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이슈브리핑] ‘모르겠다’라는 적극적인 응답
ISBN 979-11-6617-467-4-95340
I. 한일관계는 나쁘지만, 중요하다
필자가 동아시아연구원(EAI)과 겐론NPO의 ‘한일국민 상호인식조사’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은 2020년 제8회 인식조사부터이다.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이어진 수출금지조치, 한일 비자 면제 정지로 이어지는 국면 속에서 최악의 한일관계라는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던 때이다. 한일관계는 늘 최악이지 않았나‘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의 상호인식조사에서 국민 상호간의 호감도가 바닥을 치고, 한일관계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최고조에 있어, 한일관계는 곧 국민감정으로 표현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2년의 인식조사에서도 ‘한일관계가 나쁘며, 상대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라는 부정적인 답변이 여전히 많지만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 반면 ‘한일관계의 미래가 좋아질 것이다’, ‘상대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답변은 양국 모두 증가하여 격앙된 감정이 다소 누그러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한일 관계의 중요성
[그림 2] 한일 관계의 중요성 10년 추이
대다수 한국인(81.1%)은 한일관계 회복을 바라고 있지만, 절반 이상의 응답자(52.0%)는 한일관계는 앞으로도 ‘현재와 같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관계회복을 원하지만 밝은 전망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짚어보면, 관계회복을 위한 과제로서 한국(57.7%)과 일본(66.3%) 모두 ‘역사문제 해결’을 꼽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역사문제라는 걸림돌 앞에서, 한일 정부가 적정한 협의를 도출하고 이에 대해 양국 국민들이 호응하는 것이 지난 과제임을 알기에 한일관계의 미래를 밝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에 좋은 인상을 갖지 못하는 이유 역시 ‘역사문제’에 얽혀있다.
그러나 10년에 이르는 한일 인식조사에서 한결같은 인식은 ‘한일관계는 중요하다’라는 점이다.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한일 간 인식 차이는 존재한다.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응답자 비율은 한국이 30%가량 높다. 그러나 일본의 답변을 자세히 보면,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라는 응답(56.5%)은 ‘중요하지 않다(14.2%)’의 네 배에 이른다. 또한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라는 가부의 응답 외에 30%에 이르는 ‘모르겠다’의 답변에도 주목해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대등한가’와 같은 문항이 생겨나고, ‘일본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응답이 늘어나는 속에서 이 30%에 이르는 ‘모르겠다’ 역시 한류와 혐한이 동시에 분출한 최근 일본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 의미 있는 응답일 것이다.
한국이 ‘왜 중요한가’의 일본 측 설문에 있어 ‘한국은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관계가 깊은 이웃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71.9%로 압도적이었다. 한국 측 답변 역시 ‘이웃나라이기에’의 응답이 64%에 이르렀고, 그보다 조금 더 많게는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의 중요함을 꼽았다. 상호의존성이 높은 ‘이웃나라’이기에 한일관계는 ‘나쁘지만, 중요하다’라는 공통 인식 속에서 한일관계 개선은 끝없는 과제로 다가온다. 그리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역사문제라는 난제를 잠깐 비켜나 소통하고자 할 때 대중문화는 가장 믿을만한 실마리로 꼽히곤 한다.
II. 대중문화 교류의 상호성과 동시대성
‘한일 양국이 대등한 관계에 있는가’의 질문은 ‘이미 1인당 GDP가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고, 방위비 역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수준이 되었으니, 한국과 일본은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문항은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대등한가’를 묻고 있지만, 사회문화적인 변화, 특히 대중문화의 측면에 주목하면 이 ‘대등한 관계’의 의미는 훨씬 더 선명해진다. 1990년대까지의 일본문화 수입금지 배경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감이 있었으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한국 대중문화산업을 위축시킬 것에 대한 강한 우려 또한 존재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일본문화 베끼기가 성행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이어진 한국 내 일본문화 개방으로부터 불과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는 한일의 ‘대등함’을 넘어 상호성, 동시대적인 소통의 가장 의미 있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림 3] 상대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유
상대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는 이유를 보면 한국은 ‘일본인들의 성실한 국민성’에 대한 호감이 절반을 넘는다. 이 답은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이어서’(37.8%)라는 답변을 크게 웃돈다. 한일 간 역사문제가 격화된 속에서도 ‘일본인에 대한 좋은 인상’이 지속된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는 이유로 80%의 응답자가 ‘일본 정치 지도자의 발언 및 행동’을 특정한 것과 대조된다. 한편,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는 일본 응답은 ‘한국의 대중문화(44.7%)’, ‘식문화와 쇼핑(43.4%)’을 꼽아, 이른바 ‘한류’ 소비가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의 원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 미만 75%, 20대 64.7% 등 젊은층으로 갈수록 ‘대중문화를 매개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한국/일본 모두 ‘중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지만,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일본/한국이라고 답했는데, 이 친근감은 대중문화를 매개로 한 소통에 기반할 것이다.
[그림 4] 일본 대중 문화가 일본에 대한 인상을 향상시키는지
[그림 5] 상대국의 대중문화 소비 정도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는가의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 ‘그렇다’의 응답은 각각 7.3%, 27.3%이다. 한국대중문화를 즐긴다는 응답자는 20대 미만 56.5%, 20대 49.6%으로 가장 높지만, 60대도 31.4%가 한국 대중문화를 즐긴다고 응답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 연령대에 분포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의 응답에 주목하면 20대 61.1%, 50대와 60대도 40%를 넘는 응답자가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다.
대중문화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향상시키는가의 질문에서는 연령과 성별 불문하고 긍정적인 응답이 높았다. 전체 86.2%의 응답은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고 답했고, ‘모르겠다’의 응답(5.8%)이 적은 것 또한 특징이다. 혐한/반일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때에 ‘대중문화’를 통한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인식조사에서 보듯, 일상적으로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면서 상대국에 대해 자연스럽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III. 한류에서 K로, 드라마에서 케이팝으로
2003년 4월 NHK <겨울연가> ‘욘사마’ 열풍과 함께 일본 내 한류 붐은 본격화되었다. <겨울연가>는 2003년 12월, 2004년 4월, 같은 해 말까지의 네 번의 NHK 재방송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08년에는 케이팝 가수들에 대한 젊은층의 팬덤이 형성되면서 이른바 2차 한류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요구 발언은 한류에 찬물을 끼얹고 혐한 감정을 자극했다. 2018년 BTS 등 케이팝 스타들의 폭발적인 인기는 3차 한류의 불을 지폈고, 신오쿠보 거리 역시 다시 술렁였다. 2020년에는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서도 ‘사랑의 불시착’ 등 드라마가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면서, 코로나19 ‘국경봉쇄’ 속에서 4차 한류의 붐이 일었다.
그럼 한/일은 상대국 대중문화의 무엇을 좋아하는가. 한국인은 일본의 망가와 에니메이션을, 일본인은 한국의 드라마와 대중음악을 좋아한다. 일본의 조사에 주목하면, 연령이 낮을수록 케이팝, 연령이 높을수록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20대 이하와 20대는 각각 84.6%, 55.9%가 케이팝을, 60대 이상은 64.5%가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림 6] 상대국의 대중문화 중 관심 분야
[그림 7] 한일관계 악화가 상대국 대중문화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유튜브 등 글로벌 뉴미디어 환경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 소비층이 저변을 확대되는 동안, 민족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한류’ 대신 ‘K’가 쓰이기 시작했다. ‘몇 차’ 한류인가의 파도를 그리는 것 역시 순식간에 촌스러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1차 한류가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되었다면, 지금은 개별 소비자가 플랫폼의 중심에 서 있으며, 미디어의 변화와 함께 대중문화 소비 및 이에 연동하는 친밀감은 한일정세의 자장을 벗어나게 되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어도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는 의견은 일본(61.0%)이 한국(35.6%)보다 훨씬 뚜렷하다. 아이돌의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국적과 무관하게’ 음악을 소비함으로써, 정치적인 이슈들에도 문화소비의 장은 위축되지 않는 것이다. 케이팝 소비의 이유는 소비자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멋짐’에 기인하기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한류’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 앞으로 다시 벌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케이팝이 ‘멋짐’을 유지하는 한 말이다. 그러나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뉴미디어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익명의 공간은 거침없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혐한’을 주도한 산발적인 구심점들을 제공했다는 점 역시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 소비에 가장 적극적인 ‘젊은이’들은 한일관계에 대해 ‘모르겠다’의 응답이 가장 많은 그룹이기도 하다. 한국에 친밀감이 높은 젊은층이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그들의 답은 의외로 그렇지 않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있어 ‘긍정’의 대답은 20대 미만에서 39%, 20대에서 29.4, 30대에서 20.2%, 40대 30.6%, 50대 30.6%, 60대 이상 26.1%로, 70대 이상 38%로 연령에 따른 뚜렷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한일관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인가’의 질문에서는 오히려 연령이 높을수록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20대에서는 39.5%만이 ‘개선’에 손을 들었다면 70대 이상은 67.9%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한국 대중문화 소비에 가장 적극적인 20대 여성의 경우,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44.4%였지만, ‘모르겠다’의 응답이 똑같이 44.4%를 차지했다.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입장을 표명할 수 있을법한 문항에 ‘모르겠다’라고 답하는 것은 무지나 무관심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아닐까. 케이팝을 좋아하지만 이를 한일관계 등 정세변화와 엮지 말아 달라는 적극적인 표현으로 이 ‘모르겠다’의 응답을 해석하고 싶다.
IV. 미래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
[그림 8] 자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
자국의 미래에 대해, 한국에서는 낙관적인 전망(66.8%)이, 일본에서는 비관적인 전망(50.8%)이 더 많았다. 일본의 미래에 대한 ‘비관’에서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은 40대 전후의 응답자에 비관적인 응답이 많다는 점, 그중에서도 사회 현역으로 가장 왕성할 40대 남성(64.8%)이 일본의 미래에 가장 비관적이라는 사실이다.
1인당 GDP에 있어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고, 방위비 역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수준이니 ‘한일 양국이 대등한 관계에 있는가’의 문항에 있어, 한국에서는 ‘대등하다’(48.1%)라는 응답이 ‘아직 대등하지 않다’(40.1%)의 응답보다 많았다. 같은 질문에 대해 일본의 응답은 한국과 일본은 ‘대등하다’는 답변이 27.8%, ‘아직 대등하지 않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는 답은 28.9%로 조금 더 많았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답변은 32.6%에 이르는 ‘모르겠다’였다. 일본사회의 배외주의는 경기침체와 그에 따란 사회적 불안 속에서 잉태되었다고 분석한다면, 자국의 미래에 대한 질문, 그리고 한국의 추월에 대한 응답에서 일본인들이 느끼는 조바심을 읽어 볼 수 있다.
[그림 9] 한일관계에 대한 자국 언론의 보도 공정성 평가
그렇다면 일본내에서 불거지는 혐한 표현에 대한 일본인들의 응답은 어떠할까. 일본 조사에서는 ‘인터넷에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들이 많은데, 이는 일본의 민의를 적절히 반영한 것이라고 보는가’에 대해, 단지 13.8%만이 ‘적절히 반영한다’고 답했다. 그에 비해 34.6%의 응답자는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표현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이나 한일관계에 대해 정보를 얻는 것은 88%가 뉴스미디어이며, 텔레비전(63.9%)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답했는데, ‘미디어가 한일관계를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보도하는가’의 질문에 ‘그렇다’라는 일본 측 응답은 20.6%에 불과했다.
그러나 혐한 표현에 동조하지 않으며,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두 항목 모두에서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모르겠다’라고 응답한다. 동조하지 않지만 비판하지 않는, 과반수가 넘는 회색 응답이 존재하는 것이다. 헤이트스피치로 대표되는 혐한의 표현들은 헤이트스피치 금지법안 등 일본사회 내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잦아들었다. 그러나 ‘모르겠다’라고 답하는 이 과반수 대중의 응답에서 배외주의를 허용하고 묵인하는 공기 또한 감지하게 된다. ■
■ 저자: 박승현_계명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조교수.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 인류학박사. 재해와 시민사회, 인구변동, 거주와 복지 등을 주제로 일본 사회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도쿄 대규모 공공단지의 고령화와 재건축을 다룬 『老いゆく団地: ある都営住宅の高齢化と建替え』(2019, 東京 森話社), 『재일한인의 인류학』(2021, 공편), 『팬데믹, 도시의 대응』(2022, 공저)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 「코로나19 자숙이 불러일으킨 ‘세켄(世間)’의 공기: 일본문화론의 재부상과 ‘코로나 쇄국’의 문제」(2022), 「고베 도시경영의 계보와 ‘부흥재해’: 한신대지진 이후 신나가타역남지구 재개발사업을 중심으로」(2022). 「일극집중사회 일본, 도쿄의 코로나19: 중앙-지방, 중앙정부-지자체의 역동」(2021, 공저), 「코로나19 팬데믹과 불안억제사회 일본: 재난공동체의 불안과 자숙, 그리고 연대」(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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