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11월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가 유세 기간 내세웠던 외교정책 관련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지원 EAI 연구원은 트럼프가 주창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 노선이 미국 정치사에서 예외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잭슨주의' 전통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20세기 잭슨주의를 표방했던 선대 대통령들이 그러했듯이, 트럼프도 결국에는 개입주의와 관여노선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다만,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하거나 선택의 압력이 가중될 수 있으므로 한국은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더욱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례 없는 '트럼프 식' 외교정책?
분류법(taxonomy)은 미지의 대상을 파악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법이다. 근대 생물학이 린네(Carl Linnaeus)의 분류학을 토대로 발전했듯이,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일정한 앎(scientia)의 체계를 통해 무리 짓고 나누는 것이 곧 과학(science)의 시작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임기 중 추진할 정책의 방향, 그 중에서도 외교정책의 향방을 분류법을 통해 파악하고 예측해 보려는 시도는 결코 무익하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정치 아웃사이더' 인 트럼프는 그의 정책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행적도 없고 상반된 신호가 뒤섞인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근 본격적인 내각 인선 작업이 진행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지향하는 대내외 정책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과연 수사(rhetoric)와 현실(practice)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트럼프가 균형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조금이나마 안전하고 확실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는 방법은 가장 유사한 사례들과 견주어봄으로써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유형화 작업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미국 정치사와 외교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지금까지 이용만 당한 채(taken advantage of) 호구 노릇을 하고 있다(ripped off)는 이미지를 거듭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트럼프의 진단을 냉소하고 비판했지만 미국 유권자는 도리어 크게 호응했다. 그가 외교 문제에서 특히 꼬투리를 잡은 국가는 미국의 잠재적 경쟁 상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었다. 미중관계에 관해 트럼프가 집요하고 일관되게 전달했던 메시지는 중국이 미국의 선의와 관대함을 남용하기 때문에 미국이 항상 중국에게 '호구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중국의 '영리하고 약삭빠른 지도자들'과 미국의 '유약하고 무능한 지도자들'을 대비시키는 수사법을 즐겨 사용했다.
당혹스럽게도 트럼프의 이러한 과격한 발언의 대상에는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들도 포함되었다. 경제적, 지리적으로 밀접한 멕시코 정부에 대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면서 "남쪽 국경에 거대한 벽을 쌓겠다. 돈은 멕시코가 내게 하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운 것은 여러 곳에서 패러디가 될 정도로 유명한 일이다. 나아가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해 한국, 일본과 같은 오랜 동맹들마저도 미국의 호의를 이용하고 착취하며 무임승차하고 있다면서 미국 국민들의 피해의식에 호소했다.
이처럼 피아를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대외정책과 관련된 공약과 발언은 독단적이고 이분법적인 외교정책으로 지탄을 받았던 조지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게조차 우회적인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트럼프 현상'은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돌발 상황일까? 사실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트럼프의 등장과 그에 대한 열광은 결코 예외가 아니라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미국 정치 문명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뿌리는 결코 얕지 않다.
역사 속 트럼프의 선배: 잭슨주의 전통
지난 7월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이른바 '요새 보수주의'(fortress conservatism)로 정의했다.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오로지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우위를 방어하는 데에만 치중하려는 전형적인 백인 노동계층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표방하는 미국 우월주의,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백인우월주의에 기초한 국가주의는 이미 미국 정치사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인물들이 제시한 정치 슬로건이었다는 점이다.
즉,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맥아더(Douglas MacArthur)와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가, 제조업 쇠퇴에 대한 위기 의식과 보호무역주의는 1992년 무소속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기업가 페로(Ross Perot)가, 인종차별에 기반을 둔 강력한 법치는 앨라배마 주지사였던 월레스(George Wallace)가 내세운 강령이었다. 다만 트럼프가 이들과 다른 점은 그 모든 극단적 이념을 한데 합쳐놓은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정치 제도와 문명이 낳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외교정책 이념을 트럼프가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트럼프 현상' 혹은 '트럼프주의'(Trumpism)를 미국 정치에서 있을 수 없는 '비정상'이 아니라, 드물지만 정상 범위내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공약이 대중의 환호와 결합하면서 연출되는 일련의 ‘트럼프 신드롬’은 미국의 전통적 정치사상 중에서도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에 강하게 호소하는 이른바 ‘잭슨주의적'(Jacksonian) 전통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이름에서 비롯된 이 정치관은 민주주의 확산을 포함해 어떠한 명분을 위한 대외적 국력 소모에도 반대한다는 점에서 겉보기에는 고립주의적이다. 이 고립주의 노선의 강력한 동력원은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의 불안과 경제가 불안할수록 값비싼 대가를 동반하는 대외 개입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혐오이다. 철저히 미국의 국익만을 바탕에 깔고 있는 고립주의, 경제우선주의, 포퓰리즘이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난다.
당초 이러한 정치 노선에 '잭슨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잭슨 대통령이 아일랜드 이민 2세이자 고아 출신으로서 엘리트주의를 배격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내세웠던 최초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은 그를 “체신머리 없는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하버드 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하자 정적들이 “철자법도 모르는 인간에게 박사라니 가당치도 않다"라는 공격을 할 만큼, 그는 어느 모로나 미국적인 포퓰리즘의 상징과도 같은 대통령이다.
오로지 (국민이) 잘 먹고 잘사는 강한 미국을 만드는 데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포퓰리즘은 외교정책에서는 민주주의 확산이나 자유무역의 보장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전파, 동맹과의 관계유지 등에는 전혀 무관심한 고립주의로 나타난다. 지난 4월 27일 연설에서 트럼프가 "서구 민주주의에 관심도 없고 민주주의를 경험해본 적도 없는 국가들을 우리가 민주화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민주주의 전파를 위한 대외적 개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아시아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이념이나 가치로 외교정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강하고 언제나 이기는 미국'에 대한 강한 신념 때문에 잭슨주의는 부당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맞서는 외부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기적인 고립주의가 공격적인 개입주의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이처럼 고립주의와 개입주의의 양극단을 오간다는 점에서도 트럼프는 전형적 잭슨주의자라고 불릴 만하다. 일례로, 지난 3월 121명의 공화당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내놓은 트럼프 반대 성명에서 "그는 한 문장 안에서도 고립주의와 군사적 모험주의를 넘나든다."라며 그의 비일관성을 꼬집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과 같은 동맹국을 지키느라 국력을 소모하는 사이에 동맹국들은 미국 시장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억지스럽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중동 개입의 여파가 오바마 집권기까지 이어지고, 제조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미국 유권자들이 경기회복의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면서, 미국이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때로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타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은 그런 대중의 감정에 제대로 편승했다. 비록 논리는 허술할지 몰라도 영악하고 비겁한 외국 세력과 정의롭고 강하지만 그 힘을 허비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일관되게 전달함으로써 미국인들의 도덕적 우월감, 강한 힘에 대한 열망, 그리고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심리를 한꺼번에 충족시킨 것이다.
세계 패권과 잭슨주의 간 긴장과 모순
앞서 말했듯이, 대외정책의 측면에서 이러한 '트럼프 현상'의 본질은 비정상적 일탈이라기보다 미국의 정치 문명에 잠재되어 있다가 취약한 순간에 간헐적으로 표출되는 '충동' 혹은 '본능'에 가깝다. 문제는 미국이 국제 체제의 선도국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20세기 중반 이후, 이처럼 노골적으로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대변되는 잭슨주의를 표방한 대통령의 등장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내부 문제에나 신경 쓰자고 하기에 미국은 이미 국제 정치경제에서 너무 큰 존재가 되었다. 미국 측에도 세계는 포기할 수 없는 활동 무대이고, 다른 국가들도 여전히 미국을 필요로 한다. 그러하기에 양차 대전 이후 잭슨주의와 유사한 대외 정책을 내세워 출범했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도 예외 없이 개입주의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들과 유사한 노선을 걷는다고 해서 성과 역시 비슷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변수는 (상대적) 후퇴(retrenchment)에서 공세적 개입으로 돌아서는 시점과 계기, 경쟁상대의 속성이다. 레이건 집권기의 긴축은 신냉전과 군비경쟁의 재개로 반전했다. 레이건은 쌍둥이 적자를 잡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국내 경제 정비 및 재건을 시도했지만, 소련이라는 확고한 정치적•경제적 라이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외치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 다시 체제 경쟁에 돌입했을 때 웃는 쪽은 미국이었다. 하지만 패자에게 어중간한 관용을 베푼 결과, 의심과 원한의 앙금을 남기게 되었다.
한편, 부시 행정부의 변곡점은 주지하다시피 9/11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단극의 순간(unipolar moment)을 문자 그대로 한 순간 밖에 누리지 못했다. 더욱이 새로이 마주하게 된 적은 국가가 아닌 실체였고, 이들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은 수년 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결국,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승패는 애매해졌으며 더 큰 위협이 도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모든 위협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잠재적 주적을 설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상당한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기존의 적들이 주로 군사적으로 경쟁하는 상대였다면, 현재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미국과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어 섣불리 공세적으로 나서기에는 잠재적 피해가 상당할 수 있다.
게다가 레이건이나 부시 행정부보다 국수주의적 성격이 강한 대외정책을 표방한 트럼프의 등장은 그간 누적된 국제정치적 난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피로감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결국 이는 정교한 대외정책의 퇴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잭슨주의의 전형적인 행보, 즉 결정적 반전의 계기를 통한 개입주의가 부활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이 전개된다면, 미국이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과 위험은 배가될 것이다. 미국과 우방국, 경쟁국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가 뒤섞이면서 오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기존 우방들의 합종연횡의 폭이 넓어지면서 불확실성의 연쇄도 강화된다.
불확실성 속에서 무엇을 지표로 삼을 것인가?
최근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주요 인선을 보면 잭슨주의의 행보가 내재한 이러한 불안요소를 이미 인식하기라도 한 듯, 임기 초부터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예감케 한다.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국방장관 내정자는 조지 패튼(George Patton)과 가장 흡사한 인물"로 평가 받을 정도로 호전적인 강경파이며,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뿐만 아니라 국무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데이비드 페트라이어스(David Petraeus)와 존 켈리(John Kelly) 역시 군인 출신이다. 외교안보 라인 주요 인사 과반이 전직 장성으로 채워지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구구성이나 경제구조로 볼 때 어느 때보다 국제화된 미국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부활한 잭슨주의는 미국 내에서도 대대적인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지난 8월 이라크 전에서 전사한 무슬림 미군 대위 후마윤 칸(Humayun Khan)의 추도식에 참석한 그의 부모를 향해 트럼프가 비하 발언을 했을 때, 전•현직 군인들은 물론 군인에 대한 존경심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미국 대중의 정서를 간과한 '치명적'인 실언이었다는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미국 사회가 대외적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외부자'들에 대한 혐오를 이미 사고의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다가올 시대의 외교정책을 올바르게 수립하고 세계 정세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만큼이나 국내정책, 특히 사회•경제 정책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이 임기 초반부터 군사경쟁 및 갈등 국면으로 돌입할 경우 경제적 상호의존 단절에서 비롯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내구력(endurance)을 좌우할 변수도, 반대로 미국이 일시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퇴각했다가 복귀할 경우 그 회복력(resilience)을 결정지을 변수도 결국은 미국의 경제상황과 사회 안정, 기술적 우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
※ 본 논평은 2016년 11월 22일자 '주간경향'에 실린 기고문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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