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센터

한일관계 재건축

논평·이슈브리핑

[EAI 일본논평]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과 아태지역 안보질서 전망

  • 2020-06-05
  • 박영준

ISBN  979-11-86226-34-6

저자

박영준_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일본 도쿄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육사 교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자문위원,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위원회 연구위원,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초빙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외교안보정책, 동아시아 국제관계론, 국제안보 등이며, 주요 저작으로는 《제3의 일본》(2008),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공저, 2010), 《일본과 동아시아》(공저, 2011),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공저, 2011), 《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2014) 등이 있다.

 

 


 

 

지난 4월 27일부터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이 미국을 국빈방문하여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서 외교 및 방위담당 장관들은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가이드라인 2015) 등 중요한 문서를 공동 발표하였다. 국내 언론에서는 방미 중 아베 수상의 역사인식 표명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였으나, 우리로서는 세계 1위와 3위의 경제대국들이 장차 전개될 아시아태평양 질서와 구조 변화를 전망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의 전략방침을 표명한 “가이드라인 2015” 등 양국 합의문서들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태지역에 대한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포석은 이미 2010년 전후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양 방면의 안전보장 확보를 자국 외교안보정책의 핵심목표로 간주하였다. 이를 위해 유럽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주축이 된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나토)를 결성하였고, 아태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과의 양자동맹 체결을 통해 질서안정을 도모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역대 미국 정부가 그럼에도 유럽과의 관계를 우선시해 왔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아태지역의 경제적 활력, 특히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전략적 대응의 필요성에서 소위 아태지역에 대한 재균형(rebalancing, 리밸런싱)정책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의 부상, 그에 따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의 진출과 기존 지역질서에 대한 도전, 그에 더해 아프간-이라크 전쟁 종료 이후 지속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와의 분쟁 등은 미국이 우선적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될 도전 요인이었다.

 

2012년 1월에 발표한 “국방전략지침”, 2014년에 발표한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 그리고 2015년 2월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 등을 통해 미국 정부는 스스로를 아시아태평양 국가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부상과 해공군력 강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과 군사적 도발, 그리고 중동지역 정세 불안정 등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본, 한국, 호주 등과의 동맹체제 및 기타 국가들과의 파트너십 강화를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

 

이러한 미국의 아태지역 재균형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한 국가 중의 하나가 일본 아베 정부였다. 2012년 후반기에 취임한 아베 수상은 한국이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역사나 영유권 문제에 관해 말썽만 일으키는 문제아 같은 존재로 비추어졌지만, 아태지역에 대한 인식과 대응정책 측면에서는 미국과 찰떡 같은 보조를 맞추면서 전략과 정책을 추진해 왔다. 2013년 12월에 공표한 일본 “국가안보전략서”와 “방위계획대강”에서 일본도 중국의 해공군력 현대화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추세를 아태지역에 대한 잠재적 위협요인이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기동방위력” 개념에 입각한 일본 안보능력의 확충과 미일동맹, 그리고 한국, 호주 등과의 안보협력 확대를 표명하였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아베 정부는 그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설치, 집단적 자위권 용인 결정, 무기수출금지 3원칙의 폐지와 새로운 방위장비이전 3원칙 채택, 우주 및 사이버 공간에서의 안보대응능력 강화 등 전향적인 안보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 같은 정책 패키지들이 한국과 중국에서는 군사대국화의 행보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은 “아미티지-나이 리포트” 등을 통해 이전부터 미국 조야에서 지속적으로 일본에 요구된 정책제안들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상호 조율 속에 미국 정부는 아베 수상에게 국빈급 방문의 기회를 부여하였고, 아베 수상은 하버드대학 및 미국 상하양원 연설, 그리고 외교 및 방위관련 장관들이 서명한 “가이드라인 2015” 공표 등을 통해 일본이야말로 아태지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을 도와 국제질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동맹국가임을 강력하게 역설하였다. 종전에 개정되었던 “가이드라인 1997”과 비교하여 “가이드라인 2015”는 미일동맹의 적용범위와 연합작전태세를 일층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 1997”에서는 미일동맹 적용범위를 주변사태 및 일본에 대한 직접 공격사태 등으로 상정하였으나, “가이드라인 2015”에서는 이에 더해 일본 이외의 제3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가해질 경우, 지역 및 국제안보질서 차원에서의 평화와 안보, 그리고 우주 및 사이버 공간에서의 안보를 위한 협력까지 상호 안보협력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였다. 1997년 가이드라인이 제정되었을 때 당시 일본 정부는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군사작전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였지만, 이제는 지구 반대편뿐 아니라 사이버 공간 및 우주 영역에까지 미일 간 안보협력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또한 “가이드라인 2015”에서 미일 양국은 자위대와 미군 간 작전상의 역할분담을 협의하기 위한 “동맹조정 메커니즘”(Alliance Coordination Mechanism)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한미동맹과 달리 미일동맹은 평시뿐 아니라 전시작전권도 개별 국가가 보유하는 체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연합작전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종종 제기되어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본 방위성 내 중앙지휘소에 자위대 및 미군이 공동의 작전협의기구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한편 “가이드라인 2015”에는 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명시적으로 표명되지 않았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도 동시에 모색하고 있는 미국의 신중한 대응방침이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이드라인 2015”와 동시에 발표된 양국 외교 및 국방장관 명의의 “미일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는 중일 간에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센가쿠제도가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기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명시적 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일본 측 입장이 가이드라인 본문은 아니지만, 2+2의 공동성명 형태로 표현된 것이어서 양측의 입장이 절묘하게 절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호 합의를 통해 미국으로서는 평화헌법 하에서 제약되어 왔던 일본의 안보능력 및 역할을 나토동맹 하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이 수행해 온 반열까지 끌어올리게 되었고, 일본으로서는 미일동맹 글로벌화를 통해 앞으로도 평화헌법 개정 등 보통군사국가화를 향한 도정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베 수상의 방미 연설을 통해 역사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표현이 얼마나 담길 지가 미국 일각에서나 한국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같은 비판적 의견을 의식하여 아베 수상은 상하양원연설이나 하버드대학 질의응답 과정에서 “지난 대전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거나, 역사문제에 대한 이전 수상들의 견해를 계승할 것이라는 점을 표명하였다. 이 같은 설명들이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수용되지 못했지만, 미국의 시각에서는 나름의 성의를 다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로서는 아베 수상의 방미와 연설, 그리고 미일동맹 글로벌화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비교적 신중하고 차분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아베 수상은 방미 전인 4월 22일, 반둥회의에 참석하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관계개선 방향에 합의한 바 있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 3월 28일의 보아오(博鰲)포럼 연설을 통해 2020년까지 한중일 및 아세안 국가를 포함한 경제공동체 건설의 비전을 밝힌 바가 있다. 지난 5월 26일, 중국 국방부가 처음으로 공표한 “군사전략서”(China’s Military Strategy)는 실은 미국이 지난 2월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와 이번에 미일 양국이 공동발표한 “가이드라인 2015”에 대한 응답을 담고 있는 문서로 볼 수 있다. 이 전략서는 미국이 역내에서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가 지역 내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적극방어’(active defense) 개념에 따라 육해공군 및 제2포병의 역할을 확대할 것을 공표하면서도, 미국과는 신형군사관계(new model of military relations)를, 그리고 주변국과는 친성혜용(親誠惠容, friendship, sincerity, reciprocity, inclusiveness)의 정신 하에 군사협력을 추진할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전략에 따라 중국은 이미 미중 간에 전략경제대화 및 안보대화 채널을 통해 상호 경쟁 속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과도 해상안전보장 메커니즘 구축을 위한 국방당국 간 실무대화 등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상당 기간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아태지역 주요 국가 간에 상호 결정적인 파국을 방지하면서, 역내에서의 영향력 확보 및 유지를 위한 경쟁과 협력의 게임이 전개될 것으로 보여진다.

 

역내 주요 국가들 간에 일방적인 대립이나 갈등이 아니라 경쟁과 협력의 공간이 병존하는 것은 한국외교에게 있어 국가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남겨진 강대국 간 협력의 틈새 속에서 역내 다자간안보협력의 지평을 넓혀가고 북한문제 해결 방향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것이 한국외교가 보다 중점을 두어야 할 중요 과제이다. ■

 

 


 

 

[EAI 일본논평]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일본연구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기획하고 발표합니다. 일본에 관한 주요 현안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과 분석을 제공하며, 바람직한 정책 개발을 위한 의견을 개진합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