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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워킹페이퍼] 2022 EAI 신정부 외교정책 제언 시리즈 ④_대북정책: 북한 비핵화와 21세기 생존 번영을 위한 신구상

  • 2021-09-13
  • 김병연, 하영선

ISBN  979-11-6617-219-9 95340

[편집자 주]

본 워킹페이퍼에서 김병연 서울대 교수와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차기 정부 임기 내 북한 비핵화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크며, 북한과 한반도의 변동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신정부가 추진해야 할 북핵 및 대북 정책을 제언합니다. 먼저 대북 4대 복합 전략 (제재, 억제, 관여, 자구)를 복합적으로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 신구상과, 북한의 생존 번영 신구상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신대북정책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대중국 3대 정책 과제

 

1. 제재, 억지, 관여, 자생적 변화를 복합적으로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 신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한국, 미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은 북한의 비핵화 실행 단계에 따라 북한의 체제보장, 제재 해제,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

 

2. 완전 비핵화한 북한의 21세기 생존번영 신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기술개발, 고급인력 양성,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지원할 뿐 아니라 남한의 유무형 인프라를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북한경제의 도약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4차 산업을 포함한 남북 경제의 분업과 통합을 염두에 둔 미래지향적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3. 신대북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관련 부처 장관 및 실무자 수준의 상설 네트워크 조직을 운영하여 부처 간 소통과 조율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신대북정책을 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I. 서론

 

북한 비핵화와 바람직한 남북관계 형성은 신정부의 외교정책에서도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북한 문제는 한국의 정체성 및 한민족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안보·정치·사회·외교·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비핵화에 실패할 경우 한국이 치러야 할 유무형의 비용은 매우 클 것이다.

 

신정부의 임기에 북한과 한반도의 변동성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전망이다. 먼저 비핵화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북한이 실제적 핵보유국이 된다면 이전보다 더 강경한 대남정책을 펼 수도 있다. 반대로 경제개발을 위해 오히려 더 유연한 대남정책을 구사할 수도 있다. 또는 제재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대내 결속력을 다지려 시도하다 오히려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더욱이 미중 갈등의 심화는 북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전망이다. 미중이 서로 다른 전략적 입장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할 경우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미중 갈등의 양상이 군사적·외교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기술·기업·경제·보건 영역까지 확대됨에 따라 북한 문제의 파급효과는 한국의 안보·동맹·외교·경제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신정부가 실행해야 할 북핵 및 대북 정책을 제언하는 것이다. 이 글은 먼저 신정부가 직면할 정책 환경을 살펴본 후 문재인 정부의 북핵 및 대북 정책을 평가한다. 이어 북한의 경제정책으로서 자력갱생의 효과를 검토하고 미중 및 북중 관계가 북한 경제에 미칠 영향을 논의한다. 다음으로 신정부가 피해야 할 정책을 소개한 후 북한 비핵화와 생존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대북 정책의 신구상을 제언한다.

 

II. 새로운 정책 환경

 

2022년 신정부의 북핵 및 대북 정책은 특별히 새롭게 겪게 될 두 변화를 주목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첫째,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의 빠른 변화다. 지난 4월의 알래스카회담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중국은 전통적인 외교, 안보 무대뿐만 아니라, 경제, 기술, 문화, 생태라는 6중 복합 무대에서 경쟁, 갈등, 협력관계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은 무역에서 첨단 기술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우주 산업 등의 첨단 기술에서 중국을 배제한 지구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기치로 중국을 압박하는 규범의 대결도 전개되고 있다. 이같이 이제는 외교와 안보, 경제, 그리고 기술과 규범이 상호 연결된 구조로 세계 질서가 변했다. 지난 5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도 북한과 안보 관련 내용뿐 아니라 기술, 과학, 환경, 민주주의 등을 함께 다룸으로써 이런 변화를 확인하고 있다. 둘째, 신정부의 5년 동안 북한 비핵화의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이 결과에 따라 새 정부는 안보와 외교, 그리고 대북 정책에 관해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미중 갈등의 복합질서에서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국의 안보뿐 아니라 경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핵 무력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려는 북한의 생존전략도 한층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므로 이로 인한 변동성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처해 있다. 대북제재로 인해 2017~2019년 동안 북한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무역 봉쇄와 시장 활동 제한 조치로 경제활동은 더욱 위축되었으며, 현재까지 이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올 4월 초에 열린 세포비서대회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는 등 경제위기를 인정하고 있다. 특히 수출과 외화벌이가 크게 줄면서 북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외화보유고가 앞으로 수년 내 고갈될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 주민뿐 아니라 관료와 권력층의 불만이 누적될 수 있으며 이는 북한 정권에게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만약 북한 정권이 정부 부문의 외화고갈을 막기 위해 민간 부문의 외화를 강제적·반강제적으로 흡수하려는 경우에는 민심 이반이 발생할 수도 있다.

 

향후 비핵화 양상은 북한의 내부 상황과 정책뿐 아니라 미중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만약 미중 관계가 계속해서 갈등 관계를 보인다면, 중국의 시각에서 본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증가한다. 즉 중국은 미국을 압박하거나 대미 협상 카드로 북한 문제를 이용할 개연성이 커진다. 이는 중국의 대북 지원 증가로 이어져 북한의 대미 협상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반면 미중 관계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거나 혹은 북핵 문제에 관해 미중이 협력한다면 중국은 대북제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그 결과 북한 경제 상황은 더 심각해지겠지만 비핵화 가능성은 증가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차기 정부가 직면할 정책 환경은 복잡하며 다층적이다. 북한의 선택과 내부 변화, 그리고 미중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더욱이 북한 내부의 긴장과 미중 갈등이 초래하는 동학으로 인해 차기 정부 임기 내내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이와 같은 요인들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전개될 것을 예상하고 그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해 효과적이며 복합적인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III.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평가

 

2017년 상반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당면 과제를 풀어야 했다. 그러나 정책의 공간은 넓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력한 유엔 대북제재와 미국 독자 제재가 비핵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문재인 정부는 한미와 남북관계의 선순환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먼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의 성과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헌법과 8차 당 대회 등에서 핵보유를 명확히 한 동시에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는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 즉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을 위해 핵동결 차원의 부분 비핵화를 논의하되, 핵 능력의 완전 비핵화라는 전략적 결단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 특사와 면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는 결정을 즉각 내렸다. 이러한 반전은 북한의 도발을 제어하고 일시적이나마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지만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에는 오히려 해가 됐다. 북미 관계가 급속도로 호전될 것을 우려한 중국이 제재 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이 2017년 하반기에 실행하던 수준의 제재가 더 지속되었어야 북한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었지만, 남북 및 북미 협상이 너무 빨리 열린 데다 남한과 미국의 정책결정자는 이로 인한 북중 밀착과 제재 완화의 동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의 관건을 남북관계 개선이라 믿고 이에 몰두했다. 국제관계의 복잡성과 동학, 그리고 비핵화의 수단과 그 효과를 심층적으로 검토하지 못한 채, 비핵화의 핵심 수단인 제재를 먼저 완화하여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이로 인해 한미 공조가 균열 조짐을 보였고 남남갈등이 증폭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북한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할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과 북한 문제에 관해 중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과도한 기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효과를 떨어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

 

IV. 북한의 자력갱생 시도 평가

 

대북제재가 본격화되자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는 자력갱생 정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자력갱생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 경제가 대외 요인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시장화와 대외 무역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에서 북한 경제를 회복시킨 주된 이유다. 특히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북한기업은 필요한 원부자재와 기계장비 및 부품, 그리고 석유를 수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물, 의류, 어패류 등을 수출하고 근로자를 러시아, 중국, 중동 등에 파견함으로써 외화를 조달할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해 2014년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52%에 달했으며, 이는 같은 해 전 세계의 평균 무역의존도 60%와 불과 8% 포인트 차이 밖에 나지 않은 수치였다. 여기에다 북중 간 밀무역을 합치면 제재 이전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전 세계 평균보다 높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역 증가는 산업과 시장 활동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쳤다. 중앙계획경제의 고질병이었던 공급망 균열이 어느 정도 메워져 산업 생산이 증가하고 수출 관련 기업의 생산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리고 소비재를 수입할 수 있음에 따라 북한 내 시장 공급이 증가했다. 동시에 무역과 외화벌이 소득이 국내로 유입됨에 따라 시장의 수요도 증가했다. 이는 시장거래의 증가, 그리고 북한 가계소득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북한 경제회복의 동력이었던 무역 없이 경제가 자력갱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의 자력갱생 시도는 조기에 핵군축 협상을 열기 위한 대미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경제는 제재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버틸 수 있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비핵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협상에서 북한은 실제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일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기존 제재를 해제 받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V. 미중, 북중 관계와 북한경제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북중 사이 교류가 재개되면 북한 경제는 회생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력갱생은 그때까지 버티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의미다. 이 가능성은 코로나 사태의 지속 기간뿐 아니라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약 미중 관계가 현재보다 훨씬 악화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이용하여 미국을 압박하려 할 수 있다. 중국은 대북 지원을 증가함으로써 경제가 일부나마 회복하게 도와주고 이에 힘입어 북한 정권이 계속 핵·미사일 고도화를 진행한다면 미국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중국에 협조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이 전략은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보다 중국 기업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3자 제재(secondary boycotts)를 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중국의 대북 지원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 될뿐더러 미중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미중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경우가 아니라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국의 제재 위반과 대북 지원이 이전보다 급증할 개연성은 높지 않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북한 경제가 정상화되기는 어렵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 장비와 부품, 에너지 수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는 제재의 제약을 받는다. 수입을 할 수 있다 해도 제재가 수출과 외화벌이를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무역 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일시적으로는 기존의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이 적자를 메울 수 있지만 언젠가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면 경제위기는 가시화된다. 이같이 북한의 경제문제는 구조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재는 북한경제를 새장 속에 가두었다”.

 

미국의 대북 정책 리뷰 결과도 이러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평가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은 ‘조율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pragmatic approach)으로 요약된다. 바이든 정부는 지속적인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를 조속히 막기 위해서 일단 핵동결을 완전비핵화로 가는 중간 징검다리로 삼는 실용적 접근을 채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신뢰구축, 핵동결, 완전비핵화의 새로운 셈법을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세 단계에서 북한의 완전 비핵화의 진정성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조율된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와 트럼프 정부 초기의 그랜드 바게인(grand bargain) 사이에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위치시킨 것은 타당하며 불가피한 결정이다. 그러나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안은 두 가지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첫째, 완전 비핵화에 이르는 중간 징검다리로서 핵동결을 1차 협상 과제로 삼더라도, 미국, 중국, 북한, 그리고 한국의 각각 상이한 병행 추진 방안을 단일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핵동결을 넘어서 완전 비핵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완전 비핵화와 완전 체제보장의 진정성에 대한 쌍방의 신뢰를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VI. 새 정부가 피해야 할 함정

 

새 정부는 북한 문제의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정책 환경은 다층 복합인 데 비해 문재인 정부처럼 대북 정책이 단층, 단순할 경우 정책의 실효성은 급감하며 정책 비용은 급증한다. 즉 신정부는 하나의 ‘황금 탄환’(golden bullet)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박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단층 단순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가 민족 자주론이다. 이 기조에 따라 남북관계를 우선시하고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될 경우 북한 비핵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제재 공조가 무너져 그 효과가 감소할 뿐 아니라 남한의 정책을 북한이 역으로 이용하려 할 때 이를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그리고 한미동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저해하며, 미중 대립이 격화된 국제 환경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 개발과 경쟁력, 그리고 거시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론도 피해야 할 함정이다. 외교 수단의 확대나 핵 상호억지라는 좁은 시각에서 본다면 북핵에 대응해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종합적 시각에서 예비 타당성 검사를 한다면 한국의 핵무장은 국가 이익에 치명적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개발한 북한의 핵무기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듯이, 한국의 핵무기 개발도 이와 유사할 개연성이 크다. 이미 1970년대에 경험을 한 것처럼,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불가피하게 경제적, 기술적 그리고 안보적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의 핵무장이라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핵무장론은 대북제재의 정당성을 부정하게 되므로 지금 작동 중인 대북제재의 효과를 떨어뜨리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전술 핵능력의 고도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은 핵무장론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비핵 평화체제가 정착할 때까지 재래식 무기에 의한 억지력 강화와 미국의 핵확장 억지력 공유라는 복합적 대안에 있다.

 

남북 경협도 만능의 보검이 아니다. 그동안 보수 정부나 진보 정부 모두 경협을 북한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지렛대로 인식했다. 그러나 경협이 의도한 성과를 내려면 두 가지 중 적어도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다. 만약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경협은 관광 사업과 같이 외화 수입이나 산업발전에는 기여하되 체제 변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업에 국한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경협은 오히려 북한 비핵화나 개혁·개방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둘째, 경협이 정교하게 설계, 실행되어야 한다. 모든 경협이 남한 경제에 도움 되지도 않으며, 어떤 경협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저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경협을 동일하게 취급하기보다 개별 경협의 장단점을 면밀히 파악하여 북한 경제발전과 비핵화에 기여하도록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협은 대북 정책의 한 축으로서의 의미는 갖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VII.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신구상

 

일각에서는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며 한국은 이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인해 ‘현상 유지’(status quo) 정책을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오든지 아니면 거센 도발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든지 선택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의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 이에 따라 신정부의 북한 비핵화 구상은 다음의 네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효적이고 평화적인 수단으로서 경제제재는 핵심적으로 중요하므로 국제적인 대북제재 공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1]제재를 통해 핵 개발 및 보유의 기회비용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핵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을 극대화하여 북한에 제시하는 방안 이외에 다른 평화적 방법을 현재로선 찾기 어렵다. 이를 위해 제재 무용론과 제재 만능론이 아니라 제재 유용론의 시각에서 비핵화에 접근해야 한다. 먼저 제재 무용론은 사실 오류에 가깝다. 북한 스스로 제재의 충격을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관한 실증적 증거도 풍부하다. 구체적인 예로서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은 중요 제재 해제와 부분 비핵화의 교환을 원했다. 이는 제재의 실효성이 높아질수록 달성 가능한 비핵화의 수준도 상승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제재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제재의 효과는 높이되 제재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비핵화 수준에 대해서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계 상황에 봉착한 북한의 취약계층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제재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권 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둘째,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인정하고 중국을 견인할 방법을 미국과 함께 모색해야 한다. 먼저 미국이 대중 전략 추진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중국과 협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의 ‘쌍궤병행’ 비핵화 방식과 미국의 ‘핵 신고 및 사찰 후 단계적 비핵화 방식’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은 비핵화의 개시 가능성은 높이되 중도 실패의 확률은 줄이는 최적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 예로서 완전한 비핵화의 정의와 로드맵에 북한이 동의해서 진정성을 보인다면 미국과 중국이 해야 할 일을 단계별로 병행 실행하고, 비핵화 입구가 아니라 적절한 단계에서 핵 신고, 검증 및 사찰을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 비핵화 이후 북한에 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할 방안을 한반도 평화체제에 담을 수 있다. 한편 한국은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방역보건 공동체와 같은 다자공동체의 시도, 중국의 동북 3성을 연결하는 동북아 인프라 건설과 이를 위한 다자 경제협력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또 북한의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4자 혹은 6자 협의체를 2트랙이나 1.5 트랙에서 구성하여 중국이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미국과 함께 북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그 로드맵에는 제재와 관여의 순차 및 비핵화 단계에 맞춘 관여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 관여 정책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경제개발 지원으로 크게 나누고 그 각각에 포함될 상세한 정책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제재 해제 혹은 완화에 따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단계적 방안 및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이 하나의 패키지 형태로 북한에 제안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과 북한 사이 신뢰를 쌓아야 할 것이다. 제재 해제와 관련해서는 가장 나중에 채택된 제재부터 해제하는 방안, 제재 대상의 부문별로 해제하는 방안, 혹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해제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는 북한의 영구적인 비핵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재 해제와 관여의 구체적인 순차와 내용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제재 해제의 방법과 순서, 그리고 관여의 내용이 잘못되면 추가적 비핵화의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이에 관한 전문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넷째, 완전 비핵화한 북한의 생존번영을 위한 구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남북 경제의 분업과 상생, 그리도 통합을 목표로 한 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고급 인력 양성을 포함하는 북한의 인적 자본 제고, 기술의 업그레이드, 남한이 보유한 유무형의 인프라 제공과 북한의 국제 금융기구 가입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다섯째,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제제, 억지, 관여의 노력이 필수적으로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 진화적 시각에서 북한 스스로가 현재와 같은 19세기적 지평이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지평에 서서 새로운 생존번영 구상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정보화다. 북한이 21세기 아태 질서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려면 21세기적 핵심 국가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하는 정보화가 필수적이다. 정보화는 북한의 통계 구축, 지식 획득, 역량 구축을 포괄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정보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 관료와 전문가 교육 및 타국과의 학술적 교류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VIII. 비핵 북한의 생존번영 신구상

 

신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 비핵화 신구상과 함께 북한의 생존번영 신구상이 필요하다. 신구상을 위한 최선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고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경우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비핵화와 체제이행을 둘 다 거부하는 경우다. 제3의 시나리오는 이 둘 중 하나를 추진할 때다. 그리고 가능성은 작지만, 북한체제가 급변 사태를 맞이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경우에 대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가 확립되고 북미 간 정상적인 외교 관계가 수립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관여 정책의 핵심은 북한 경제개발과 남북 경제의 시너지 창출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각종 기술적 지원과 북한의 인적 자본 제고를 위한 관여, 그리고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한국이 보유한 유무형의 인프라를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북한 경제의 점프 스타트에 기여할 뿐 아니라 4차 산업을 포함하여 남북 경제의 분업과 통합을 염두에 둔 미래지향적 대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선의 시나리오와 함께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한국의 안보적 취약성이 크게 부각되어 군사적 억지력 확보에 중점을 두는 정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때에도 억지력 확보의 여러 대안을 검토하되 그 대안이 한국 기업과 경제, 그리고 정치와 사회 및 미래 남북관계,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군사 부문에 국한된 부분 균형 접근법이 아니라 한국의 현재와 미래, 또 이에 따른 국제관계의 파급효과까지 고려한 일반 균형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또한, 적절한 경제적 관여는 현재 북한에 편만한 시장화를 촉진할 수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3의 시나리오에서는 억지와 관여의 조합이 필요하다. 북한이 비핵화 없이 시장경제로 이행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핵의 효용이 하락할 것이다. 이 경우 신정부는 한국의 군사적 억지력 증강과 함께 북한의 시장경제 트랙에서의 경제발전을 가속화하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반대로 북한이 비핵화는 했으나 여전히 사회주의를 유지하려 할 경우에는 남북 경협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경제적 변화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인 관여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북한 급변 사태는 단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작지만, 잠재적 폭발력은 매우 크다. 특히 미중 갈등이 악화된 상태에서 북한 급변상황이 발생한다면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과거 독일 통일과 구소련, 동유럽의 체제이행 경험을 살펴보면 준비 없이 맞은 통일과 체제이행의 충격은 매우 컸다.

 

IX. 신대북정책을 위한 제도적 개선

 

신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 구상은 공간적으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의 남북한 관계를 넘어서 미중관계를 비롯한 복합 공간적 분석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또한, 외교,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기술, 문화, 생태의 복합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대북 정책의 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한다. 북핵과 대북 정책에 관한 각 부처 간의 소통과 조율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제도를 바꾸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NSC에는 신대북정책을 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대북구상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관련 부처들의 장관 및 실무자들의 상설 네트워크 조직도 중요하다. ■

 


 

[1] 한 토론자는 이 접근과 이명박 정부 시절의 비핵·개방·3000 정책과의 차이점을 질문했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북한 핵 보유가 기정사실로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 핵을 가진 지금은 이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김병연, 2020). 둘째, 제재와 압박의 성공 확률이 높아졌다. 비핵·개방·3000과 같이 한국만의 제재와 압박만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재는 유엔 대북제재라는 국제공조의 틀 안에서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 접근법이 작동할 환경이 조성되었다.

 


 

저자: 김병연_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옥스퍼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 영국 에섹스대학,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 학술원상(2018), 서울대 학술연구상(2018), 니어재단 연구상(2019), 한국경제학회 청람상(2005), 영국 경제사학회 T.S. Ashton Prize를 수상한 바 있다. 대표 저서로는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등이 있다.

저자: 하영선_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미국 프린스턴 대학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회 회장,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한국 측 공동위원장,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남북정상회담 준위원회 원로자문회의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EAI 이사장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서 및 편저에는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 <한국외교사 바로 보기: 전통과 근대>,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사행의 국제정치: 16-19세기 조천•연행록 분석>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하영선 칼럼”을 7년동안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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