지, 아니면 부시 행정부 8년 이후 미국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강’을 따라서 한없이 추락시키게 될지 당장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집권초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정부가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했던 사례가 한국이나 미국에서 공히 없었던 것을 보면, 대통령 취임식 군중규모를 두고 언론과 드잡이를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앞날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반도의 안보와 이와 관련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두고 볼 때, 이제 남의 나라 대통령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여 심란하기만 하다. ■

 

 


 

 

저자

손병권_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 미국 외교정책, 비교의회 및 정당론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Causes of Distrust and Conflict in the ROK-US Alliance: With a Focus on the Roh Moohyun Era" (2016), "통일한국의 의회제도" (2015), "티파티 운동과 공화당 보수주의의 재형성"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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