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⑥ 2024년 중국의 글로벌 구상과 한중관계
ISBN 979-11-6617-699-9 95340
1. 2024년 중국의 글로벌 구상과 외교전략
1) 세계의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 추진
중국은 2024년 강대국으로서 ‘세계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겠다는 글로벌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전개한 중국 특색의 대국외교가 더욱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 적극 외교를 예고하고 있다. 2023년 12월 5년 만에 개최된 중앙외사공작회의(中央外事工作会议)에서는 지난 10년의 시진핑 외교를 점검하면서 향후 5년을 겨냥한 외교 구상과 설계를 내놓았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12/28).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국, 주변, 개도국, 그리고 다자외교로 외교 대상을 분류하여 상황에 따라서 우선 순위를 설정하고 외교 기조와 방향을 조정하는 패턴을 유지해왔다. 예컨대 2014년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는 주변외교를 우선순위에 두었던 반면에 2018년에는 대국외교를 전면에 제시하고 중요시했다.
그런데 2024년 외교 구상에서는 대국의 정체성을 과시하는 글로벌 비전과 설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중국이 제시한 글로벌 구상의 요체는 ‘세계의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 추진이다. 중국이 강대국으로서 위상에 부합하는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동시에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복잡한 과제와 도전을 극복하면서 경제 회복을 실현할 수 있는 국제 환경을 조성하려는 전략도 내재되어 있다. 중국은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의 다극화’를 주장하면서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변혁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이는 시진핑 정부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개혁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제체제와 질서의 변혁을 주도한 것이 2023년의 중요한 외교 성과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국제질서 및 체제 구축을 둘러싼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국이 다극화를 주장하는 이면에는 비록 명시적으로 미국을 지칭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조성하여 미국 주도의 반중국 연대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적 계산이 있다.
중국이 ‘경제 세계화’를 주장하고 있는 이면에도 유사한 전략적 고려가 있다. 중국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촉진하고 세계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포괄적인 경제 세계화 추진을 역설하고 있다. 이 역시 글로벌 구상이면서 동시에 미국을 적시하지 않은 사실상 대미 외교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경제 세계화는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대중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개막 연설에서도 미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공세와 압박을 겨냥하여 공개 비판했다. 즉 ‘대외개방의 견지’를 주장하면서 산업 공급망의 안정화와 원활화를 저해하는 ‘경제, 무역 관계의 정치화, 무기화, 안보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11/18).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고, 특히 경제 및 과학 기술 분야의 제재로부터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은 신흥국 및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겨냥하여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자 한다. 중국은 경제 세계화를 통해 개도국의 보편적 요구에 부응하고 글로벌 자원 배분으로 국가 간 발전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2023년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에서 회원국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이들 간의 연대와 협력의 범위도 확장했다. 그리고 중국은 이들 국가와의 정상회담에서는 공통적으로 상호 ‘핵심이익’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고 글로벌 발전구상(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GDI), 글로벌 안보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 글로벌 문명 구상(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 GCI), 인류운명공동체, 그리고 일대일로 협력 등 이른바 ‘중국식’ 글로벌 구상과 의제를 집중 부각시키며 연대를 강조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20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된 브릭스 국가 비즈니스 포럼 폐막식 연설에서 ‘중국은 개도국으로서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임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여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여 남남협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이 BRICS, SCO,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GCC), 중국-중앙아시아 협력 포럼 등 상대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한 국제 다자 기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다자외교를 전개하고,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외교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중단기적으로는 발전을 위한 협력 대상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겨냥하여 우군을 확장하려는 포석이다. 그런데 시진핑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제고하고 지지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서 연이어 새로운 글로벌 비전과 구상을 제시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동의와 지지를 견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국제질서 변혁 시도는 오히려 새로운 마찰과 도전을 초래하면서 중국의 발전 전략에 장애가 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2) 발전과 체제 안전을 위한 외교
시진핑 주석은 2024년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중국 경제의 부진을 인정하고 경제 회복과 안정적인 장기 발전에 전력투구할 것을 밝혔다. 현재 중국은 부동산 위기, 지방 경제의 침체, 높은 실업률, 외국 자본의 대중 직접 투자 감소 등 다양한 경제 난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경제 및 첨단 과학기술 영역에서의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체제의 장기 집권은 국제사회의 반(反)중국 정서를 자극하고 중국 견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어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복합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2024년 이른바 ‘선거의 해(大选年)’가 초래할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불안전성으로 인해 경제 회복에 부정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체제 안전에도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국내외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이 체제 안전과 직결된 최우선 과제임을 직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신년사를 통해서 중국식 현대화 추진, 고품질 발전 실현, 그리고 발전과 안보 간 균형 유지를 역설하면서 이를 통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12/31). 요컨대 시진핑 정부는 경제 회복을 통해 장기적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2024년 핵심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국내외 복합 도전을 돌파하고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대외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고자 한다. 중국은 2023년 글로벌 동반자관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외교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도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강국 건설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12/28). 중국은 보호주의에 반대하고 고품질 발전 실현을 위한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실시하고 적극적인 외자 유치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대다수와의 단결’을 역설하면서 사실상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신흥국과 개도국 등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적극 외교 추진을 시사했다. 시진핑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인류운명공동체 건설 등 이른바 중국식 글로벌 구상을 야심차게 제시하고 있고 국제체제와 질서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의 이러한 글로벌 구상 역시 중단기적으로는 자국의 발전권 확보와 경제 회생 실현을 위한 국제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중국의 대미 외교 구상과 전략: 5개 공동(共同)과 5불(不)
중국은 미국이 미중관계를 ‘경쟁’ 관계으로 규정하는 데 반대하며 ‘상호존중(相互尊重),’ ’평화공존(平和共存),’ ’협력공영(合作共赢)’ 등 3대 원칙의 견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미중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인 정상 궤도로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동시에 발신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5개 공동(共同)’ 과 5불(不)을 통해 대미 관계의 구상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11/16). 시주석이 제시한 이른바 5개 공동은 ‘공동의 긍정적 인식 수립’, ‘공동의 효과적인 이견 통제’, ‘공동의 상생 협력 추진’, ‘강대국 책임 공유’ 그리고 ‘인문교류 공동 추진’ 이다. 시 주석이 제시한 미중관계 구상과 방향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을 통해 공유되고 합의된 부분도 있다. 예컨대 양국 간 이견과 경쟁이 갈등과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고위급 군사 대화 채널을 복원하여 위기를 관리하는 데 합의했다(손열 외 2023). 그리고 펜타닐 마약의 생산 물질 유통 금지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분야에서 정부 간 대화 수립에 합의한 것은 일정 부분 강대국의 글로벌 책임을 공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양자 차원에서는 민간교류의 활성화에도 합의하여 인문교류의 공동 추진도 타진했다. 그런데 미중관계의 사실상 최대 쟁점인 첨단기술 및 수출 통제와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채 분명한 입장 차이만을 재확인했다. 결국 시진핑이 제시했던 ‘5개의 공동’ 가운데 사실상 가장 중요한 과제를 내포하고 있는 공동의 긍정적 인식 수립과 공동의 상생 협력 추진에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아울러 5불 논의를 돌아보면 양국이 신뢰를 회복하고 안정적 관계로 발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큰 장벽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도 2022년 발리 정상회담에서 주장했던 신냉전, 중국의 체제 변경, 동맹 강화를 통해 반(反)중국을 추구하지 않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음과 동시에 중국과 충돌을 일으키기 않는다는 이른바 ‘5불(不)’의 준수를 바이든 정부에 재차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의 발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 5불에 대해 재확인했다고 주장하면서 향후 미국이 이 합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3/11/16). 중국은 미국과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관계로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여전히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압박이 지속될 가능성, 특히 체제 변화와 동맹 강화를 통한 반 중국 공세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이 크다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이에 대한 저항과 대응도 강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이 대미외교에서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난제는 앞서 언급한 이른바 핵심이익 가운데 주권이익인 대만 문제와 발전이익과 연관된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과 무역 통제이다. 대만 문제는 대만 총통선거와 연계되면서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대만 문제는 미중관계 45년의 역사와 함께 한 매우 익숙하지만 근본적 해결이 난망한 고질적인 현안이라는 역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대만 문제는 지난 45년간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예외 없이 가장 첨예한 갈등 요인으로 등장했다. 반면에 미중관계가 안정 기조로 돌아서면 양국은 대만의 현상 유지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바탕으로 불안정을 관리해 왔다. 요컨대 대만 문제는 역사적으로 미중 갈등을 초래한 독립변수이기보다는 미중 대립과 갈등의 산물이었다.
미중 경쟁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대만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역사의 반복이기도 하다. 특히 민족주의 고양을 통해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는 시진핑 정부의 입장에서 대만 문제라는 영토주권 이슈에 대해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좁아지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양안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원할 명확한 동기나 여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중국 역시 국내외 복잡한 상황을 고려할 때 무리하게 대만을 무력 침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대만의 여론 역시 독립을 지지하는 비중은 낮고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다. 미중 양국 모두 근본적 해결이 난망한 대만 문제로 인해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피하기 위한 대화도 병행하고 있다. 요컨대 대만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미중관계의 변동성과 대만 정치 지형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불안정 변수이자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역점을 두고 강조한 것은 발전이익, 즉 발전권이었다. 중국 외교부의 정상회담 발표문을 보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를 언급하면서 중국식 발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정당하며 이를 미국이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피력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 3개 분야에서 대중 규제를 단행했다. 시 주석은 미국이 수출 통제, 투자심사, 일방적 제재 등으로 중국의 정당한 발전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 침체에 직면하고 있는 시진핑 정부에게 경제발전은 집권 정당성 강화와 체제 안정과 직결된 중요한 과제이다. 시진핑 정부가 경제발전을 통해 집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제 및 첨단 기술 분야의 제재를 완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대중 제재를 중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응은 제한적이다.
우선 중국은 ‘자원 무기화’ 방식으로 맞대응을 시도했다. 반도체에 주로 사용되는 갈륨, 게르마늄 등에 대한 수출을 통제했다. 그리고 중국은 유럽,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권 확보를 위한 외교 공간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의 압박을 돌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국은 적극적인 대외 개방과 경제 세계화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여 첨단기술의 자립자강 실현을 위한 장기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는 이른바 ‘신형 거국체제’를 기치로 내세우면서 자국 중심의 산업 생태계와 독립적인 과학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3. 한미일 협력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중국은 한미일 협력이 북한 위협을 빌미로 사실상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협력과 연대라고 인식하고 비판하고 있다(张弛 2023).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중국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인민일보 논평에서는 “한미일 삼국 동맹이라 칭하고 이는 미국이 동북아에서 소(小)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준 것으로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아태지역을 ‘신냉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钟声 2023). 특히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남중국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노골적인 내정 간섭이며 중국과 주변국 관계를 의도적으로 이간시키려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미일 협력 강화에 대한 중국의 비판은 주로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즉 미국이 중국과 인접한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을 압박, 포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미국의 의도와 전략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반면에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공세를 자제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부의 일본과의 관계 개선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내 반대가 거세고 한일 관계에 내재한 역사 및 영토 문제 또한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우므로 미국이 의도하는 한일 안보협력 강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이 시도하는 동북아의 소 나토 구축 구상은 정작 한국과 일본의 국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즉 역내 경제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태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안보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은 한미일 협력에 대해 우려와 불만을 표명하고 있지만, 미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협력을 약화하고자 한다.
요컨대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결국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네트워크 구축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한미일 협력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한일관계를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한일 간에 존재하는 역사 및 영토 문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려우며, 양국 간 전략적 이해관계의 차이가 양국관계 발전을 제약하는 잠재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대응과 북한 문제에서 한일 양국은 전략적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내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인식은 희망적 사고가 투영된 측면도 있고, 아울러 한일 관계에 내재한 다양한 갈등 문제를 부각하고 이를 한미일 협력 강화를 견제하는데 동원하는 전략과 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북중러 연대를 통해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응하려는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부되고 있지만 동시에 접경한 북한에서 야기되는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도 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 미사일 도발, 경제난 등으로 수시로 중국 국경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향해 ‘전략적 소통’을 지속해서 제기하는 이면에는 다양한 북한발 안보 불안을 관리하려는 의도도 있다. 북한은 연이은 도발을 통해 북중러의 연대를 견인하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 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대립이 더 확장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인해 전략적 부담이 가중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은 북한이 러시아와 과도하게 밀착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북러 관계의 밀착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정 정도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도 있다. 북한이 지속적인 도발과 러시아와의 밀착 과시를 통해 중국을 북중러 연대에 견인하려는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에 더욱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의 도발이 거세질수록 한반도의 불안정 해소라는 공감대를 기반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의 끈을 회복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4. 한중관계와 한국의 대중 전략
중국의 2024년 외교 구상에서 주변 외교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이례적인 변화이다. 중국은 육지와 해상을 통해 20개 국가와 접경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주변 외교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중국의 주변외교가 별도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중국 외교 구상이 사실상 대미 외교에 정조준되면서 주변 외교가 대미전략과 미중관계의 하위 변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에게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대국외교와 주변외교가 중첩되는 복잡하고 민감한 지역이다. 중국이 이른바 중국식 대국외교를 전개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과의 경쟁이 고조되면서 한반도에는 주변외교보다는 대국외교의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더욱 중국은 한반도와 한국을 미중관계의 변화에 연동하여 인식,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중관계의 복잡성과 유동성을 예민하게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다양한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발리와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 공식 발표문에서도 연이어 이례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비록 형식적일지라도 항상 짧게나마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이라는 전형적인 문구를 발표문에 담아 한반도 문제가 주요 의제 중의 하나였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이런 방식으로 비록 북한 비핵화 등 핵심 의제에서 미국과 근본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도 간접적으로 전달해왔다. 특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과 북러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매우 불안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만일 미중 경쟁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해법이 모색되기보다는 오히려 양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징후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한국의 새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북한 위협에 가장 직접으로 노출된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중관계의 유동성이 한반도에 투영되는 변화도 예민하게 주시해야 한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미중 경쟁 상황에서는 미국을 지지하고 중국의 도전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뚜렷하다(이동률 2023). 그런데 한미동맹을 통한 중국 견제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는 사안에 따라 신중함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 시 한국이 동참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43.5%)보다는 반대(56.5%)의견이 더 많다.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탄압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는 공동노선에 참여하는 데는 찬성 응답이 52.4%로 반대 47.6%보다 약간 높아 신중함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는 정책에 동참하는 데는 반대(40%)보다는 찬성(60%)이 높게 나오고 있다. 요컨대 여론이 시사하듯이 한국은 대중 외교에서 사안과 상황에 따라 신중하면서도 유연한 선별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대만 문제와 같은 안보적으로 민감하고 유동적인 사안에서는 과도하게 중국을 자극하여 한국의 안보 불안이 가중되거나 한중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는 중국은 싫지만 한국에게 중요한 국가이고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대중외교가 복잡하고 어려운 국면에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중국에 대한 높은 부정 정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지금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협력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제시되고 있다. 한중 양국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인접국이라는 불가피한 특수성을 고려하여 양국관계가 만성적 갈등의 악순환에 매몰되지 않도록 전향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이 유동적인 한반도 정세에서 새로운 구상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체된 중국과의 관계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중요하다. 한중 양국이 수교 때부터 체제와 가치를 달리함에도 비약적인 관계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라는 기능적 협력이 양국관계를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한중관계는 경제협력의 비약적 발전에 고무되어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등 민감한 전략적 문제에 대해 상호 과잉 기대를 키워온 결과 갈등이 확대되기도 했다. 따라서 한중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변화된 환경과 상황에 적합한 진화된 방식의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한중관계가 불안정할수록 긴밀하고 다양한 소통 채널을 가동하여 양국 간 발생할 수 있는 오해, 갈등, 이해 충돌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사후에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한 도발과 핵 문제, 대만 문제, 해상 안전, 감염병 및 환경오염 확산 등 한중 간에 예상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예민한 현안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서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가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24년 대만 문제, 미중관계 등은 각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새로운 유동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그러한 변화에 취약한 한반도 정세를 고려하여 한국의 외교전략 역시 위기 관리와 함께 유연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
참고 문헌
손열, 김양규, 이동률, 이승주, 전재성, 하영선. 2023. “‘관리된 경쟁’과 ‘발전권 확보’ 사이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2023 APEC 미중 정상회담.” EAI 스페셜리포트. https://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234&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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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률_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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