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NK 논평] 급진화한 북한 다루기: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한계와 윤석열 정부의 숙제
ISBN 979-11-6617-407-0 9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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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진화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래 김정은의 북한은 급진화(radicalization) 양상을 표출한다. 북한은 혁명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고히 하면서 끊임없이 외부 세력에 위협받는다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을 소환한다. 북한은 2018년 국제사회에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사회주의 문명강국’ 담론을 강조하고, 경제 발전 및 핵 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병진노선’을 결속한 후 ‘경제건설 총력 집중노선’을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짓밟힌 최대 존엄은 자존심 회복과 주민 통제를 위해서라도 다시금 그들에게 익숙한 공식인 ‘급진화’를 선택한 양상이다. 북한은 2022년 4월 현재 사상, 경제, 대외정책, 핵전략 등 전방위 영역에서 급진화 되었다.
북한이 2021년 내내 강조했던 비사회주의•반사회주의 척결 운동은 사상 측면에서 급진화이다. 청년의 머리 모양과 말투까지 규제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으로 현시된다. 경제 측면에서도 2021년 1월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시장•경제적 요소가 배척되고 ‘자력갱생•자급자족’ 기반 구축을 위한 중앙 차원의 경제 통제가 강조된다. 특히 올 2월 14기 6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된 “국가 유일무역제도 복원”은 기업 자율화 대신 중앙집권적 무역 체계를 부활한 것으로 역시 급진화 현상이다.
대외정책도 급진화되었다. 2016년 7차 당대회와 2018년 4월 3기 7차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북한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적대세력과도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선 “대담한 로선전환과 공격적인 전략으로 국제사회가 공감하는 평화의 기류를 조성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더불어 “사회주의를 핵으로 하는 조중(북중)친선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것이다. 다시금 서방과 대결 국면으로 돌아서면서 중국과는 관계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입장이 표명되었다.
핵전략은 더욱 노골적으로 급진화되었다. 3월 24일 북한은 화성 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주장하면서 김정은이 직접 나서 호전적 발언을 쏟아 냈다. 김정은은 “(북한의) 전략무력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위험한 군사적 기도도 철저히 저지시키고 억제할 만반의 준비태세에 있다. 어떠한 군사적 위협 공갈에도 끄떡없는 막강한 군사 기술력을 갖추고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미국을 겨냥함을 분명히 했다. 28일 김정은 다시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가공할 공격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핵을 더욱 고도화•다종화•대량화할 의지를 천명하였다.
4월 5일 김여정 이름으로 나온 담화는 보다 과감한 핵 교리를 자세히 설명한다. “[핵무력의] 사명은 타방의 군사력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을 상대로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전투무력이 동원되게 된다”고 밝힌다.
북한 핵 교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된다. 북한이 늘 강조한 핵 사용 대상은 남한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신빙성, 핵 사용 시기와 방법, 목표에 대한 것들이다. 일부에서는 북한 핵 개발이 순수 자위 차원으로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므로 최후의 수단으로만 기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여정이 이를 철저히 부인했다. 북한 핵은 당연히 한국을 향해 사용될 수 있으며 사용 시기도 전쟁 초기에 주도권 장악이라는 군사전술 목표 달성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 월등한 제공력을 갖춘 한•미동맹을 개전 초 견제하고, 특히 미 증원군이 투사되는 것을 막아 단기간 내 승리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초반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핵 교리는 매우 급진적이고 공세적이며 위험하다. 대부분의 전쟁은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상호 오인•불신 등으로 인해 확전되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간 제한된 충돌이 발생했을 때 북한의 호전적인 핵 교리는 한•미의 의도를 최대한 왜곡하여 인식하고 핵 사용을 결정하게 만들 수 있다. 부연하면 남북 간 사소한 충돌로 야기된 군사 분쟁이 쉽게 핵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일성 110주년 생일 다음날인 4월 16일 김정은이 직접 참관한 신형전술유도무기 시험 발사는 급진적 핵교리를 실제 전장 환경에 적용하기 위한 수단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북한은 동 무기체계가 “전선 장거리 포병부대들의 화력타격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술핵운용의 효과성과 화력임무다각화를 강화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발표하였다. 전선 장거리 포병부대는 북한 최전방 지역에 집중 배치된 장사정포•방사포 운용 부대들로, 유사시 ‘서울 불바다’ 위협을 실행에 옮기는 전력이다. 개발하는 신형 전술핵 미사일을 전진 배치해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초반에 서울을 타격할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심각한 것은 핵을 전략군 집단이 중앙 통제하는 형태가 아닌 일선 부대가 상황에 따라 사용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사용을 전선 상황에 따른 개별 판단에 위탁한다면, 핵전쟁의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북한의 향후 행보
이러한 북한의 급진화는 한반도 안보 환경을 매우 불안정하게 한다. 사상•경제 등에서 심화한 급진화는 북한 사회 전체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게 된다. 대외정책 측면에서 급진화는 타협의 공간을 좁히고 대결의 가능성을 높인다. 공세적인 핵전략은 전쟁의 가능성을 상정하게 만든다. 종합할 때 다음과 같은 북한의 행동이 예상된다.
북한은 완벽한 핵보유국을 목표로 전력 질주할 것이다. 2022년 4월 중순까지 북한이 시도한 미사일 도발은 전술핵과 전략핵 모두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KN-23, 24와 개량형, 장거리 순항 미사일 등은 한국과 일본 등을 겨냥하고, 화성 12형은 괌을 사정거리로 포함한다. 인도•태평양 역내 핵심 지역에 대한 타격 능력을 현시 중이다. 동시에 화성 17형으로 강변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아직 미 본토 타격 역량을 보유하지 못했다”고 평가하지만, 완성을 향한 북한의 방향성과 의지는 분명히 확인된다. 이외에도 작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SLBM도 지속 발전시킬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전술•전략 핵무기 포트폴리오는 북한을 완전히 비핵화하는 것 자체를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은 ‘핵군축’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한•미 양국에서 커지고 있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핵전략을 고도화하여 향후 협상이 재개되면 확실한 우위에 서서 핵보유국으로서 기능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대한국 공세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에 신정부가 출범할 즈음, 북한은 향후 관계에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진보•보수 등 정부 성격과 상관없이 도발을 감행한 바 있다. 북한은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인수위 기간에 3차 핵실험을 하였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에는 ICBM인 화성-14형을 발사하였다. 코로나 19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실상 봉쇄 3년 차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고통은 가중되었을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급진화를 선택한 김정은이 내부 통제를 위해 새로 출범한 윤석렬 정부의 보수적 색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한적 도발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9.19 군사합의의 경우 전체적 합의 내용이 북한에 불리하지 않으므로 최대한 유지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Joe Biden) 행정부의 정책 평가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소멸해 간다. 2019년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 정도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대부분은 의미를 상실하여 2017년 상황으로 회귀하고 있다. 북한의 핵 질주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므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변화한 북한의 정책에 대응하지 못하고, 고집스레 기존 정책을 유지한 결과에 기인한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래 같은 해 12월 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를 통해 ‘정면돌파전’(frontal breakthrough line)을 선포하면서 대남•대미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하였다. 2020년 6월에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징과도 같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이후 2021년 8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은 한•미가 적대시 정책을 선 철회하기 전까지 어떤 대화도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동시에 북한은 2019년 5월부터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여 2022년 초 다양한 중•단거리 미사일 능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북한의 대결 정책에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무조건 관여하는 기존 정책을 고집스레 유지하였다.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더불어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억제하기보다는 ‘종전선언’에만 매달렸다.
윤석열 정부가 처한 또 다른 어려움은 미국에서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5월 발표한 대북정책인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and practical approach)은 사실상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논의를 위해 북한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unconditional dialogue)”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지만, 북한은 이미 작년 6월 김여정과 리선권의 연속 담화를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바 있다. 북한이 올해 들어 결국 모라토리엄을 파기하였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추가 대북 제재가 부과되었지만, 중국을 제재하지 않으므로 상징적 차원에 머물렀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년여 동안 보여준 대북정책은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하고 대화에 복귀, 즉 북한이 먼저 변화하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차별화되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 추진 혹은 대북 제재 강화를 통한 북한 태도 변화 등 답보 상태를 ‘돌파’하려는 능동적인 시도가 없었다.
정책 제안
새로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함께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선 한•미는 북한에 정교한 “전략적 소통”(strategic communication)을 시도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을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고도화•다종화하는 미사일 개발을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여기에 상응하는 조치, 예를 들어 미국전략자산의 순환배치, 한•미 연합훈련 복원, 대중 제재를 포함한 제재 강화 등을 예고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위한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이 이미 거부한 ‘조건 없는 대화’를 계속 제시하는 것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보다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보여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대북정책을 추동하는 것도 윤석열 정부의 숙제로 주어진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교훈 삼아 균형된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평화와 안보, 관여와 억제, 당근과 채찍 등이 명민하게 복합적으로 구사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임기 초반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하여 안보•억제•채찍 등으로 급격히 균형추가 이동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했던 ‘비핵•개방 3000’이 원칙상 맞는 정책이라도 경제보다 정치를 월등히 중시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못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정권의 정통성으로 삼는다. 경제적 실패를 자인하라는 형태로 한국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면 북한이 강력히 반발할 것이다.
결론
북한 비핵화는 지난한 작업이다. 특히 그간의 과정을 볼 때 북한은 어느 때보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핵군축 협상의 틀로 비핵화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나름 노력하였지만, 변화한 정책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일방적 정책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유산은 거의 남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명확한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고 소극적인 미국의 대북정책을 견인해야 한다. 더불어 한반도 상황이 극도로 악화하는 것을 관리하면서 북한을 억제해야 하는 다차원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 본 논평은 “Yoon’s Key North Korea Challenges: Pyongyang’s Increasing Hostility and Washington’s Backslide Into Strategic Patience”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 동 글 중 일부 내용은 박원곤, “北, 전방위적 급진화 진행,” <문화일보> (2022/04/07)과 박원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현실과 이상의 혼란,” 『정세와 정책』 2022-3월호에서 발췌하였다.
■ 저자: 박원곤_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한반도평화연구원(KPI)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 18년간 한미동맹과 북한을 연구하였으며 한동대 국제지역학(International Studies) 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미동맹, 북한 외교 및 군사, 동북아 국제관계(사)이다.
■ 담당 및 편집: 이승연 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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