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논평] 북핵의 ‘불용핵화’와 ‘인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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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능력은 빠르게 발전해 왔다. 지금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과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한 이후에도 핵 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무력 강화는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이후 자신들의 계획표대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영변 원자로는 가동 중이고, 어디선가 원심분리기가 돌아가며 고농축우라늄 양을 늘리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뿐만 아니라 핵탄두의 운송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새로운 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이 핵 무력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의도를 하나로 특정 짓기는 어렵지만, 외교적, 군사적, 내부적 차원에서 계산된 합리적 선택이다. 외교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강압 외교로 볼 수도 있다. 군사적 차원으로는 미국이나 남한 등으로부터 군사 위협을 차단하고 억지하기 위함이다. 북한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다양한 미사일 개발을 통해 미 본토 타격을 목표로 하는 전략적 차원의 응징적 억지로부터 한반도와 역내에서 작전‧전술적 차원의 거부적 억지까지 핵 운용전략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내부체제적 차원에서 핵 무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여 보다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는 의도 역시 중요하다. 김정은 정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남한이나 미국이 아닌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일지도 모른다. 당 규약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경제발전에 집중하면서도 직면한 대외적인 안보 우려 차원에서 군사력 유지 및 강화는 불가피하다. 북한은 경제발전에 매진하면서도 국방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려 해소로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핵 무력을 바탕으로 ‘병진노선 2.0’으로 진화하고 있다. 핵 무력은 탈선군과 사회주의 부강 조국 건설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최근 북한이 보이는 핵 무력과 군사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행동은 남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상호 양보 없는 군사적 맞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 무력 강화의 이유를 미국과 남한에 돌리며 군사 행동의 명분과 정당성을 마련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 정부는 북한의 핵 무력 강화와 새로운 무기 개발 등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 명백한 군사적 도발로 규정하고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힘을 통해 평화를 지키겠다며 군사적 대응을 앞세우고 있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무력 강화가 미국을 대화로 이끌어 내거나 양보를 얻기 위한 속임수로 치부하고, 한미일 군사협력 및 유엔사 재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핵에 대해 군사적 대응이 무의미하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재진영화된 국제질서 하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를 바탕으로 서구 중심의 대북 압박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2019년 북미 간 하노이 결렬 이후, 더 이상 북한은 북미대화나 제재 완화 등 미국의 양보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다시 진영화 된 신냉전 구도 속에서 미중 경쟁 심화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활용해 중국과 러시아에 경사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주외교를 위한 대외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하는 데 핵 무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더 이상 한반도에서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한 비현실의 단어일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미래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몰이해 속에 정치적으로 손쉬운 군사적 대응만을 고집할 경우,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 고조 및 위기와 함께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에 빠질 공산이 크다. 동맹과 힘에만 의존한 평화 유지는 비핵화가 아니라 오히려 북핵 위기를 잉태하고 핵전쟁 위기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이미 국방비를 60조 원 가까이 사용하는 재래식 군사력 세계 6위의 남과 핵을 가진 북은 서로를 완전히 파괴하기에 넘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북핵에 대해 군사적 해법만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것은 담대한 대응이라 할 수 없고,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 북한에 대한 무지와 전략의 부재 하에 고민 없이 가장 손쉽고 간편한 대응책을 선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위기와 공포는 국민의 몫이다. 이제 비핵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북핵의 위험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선제적이고 일방적인 조정과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이 더 이상 어떤 것과도 교환 등가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핵화-평화체제 병행론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등가’나 ‘순차적’보다 상호 수준에 맞는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핵을 통해 우리가 받는 위협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북한이 받는 위협도 함께 제거되어야 한다. 북한이 이미 만들어놓은 핵탄두와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인 과거 핵 위협까지 제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미래 안보 우려까지 해소해 주어야 하는 딜레마와 비현실성이 존재한다. 비현실적인 비핵화를 내세우기보다 안정적이며 지속할 수 있는 평화를 바탕으로 핵이 사용되지 않고 불필요한 상황인 ‘불용핵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북한이 가진 핵을 사용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상황을 위해서는 국가의 안보를 넘어 인간적 차원에 초점을 맞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바로 북핵문제의 ‘인간화’이다.
북한이 핵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난해 9월 북한은 새로운 핵 교리에 핵무기의 선제 및 보복 사용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핵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상황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것은 북한이지만, 도리어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또 북핵문제가 단순히 군사적 사용 여부에 국한된 위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북핵문제의 ‘인간화’는 북한의 핵무력 강화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미치는 군사안보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인간, 환경, 기후과 경제, 사회, 문화적 원리를 포함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접근이다. 북핵이 필사의 핵이 될지 절망의 핵이 될지는,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북한이 아닌 우리에게 핵이 어떠한 위험으로 다가올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기회의 창은 아직 열려 있다.
■ 김동엽_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전공 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북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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