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워킹페이퍼] 2022 EAI 신정부 외교정책 제언 시리즈 ⑥_인도·태평양 지역 정책
ISBN 979-11-6617-223-6 95340
[편집자 주]
본 워킹페이퍼에서 박재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신정부가 직면하게 될 인도ㆍ태평양 지역 전략환경을 전망하고, 이에 따른 정책을 제언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 트럼프 행정부를 거쳐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 발전시킨 미국의 인태 정책을 설명함과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대응을 먼저 살펴봅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미중의 지정학적 경합이 고조되는 속에서 향후 5년간 일부 유럽국가의 인태 지역 접근이 눈에 띄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신정부는 미중 양국 사이에서의 위치 선정이 아닌 중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 사이에서 한국의 적절한 위치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대인도·태평양 3대 정책과제
1. 신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차원을 넘어, 인태 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위상을 확립한다는 측면에서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급증하고 있어 우리의 위상 제고가 시급한 실정이다.
2. 인태 지역의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쿼드 플러스가 추진될 전망인데 신정부는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쿼드 플러스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다만, 쿼드 국가가 주도하고 있는 군사훈련을 확장하는 쿼드 플러스와 역내 규범 선언을 위한 쿼드 플러스는 참여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3. 신정부는 역내 국가와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인태 지역 주요 중진국인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다양한 소다자 협력을 추진하면서,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위상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메콩강 협력, 해적퇴치, 해양정보 공유 등을 위해 아세안에서 태동하고 있는 자생적인 (소)다자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I. 서론: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개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전략을 거쳐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전략을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2017년 1월 취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신고립주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 아시아 지역 5개 국가 방문 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 Pacific Strategy: FOIP)을 미국의 지역 전략으로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이후 미국은 2019년 6월 국방부 인태 보고서, 11월 국무부 인태 보고서, 미국 의회가 제정한 다양한 법안 등을 통해 인태 전략을 구체화해나갔다. 특히, 2007년 등장하였다가 호주와 일본의 발빼기로 1년도 안 돼 좌초되었던 미·일·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력 연합체인 ‘쿼드(Quad)’가 앞서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시 부활하였다. 당시 필리핀에서 개최되었던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의 부속회담 형식으로 4국 국장급 관료 회동이 성사되었고, 이후, 쿼드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8번 개최되었다. 이 중 2019년 9월 회담은 유엔총회 시 각국 정상을 수행하였던 외교장관이 참석한 첫 번째 외교장관 회담이었고, 2020년 10월에는 4국 외교장관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확산 속에서도 화상이 아닌 대면 회담을 개최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에도 쿼드는 국장급 실무회담과 3번째 외교 장관 회담을 회상으로 개최한 뒤, 2021년 3월에는 4국 정상이 화상으로 만났다.
인태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다분히 가공된 지역 공간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념에서도 인도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여하는 등 ‘아세안+6’ 국가 중 하나로 자리 맥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을 대항하는 데 있어 명실공히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인도가 중시되는 전략 공간 개념이 필요해졌다. 실제로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인태 공간에서 미국의 안보네트워크를 강화해오면서, 인도와의 안보협력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은 또한 인태 전략하에서 일본, 호주와의 양자 및 삼자 안보협력을 급진전시키면서, 일본, 호주, 인도를 동북아, 남태평양, 인도양의 거점 국가로 삼고 인태 지역 안보 그물망을 꼼꼼하게 짜나가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를 관통하는 ‘동맹 또는 안보협력의 상호공통성’(alliance or security mutuality)을 확립하기 위해 ‘항해 및 비행의 자유’와 ‘법의 지배’ 강조하고 있다. 이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미국, 동맹국, 안보협력국이 수행하는 다양한 양자와 소다자 군사훈련의 명분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군사훈련의 수가 증가하고 훈련 규모가 커지면서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가 다수의 역내 국가와 영토분쟁 중인 중국을 겨냥하여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한편, 미국 인태 전략의 단점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BRI)에 대항할 경제협력의 메커니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미국의 동맹국, 안보협력국이 역내에서 인프라 투자를 증가시켜오고 있으나, 중국의 투자 규모에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부족하고 각국의 정책을 조율한 기제도 그동안 부재하였다.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들이 중국의 인프라 투자를 수용하지 않도록 ‘빚의 덫(debt trap)’ 논리로만 설득할 수는 없는바, 미국, 인도, 호주, 일본이 역내 국가에 중국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 대체 자본도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삼자 협력체나 쿼드에 구성국들의 인프라 투자를 조율하는 기능을 부과했다. 미국, 일본, 호주가 2018년에 결성한 인도·태평양 ‘삼자 인프라 펀드’(Trilateral Infrastructure Fund), 미국, 일본, 인도가 2018년에 결성한 ‘삼자 인프라 작업반’(Trilateral Infrastructure Working Group)과 ‘삼자 인프라 포럼’(Trilateral Infrastructure Forum)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미국, 일본, 호주는 ‘공공-민간 파트너십’(PPP) 방식의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2019년 11월 ‘파란점 네트워크’(Blue Dot Network)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쿼드 수준에서는 4국의 관료가 공식적으로 만날 때마다 (또는 4국의 관료가 참여하는 1.5 트랙 회의에서) 4국의 협의체를 만들겠다는 의향을 표명하고 있다. 2021년 6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7 회담에서는 정상들이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 B3W) 계획으로 명명된 대규모 인프라 계획 추진에 합의했다.
중국은 역내에서 BRI 프로젝트로 인해 수원국에 재정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비판이 팽배함을 인식하고 있으며, 2017년 5월에는 중국 재무부가 30개국의 재무부와 함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침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중국 지도자들이 지속해서 ‘고품격의 인프라 프로젝트’(high quality and high standard infrastructure project)를 강조하기도 하고, 일부 유럽국가, 일본, 미국과 제삼국 시장에서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인태 전략이 안보 영역에서는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강화, 경제는 인프라 투자, 외교는 역내 소다자 및 다자외교 중시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자국 인태 전략에 동참할 것을 요구해 오고 있다. 아래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인태 전략 동참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살펴본다. 이후, 신정부가 직면하게 될 인태 지역 전략환경을 전망하고, 신정부의 인태 지역 전략을 위한 정책 과제를 제시한다.
II. 미국 인태 전략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미국의 인태 전략 참여에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2017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선언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축임을 강조하였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문구가 우리의 미국 인태 전략 동참을 의미하는지를 문의하는 기자의 질문에 김현철 당시 경제 보좌관이 “우리가 거기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발언하였다. 이와 같은 부정적 기조 속에 문재인 정부는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 법의 지배,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는 원론적으로 지지하면서도,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합에 불필요하게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 FOIP을 위한 다자 군사훈련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2018년과 2019년 자국의 인태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우리의 동참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직접적인 동참보다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지역 정책인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접점을 찾는 것으로 대응했다. 미국의 인태 전략은 안보 중심으로 출범했으나,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해 지경학적 요소를 갖추기 시작했고, 우리의 신남방정책은 주요 정책 목표인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3P 중 추진 성과가 미미하였던 평화(Peace) 관련 사업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접촉의 면이 열리게 되었다. 양국 외교부가 2019년 11월과 2020년 11월에 협의 후 배포한 ‘설명서’(Fact Sheet)에 언급된 것과 같이 인프라 투자, 해양안보, 사이버 안보, 해양 환경보호, 에너지 안보 등이 주요한 연결고리로 떠올랐다.
이 중 인프라 투자는 우리의 신남방정책이 추구하고 있는 3P 중 번영(Prosperity)과 접합점이 있고, 실질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하다. 하지만 우리의 투자 규모가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와 공동 투자를 타진해온 미국, 호주와 비교해도 적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와 실질적인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한국개발협력단’(KOICA)이 집행하는 무상원조와 수출입은행 등이 주관하는 유상원조의 분절 현상이 두드러져서 큰 규모의 투자를 일구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8년 6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를 창설하는 등 역내 인프라 투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미국과 남태평양 지역 에너지 개발 등에서 협력을 추진해나가고 있으며, 호주와도 ‘한·호주 아세안 정책대화’ 등을 통해 인프라 투자를 위한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미국, 호주 등과 공동 인프라 투자를 모색해 나감에 따라,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다는 미국의 오인을 방지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에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2017년 12월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대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2020년 10월 19일 화상으로 개최된 제16차 한·중 경제장관회의에서 양국이 신북방・신남방정책과 일대일로 간 연계 협력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고, 제3국 시장 공동진출을 타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해양안보의 경우 주목할 것은 우리가 그동안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배양에 기여해 왔다는 점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이 중점 대상 국가이었는데, 퇴역 군함, 전투기, 차량 등 다양한 군사 장비를 양도했다. 일례로 우리 해군이 1986년부터 운용하다가 2017년 퇴역한 포항급 초계함인 김천함을 2017년에, 여수함을 2018년에 베트남에 공여하였다. 필리핀에는 2019년에 100달러를 받고 충주함을 공여하였는데, 필리핀이 400만 달러를 들여 개조하고 한국전 참전 중 순직한 육군 대위의 이름인 ‘콘라도 얍’(BRP Conrado Yap)으로 명명하였다. 동 함정은 현재 필리핀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군함 중 하나로, 필리핀 해군의 전투함 가운데 유일하게 함대함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다. 한편, 해양능력배양을 위한 기여의 부수적 효과로 우리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함정과 항공기 등 방산 물품을 수출하는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2020년에 현대중공업이 필리핀에 2척의 ‘호세 리잘급’(Jose Rizal class) 호위함(2800t)을 판매한 것은 충주함 공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정부는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에 기여하면서도 미국 등 쿼드 국가와의 협업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도 개별적으로 인태 지역 거점 국가의 해양능력배양을 위한 장비 지원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다. 아울러 최근 이들 쿼드 국가 간 양자, 삼자 협력도 점증하고 있다. 4국이 역내 해양능력배양에 기여하는 표면적 명분은 비전통안보 의제에 대한 대응이나, 비전통안보 영역에서 축적된 상호 운용성과 신뢰는 전통안보 영역의 협력에 전이될 수 있다. 따라서, 의도하든지 의도하지 않든지 쿼드 국가의 해양안보에 대한 기여는 중국의 공세적 해양정책에 대한 헤징(hedging)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쿼드 국가의 기여로 역내 국가의 해양안보 능력이 배양되면 역내 국가는 좀 더 효율적으로 중국 선박의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Illegal, unreported and unregulated fishing: IUU 어업)’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Grey Zone 전략)’을 상쇄시키고, 궁극적으로 중국의 해양활동을 제어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비록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과의 접점을 해양안보 이슈에서도 찾기로 협의하였지만, 실질적인 협력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는 않다.
한편, 미국은 자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쿼드의 외연을 넓히는 이른바 ‘쿼드 플러스’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데, 문재인 정부는 참여에 부정적이었다. 일례로 2020년 3월부터 쿼드 4국, 베트남, 뉴질랜드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차관/국장급 화상 협의를 전개해오고 있었는데, 2020년 8월 스티븐 비건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동 협의를 굳이 쿼드 플러스로 지칭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동 협의체가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전개한 다양한 국제회의 중 하나로 쿼드 플러스와 무관한 7개국 간 회의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반중 전선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쿼드 플러스’ 참여를 유보했다. 미국이 한국의 쿼드 플러스 참여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특정 국가를 배척하는 배타적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이어갔다. 그런데, 2021년 3월 개최된 쿼드 정상회의에서 4국 정상이 코로나 백신, 기후변화 대응, 첨단기술과 관련된 ‘작업반’(working group)을 결성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처럼 쿼드 국가가 다양한 비전통안보와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쿼드 플러스를 구축해나가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하자 문재인 정부가 쿼드 플러스 참여에 전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2021년 5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 “한국과 미국은 쿼드(Quad)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III. 신정부가 직면할 인태 지역 전략환경
신정부가 직면할 인태 지역 전략환경은 지금보다 더 ‘적대적인 지역 질서’(adversarial regional order)로 특징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태 전략을 계승한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후 줄곧 민주주의, 인권을 기치로 세력을 규합해 오고 있다. 신정부가 출범하는 2022년 5월경에는 이미 다양한 기능 분야를 중심으로 쿼드 플러스가 가동되고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첨단기술, 공급망 다각화, 에너지, 환경, 공정 무역 등의 영역에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인태 국가에 미국 편들기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2021년 코로나19 상황에서 효율적인 백신 외교를 펼치고, 2022년부터는 포스트-코로나 경제회복을 위해 재원 마련이 시급한 인태 국가에 일대일로의 기치 아래 대규모 금융 지원을 확대하면서 자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곧 중국의 GDP가 미국의 GDP를 추월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인태 지역 주요 안보 이슈, 특히 중국이 주장하는 ‘핵심 이익’과 관련된 영토분쟁 이슈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다. 해양안보와 관련하여서도 역내 국가와 쿼드 국가의 안보협력이 급증하고 쿼드 국가가 아세안 국가에 제공하는 공여의 질과 양이 향상되면서, 중국도 본격적으로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배양에 뛰어들 것이다. 현재 중국 공여의 양과 질이 낮은 실정이지만, 중국이 대규모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추고 있고 퇴역함정도 많아서 중국이 언제부터 공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쿼드 국가가 역내 국가와 해양협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중국도 역내 해양안보에 대한 기여를 점차로 늘려나갈 것이고, 해양협력 분야에서 쿼드 국가와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합이 더욱 심화할 것이다. 그러면 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을 우려하는 역내 국가는 쿼드 협력이 중국을 배제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전개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환경에서 인태 지역의 친미 성향 국가와 친중 성향 국가는 자국의 성향을 더욱 뚜렷이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선택을 유보해온 국가는 더욱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이 가열되는 가운데, 신정부 5년간 일부 유럽국가의 인태 지역 접근이 눈에 띄게 증가할 전망이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및 일본 영토에서 쿼드 국가 전체 또는 일부가 다수의 공동 군사훈련을 시행 중인데, 향후 더욱 빈도와 강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역내 국가에 더해 프랑스, 영국 등 역외국가가 쿼드 국가와의 안보협력을 증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이 독자적인 인태 전략 보고서를 내놓은 가운데 2021년 하반기에는 EU가 인태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2021년 3월에 발간한 국방·안보·개발·외교정책 ‘통합 검토’(Integrated Review)에서 독립된 장(chapter)을 할당해 인태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국도 곧 자국의 인태 전략 보고서를 내놓을 것이다. 프랑스는 2020년 하반기에 인태 지역에 핵잠수함을 파견하였고, 영국은 2021년 하반기에 항모전단을 아시아 지역에 순항시킬 예정이다. 독일도 2021년 8월부터 2022년 2월 사이에 호위함을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에 전개할 예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적어도 안보적 관점에서는 인태 지역에서 중국 對 미국의 경합 구도가 중국 對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또는 중국 對 ‘서구’(West)의 경합 구도로 변화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신정부는 많은 이슈 영역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라기보다는 중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와의 사이에서 우리의 적절한 ‘위치 선정’(positioning)을 고민해야 하는 전략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신정부가 직면하게 될 또 하나의 부담 요인은 일본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호주와 준동맹의 관계로까지 안보협력을 증진했고, 영국, 프랑스와의 안보협력도 급진전시키고 있다.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상에서 일본의 위상이 강화되어 일본이 동북아의 축으로 기능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쿼드의 예처럼 일본이 역내 소다자 안보협력 결성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역내 다자 안보협력에서도 우리의 입지가 일본에 밀리게 된다.
IV. 신정부에 대한 정책 제언
1. 인태 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내 위상 확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트럼프 행정부를 거쳐 바이든 행정부까지 연속성을 가지고 미국 주도 동맹과 안보 파트너십의 연계를 통한 안보 네트워크 강화에 주력해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민주주의, 인권 등을 구심점으로 삼아 안보 네트워크를 재정비하고 유럽의 주요국가까지 포함하는 세력 규합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초기 정비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2022년부터 미국은 거대 안보 네트워크를 결속시킬 수 있는 운영상의 기제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 행정부가 최근 게시하고 있는 각종 보고서와 미국 의회가 발의하고 있는 법안을 검토해 볼 때, 미국이 안보 네트워크를 관통하는 운영 기제로 미사일 방어와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및 정보 제공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사일 방어(MD)의 경우, 이미 일본과 호주가 미국 주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이다.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미·일·호 미사일 방어 연계가 추동되고 나아가 인도 및 한국과의 공조로까지 이어진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인태 지역에서 미국 주도 MD 체제의 토대가 구축됨을 의미한다. 한편, 미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타 쿼드 국가와 함께 역내 주요 거점 국가에 중고 비행기, 선박 등을 공여하고 군대, 해양경찰, 세관 등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인태 지역 ‘해양능력 배양’(Marine Capacity Building)과 ‘해양 상황인지’(Maritime Domain Awareness) 능력 제고에 기여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여의 질을 무인 정찰기, 감시 레이더 등 ISR 자산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ISR 장비 공여와 정보 제공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수의 역내 국가가 중국의 공세적 해양활동에 대항하기 위한 최첨단 장비를 구매하거나 사이버 보안 기술을 확보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할 재정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타 쿼드 국가는 주요 거점 국가에 ISR 장비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나아가 역내 국가와 인공위성 등 우주 협력을 증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남아 주요 거점 국가들을 궁극적으로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체제로 유인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쿼드 국가는 앞으로도 역내 국가의 조기 경보체제, 해양순찰 및 정찰 시스템, 항공 정찰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방향으로 기여의 폭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가 미사일 방어와 ISR 자산 공여 및 정보공유를 기제로 큰 틀에서 연계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신정부는 미국 주도 MD에 대한 참여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주도 MD 불참’이 현 정부가 중국에 약속한 ‘3不 정책’(three NOs) 중 하나이기에 신정부가 MD 참여를 선언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복원시켜 실무차원에서는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을 위한 군사 정보 공유를 활성화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한·일 안보 관계 악화를 복원시키지 않고, 따라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지속해서 정체된다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위상은 저하될 것이다. 특히,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호주, 인도, 영국, 프랑스 등과 안보협력을 급진전시키면서 지역의 축으로 부상했기에 상대적인 위상 약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전히 양국이 역사적 구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은 한·일 안보 관계를 복원시킬 명분을 제공한다.
차기 정부가 한·일 관계 및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을 통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일정한 위상 권력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동북아 안보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2021년 5월에 프랑스, 미국, 호주와 함께 일본 영토에서 육군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일본이 ‘상호 방문 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을 체결하기로 합의한 호주, 인태 지역에서 안보 활동을 증가시키고 있는 프랑스, 영국 등을 초청하여 미국과 함께 동북아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획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가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일정한 위상이 없다면, 그러한 군사훈련이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 불리하게 전개되지 않도록 관련국을 설득할 힘이 없게 된다.
따라서 신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차원을 넘어, 인태 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일정한 위상을 확립한다는 측면에서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만약 2022년에 일본과 급작스럽게 안보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어렵다면, 호주, 인도, 동남아 주요국가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상에서 위상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이 장기간 정체된다면, 한·미·호, 한·미·인도 삼자 안보협력 강화를 대안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2. 인태 지역의 논쟁적 쿼드 플러스에는 신중하게 참여
쿼드 국가는 쿼드의 외연 확장, 즉 쿼드 플러스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쿼드 플러스가 논의되고 있는데, 2021년 3월 개최된 쿼드 정상회의에서 4국 정상이 논의한 (1) 보건 및 백신 공급, (2)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개발, (3) 첨단기술 및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의 쿼드 플러스는 2021년 이내에 추진될 전망이다. 또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인태 전략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2017년 11월 이후 10여 차례 이상 개최된 쿼드 회합 때마다 매번 논의된 (4) 인프라 투자, (5) 해양안보를 위한 쿼드 플러스와 미국의 관심이 큰 (6)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쿼드 플러스도 연내에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최근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볼 때, 현 정부가 임기 만료 전에 위에서 언급된 쿼드 플러스 중 상당수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코로나 19 백신, 인프라 투자, 해양안보 관련 쿼드 플러스는 비전통안보 이슈에 대응한다는 대의명분이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쿼드 플러스는 중국 시진핑 주석도 미국이 주관하는 관련 국제회의에 참여하기로 한 만큼 쿼드 플러스 참여의 부담이 적다. 첨단기술 관련 쿼드 플러스는 쿼드 국가가 중국보다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참여해야 한다. 아울러 인프라 투자와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쿼드 플러스도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고, 해양능력배양을 위한 쿼드 플러스 참여는 우리의 방산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 특히 인태 지역 인프라 투자는 우리가 미국, 호주, 일본, 인도 등과 함께 인태 지역 기술 선진국이므로, 첨단기술이 필요하거나 보안 문제 등이 중요한 인프라 사업에 이들과 공동으로 입찰하거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일본·호주 및 미국·일본·인도가 3자 인프라 개발 기금(fund), 작업반(working group), 포럼 등을 결성하여 개별적인 정책을 조율하고 있는 것처럼, 한·미 양자 협력을 뛰어넘어 인프라 투자 조율·협력을 위한 소다자 협력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현 정부가 위에서 언급된 6가지 쿼드 플러스 중 임기 만료 전까지 참여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신정부는 이에 조속히 참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현 정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쿼드 플러스는 참여 결정을 신정부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쿼드 국가 모두 또는 일부가 주관하는 군사훈련의 참여국을 확대하는 형식의 쿼드 플러스이다. 물론 신정부가 ‘말라바’(Malabar) 군사훈련 참여를 결정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말라바 군사훈련은 1992년에 미국과 인도의 연례군사훈련으로 시작되어 2015년부터 일본이 매년 참여하는 삼자 군사훈련이 되었고 2020년에 호주까지 참여함으로써, 쿼드의 상징적인 군사훈련이 되었기에 참여에 부담이 매우 크다. 그런데, 말라바 훈련 이외에도 쿼드 일부 국가가 주관하는 다자훈련인 탈리즈만 세이버, 코프 노스, 피치 블랙, 퍼시픽 뱅가드 등의 경우는 신정부가 참여 지속 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미국과 호주가 격년으로 개최하는 ‘탈리즈만 세이버’ 군사훈련의 경우 현재 뉴질랜드, 일본 등이 소규모로 참여하고 있다. 2021년 훈련에는 오세아니아 지역 외에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등 인도양 지역도 훈련 범위로 설정하고 인도도 참여하는 것이 논의되었는데, 인도의 코로나 19 상황 악화로 참여 여부가 불투명하다. 우리는 쿼드 플러스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인 2019년에 2021년 ‘탈리스만 세이버’ 훈련에 대대급 병력을 파견할 계획을 세웠었는데, 현재는 코로나 19로 인해 규모를 축소해 참여하기로 변경하였다. 만약 우리가 대대급 병력을 파견하면 국내·외 언론이 한국이 쿼드 군사훈련에 참여한다고 집중적으로 보도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백신 보급으로 코로나 19 확산이 진정된다면 향후 탈리즈만 세이버를 포함해 코프 노스와 피치 블랙, 퍼시픽 뱅가드 등 쿼드 국가 일부 또는 모두가 주관하는 훈련들이 대규모로 실시될 것인데, 신정부는 이러한 훈련에 참여해야 할지, 참여한다면 어떤 규모로 할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쿼드 국가들이 주관하는 군사훈련에 참여 시 기회 요인은 미국의 인태 지역 억지 전략에 전술적, 기술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군이 ‘육군 동적 전개’(Dynamic Force Employment: DFE)와 ‘기민한 전투적용’(Agile Combat Employment: ACE)을 추진하면서 ‘합동 전영역 지휘통제’(All Domain Command and Control: JADC2)와 같은 군사 전략개념을 발전시키고 이에 기반해 새로운 억지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데, 우리가 쿼드 국가 주도 군사훈련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협력의 습성과 경험을 축적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신정부는 쿼드 국가들이 주관하여 실시하는 군사훈련에 최소한도는 참여해야 한다. 그러한 군사훈련은 우리가 정보공유 및 첨단 무기의 상호 운용성을 습득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일례로, 해양 정찰을 위해 P-3C Orion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은 개량형인 P-8A 구매 계약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P-8A이 도입된 2022년 이후에 P-8A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 호주, 인도와의 항공 대잠전 훈련은 향후 우리가 P-8A를 운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신정부가 참여를 고민하게 될 또 다른 쿼드 플러스는 규범 선언을 위한 쿼드 플러스일 것이다. 역내 일부 학자는 1941년 영국과 미국이 체결하였던 ‘대서양 헌장’(Atlantic Charter)처럼, 쿼드 국가가 중심이 되어 항해의 자유, 법의 지배 등 보편적 원칙을 공표하는 ‘인도·태평양 헌장’을 제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의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협상이 중국이 협상 타결 목표로 정한 2021년까지 체결되지 못할 경우, ‘인도·태평양 헌장’ 논의가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중국의 홍콩 강압 통치, 신장지역 인권 유린, 미얀마 쿠데타 등과 같은 이슈에서 쿼드 국가가 지역 차원의 가치, 규범 선언 채택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적 가치를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가치, 규범 선언을 위한 쿼드 플러스 참여 시 우리의 기회 요인은 역내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는 것일 것이다.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우리가 가치, 규범 선언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긍정적 이미지가 훼손된다. 또한, 가치, 규범 선언을 위한 쿼드 플러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록을 쌓아가면, 미국과 중국 사이 선택의 문제에서 전략적 고려보다는 규범·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 규범 선언을 위한 쿼드 플러스에 참여 시, 부담 요인도 있다. 먼저, 미국과 영국이 1941년에 체결한 ‘대서양 헌장’이 종전 후 UN 창설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헌장’ 채택은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 구축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국이 그러한 헌장에 서명하는 국가를 강력히 비난할 것이다. 또한, 다수의 동남아 국가가 권위주의 정부 체제인바,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쿼드 국가가 양질의 거버넌스, 투명성,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그들의 아세안 정책에 투영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도 홍콩, 신장 관련 이슈에는 국가 주권 수호 차원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세력 규합을 위해 민주주의 및 인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인태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아세안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바,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에서 민주주의 및 인권의 기준을 완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신정부는 보편적 원칙·규범을 확립하기 위한 쿼드 플러스에는 역내 중견국으로서 중국 눈치를 보지 말고 참여해야 하지만, 우리가 이를 주도하거나 다른 국가보다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3. 인도네시아, 호주 등 역내 국가와 인태 지역 (소)다자 협력 추동
신정부는 역내 국가와의 소다자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 현재 인태 지역 소다자 안보협력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국가 간 형성되는 경우가 다수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쿼드 국가인 인도, 호주, 일본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등 역내 국가와 안보협력을 증진 중이고 이러한 안보협력이 미국 주도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추동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산물로 역내 국가가 주도하는 소다자 협력도 점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소다자 안보협력의 예는 일본, 호주, 인도가 2015년부터 차관급으로 개최하고 있는 전략 대화가 있다. 또 다른 예로는 환인도양연합(IORA)의 틀에서 2017년 11월에 태동한 호주·인도·인도네시아 전략 대화가 있다. 해양안보의 영역에서는 일본·베트남·필리핀, 호주·인도네시아·인도, 인도·일본·베트남, 프랑스·호주·인도 등 다양한 삼자 협력과 비공식적 다자간 협력이 작동하고 있다.
인태 지역 주요 중진국인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결성하는 소다자 연합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위상을 확보해가면서 자율성도 확보해간다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미·중 대립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메콩강 협력, 해적퇴치, 해양정보 공유 등을 위해 아세안에서 태동하고 있는 자생적인 (소)다자 협력과 연계된다면, 미·중 전략적 경합에 좀 더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을 구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정부가 역내 국가와 양자 및 소다자 안보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베트남과의 경제협력 증진에 주력하였다면 신정부는 이를 유지하면서 호주, 인도네시아와의 양자 안보협력 관계를 증진하고 한국·인도네시아·호주(Korea, Indonesia, Australia, KIA) 삼자 안보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는 2017년 신남방정책을 착수할 때부터 아세안 국가 및 인도와의 협력을 중시하였으나 호주는 중점 대상 국가에서 제외했다. 2013년에 외교·국방 장관의 격년제 2+2회담을 시작하는 등 한국과 호주의 양자 관계가 꾸준히 증진해 왔다는 점에서, 호주에서는 이를 의외로 받아들였다. 2018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와의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호주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협력국”이라고 언급하였고, 2019년 12월 외교·국방 장관의 2+2회담에서도 양국 지역 정책 간 접합점을 찾기로 합의한 것은 호주의 소외감을 고려한 것이었다. 신정부는 미국의 인태 전략에서 거점 국가의 역할을 하는 호주를 실질적으로 신남방정책의 주요 대상 국가에 포함 시킬 필요가 있다. 호주와 아세안 국가 및 인도와의 안보·경제 협력이 증진 중이고, 동남아시아 안보 논의에 있어 호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정부는 우리와 호주의 양자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KIA 조합의 재가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KIA는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부상 및 아세안 지도국으로서의 위상과 호주와 한국의 경제·군사력을 고려하면 역내에서 주요한 안보·경제 협의체로 부상할 잠재력이 크다. 현 문재인 정부에서 KIA 협력에 관한 관심이 있었으나,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신정부는 방산과 에너지 안보를 매개로 실질적인 KIA 협력을 구동시켜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인도네시아 국산 초음속훈련기 T-50 수출, 한화의 호주 K9 자주포 수출 등 방산 협력의 토대는 구축되어 있다. 천연액화가스(LPG), 수소에너지 분야도 삼국의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 수소자동차·연료전지 등 수소를 활용하는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한국과 재생에너지·가스 등 수소를 생산하는 분야에 잠재력을 보유한 호주가 호혜적인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협상을 전개 중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20년 9월에 인도네시아에서 건설 중인 발릭파판 정유공장의 수소첨가분해시설 (Hydrocracking Unit) 증설 프로젝트를 수주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방산, 에너지 등 기능 분야에서의 삼자 협력을 바탕으로 KIA 차원의 안보 전략 대화를 태동시켜 역내 안보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키워가야 한다.
좀 더 나아가 신정부는 역내 첨단기술 및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호주, 일본, 인도 등과의 소다자 협력을 증진해 나가야 한다. 기술경쟁 심화와 신흥안보 위협 증대로 국제질서가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는 가운데, 5G/6G, 인공지능, 자동주행 시스템, 극초음속 (hypersonic) 장비 등의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 기술 패권경쟁이 심화하여 국제안보에서도 이의 파급력이 뚜렷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간 첨단기술 분야 대립이 격화하게 되면, 우리와 같은 역내 국가가 화웨이 사태처럼 중국 첨단 제품에 대한 구매 중단 요구에 종종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인태 지역에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호주, 한국 등도 최첨단 기술과 사이버 안보를 이끌어가고 있으므로, 신정부는 타 기술 중견국들과 연합하여 세력화를 꾀해야 한다. 최첨단 기술에 바탕을 둔 신흥안보 이슈가 역내 안보환경에 가져올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우리와 같은 역내 중견 국가가 신흥안보 영역에서 규범, 원칙, 기구의 생성을 선점하지 않는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결국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따라서 역내 국가들이 다양한 신흥안보 영역에서 선제적으로 소다자 협력을 견인하면서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미국·중국 중심에서 탈피한 대안적 규범, 규칙, 제도 등을 만들어나가는 데 신정부가 우리의 중견국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 저자: 박재적_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전공분야는 인·태지역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지역안보질서, 소다자 안보 협력, 미국-호주 동맹, 호주 안보 정책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인도·태평양 지역 ‘해양상황인지’ 현황과 ‘쿼드(Quad)’국가의 기역: 쟁점 및 전망>(2020), <한국의 대미(對美) 정책공공외교: 목표, 주체, 대상 및 추진 방향>(2019),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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