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논평] 김정은의 어린 딸 김주애 등장 의미와 시사점
ISBN 979-11-6617-653-1-95340
북한의 4대 세습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데리고 등장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후계자 내정으로 진단하거나 김주애를 공개한 장소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7형’ 시험발사 현장인 점에 주목하고 핵 가치의 극대화, 대외적 시선 집중을 노린 의도로 파악한다. 또한 김주애의 빈번한 행보가 리설주와 김여정의 권력 다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전례가 없는 통치자의 어린 딸 노출인 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김주애의 등장과 행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통치의 맥락에서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통치력에는 권력의 크기와 강도, 그리고 이른바 위대성(권위체계 포함)의 높이가 요구된다. 20대에 통치자가 된 김정은은 집권 10년 동안 당, 국가, 군의 최고수위에 올라 모든 제도적 권력을 장악하고 공고화했다. 또 권위체계의 측면에서 곧 40세를 바라보는 김정은이 어린 딸을 등장시켜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로 입지를 굳히고 유교문화가 다분히 내재해 있는 북한 사회에 절대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시도한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에도 공산권 붕괴로 정통성이 부정되거나 사회적 불안감이 높을 때 위대한 어버이를 모시고 사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제창하며 일심단결을 도모했다. 어버이는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고 믿으며 자식은 못난 부모 탓하지 않고 어렵다고 배반하지도 않는다는 유교적 관념이 이념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정은은 어버이로 승격하기 위한 정치선전을 꾸준히 진행해왔으나 최근에는 어버이의 상징조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도자가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인민은 ‘충성’(忠誠)을 다하는 관계, 그에 더해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어버이에게 ‘효성’(孝城) 다하는 수직적 관계를 도입하므로서 절대적 지배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김정은이 어린 딸 김주애를 등장시켜 효성의 모델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정은에 대한 수령 호칭을 올해 7월까지 26회나 사용하여 2022년 23회, 2021년 16회에 비해 비교적 많은 사용량을 기록했다. 또한 수령과 같이 등장하는 ‘어버이’ 호칭은 그 대상이 아동에서 지난해 말에는 청년으로 확대됐다. 여기서 ‘수령님’이라는 단수 호칭은 사상의 창시자이며 건국 시조로 규정한 김일성에게만 해당한다. ‘위대한 수령’, ‘수령의 영도’, 등의 개념적 의미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모두를 포함한다. 단 김정일, 김정은에게는 ‘수령님’이라는 단수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며 ‘영도자’로 구별한다. 북한 주민들은 ‘어버이 수령’을 언급할 때 김일성을 연상하므로 김정은은 수령 김일성과의 동일화를 통해 어버이의 절대적 권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8일 김정은이 내세우는 치적 중 가장 큰 성과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ICBM ‘화성 17형’ 시험발사장에 딸 김주애와 손잡고 시찰하는 모습이 다음날 노동신문에 공개되었다. 노동신문 1면에는 김정은의 ICBM 발사 현장을 지도하는 사진, 2면에는 김정은과 딸 김주애가 손을잡고 있는 사진, 3면에는 김정은, 리설주, 김주애가 함께 있는 사진이 실렸다. 지면 배치의 중요성을 보면 김정은을 중심으로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 하나의 가정 모델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일 기념 열병식장에 김정은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부인 리설주와 함께 나왔다. 하루 전날 군 장성들을 위한 파티에서는 김주애가 부부의 가운데 자리 하여 존재감을 드러냈고 열병식 귀빈석에서는 부녀의 친밀한 대화와 스킨십 장면이 조명되기도 했다. 대내외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딸을 최대한 활용하여 김정은의 따뜻한 이미지, 아버지에게 이쁨받으려는 딸의 모습, 리설주의 차분한 충성의 태도들이 ‘하나의 가정’ 모델로 연출됐다. 이는 북한 사회에 김정은을 어버이로 하는 ‘사회주의 대가정’ 질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과거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당시 수령에 대한 충성의 화신으로 역할을 담당했고 90년대 초반에는 어버이에 효성을 다하는 효자로 모델이 되었다. 김정일의 충성과 효성은 인민적 범위로 확대되어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 김정은도 그때처럼 충성과 효성의 역할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 최고 수장으로 군림했기 때문에 차세대가 후계자 역할을 담당할 만큼 과거와 같은 구조를 형성하기 어렵다. 여동생 김여정을 내세워 선전선동분야와 대외·대남분야에서 채찍과 메신저 역할로 김정은에 충성하는 모델이 되었지만, 남매 관계이므로 김정은을 어버이로 높이는 데 논리적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딸 김주애 등장으로 김정은은 가장 안정적인 인민의 어버이로 입지를 굳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사회가 가장 불안하고 불확실성이 높을 때 신을 찾듯이 어버이의 절대적 존재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에 김정은은 어버이 이미지를 구축하여 새로운 권위의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사회 질서를 재구축하려 한다. 현재 북한 사회의 무질서와 불안한 현상에 대해서는 최근에 채택된 각종 법규인 국가기밀보호법(2023), 국가상징법(2023),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김정은은 자신에 대한 인민의 ‘충성’에 ‘효성’의 새 질서를 도입해 ‘지배와 복종’ 체계를 한층 더 강화하려 한다. 이러한 시도는 북한 전체가 김정은의 사적영역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사상을 강조할 때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주지만 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주기 때문에 어버이 수령에 충성과 효성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엔 김정일이 ‘사회주의 대가정’의 어버이인 김일성에 충성과 효성을 다했듯이 최근 언론의 조명을 받는 김주애가 ‘효성’의 역할을 일정 부분 할 수 있겠지만 후계자와는 거리가 멀다. 가부장적 유교문화가 만연한 북한 사회에서 여성인 김주애가 권력을 승계하기엔 한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설사 김주애로 승계가 된다고 해도 다음 대에 백두혈통이 아닌 다른 성씨를 가진 혈통이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김씨 왕조의 단절을 의미하므로 딸을 후계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따라서 김주애의 등장은 김정은의 통치력 강화에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북한의 김주애 등장으로 핵보유국 선전과 ‘미래세대’의 안전 담보, 4대 세습의 정당성을 인식시키는 등 다양한 정치적 목적이 있겠지만 어린 딸의 효성을 받아주는 김정은의 모습을 통해 천만자식 품어주는 사회주의 대가정의 자애로운 어버이상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김일성 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김정은은 그 시대 주민들의 충성과 효성을 현시대에 재현하려고 하지만 20여년 간의 시장화를 겸험하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소위 김정은 어버이에 얼마나 충성과 효성을 바칠지는 미지수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건국 이래 대동난’이라고 표현했다. 아직 미성년인 딸을 정치무대로 끌어들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김정은의 선택은 대내외적 어려움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 그 절박함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이며 이에 김주애의 등장은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김주애의 등장으로 백두혈통 신성화가 더 심화할 것이다. 북한 매체는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이라 호칭했다. 김주애는 앞으로 김정은과 다양한 현장에 동행하며 많은 노출을 통해 백두혈통의 우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북한 체제의 세습성·독재성을 더욱 강화하는 심각한 문제로 야기된다.
둘째, 북한 사회의 열악한 정치환경과 북한 주민들의 허위의식을 제고 할 것이다. 조부와 부친의 권력을 상속받은 김정은이 딸을 등장시켜 위대한 어버이의 권위를 높이려고 한다. 이 과정에 정보의 독점과 선별적 전달, 반복 교육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하나의 대가정’ 속에서 스스로 복종하는 의식과 태도를 갖게 된다. 개인의 존엄과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전체주의 틀 속에서 김정은과 백두혈통만 인식하는 허위의식이 내재하게 된다. 이에 북한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관심과 개방을 유도하는 다양한 방안들이 필요하다.
셋째, 김주애의 ICBM 발사 현장과 군 행사장의 빈번한 노출을 통해 ‘핵과 혈통’은 동전(체제)의 양면과 같음을 강조했다. 지난해 8월 김여정은 ‘핵은 우리의 국체(국가체제)’라고 운운한 이후 북한이 9월에 핵교리법을 채택하여 핵무기 사용법을 포함해 선제 사용 권리를 주장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북한 비핵화는 백두혈통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러한 시사점들은 김주애의 등장이 북한의 다양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특정한 혈통과 인물을 상징화하지만 반면에 자랑하고 있는 집단주의, 우리식(북한식) 안에서 구성원들은 인권을 침해받고 있으며 이러한 비정상적 국가가 소유한 핵문제는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불안을 조성하는 심각한 위협 수단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과 인권 문제를 병행해서 다뤄야 할 때이다.
■ 최경희_사단법인 SAND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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