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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특별기획논평] 기로(岐路)에 선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 공생을 위한 한일 협력 모색해야

  • 2020-06-05
  • 손열

ISBN  979-11-88772-83-4 95340

편집자 주

"샹그릴라, 그 이후: 가속화되는 '인도·태평양 VS 일대일로' 구도와 한국의 전략" 특별 논평 시리즈의 세 번째 보고서로, 미중 경쟁 구도에서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분석한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의 논평이 발간되었습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개념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용하면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상 공식 외교 전략으로 이 용어를 먼저 사용한 국가는 일본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일본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은 전통적으로 상업적 공간이었으나, 중국의 부상으로 역내 세력권이 확장되면서 지정학적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덧붙입니다. 더욱이 최근 동 지역에서의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의 인태 전략은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바, 일본은 유사한 입장에 처해있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규칙기반질서를 공동 건축하는 창조적 외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샹그릴라의 조용한 파장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전략은 아베 신조 총리의 간판 외교정책이다. 그는 2018년 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을 일본 외교정책의 핵심 전략개념으로 설정하였고, 2019년 1월 이를 재천명하였다. 인태 개념이 국제무대의 전면에 부상하게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중 이 개념을 공식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지만, 실제 공식 외교전략 언어로 가장 먼저 사용한 국가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2016년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에서 두 대양, 두 대륙을 결합하는 지리적 공간을 설정하고, 여기에 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등 자유와 개방성이란 규범적 성격을 부여하였다. 이어 2017년 《외교청서(外交靑書)》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아베 자신은 제1차 아베내각 시절인 2006년 인도 방문 연설에서 두 해양을 연결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지역개념을 발신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인태 개념을 자신의 외교 브랜드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 밀고 있는 인태 개념 설정은 일본외교가 당면한 구조적 현실 즉, 부상하는 중국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문제와 관련된다. 인태는 중국의 주위(周圍)를 엮는 지리적 공간이고 중국의 대전략인 “일대일로”의 해양실크로드(=일로)와 지리적으로 중복되는 전략적 공간이다. 따라서 일본에게 인태 전략은 강대국 중국의 세력권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두 해양 네트워크의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지정학의 재현이다. 이는 곧 지역 내 주도국(즉, 미국, 일본, 호주, 인도) 중심으로 설정된 규칙과 규범의 네트워크 속에 중국을 편입시켜 변화를 추동하거나, 네트워크로부터 배제하여 길들이는 이중 전략을 드러낸다. 이 전략의 성패는 지경학적 수법을 중심으로 인태 전략의 핵심 축인 미국과 공조를 어디까지 해 나갈 수 있는지, 한국 등 의지국 연합(coalition of willing)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샹그릴라 회의를 통해 미국의 인태 전략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와 외교 3면에서 중국과 본격적인 경쟁을 선언함으로써 일본의 경제(지경학) 중심 노선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다루기에서 미국과 미묘한 편차를 보이는 일본은 전략적 조정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협력의 계기를 부여하는 상황이고, 한국은 이를 포착하여 보다 넓은 외교적 활동 공간을 확보해 가야 한다.

 

인도-태평양의 지정학

인태가 두 대양을 연결하는 해양의 공간이라면, 일본에게 해양은 전통적으로 상업적 개념의 공간이었다. 19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메이지 정부 핵심 인물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으로 대표되듯 일본에서는 안보 확보를 위해 한반도로 팽창하고자 하는 대륙의 지정학이 지배적이었던 한편,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상업과 이민으로 식민주의를 실천하는 평화적 팽창주의도 부상하였다. 토쿠토미 소호(德富蘇峰) 등은 군사력으로 대륙을 점유하고자 하는 지정학에는 엄청난 비용이 요구되고 성공 가능성도 낮으므로 교역과 투자, 이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해군력을 통해 태평양 무대를 적극 활용하자는 논의를 펼친 바 있다. 1920년대 국제협조주의로 이어지며 미국과의 교역과 평화공존을 강조한 태평양 개념은 1930년대 동아협동체 및 대동아공영권 등 대륙의 지정학에 압도당하면서 2선으로 밀려났다가 패전 후 화려하게 부활한다. 전후 일본은 태평양을 선진 공업국간 상업과 교류의 장으로 개념화하였고, 태평양 자유무역지대 등을 거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에 이르기까지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해양 네트워크를 생활공간으로 강조하였다. 특히 아태 공간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태평양의 선진경제권과 아시아의 신흥경제권을 묶고 일본이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따라서 일본의 이익과 정서에 부합하는 지역으로 정착하였다.

비즈니스, 투자, 협력의 공간으로서 해양 개념은 중국의 부상으로 동요하게 된다. 일본은 1991년 중국이 APEC 가입을 계기로 자유주의 지역질서에 편입되어 적응해 갈 것이라 믿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이 동아시아 개념을 내걸고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하며 아태 공간을 잠식하자,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아세안과 한중일 등 동아시아 13개국에 더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초대하는 확대 동아시아 구상을 주창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법치 등 가치를 담는 지역개념을 내걸며 3개국을 끌어들여 중국의 주도권을 견제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이어 2006년 아소 외무상과 아베 총리는 일본 열도로부터 동남아, 인도, 서남아, 중동을 거쳐 동유럽에 이르는 지역을 잇는 이른바 “자유와 번영의 호(弧)” 전략을 내어놓았다. 이 역시 보편적 가치를 매개로 중국을 견제하는 지역 공간을 모색하는 것으로서, 일본이 전후 외교의 실용주의적, 경제중심적, 반응형 외교 태세를 넘어, 지정학적 외교경쟁을 시도한 본격적인 사례라 하겠다. 인태 개념은 이런 지정학적 상상력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상상력을 개념과 구상, 전략으로 전환시킨 계기는 2010년 센카쿠 해역에서 중국과의 분쟁이다. 중국이 해양강국론을 내걸면서 공세적인 태도로 나오자 일본은 중국에 대항하는 해양안보 차원에서 동적 방위력 개념에 기초하여 남서 해역을 중시하는 《방위계획대강》 수립으로 맞대응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호주, 인도 등 4개국이 인도양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해역의 안보를 추구하는 이른바 다이아몬드 협력 전략을 선언하였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 공조하여 미-일-호, 미-일-인 3자 정상회담 및 국방 당국 간 협의를 거듭하면서 4개국 안보협력(QUAD)에 힘을 기울였고,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여 질(質) 높은 개발협력 모델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이 연장선상에서 공식 등장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의 지정학은 ① 중국의 확대되는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② 해양안보를 중심으로 해양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③ 보편적 가치를 지역 개념으로 설정하여 ③ 역내 국가들과 개발·무역·투자 등을 통한 연계성(connectivity) 증진과 ④ 해양법 집행 능력구축, 인도적 지원, 재해구조 등 비전통 안보협력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미일 공조 모색

2017년 가을 미국이 인태 구상을 공식화함으로써 미일 양국은 인태 공간을 공동 관리하는 체제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국은 10월 틸러슨 국무장관의 CSIS 연설,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연설, 12월 《국가안보전략(NSS)》 등을 통해 역내 주요 위협으로 중국의 행태를 지적하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 증진”이란 ‘비전’을 내걸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인태 공간을 단위로 하여 규범과 규칙을 제정하고 이에 기반한 국제질서 건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정부 초기 내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 만으로는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018년도에 들면서 미국은 인태 ‘전략’으로 명칭을 수정하고, 주권 존중, 선정(good governance), 기본권 보장, 항행의 자유와 개방, 분쟁의 평화적 해결, 공정·상호적 무역, 투자환경의 개방, 연계성 증진 등 공통의 가치와 원칙을 강조한 후 보다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제시하였다.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디지털 연계성 및 사이버안보 파트너십’ 에너지 분야에서 ‘아시아 EDGE,’ 인프라 분야에서 ‘인프라 거래 및 지원 네트워크’ 등에 총 1.13억 달러 규모 신규 투자를 약속하고, 의회에서 개발지향 투자이용 향상법(BUILD) 통과, 국제개발금융공사(IDFC) 신설 및 개발금융 규모 확대(600억불)를 선언하였다.

미국의 인태 전략이 경제, 투자, 개발 분야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미일 양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은 내용적으로 거의 수렴하게 된다. 이런 속에서 미일 양국은 미일 전략 에너지 파트너십(JUSEP) 기반 LNG 공급 및 관련 인프라 구축 협력, PNG 전력 공급 확대 및 개발금융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정학적 상상과 지경학적 현실의 거리

그러나 트럼프와 아베 간의 찰떡궁합이 인태전략 추진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인태전략에 대해 몇 가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중심적 접근과 일방주의적이며 예측불가능한 외교행태이다. 동맹에 대한 거래중심적 접근은 모든 동맹국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으며 일본도 국가안보 위협을 무기로 한 무역보복(232조)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과의 전격적인 타협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도 상존한다. 예컨대, 중국이 미국에 대담한 수입확대조치를 제공하는 대신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관행(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해외기업의 기술이전 강요 등)을 용인하는 빅딜이 이루어진다면 자유주의 무역질서 복구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미국의 거래중심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한 헷징으로서 다자적 규칙을 강조하는 인태전략을 내걸고 있다. 

더 큰 우려는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이나 2018년 10월 펜스 부통령의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듯이 미국이 인태 지역을 중국의 억압적 질서에 대항하여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공간 즉, 상호 공존할 수 없는 강렬한 가치관 대립의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주권 침해, 약탈적 행위에 공동 대응을 주문하고 있으나, 실제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설 경우 일본의 입지는 크게 축소된다. 화웨이 공세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이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 기술, 인적자원 이동을 제한하는 경우 일본경제에 주는 타격은 상당하다.

일본은 끊임없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통해 관계 개선을 추진해 왔다.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와 미중 무역분쟁이 지속되면서 헷징 차원에서도 중국과의 협력에 방점을 두고 있다. 2018년 10월 중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제3국 인프라 투자에 중국과 협력하면서 “개방성, 투명성, 경제성, 대상국 재정의 건전성” 등 4개 조건부 협력을 천명하였는데, 이는 인태와 일대일로와의 접점을 추구하는 행보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2018년 12월 발표한 《방위계획대강》 역시 인태지역에서의 ‘다층적, 다각적 안보협력 강화’와 ‘해양질서의 안정’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중국견제라는 전통적 지정학 색채는 약화시켰다. 2018년 《외교청서》에서 인태 ‘전략’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들어서 일본 정부는 전략이란 표현을 피해 ‘구상(비전)’으로 바꾼 것도 중국을 의식한 처사이다. 요컨대,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불가능한 일본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혹은 가상적(敵)으로 규정하지 않는 가운데 그 세력권 확장을 억제하는 동시에 경제적 협력과 양립할 수 있는 인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샹그릴라에서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를 요약한 섀너한(Patrick Shanahan)의 연설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기왕의 인태 전략이 우회적으로 중국의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포용성(‘어느 국가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명기)을 강조하고 인프라 투자(특히 에너지 인프라) 등 경제·개발·거버넌스 분야에서 일대일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보고서는 중국을 현상변경 세력이자 역내 국가들의 사활적 이익에 대한 최대 장기적 위협 세력(greatest long-term threat)으로 적시하고 경제, 군사, 외교 3면에서 본격적 경쟁을 선언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안보가 국가안보이다(economic security is national security)”라는 명제 하에서 인태의 자유와 개방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정책목표와 수단을 제시하는 한편, 군사면에서 막대한 예산 투자를 통해 기술혁신에 기반한 막강한 군사력 증강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나아가 외교면에서는 동맹국 및 우호국과의 전략적 관계, 지역 수준의 소다자 및 다자 안보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장기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구체적 정책 목표를 열거하고 있다. 미국이 BUILD 등 법안 통과와 기관 설립으로 신규 투자를 끌어 모아도 그 규모가 일대일로의 십 분의 일에 불과하여 지경학적 수단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군사와 외교카드를 풀가동하여 본격적으로 중국을 길들이겠다는 의도이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표현으로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의 입장은 단단하다.

이쯤 되면 일본의 인태전략은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제 미국과의 공동보조를 맞추려면 중국을 안보 위협국으로 간주하고 군사적 견제 함의를 담는 지경학적 수단으로서 보편가치의 확산, 경제적 연계, 개발협력과 거버넌스, 비전통안보 협력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해 안보·외교 목표를 위해서 경제적 이익을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미중 대립의 장으로 변질되는 속에서 일본은 미국의 노선을 추수할 것인가,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포용적 질서 건축을 견지할 것인가.

 

규칙기반질서 건축과 한일 협력

요컨대, 일본판 인태전략은 경제, 개발 및 비전통 안보 분야에서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조성하여 중국에 대한 제도적 균형을 이루는 동시에, 제한적으로 중국을 포용하며 안정적 경제관계 확보를 위하여 보편가치를 담는 규칙과 규범에 기반한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 미국 역시 역내 국가들과 연대하여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중국의 약탈적, 수정주의적 행동을 억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추구한다. 중국도 최근 개방성, 투명성 등 국제규범에 기초한 일대일로 추진을 약속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질서는 국제체계의 구조적 속성(즉, 세력배분구조)을 반영하는 동시에 공유된 규범을 담는 국제적 정당성의 산물이다. 따라서 질서를 지배하고 유지하는 강대국은 자국의 불평등 권력(unequal power)을 하위 국가들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물리적 권력과 함께 정당성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인태를 단위로 한 규칙기반질서를 건축하려면 역내국가들로부터 사회적 정당성과 (준자발적) 동의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인태지역 국가 다수는 미국의 관여를 희망하면서도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는 전략에 참여하는 상황은 피하고자 한다. 특히 아세안은 미중 대립 속에 아세안이 와해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바 있다. 인도는 인도양에서 중국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위협의식을 토로하고 있으나 반중(反中) 연합전선 구축에는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으며, 일본도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는 인태전략과 다른 결(layer)로서 미일동맹 및 4국협의(Quad)를 통한 안보협력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한국 역시 인태 전략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여왔다. 2017년 가을 FOIP를 내건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속에서 당시 정부 관계자는 참여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고, 이후 미국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입장 표명을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들 가운데 일본과 한국은 대외의존적 체제 속성으로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횡포에 특별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규칙기반 질서를 강력히 지지해야 한다. 비록 규칙과 규범 역시 강대국 주도로 제정되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된 규칙과 규범의 네트워크 속에서 주고 받기 식 국제정치가 이루어진다면 중견국과 약소국의 행동 반경은 확대되고 강대국 정치의 비극을 피할 여지가 생긴다.

일본 외교가 상승기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국을 건너뛰고(Korea passing)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결집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한국 역시 일본과의 협력 공간을 비워두고, 신남방정책으로 인태전략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는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는 격이다. 한국이 직면한 전략환경은 아태의 분단을 예고하는 거대한 질서 변화를 담고 있다. 비즈니스 확대와 외교다변화 발상으로 나온 신남방정책 차원에서 경협·개발 프로젝트 구색 맞추기로 대응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난제를 맞이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강제징용 등 역사문제, 초계기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 정상회담 개최문제로 대립의 나날을 지샐 겨를이 없다. 서로를 탓하고 감정적으로 배척하며 잘잘못 따지기를 넘어서, 인태와 일대일로가 공생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국제 규범과 규칙 제정을 위한 창조적 협력외교에 나서야 할 때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중 간 대결적 구조를 협력적 구조로 전화하는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샹그릴라는 한일 양국에 관계개선의 전기를, 양국 외교의 활동 공간을 확대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

 

 

■ 저자: 손열_ _ EAI 원장·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 언더우드학부장, 현대일본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일본외교정책, 동아시아 국제관계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8, with T.J. Pempel), 한국의 중견국외교 (2017, 김상배, 이승주 공편),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최수이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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