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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30호] 꼬인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제언

  • 2020-06-05
  • 신각수

ISBN  9788992395373

신각수 박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외교통상부 제1차관, 제2차관 및 주일본 한국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한일관계의 현상

 

올 여름은 지구촌이 온난화의 열풍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한일관계에는 차가운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올해 초 양국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작년 후반기 크게 악화되었던 한일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8개월이 지난 지금 양국 국민의 감정은 꼬이고, 정부 간에도 고위레벨 교류가 거의 끊어진 상태로 오히려 더 후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작년 초부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한일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악순환의 과정을 밟는 가운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동력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한일관계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착실히 발전되어 왔다. 양국관계는 초기 정부 주도의 관계에서 민간 레벨까지 포함한 중층적 관계로 확대·심화되었다. 만화, 애니메이션, 패션, 건축, 일식 등을 중심으로 한 일류는 이미 오래 전에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드라마, 영화, 케이팝(K-pop), 뮤지컬, 한식 등이 주도하는 한류도 2000년대 초 일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여 이제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양국 국민의 왕래는 매년 550만 명을 넘어섰고 매주 670편의 항공기가 양국 상공을 날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관계도 무역과 투자 면에서 산업분업의 형태로 착실히 진전되어 제3국에서 광범위한 협력 사업을 펼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관계 강화는 최근 한일관계에서 보듯이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극단적 관계 악화를 막는 안전판 역할은 하지만, 이를 넘어설 만큼 강력한 기반은 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한일관계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발전을 하다가도 역진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상호신뢰의 관계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건전하고 안정된 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한일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

 

동북아의 전략 환경은 북한문제, 중국 부상,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 등으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현저히 증가하였다. 이런 전환기적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악화는 동북아 지역의 어느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루즈-루즈(lose-lose)’ 상황이다. 아시아에서 단 두 나라뿐인 OECD회원국 한국과 일본은 외교안보적 긴장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공존하는 ‘아시아 모순(Asian Paradox)’을 해결해 나가는 데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양국관계의 빠른 복원을 통해 상생과 공영에 바탕을 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일관계의 악화 배경을 살펴보고, 향후 한일관계 전망과 함께 한일관계의 복원 및 강화 방안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관계악화의 배경

 

최근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있는가? 편의상 한국의 관점과 일본의 관점을 구분하여 살펴본다.

 

우선 한국의 시각에서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요인을 살펴보면, 가장 근본적 요인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퇴영적 자세이다. 아베 정부는 당초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듯하였으나, 4월 이후 “침략에 대한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거나,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대한 수정을 시사하거나, 고위각료가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등 퇴행적인 행보를 본격화했다. 이러한 발언, 행위, 조치들은 일본 정부가 스스로 발표한 과거사 관련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한일관계의 기저를 위태롭게 하는 반역사적 행보였다. 이러한 일본의 행보는 피해자 한국인들의 아물어가는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함으로써 대일감정을 악화시키고, 대일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일본사회에서 전전(戰前) 경험이 없고 역사 인식이 낮은 세대들이 주류로 등장하는 한편 전후청산에 적극적인 진보세력이 퇴조함에 따라 과거사관련 퇴영적 자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한국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둘째, 한국 내에는 ‘강한 일본’을 지향하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강하다. 아베 정부가 들어서서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지난 20년간 디플레로 인한 ‘성장 없는 경제’와 수년간 중참 양원의 지배권이 여야로 나뉘는 이른바 ‘뒤틀림 현상’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에서 벗어나려는 일본 사회의 욕구가 우경화 환경을 조성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동북아의 세력전이로 일본이 2010년 세계경제 2위의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중국의 급증하는 군사비 및 반접근·지역거부(A2AD)전략에 대해 안보불안을 느끼는 것도 우경화노선 추진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국방군을 창설하려는 시도들은 20세기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한국 국민들에게는 군사대국 일본의 부활에 대한 위협으로 비춰진다. 한국 국민은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일본’을 보면서, 보통국가화라는 명분하에 추진되고 있는 일련의 행보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의 관점에서 본 한일관계 악화요인을 검토해 본다. 첫째, 일본 내에 퍼져있는 과거사 문제에 관한 일종의 피로현상이다. 아무리 과거사와 관련하여 반성과 사죄를 하여도 한국의 요구는 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양국 국민 간에 과거사 관련 인식의 갭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과거사와 관련하여 한국 법원이 내린 일련의 판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한일관계의 역학 변화에 따른 일본의 대한인식 변화를 들 수 있다. 한국은 2000년대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본에 뒤져 있었으며, 늘 일본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추구하여 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이 일본과 대등하거나 앞서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을 경시한다는 일본인들의 인식도 자라나게 되고, 이는 한국의 대일정책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최근 일본 내에 한국을 경험한 언론인이나 학자들이 ‘한국 때리기’에 나서는 현상도 이런 인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국력신장으로 한일 간에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좋은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긍정적 해석이 필요하고, 한국 내에서는 일본이 왜 이런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살펴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근 일본 내에서 한국이 종래 일본 중시 태도를 변경하여 중국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종래와 달리 일본에 앞서 중국을 먼저 방문하고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가 심화되는 반면, 한일관계는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와 한중관계는 상호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제로섬 게임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해의 산물이다. 이러한 잘못된 시각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시장과 북한 문제라는 측면에서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중관계가 강화되어도 고유의 전략적 이해가 있는 대일관계를 소홀히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향후 전망

 

한일관계는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한국 정부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일관계 중시 자세를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한일관계 개선은 물론 한일 양국이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의 실현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아가자고 제안하였다. 이번 경축사는 지난 3.1절 경축사에 비해 절제된 표현으로 한일관계의 중요성과 함께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일본 측의 성의를 촉구하였다. 그런 점에서 한일관계 개선 여부는 일본 정부의 향후 정책방향에 달려 있다.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우선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아베 정부의 과거사에 관한 퇴영적 자세에 있는 만큼 총리관저 주도의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어떤 방향을 설정할 지가 관건이다. 아베 정권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2-3년간 안정된 집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아베 정부가 뒤틀림 현상을 극복하여 얻게 된 정치적 자산을 어떻게 행사하는가에 따라 한일관계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베 정부의 당면 과제는 아베정권의 지지 근간이 된 아베노믹스의 성공이다. 아베노믹스를 지탱하는 3개의 화살 가운데 금융완화와 재정투융자의 증대는 비교적 쉽게 효과를 보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과제인 성장정책은 다양한 이해의 조정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자산을 투입해야 한다. 따라서 대외정책 면에서 주변국과 마찰을 야기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역사문제나 우경화 정책 면에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민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이 기대된다. 물론 야당도 어느 정도 견제역할을 하겠지만, 현재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전반이 사분오열 되어있고 의회 세력분포에서 현저한 열세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와 함께 미국의 역할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미국은 일본의 과거 회귀적 역사인식이 촉발하는 동북아 긴장 조성이 미국이 추구하는 동북아의 전략적 이익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일본에 자제를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축출과 무력진압, 이란 핵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교섭, 시리아 내전 수습, 아프가니스탄 철군, 알 카에다의 세력신장 등으로 인하여 중동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일본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으로 인한 대아시아 정책이 가져올 부담 증가를 더욱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전후질서를 형성한 미국으로서는 패전국 일본이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전후질서의 기본 틀을 흔드는 것을 묵과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전략 구도를 실현시키려면 일본이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과거 반성의 토대 위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도록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퇴영적 일본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향후 동북아 전략 환경의 변화도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전략 환경이 불안해질수록 일본 국내에서는 우경화 행보를 지지하는 여론이 증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센가쿠(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수교 후 최악이라는 일중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최근 동향을 보면 당분간 일중관계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럴 경우 일본과 중국 간에 다양한 형태의 충돌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 내에서 극단적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한편 최근 북한의 행보에 비추어 당분간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제기하는 안보불안도 일본 내 보수우경화 움직임을 부추기게 된다는 점에서 변수로 보아야 한다.

 

해결방안

 

이상의 한일관계의 악화 배경 및 향후 전망에 비추어 한일관계를 조기에 복원하고 보다 안정되고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 검토해 본다.

 

첫째,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바로 현재의 한일관계에 적용된다. 무엇보다도 한일 간에는 신뢰가 무너졌다.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한일관계의 회복과 도약을 위한 첫걸음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는 자세를 분명히 하여 20세기의 분열과 충돌의 역사가 재현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한국으로서도 일본과 다양한 채널에서 대화와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가 더 이상 악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전후 평화헌법 아래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균형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과거사와 관련해 가장 큰 현안인 군대위안부 문제의 조기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현재 군대위안부의 평균연령이 87세로 57명밖에 생존해 있지 않은 현실과 이 문제가 가지는 높은 상징성에 비추어 양국은 시급히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역사문제는 일본 정부가 천명한 기존 담화의 문언과 정신에 맞추어 행동하는 가운데,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단상태에 있는 한일역사공동위 제3기를 조기에 발족시키고 한일 공동역사교과서 편찬 작업을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독일이 인접국인 프랑스 및 폴란드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셋째, 일본 정치인과 국민을 구분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 사회가 보수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후 평화헌법을 통해 배양된 평화와 번영에 대한 자의식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 헌법 9조 개헌 및 국방군 명칭 변경문제에 관한 상당한 반대 의견의 존재가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야당분열, 취약한 시민사회, 집단주의적 성향 등으로 이런 여론이 일본 정치에 잘 반영되지 않는 문제점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냉철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일본 내의 견제세력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우경화세력에 힘을 보태주어 예언이 현실화되는(self-fulfilling prophecy)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금번 8·15 경축사에서 과거사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보여준 절제된 대응은 평가받을 만하다.

 

넷째, 일본의 제반 정책을 추상적인 우경화라는 프레임으로 일괄적으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과 조치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국익에 입각한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동북아의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까지 우경화정책으로 비판할 경우 진정한 의미의 우경화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정당성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 일본도 안보관련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 투명성을 유지함으로써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이해를 얻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 가운데서도 역사를 직시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의 안보전략 전환의 ‘의도’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어 결국 신뢰를 저해하게 한다는 점을 일본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일관계가 정치적으로 정체되더라도 양국 간에 진행되고 있거나 추진되어야 할 협력 사업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도록 상호 노력해야 한다. 종래 한일관계가 정치적으로 긴장되더라도 ‘정냉경열’ 현상이 유지되었으나 최근에는 비정치적 분야에까지 정치적 긴장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그렇듯이, 인접국 관계에서 오는 긴장 국면을 한일 양국도 피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양국은 관계가 일시적으로 어려워지더라도 다른 부문에서는 차분하게 교류와 협력을 유지하는 성숙한 자세를 배양해 가야 한다. 더 나아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역발상이 요구된다.

 

여섯째, 양국 정부는 전략적 오해를 회피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앞서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 가운데 일정 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런 오해는 연쇄 반응을 불러 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다양한 채널에서 전략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 언론이 이러한 전략적 오해를 확산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SNS를 통한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의 유통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속한 대응으로 차단시킬 필요가 있다. 한일 정부가 공공외교 차원의 포럼이나 대화를 추진하는 것도 오해를 차단하고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한일관계의 중장기적 발전방향에 대한 모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우선 2015년 수교 50주년에 맞추어 한일관계를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고 한일관계의 새로운 50년을 내다보는 포석을 놓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화해를 넘어서 구주통합을 가능하게 했던 1963년 독일-프랑스 엘리제협정에 버금가는 포괄적 교류협정 체결을 모색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양국 정부와 국민간의 교류협력사업, 특히 청소년교류, 지방교류의 제도화 및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 양국 국민의 상호이해와 신뢰야말로 한일관계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여덟째, 한일관계를 다룰 때 양국관계의 시각을 넘어 동북아 차원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는 양국 차원을 넘어 동북아 전체 구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일관계가 대미, 대중, 대러, 대북한 관계에 주는 함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균형 있는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동북아 전체구도의 변화 추이를 감안한 복합적 시각으로 한일관계를 다룸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정책을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홉째, 같은 맥락에서 한국은 동북아 지역협력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촉진자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일중관계의 악화로 금년 한일중 3국 정상회담 개최가 불투명해지는 등 한일중 3국 협력에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양국관계의 악화가 3국 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가교 역할 수행을 위한 외교 노력을 배가하여야 할 것이다. 동북아 세력전이과정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동북아 지역협력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는 현재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후퇴할지를 결정하는 중대변환기에 서있다. 그러나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왕도는 없다. 양국 정부와 국민은 감정대립의 악순환을 빨리 깨고, 상호존중의 기반 위에서 양국의 전략적 이해에 입각한 냉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최근 한일관계의 위기를 21세기의 새로운 한일관계 패러다임을 만드는 중요한 기회로 삼는 지혜와 행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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