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논평] 통일에서 평화공존으로: 대북정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ISBN 979-11-6617-673-9 95340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한반도 분단 이후 지난 수십 년 동안 통일은 우리 정부가 실현해야 할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로 간주되어 왔다. 실례로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UN)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논리를 근거로 북한의 국가성과 정당성을 부정한 채 “무력에 의한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이승만 정부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 즉 제헌헌법이 우리 영토로 규정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불법 점령한 괴뢰정부일 뿐이며 언젠가는 우리 대한민국이 축출하고 흡수 통일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이처럼 북한을 언젠가는 축출하고 흡수 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국전쟁 이후 수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과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에서 현재까지 큰 틀에서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1987년 10월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제3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통일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조항에 근거하여 1987년 민주화 이후 출범한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북한을 대하는 방식은 정부 성격에 따라 다소 달랐으나 통일을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로 설정해 왔다. 실례로 1992년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1단계 화해협력, 2단계 남북연합, 3단계 통일국가완성을 내용으로 하는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 (약칭: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채택하고, 남북통일을 통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단일국가 수립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최종 목표로 공식화했다. 이러한 정부 공식 입장은 지난 30여 년간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로 몇 차례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큰 틀에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통일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증가
이처럼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 현행 헌법과 정부의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사회의 여론을 살펴보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2007년 이후 매년 실시하고 있는 「통일의식조사」 [1]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매우 필요하다’와 ‘약간 필요하다’를 합해 2007년 63.8%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3년 조사에서는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인 43.8%까지 하락했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와 ‘전혀 필요하지 않다’를 합해 2007년 15.1%에서 2023년 조사 이래 최고치인 29.8%까지 상승했다(<그림 1> 참고).
<그림 1>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 변화 추세(2007-2023) (단위%)
<그림 2> 통일에 대한 견해 추세(2007-2023) (단위 %)
또한 통일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그림 2>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통일을 서두르기보다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 점진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좋다’라고 응답한 비중은 하락 추세에 있는 반면 남북한이 분단된 ‘현재대로가 좋다’는 응답과 ‘통일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응답 비중은 꾸준한 상승 추세에 있다. 2023년 조사에서 ‘점진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좋다’라고 응답한 비중은 45.2%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한 반면 분단된 상태인 ‘현재대로가 좋다’고 응답한 비중과 ‘통일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라고 응답한 비중은 각각 28.2%와 9.9%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사회 내에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또한 분단 체제인 현재 상태를 선호하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통일 보다 평화공존이 중요
한편 대북정책의 목표와 관련하여 「통일의식조사」 결과는 절대다수 국민이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로 합치는 ‘통일’보다 남북한이 분단된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서로 적대를 멈추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평화공존 및 평화정착’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3>에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의 목표로 다음 중 무엇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략 60%가 넘는 응답자가 ‘평화공존 및 평화정착’을 선택한 반면 ‘남북통일’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20% 미만에 불과했다.
<그림 3> 대북정책의 목표(2021-2023) (단위 %)
마치며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통일의식조사」 결과는 분단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세대가 바뀌면서 우리 사회 내에 통일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무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절대다수 국민이 대북정책의 목표로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로 합치는 통일보다 남북한이 분단된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서로 적대를 멈추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평화공존 및 평화정착’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 사회의 통일의식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과거처럼 통일을 우리 민족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역사적 사명’으로 강조하며 헌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계속 추진해야 하는가 아니면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춰 평화공존에 초점을 맞춰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가?
우선 위 조사 결과는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 수립을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로 강조해 온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 수정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다수 국민이 ‘통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통일보다 평화공존이 대북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명’이자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로 강조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아 보인다. 특히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이후 사실상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근거로 북한의 국가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를 불법 점령한 괴뢰정부로 간주하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반영하여 북한을 독립적인 별개의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남북한 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재정립하고, [2] 평화공존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대북정책으로 보인다.
물론 이처럼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통일에서 평화공존으로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조와 통일을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로 강조하고 있는 제4조의 개정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헌법 개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평화공존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언젠가는 축출하고 “때려 부숴야 할” (흡수) 통일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대북정책은 장기적으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으로 남북관계와 국제정세 변화 속에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겠다.
[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인식, 북한에 대한 인식,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 및 태도 등을 조사해 왔다. 2023년 조사는 7월 4일부터 7월 27일까지 24일간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74세 이하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원에 의한 방문 면접 조사로 실시되었다.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를 사용하였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2.8%이다.
[2] 2006년에 제정되어 현재까지 남북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는 남북 관계의 성격에 대해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간의 거래” 또한 “국가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 내부의 거래”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 김범수_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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