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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재건축

논평·이슈브리핑

[EAI 이슈브리핑] 위기의 한일관계,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제7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결과 및 `제7회 한일미래대화` 논의 분석

  • 2019-06-28
  • 손열, 김세영, 이영현

ISBN  979-11-88772-85-8 95340

[편집자주]

본 이슈브리핑은 올해 EAI와 겐론NPO가 공동 실시한 한일상호인식조사 결과 및 한일미래대화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손열 원장이 대표 집필한 보고서입니다지난해  발생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사 등으로 한일 양국은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그러나 이번 여론조사에서 적어도 양국 국민은 상대국의 정부와 민간에 대해 인식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이러한 정부-민간의 디커플링 현상은 민간을 중심으로 양국 간 관계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 아래는 본 이슈브리핑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정상회담을 못 하는 한일관계

현재 한일관계는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 작년말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사(照射) 사건에서 보듯 양측 당국 수뇌부의 전화 한 통화로 끝날 일을 감정싸움과 국제적 진실공방으로 확대했다. 양국은 상대국의 전략적 위상을 하향 조정하고 협력을 회피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언행을 보이면서 G20 정상회담에서 양자 회담도 열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일관계 악화는 엄밀히 말하면 정부 간 관계의 악화이다. 민간 차원에서 교류는 활발하고 한국의 대일 호감도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와 민간 사이 디커플링(decoupling) 추세는 뚜렷하다. 반면 일본의 경우, 여론이 정부 간 관계 악화와 동조 추세를 보이고 있음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한국의 반일감정이 약화되는 반면 일본의 반한감정은 강화되어 “뉴 노멀(new normal)”로 정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국민 모두 현 상황을 과거 박근혜 정부 때 한일관계 갈등에 비해 나쁘게 보지 않고 있으며, 경제협력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런 만큼 경색 국면을 풀지 못하고 있는 양국 정부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이다. 한국민 5명 중 1명 만이 한국 정부의 대일정책을 긍정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인 4인 중 1명이 일본 정부의 대한정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상대 정부 지도자에 대한 양 국민의 호감도와 신뢰도는 땅에 떨어져 있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이다. 정치 지도자 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파여 사태를 악화시키고, 이에 따라 부정적 여론이 환기되어 지도자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 싸움에 민간이 피해 보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 회복의 관건은 정부 간 관계의 부정적인 파급효과 즉, 정부로부터 민간으로 부정적 영향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현재 권력을 장악한 기성세대 정치인, 관료, 언론, 방송이 상대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하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어둡다. 반면, 양국 모두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를 견인하는 세력은 바로 청년세대(20-30대)이다. 이들은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전달하는 기존 미디어 및 기성세대 정치에 노출이 적은 세대로서 상대국 방문 등 직접체험, SNS 등 뉴미디어를 통한 간접체험으로 상대를 인식하고 있다. 결국 청년세대가 보여주는 새로운 사고의 흐름을 대변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정치세대가 역사의 무대에 전면 등장해야 비로소 한일관계의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다.

 

한일관계의 뉴노멀(New Normal): 반대로 가는 한국과 일본

한일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이란 평가는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다. 매년 최악의 상황을 갱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 1년은 제주 국제 관함식 욱일기 논란, 화해·치유재단 해산,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사 공방, 친일파 논란, 오사카 G20 정상회의 시 한일정상회담 개최 논란 등 여러 갈등 상황을 노정하였다. 이 사건들은 예외 없이 양국 정부 간 감정적 대립으로 이어졌고, 여론의 악화를 불러왔다. 특히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양국간 관계악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을 1965년 한일조약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로서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란 막말 수준의 반응을 보이며 한국 정부에 조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6월 중순 한일 민간기업 주체 기금 설립안을 제안하기까지 7개월간 사실상 대응책을 내어놓지 않아 일본측으로부터 무시 논란을 야기하였고 양자 정상회담 불발로 이어졌다.

지난 7년간 EAI-겐론(言論)NPO 한일 국민 상호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측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 저하는 이러한 장기 갈등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그림 1]).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 즉,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좋다.’, ‘대체로 좋다.’로 응답한 일본인은 2013년 31.1%에서 20.0%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부정적 인식 역시 2013년 37.3%에서 2019년 49.9%로 하락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인상을 ‘좋다.’, ‘대체로 좋다.’로 응답한 한국인은 26.8%(2017년)→28.3%(2018년)에 이어 올해 31.7%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인식 역시 2013년 76.6%에서 2019년 49.9%로 대폭 감소하였다.

 

                [그림 1] 상대국에 대한 인상 (2013-2019)

정부와 민간의 디커플링(Decoupling)

양국 정부 간 대립을 상징했던 초계기 레이더 조사(照射) 공방 사례를 보면, 정부 간 갈등이 민간의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초계기 사건에 대한 판단은 본질적으로 군사기술과 관련된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므로 일반 국민들은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의 발표, 이를 받는 언론의 보도 논조에 크게 의존하기 마련인데, 양국 여론을 보면 일방적으로 자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옳다고 생각한 일본인 응답자는 62.9%, 한국 정부가 옳다고 평가한 한국인 응답자는 61.9%이었다. 반면, 한국 정부가 옳다고 평가한 일본인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일본 정부가 옳다고 생각한 한국인 응답자는 3.1%에 불과했다. ‘레이더 사건에 대해 관심이 없다.’거나 ‘모르겠다.’라고 답한 한국과 일본 응답자는 각각 26.7%와 31.7%였다. 사안의 성격상, 진실은 하나일 수 밖에 없으므로 양 국민간 극명한 인식의 차이는 정부 간 대립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특정 정책에 대한 양 국민간 선호도의 극명한 차이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상대국에 전체에 대한 선호도와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관계 개선의 단초를 찾아가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론은 정부 간 관계 경색의 개선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국민의 70.8%, 일본국민의 40.2%가 한일 관계 회복에 있어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일본에 비해 한국이 상대적으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고 한일관계 회복 개선의지를 더 보였다는 점은 양국간 인식의 차이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일협력에 대한 양 국민 지지 견고

한일 양 국민이 관계 개선을 요청하는 이유는 실질적 측면에서 협력의 이익을 중시하는 데 있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양 국민은 한일협력에 매우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한 한미 및 미일동맹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한국인 58.6%가 ‘미일동맹이 한국에게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미일동맹이 한국에게 필요 없다.’(20.7%)고 답한 응답자의 약 세 배 가량 높은 수치였다. 일본인 응답자 역시 한미동맹이 일본에게 필요하다는 비율이 40.4%로 가장 높았으며, ‘필요 없다.’고 답한 11.5%에 비해 약 네 배 가량 높았다.

[…]

이렇게 볼 때 한국민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고 안보 및 경제 양면에서 일본과 협력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관계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 그리고 안보와 경제 협력에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현 정부의 대일 정책에 비판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일본에 대한 대응과 태도’에 있어 한국은 21.5%가 긍정적인 평가를 보인 반면, 35.4%가 부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일본의 경우, ‘아베 정부의 한국에 대한 대응과 태도’에 있어 ‘잘 하고 있다.’는 26.1%, ‘보통이다.’는 29.3%, ‘못 하고 있다.’는 26.0%고 응답했다. 상대국에 대한 자국 정부의 대응과 태도에 있어 양국의 약 4명 중 1명만이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와 중국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 수렴

2018년 여론조사에서 한일 양국의 인식 차가 첨예하게 드러났던 분야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인식이었다. 작년 낙관적이었던 한국인의 북한 비핵화 인식은 올해 다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다.’라고 응답한 한국인은 작년 59.3%에서 무려 27.9%포인트 감소한 31.4%에 머물렀다. 이 중 ‘단기간에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다.’는 응답자는 1.7%, ‘비핵화가 실현되겠지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29.7%였다. 반면, ‘결국 비핵화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 해 8.9%에서 2019년 25.0%로 증가했다. 일본 또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증대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다.’라고 평가한 응답률은 감소하고, ‘결국 비핵화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가 29.0%로 작년에 비해 11.1%포인트가 증가했다. 더불어, 금년 추가된 선택지인 ‘비핵화는 애초부터 실현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답한 일본인 역시 18.4%로 비교적 높았다.

이렇듯, 장기간 비핵화 실현에 대해서는 한국이 일본에 비해 16.5%포인트 더 높은 응답률을 보이며 다소 긍정적이지만, 양국 모두 ‘현재로써는 판단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비율과 ‘결국 비핵화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평가하는 비율이 가장 높으며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이는 2017년도 양국간 인식의 현격한 차이와 대조되는 것이다.

 

결론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첫째, 일본에 대한 인상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양국 정부 간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일감정이 약화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둘째, 일본과 안보 및 경제협력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대세이다. 셋째, 한국의 대외관은 일본의 그것과 점차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북한 및 중국 인식이 그것이다.

일본국민은 한국이 반일감정에 지배되어 자국과 안보·경제 협력에 주저하고 있으며, 일본보다는 중국에 경사되어 있고 북한에 대한 우호적 감정으로 남북관계를 최우선시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도 이를 기초로 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대한정책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한국 정부 역시 국민의 반일감정을 상수로 놓고 대일정책을 추진해 왔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한국 민족주의는 오랜 세월 반일감정으로 표출되며 정부의 정책적 유연성을 제약해왔다. 민주화와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이 정서의 패권적 지위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사회 주류인 기성세대 정부 지도층, 정계, 언론·방송계는 스스로 반일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오히려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반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기성세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조용한 변화의 물결이 세를 이루고 있다. 경직된 반일정서를 넘어 경제적·안보적 실리를 추구하고 문화적 공감을 이루는 신사고 패러다임이다.

문제는 정치다. 기존 정치질서는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변화의 요구를 담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586을 중심으로 한 세대독점의 의식구조와 승자독식의 정치제도는 신세대와 신사고의 진입을 제약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무리 감정싸움을 해도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안보·경제적 이익과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 갈등에 하방 경직성이 있다. 따라서 현재의 한일관계는 정책을 부분 교정해 가며 국면전환을 이룰 것이고 회복기에 접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는 아무리 이익 공유의 상승작용을 일으켜도 정체성 갈등이란 구조적 제약으로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 양 사회가 반일감정과 반한감정 교차의 악순환을 넘으려면 신세대와 신사고의 진입이 가능한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럴 때 한일관계의 본격적 재건축이 시행될 것이다.

 

■ 대표 집필: 손 열_ EAI 원장·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 언더우드학부장, 현대일본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일본외교정책, 동아시아 국제관계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8, with T.J. Pempel), 한국의 중견국외교 (2017, 김상배, 이승주 공편),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김세영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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