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대담] 미중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선택
ISBN 979-11-6617-575-6 95340
■ 손열 원장: 바이든 행정부는 작년 8월 통과된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약 50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여 미국이 약세인 반도체 제조 부문을 집중 육성하고자 한다. 1990년대 세계 칩 생산의 40%를 차지했던 미국의 압도적 우세가 현재 10% 정도로 하락한 추세를 극적으로 반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반도체를 단순히 첨단산업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과거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었다면 이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처럼 “인프라”이다. 국가경제의 핵심 기반인 동시에 국가안보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이자 산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법안은 첫째로 미국의 반도체 제조 부분 경쟁력 회복, 둘째로 미국의 공급망 강화, 특히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 핵심 기업이 있는 국가들과의 이른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결성, 셋째로 대중국 압박 수위를 높여 중국 반도체의 추격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과연 미국은 이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중국 내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는 한국 기업에게는 상당한 어려움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데 한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지, 여러 질문들이 제기된다. 먼저, 미국의 반도체 정책이 한국 등 주요 반도체 제조국 그리고 세계 경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 이재민 대사: 미국 입장에서 반도체는 디지털 시대에 미국이 경제적 우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물품이다. 미국은 반도체 여러 분야에서 우위를 잃었기 때문에 공급망 재편, 보조금 교부, 혹은 중국과 거래하는 기업에 대한 제재와 같은 대응책을 오랜 기간 논의해 왔고, 국내 기업과 정부는 꾸준히 대비를 하였다.
다만 지금의 상황이 이전과 다른 이유는 미국의 정책이 너무 공격적이고 성급하게 준비 및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또한 관련국들의 강력한 반응과 부정적인 미국 국내 여론으로 상당히 당황한 듯 하다. 따라서 미국도 적절히 타협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듯 하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사례 등 미국이 이런 식의 조치를 반복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부분이 우려된다.
미국은 현재 정확한 로드맵이나 계획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단기적인 목표를 위해 여러 정책 수단을 성급히 결정하고 시험 삼아 제도를 운영하여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때그때 조정해 나가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시장과 국제 관계의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반도체 지원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의 문제는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 정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이슈들이 반복적으로 불거지면 미국을 바라보는 기업이나 정부의 우려는 증폭된다. 시장 경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아닌, 미국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 전체의 불안정이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 배영자 교수: 이번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이 실현되면 10년간 중국에 의미 있는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생산 시설 및 대중 투자가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법이 규정하는 ‘초과이익 환수’ 및 ‘생산시설에 대한 접근 허용’ 등의 항목은 삼성과 SK 하이닉스처럼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미국에 삼두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내에서는 꾸준히 미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제공되는 보조금이 왜 외국 기업들에게 지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미국 정부는 이에 대응해 자국의 경제 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엄격한 정책을 내놓았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제조 경쟁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에 대응해 기존 제조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기업 이익도 확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소통을 지속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성장과 국익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정하고 협상하는 과정이 시급하다.
이번 반도체 보조금 지급은 일회성 투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가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지원 공고가 시작 단계일 것이다.
■ 손열 원장: 미국의 보조금 정책이 지나치게 기업활동을 제약한다면 한국 기업이 지원하지 않는 옵션은 없는가?
■ 배영자 교수: 미국에 대규모 신규 설비 투자를 결정한 삼성과 하이닉스는 미국의 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적자를 내고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조금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에서의 인력 확보가 어렵고 환경 및 처리 비용도 높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20%에서 30% 정도의 초과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보조금에 대한 논의 없이는 투자를 진행할 수 없다.
■ 이재민 대사: 정부가 기업에게 투자를 요청하고 유치할 때에는 규제 완화와 보조금 교부가 큰 항목이고, 이를 ‘토탈 패키지’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제시를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물론 보조금에 요건이 있지만 이는 수혜의 요건이지, 운영을 함께 하고 자료를 나누어 보는 규정은 없었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보조금 정책에 모든 기업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미국의 정책은 일반적인 보조금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향후 조정이 있어야 한다.
초과이익 환수 또한 개념 자체를 정의 내리기 어려우며, 초과이익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도체 산업처럼 등락 폭이 큰 시장에서 이익을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는 것은 숫자로는 가능하지만 비현실적이다.
■ 손열 원장: 반도체 법안이 현재 골격을 대체로 유지하는 속에서 집행되는 경우 미중 디커플링은 전면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는가?
■ 배영자 교수: 전체적인 그림에서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며 불필요하다. 그러나 첨단 칩 제조 부분에서 이미 디커플링은 진행되고 있고, 미국이 제시한 ‘가드레일 조항’이 실현되면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들이 제대로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디커플링이 될 것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한국에 주는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국내 기업의 생산시설을 어떻게 유지할지, 혹은 어떻게 완만히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반도체법 시행 공고는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에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재협상이 필요하고, 미국의 규제가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이나 양자 컴퓨팅 같은 다른 첨단 기술로 확대될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디커플링과 그에 대한 대응 전략 역시 지속해서 논의될 것이다.
■ 이재민 대사: ‘디커플링’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으므로 상품별, 분야별로 디커플링의 가능 여부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핵심 반도체 분야는 미국 입장에서 디지털 시대의 핵심 품목이다. 따라서 미국이 지금의 대중 정책을 유지하는 한, 자연스럽게 디커플링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현재 이 정책을 구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주변 반도체 생산국들과 지속해서 협의하고 조정 작업을 거쳐 새로운 조치를 마련하는 작업을 성실히 진행한다면, 장기적으로 핵심 반도체 부분에서 중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주요 생산국으로 남겠지만, 핵심 반도체와 연구·개발 부분은 미국이 통제하는 모습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시장을 이끌어 갈 것으로 예상한다.
■ 손열 원장: 미국이 반도체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목표와 중국을 견제하는 목표가 같은 것은 아니다. 중국의 성장을 저지한다고 해서 미국이 제조부문 패권을 얻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과연 현 법안대로 실행해 가는 경우 미국이 제조부문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을까?
■ 배영자 교수: 처음에 미국이 반도체 첨단 제조를 선언하고 TSMC와 삼성을 불러들였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미국 경제 시스템의 특성상 더 높아진 생산 비용과 인력 부재 속 첨단 제조를 어떻게 할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도체 제조는 미국의 장점과 전혀 맞지 않지만, 정부의 드라이브와 미국 국내 분위기 속에서 강력하게 추진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충격은 있을 것이라고 보이나, 성패를 내다보기에는 시기상조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5년보다 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며, 이러한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국 국내 정치 선거 등 지원이 중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미국이 중국을 따돌리고 패권을 유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이재민 대사: 동의한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에 나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다양한 도전 과제들을 타개하고자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정책적 의지와 지원이 얼마나 잘 작동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 손열 원장: 미국 기술에 의존하는 동시에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거대한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향후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이재민 대사: 우리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문제를 대할 때 사안별, 이슈별, 회사별로 대응을 해왔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가 생기면 또 그 다음 문제에 집중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패키지 딜’로 문제들을 큰 그림에서 논의하거나, 기본적인 합의를 거친 후 만들어진 틀 안에서 세부적인 일이 생길 때 함께 해답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한, 미국 입장에서 반도체 분야의 새로운 규범을 짜려고 할 때, 한국만한 파트너를 찾기 힘들다는 부분을 설득하여 한미 간 윈윈하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항상 미국이 원하는 것에 대해 한국이 후속으로 쫓아가기만 하다 보니, 이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큰 비용이 들어간다. 앞으로 계속 고민을 하고 논의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 배영자 교수: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한국은 크게 세 가지 어젠다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단기적으로 이슈가 발생했을 시 대응하는 ‘위기관리’, 둘째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도모하는 ‘동맹’, 그리고 셋째는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시해야 하는 ‘비전’이다. 대중 규제가 점점 확대되는 상황에서, 당장 한국 정부와 기업은 함께 대응하고 있다. 한편 동맹을 고려할 때, 탈중국화를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제3국과의 협력 또한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이러한 정책에 대응할 때, 가시적인 비전부터 구체적인 목표와 시행 상황까지 연결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예컨대 미국이 반도체법과 관련하여 발간한 ‘비전페이퍼’에는 구체적인 시행령부터 큰 그림까지 자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비전을 상세히 서술한다. 현실적으로 이 목표와 비전이 전부 달성되지는 못하겠지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절실히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체계적인 문서라고 생각한다. 경제안보는 투자, 위기관리, 장기적 동맹 관리를 모두 해야 하므로 범부처 협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 전문가, 기업 간의 협력도 중요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경제안보의 주요 어젠다와 거버넌스 구축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하여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 저자: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해외투자의 정치경제,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인터넷과 국제정치, 과학기술외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과학기술의 세계정치 연구: 현황과 전망》(2021), 《국제정치패권과 기술혁신: 미국 반도체 기술 사례》(2020), 《중국 인터넷 기업의 부상과 인터넷 주권》(2018), 《미중 패권 경쟁과 과학기술혁신》(2016), 《과학기술과 공공외교》(2013) 등이 있다.
■ 저자: 이재민_경제안보대사·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법학석사 법학박사를 취득하였고 미국 보스턴 법대(Boston College Law School)에서 법학박사(Juris Doctor) 조지타운 법학전문대학원(Georgetown Law Center)에서 법학석사(LL.M.) 학위를 취득하였다. 제 26 회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부에서 근무하였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Willkie Farr & Gallagher LLP 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한양대학교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법(국제통상법 국제투자법)이다.
■ 저자: 손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이다. 최근 저서로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2021, 공편), 『2022 신정부 외교정책제언』(2021, 공편), 『BTS의 글로벌 매력 이야기』(2021, 공편),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2021, 공편),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3, 6 (2019),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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