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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이슈브리핑] 여론조사로 보는 위기의 한일관계: 국민은 변화를 원한다

  • 2020-10-22
  • 손 열

ISBN  979-11-6617-035-5 95340

편집자 주

2019년 7월 1일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선언으로 촉발된 한일 양국관계 경색은 무역갈등,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넘어 지소미아 종료선언 등 안보갈등으로 이어지며 교착상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연세대 교수는 2020년도 9월 일본의 겐론(言論)NPO와 공동으로 실시한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와 이어 <제8회 한일미래대화>의 논의로부터 도출된 5가지 주요 특징들을 바탕으로 현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한국의 대일 여론이 급락하였으며 2030 청년세대가 이러한 추세를 주도한 점; 일본에서 대한(對韓) 호감도의 하락세가 반등한 점; 양국 국민들의 자국 정부의 상대국에 대한 정책과 태도에 대한 지지도가 30% 전후에 그치는 점; 양국 정부의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입장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바뀌고 있다는 점; 역사갈등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심각하다는 점을 토대로 현 상태를 방치할 경우 위기가 올 수 있으며, 반일과 혐한을 넘어서는 현명한 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양국에 촉구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2019년 7월 1일 아베 전 총리의 수출규제 선언으로 굉음을 내고 폭발한 양국관계는 화이트리스트 배제,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같은 경제갈등과 지소미아(GSOMIA) 종료 선언이란 안보갈등으로 이어지며 대형 외교 참사를 기록했다. 그 배경이 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란 역사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양국관계를 옥죄고 있다. 양국 정부간 교섭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서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으며, 법원으로부터 일본기업 자산에 대한 매각 명령과 현금화 조치가 취해지면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로 양국은 또 한차례 격랑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의 겐론(言論)NPO가 2020년 9월 공동으로 실시한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와 이어 양 기관이 공동 주최한 <제8회 한일미래대화>의 논의로부터 도출된 현재 한일관계 주요 특징들을 뽑아내고 해석과 처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특징은 한국의 대일 여론이 급락하였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해 온 대일 호감도가 20% 포인트 급락하였고, 비호감도는 22% 포인트 증가하였으며, 2030 청년세대가 이러한 추세를 주도하였다. 둘째는 일본에서 대한(對韓) 호감도의 하락세가 반전하였다는 점이다. 일시적 반등인지 상승 추세 전환인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셋째, 양국 국민은 자국 정부의 상대국에 대한 정책과 태도에 대해 30% 전후의 지지도만을 보이고 있는 바, 이는 현재 상황 그리고 정책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구체적으로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을 둘러싼 양국 정부의 입장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바뀌고 있다는 점, 따라서 새로운 접근법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을 특기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양국 정부가 장기 교착 국면을 타개하지 못하고 사태를 방치할 경우 또 한차례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편으로 국민 여론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고 징용문제에 대한 전향적 정책을 향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동시에, 다른 한편 양국간 신뢰 회복을 위한 포괄적 전략을 동시에 마련하여야 한다. 
 
 
1. 한국의 일본 호감도 급락, 청년세대의 이탈 
 
   · 한국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 19.4%p 급락, 비호감도 21.7%p 급상승
   · 2030 청년세대의 반감 급증, 비호감도 급상승을 견인
 
이번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가장 큰 변화는 한국 내 대일 호감도의 급락이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2019년 49.9%에서 71.6%로 급증하였다. 반대로 일본에 대한 긍정적 인상은 2019년 31.7%에서 12.3%로 급감하였다. 한국 내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2015년 이후 증가 추세였음을 감안 시 이 변화는 자못 충격적이다(15.7%->21.3%->26.8%->28.3%->31.7%).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2015년 72.5%에서 2019년 49.9%로 하락추세를 나타냈으나, 2020년 71.6%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2015년과 유사한 수준으로 치솟았다. 반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하였고, 긍정적 인상은 상승하였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지속적으로 하향추세였으나(29.1%->26.9%->22.9%->20%), 2020년 호감도가 5.9% 포인트 상승한 25.9%로 반등을 나타냈다. 
 
[그림 1] 상대국에 대한 인상(2013-2020)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래 한일 양국 국민의 선호도 변화가 10% 한계 내에서 변동해왔음을 비추어 보면 이번 20% 내외의 급격한 변화는 분명히 추세를 이탈한 수치이다.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그림 2] 한국 연령별 선호도 변화 추이
 
 
[그림 3] 일본 연령별 선호도 변화 추이
 
 
[그림 4] 2020년 한국 연령별 호감도 증감 
 
 
그림 2와 그림 3에서 보듯이 그동안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를 견인했던 연령층은 20대와 30대이다. 양국 모두 청년층의 호감도가 여타 연령층에 비해 높았음을 고려하면 2020년 한국측 결과에서 청년층의 호감도 급락, 그리고 비호감도의 급증은 심각한 변화이다. 그림 4에서 보듯이 30대의 비호감도는 전년대비 무려 83.6% 치솟았고, 호감도는 전년대비 71.2% 하락하였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연령대인 20대 역시 비호감도는 55.8% 증가, 호감도는 53.8% 감소하였다. 따라서 올해 한국의 대일 호감도 급락과 비호감도 급증은 대체로 2030 세대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30세대의 대거 이탈 요인은 무엇일까. 
 
최대 요인은 2019년 7월 당시 아베 정부의 반도체 부품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선언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경제의 생명선이라 불릴 만큼 전략산업이므로 이를 정조준한 수출규제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라 할 수 있다. 당시 정부가 이를 “경제침탈”로 규정할 만큼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아베 정부는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체계에 문제가 있어 제재를 가한다는 즉, 국가안보 차원에서 수출규제를 실시한다는 논리를 펼쳤으나, 한국 국민 중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설사 관리체계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것이 일본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어서 그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를 취한 것인지 대다수의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이 조치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혹은 무대응)에 대한 일본정부의 강한 불만이 보복조치로 표현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또 추후 양국 간 교섭과정에서 그렇게 밝혀졌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과 수출규제 조치 과정에서 드러난 아베 전 총리와 핵심 지도부의 한국에 대한 태도와 발언이다. 기왕의 양국간 갈등은 역사문제에 한국이 공세를 펼치고 일본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유형이었다면, 아베 정부는 한국측의 역사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태도를 공격하며 맞대응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아베 전 총리는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 ‘법의 지배가 통용되지 않는 나라,’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반복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이런 언사를 관방장관이나 외무대신도 반복하였고, 심지어 고노 다로 당시 외무대신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 맹공을 퍼부었다. 국교정상화 이래 일본의 정부지도자가 한국정부의 정책과 태도를 비판한 적은 있어도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비난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렇듯 거친 언사는 한국정부와 언론의 강한 반발을 초래, 국민감정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 양국간 감정적 대립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2030세대의 반응이다.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수치심, 적개심, 열등감에 따른 반일감정으로 일본을 대하지 않는다. 한국을 일본과 다름없는 선진국으로 동등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을 매력적인 대중문화와 식문화를 가진 쇼핑과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의 대일 인식 호전을 주도한 점은 여기에 있다. 반면, 지난 1년간 2030세대는 일본의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와 언행이 부당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대일 상품·여행 불매운동 등으로 강렬히 표출해 왔다. 기성세대의 역사로부터 형성된 뿌리깊은 반일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부당한 정책을 시정할 때 이들이 바로 호감의 추세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2. 일본의 여론, 바닥을 찍고 예상외 반등 
 
   · 반한(反韓), 혐한(嫌韓) 여론의 한계
   · 중요성 인식 여전하고, 관계 개선 지지
 
한국의 대일 호감도 급락과는 반대로 일본의 대한 호감도는 반등하였다. 2013년 31.1%에서 꾸준히 하강하여 작년 20%까지 내려온 일본의 호감도는 지난 1년 양국간 외교전쟁을 방불케 하는 거친 비난과 경제보복 조치의 교환, 상호 경원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추가 하락이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5.9% 반등에 성공하였다([그림 1]). 이번 변화가 지속적 상승 추세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분석을 해 보아야 하는 과제이지만, 일본의 하강 곡선이 바닥에 근접하면서 반등에 성공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한국의 미디어와 지성계는 일본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반한과 혐한 분위기에 깊은 우려를 표시해 왔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는 이유([그림 5])를 보면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 여론은 한국의 특정 정책이나 사건에 대한 반대보다도 한국인의 태도에 대한 위화감을 표시하고 있다. 조사 결과, 작년과 다름없이 ‘역사문제 등으로 일본을 계속 비판해서’(55.7%)라는 항목을 첫째로 꼽고 있는 것처럼 일본 국민은 역사 인식 자체보다는 한국이 역사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위화감을 보이고 있다. 이어서 ‘한국인의 감정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23.1%)’, ‘한국인의 이해하기 힘든 애국적 행동 때문에 (21.6%)’ 등을 꼽고 있듯이 일본 여론은 한국이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역사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본다. 일종의 정체성 시비라 할 수 있다. 
 
[그림 5] 상대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유
 
 
반면 일본 국민 다수는 여전히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계 개선 노력을 지지한다. 일본 국민의 과반인 48%는 한일관계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그림 6]), 38.8%는 관계개선을 지지하고 있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거나(7.3%) 한일관계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는 의견(7.6%)에 비해 다수를 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림 7]). 
 
일본사회에서 한일관계를 지탱하는 20%의 하한선이 확인되었다고 해서 향후 반등을 이어갈 것이라고는 예단할 수 없다. 여론이 20% 언저리에 머물 것인지 새로운 추세선을 만들어 낼 것인지는 양국 정부의 정치력과 외교력에 달려 있다. 
 
[그림 6] 한일관계의 중요성(2013-2020) 
 
 
[그림 7] 한일관계 회복 노력 
 
3. 상대국에 대한 자국 정부의 정책 지지도 높지 않다
 
   · 한국의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호감도, 일본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1%대
     - [한국] ‘한국에서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인상, 호감 1.1%, 비호감 90%
     - [일본] ‘일본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인상, 호감 1.5%, 비호감 49.7%
   · 한국정부의 대일정책 지지도 30.8%, 일본정부의 대한정책 지지도 29.6%
 
한일 양국 국민의 상대방에 대한 낮은 호감도보다 더욱 낮은 것이 바로 상대국 정상에 대한 호감도이다. 한국인의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호감도와 일본인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1% 남짓하며, 한국인의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비호감도는 역대 최고로 90%에 이르고 있다. 상대국 전체에 대한 인상이 한국은 12%(2019년은 32%), 일본은 26%라고 보면, 국가와 지도자 혹은 정부 사이에 일정한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상대국이 자국 지도자에게 강한 비호감을 표시하는 경우 상대국에 대한 외교 (특히 공공외교)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 실제로, 일본인의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긍정평가는 2.8%, 부정평가는 57.3%이며, 한국인의 아베 정부의 대한정책에 대한 긍정평가는 5.4%, 부정평가는 78.4%에 이르고 있다. 
 
[그림 8]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 평가 
 
[그림 9] 아베 정부의 대한정책 평가
 
나아가 양국 국민은 자국의 상대국에 대한 외교정책에 제한된 지지를 표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아베정부의 대한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는 29.6%이며,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는 30.8%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에 대한 40-50%대의 지지도에 비하면 10% 이상 낮은 수치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상호 호감도 저하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양국 국민의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8년간 한국의 경우 80% 이상, 일본의 경우 50% 내외의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그림 6). 이렇듯 한일관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수교 이래 최악의 관계에 대한 불편함, 특히 역사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경제보복, 안보보복으로 이어지는 사태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대법원 판결 처리에 양국 정부간 교착상태가 2년에 이르는 사태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상대국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한일 정부 당국은 이러한 여론의 변화를 반영하는 정책 조정이 필요한 시점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4.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결, 국민은 새로운 해법을 원한다
 
   · 한국에서는 ‘사법부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배상조치 혹은 강제집행’을 선택한 응답이 2019년 58.1%에서 36%로 급감
   · 일본에서는 ‘한일협정에 배치되는 강제집행에 일본기업이 따를 필요 없다’는 응답이 29.3%
 
양국이 당면한 최대 현안이며 시급한 해결 과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에 따른 배상 판결을 둘러싼 양국간 시비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결과는 해법과 관련한 여론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다. 핵심은 한국정부의 원론적 입장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크게 하락한 점이다.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기업이 배상조치해야 하며, 이에 불응할 경우 강제 집행해야 한다’는 해법이 작년 58.1%에서 올해 36%로 22% 포인트 하락하였다. 이와 함께 현재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방안 즉, 양국 기업과 민간이 재단을 설립하여 피해자에 보상해야 한다는 방안(6.2%)을 더하면 약 42%의 국민이 현재 정부의 노선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한국 정부와 민간이 금전적 지원을 대신 맡는다는 방안(18.2%), 중재 혹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13.2%) 등의 의견이 2019년에 비해 지지가 증가하였고, 놀랍게도 일본 정부의 입장인 ‘대법원 판결이 한일협정에 배치되므로 일본기업이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14%의 지지를 얻고 있다. 요컨대 한국측에서는 정부가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10] 대법원 판결로 양국이 대립하는 상황에 대한 해결 방안
 
 
일본의 경우도 흥미롭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배치되므로 일본기업은 한국정부의 집행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일본 국민의 29.3%만이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34.6%로 전체 응답자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란 의견도 15.9%로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듯이, 다수는 어떤 해법도 가능하지 않거나 쟁점과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의사 표시가 어렵다고 본다. 일본 여론 역시 정부가 취하고 있는 원칙적 입장에 대해 제한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입장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요컨대, 일본 측에서는 한일 갈등 상황에서 한국이 잘못하고 있다는 여론, 한국이 한일협정이란 국가간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어 있고, 해결 가능성은 낮다는 인식, 특히 문재인 정부와는 어렵다는 인식이 드러나고 있는 반면, 한국측은 전향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5. 역사갈등의 부정적 파급효과 심각: 상황 방치하면 위기 올 수 있다
 
   · 무역분쟁에 대해 강경 대응보다는 조속한 해결 선호
   · 현금화 상황이 도래할 경우 상호 강경 대항조치 지지
   · 수출 규제 이후 윈윈 협력의 가능성 
 
강제동원 판결 처리를 둘러싼 정치적, 외교적 대립과 갈등은 경제와 안보관계에 부정적 파급효과(spillover)를 가져오고 있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와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검토라는 보복 조치로 극명하게 드러난 이른바 정경분리 원칙의 훼손은 수교 이래 한일관계에 유례없는 최악의 선례를 남기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국 경제협력 및 안보협력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확대한 데 있다. 
 
한일 경제관계에 대해서 한국 측은 일본과 ‘윈-윈(win-win) 관계 가능’하다는 응답이 41.6%에서 34.3%로 감소하였고, ‘윈-윈 관계 어렵다’가 37.4%에서 45.4%로 증가하였다. 일본에서는 긍정적 의견이 43.6%에서 25.1%로 급감하였고, 부정적 의견은 19.7%에서 37.7%로 급증하였다. 양국간 ‘경제적 상호의존’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것이다. 
 
[그림 11] 한일 경제관계에 대한 의견
 
군사안보 면에서도 지난 1년 사이 양국간 신뢰의 하락이 두드러졌다. 한국인에게 일본에 대한 군사적 위협인식은 38.3%에서 44.1%로 증가하였다. ([그림 12]) 일본의 경우는 미세한 증가를 보였다 (12.3% ->13.4%). 보다 구체적인 질문으로 양국간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독도 주변에서의 분쟁 가능성에 대해 한국에서는 ‘수년 이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13.7%), ‘먼 장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36.1%)는 응답율이 증가하였다.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응답은 54.8%에서 39.5%로 감소하였다. 일본에서도 양국간 군사분쟁 발생 가능성이 ‘먼 장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19%)는 응답이 증가하였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응답이 2019년 57%에서 40.9%로 감소하였다.
 
[그림 12] 군사적 위협을 느끼는 국가·지역
 
 
[그림 13] 독도 주변에서 한일 군사분쟁 발생 가능성
 
한편, 한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2019년 66.2%에서 2020년 53.6%로 감소하였다. ‘어느 쪽도 아니다’가 25%에서 35.4%로 증가하였다. 일본에서도 ‘어느 쪽도 아니다’가 45.8%에서 50.6%로 과반수를 넘어섰다. 2019년 지소미아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바 있듯이, 무역분쟁만큼이나 군사분쟁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였고, 한일 간, 한미일 간 안보협력에 대한 조심스러운 입장이 드러났다. 
 
[그림14]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 필요성
 
이렇듯, 한일 양국 사이 경제적, 군사적 위협 인식의 증대는 역사문제로 인한 외교 갈등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상호 전략적 이익의 수호를 위해서 현안의 해결이 더욱 중요하다. 문제는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집행 과정에서 일본 자산의 현금화가 단행될 경우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가 예정되어 있고 이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의 54.2%가 대항조치에 찬성하는 반면, 대항조치 반대는 5.4%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 무역분쟁 해소를 위해 서로 타협하며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30.6%),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분쟁상태는 우려스럽다’(17.7%) 등 협상론이 ‘피해를 입더라도 일본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17.9%) 등 강경론보다 우위에 있다. 문제는 일본이 대한 보복조치를 단행할 경우이다. 여론은 ‘맞대응은 보복의 악순환을 야기하므로 대항조치 취소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33.9%) 보다는 ‘한국정부도 대응조치를 강구해야 한다’(54%)는 입장이 우위에 있고, 만일 대항조치를 취할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강력 대응해야 한다’(46%) 또는 ‘지소미아 종료조치 같은 안보수단을 동원해야 한다’(9.4%)와 같은 강경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렇듯 사안을 방치하면 강경론이 부상하고 대치와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결론에 대신하여
 
양국 국민들은 한일관계 악화, 정부간 대치 국면의 장기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외교적 교착상태가 1년 4개월을 넘어서고 있으며 또 한차례 위기의 파고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국민 여론은 가능한 한 여러 옵션을 고려하며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 시한을 연장하면서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찾아달라는 데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정부 간 불신과 감정 대립이 위험수위에 접근해 있다는 점이다. 강제동원은 한일 갈등의 현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두 정부는 상호 무시와 보복 게임을 반복하면서 불신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한국 대법원 판결 시비, 동해상 일본 초계기 레이더 照射 사건 진실공방, 수출규제 보복과 응수, 지소미아 종료 선언 등을 거쳐, 올해 코로나 19로 양국이 사실상 격리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는 비(非)대면 외교전쟁에 여념이 없다. 
 
이런 상태로는 설사 강제동원 관련 묘수를 찾아낸다 해도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이중주로서 갈등하는 양국관계 파고 속에서 난파할 수 있다. 징용문제를 해결하면 한일관계가 정상화될거라는 건 희망사항이다. 관계회복을 위한 보다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시각에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여기서 양국 시민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양국 정치 지도층은 근대 민족주의의 배타적, 퇴행적 요소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도층이 반일과 혐한의 감정 대응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이에 따라 부정적 여론이 환기되어 국민감정 충돌의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양국 시민들은 국가를 우회하는 여러 교류를 지키고 확산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담당할 20-30대 청년세대 사이의 건강한 대화와 이해 증진이 핵심적이다. 양국 시민사회는 탈근대적, 탈국가중심적, 탈민족주의(배타적 민족주의)적 사고에 기반하여 공생과 번영의 관계를 이끄는 중심 행위자이다. 이들이 주도적 역할을 통해 청년세대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 등장하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 손열_ 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 최근 저서로는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019), 32, 6,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이은지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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