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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 EAI 한국외교 2021 전망과 전략] ⑥ 2021년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공간 동남아: 전망과 우리의 고려사항

  • 2021-01-14
  • 박재적

ISBN   979-11-6617-094-2 95340

편집자 주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한국외교 2021 전망과 전략" 시리즈 여섯 번째 논평의 저자인 박재적 교수(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가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동남아에서 인·태 전략을 펼치는 데 많은 장애물이 예상된다고 전망합니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유보하는 ‘부동국가(Swing state)' 포섭,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 존중 원칙 확산, 백신 확보와 포스트 코로나 경제 재건에 있어 미중 양국에 도움을 기대하는 동남아 국가에 대한 대처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한국은 2021년 동남아에서 미국 인·태 전략의 전개 양상,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태 전략 참여 요구 정도, 동남아에서 미중 군사 대립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물려받은 자산과 과제

2021년 1월 20일에 출범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이하, 인·태) 전략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처럼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관점이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초당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부상, 지적 재산권 침해, 산업 스파이 행위 등을 미국 국익에 대한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미·중의 첨예한 전략적 경합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할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인·태 전략은 대중 전략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자생력이 있는 ‘지역 전략’이지 대중 전략이 아니다. 각종 경제·군사·인구학적 지표들이 인·태 지역을 21세기 세계의 전략적·경제적 중심축으로 전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인·태 전략은 (비록 명칭은 바뀐다고 할지라도)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속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가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 네트워크는 한국, 일본, 호주, 태국, 필리핀과의 동맹과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 등 안보 협력국과의 파트너십 등으로 구성되는데, 미국은 구성국 간의 중층적인 소다자 연계를 통한 네트워크 강화에 주력해왔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아·태에서 인·태로 지역 공간을 명시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인도가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2020년 10월에 체결된 군사 지리정보 공유를 위한 ‘기본교류협력협정(BECA)’이 방증하는 것처럼 인도와 미국의 양자 안보 관계가 급진전했으며, 인도는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일본, 필리핀 등 태평양 국가와의 안보협력도 증진시키고 있다. 남아시아의 인도와 함께 동북아의 일본, 남태평양의 호주도 미국 인·태 안보 네트워크의 거점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7년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출범하였다가 1년도 안 되어 호주와 인도의 발 빼기로 좌초하였던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4자 안보협력(이하, Quad)’이 2017년 11월에 부활한 것과 미국·인도·일본의 ‘말라바(Malabar)’ 군사훈련에 2020년 11월 호주가 참여한 것은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인도·일본·호주가 지역 거점이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인도양과 태평양이 결합된 광활한 인·태 공간에서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 국가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제국주의 시절 확보한 영토로 인해 EEZ의 85%가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의 주도로 2020년 9월 프랑스, 호주, 인도의 차관급 삼자 전략대화가 발족하였다. 영국은 1971년부터 영연방 국가인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의 ‘5국 방위 협정(Five Power Defence Arrangements)’을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급진전시키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0년 10월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Quad 장관급 회의 후에 일본이 발표한 언론 보도문은 유럽 일부 국가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 강화되고 확장된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자산을 넘겨주었으나, 반면에 미국이 효율적으로 인·태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보충하고 수정해야 할 과제도 남겼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의 인·태 전략은 안보적 측면에 경도되었고, 지경학적 측면은 소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에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협상에서 탈퇴하였으나, 이에 반해 중국은 2020년 11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을 주도했다. 또한, 중국은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의 기치 아래 역내 국가의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필적할만한 대안적 자본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물론, 미국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018년 7월 30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인도·태평양 경제포럼’에서 총 1억 1,300만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착수금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민관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방식으로 투자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또한, 투자 규모를 늘리기 위해 호주, 일본, 인도와 양자 또는 삼자의 형태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에 결성된 미국·일본·호주의 인도·태평양 ‘삼자 인프라 펀드(Trilateral Infrastructure Fund)’와 미국·일본·인도의 ‘삼자 인프라 작업반(Trilateral Infrastructure Working Group)’ 및 ‘삼자 인프라 포럼(Trilateral Infrastructure Forum)’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Quad 국가들의 투자 규모는 중국이 공약한 막대한 투자자본에 비해 여전히 상당히 작다. 쿼드 국가들이 쿼드가 재가동된 2017년 11월 이후 현재까지 8번 개최된 공식 회의에서 인프라 투자를 논의하고 있고, 2019년에는 ‘푸른 점 네트워크(Blue Dot Network)’ 결성을 주창했지만, 투자 규모를 획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지는 못했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이 8년간의 재임 기간 연방정부가 셧다운 되었던 2013년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매년 참석하였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EAS에 한반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세안-미국 정상회의에도 임기 첫해를 제외하고 3년 연속 불참하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하여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하였을 때 아세안 정상들은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종합하자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효율적으로 대적할 수 있는 지경학적 기제를 갖추어야 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경시한 인·태 지역 다자외교에 복귀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출범하였다.

            

동남아: 바이든 행정부 1년차 · 전략의 시험대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주요 동맹국 및 안보 협력국 지도자와의 통화에서 ‘안전하고 번영하는 (Secure and prosperous)’ 인도·태평양을 강조했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지역 관여 의지가 확고하고 호주, 일본, 인도에서 중국 위협론이 여전히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쿼드 협력은 적어도 2021년에는 공고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앞세우며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유보하는 ‘부동국가(Swing state)’가 다수 존재하는 동남아가 바이든 행정부 인·태 전략의 2021년 시험대가 될 것이다.

중국과 (잠재적) 영토분쟁 중인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는 민주당 정권인 클린턴 행정부 때 중국이 ‘미스치프 암초(Mischief Reef)’를 점령하였고, 역시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행정부 때 중국이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점거했으나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거부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때 한층 강화된 ‘항행의 자유’ 작전의 빈도와 강도를 유지하면서, 이번 민주당 정권은 과거 민주당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국가들도 남중국해에서 미·중 군사 충돌이 발생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이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군사 개입의 수준을 전략적으로 섬세히 조절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과제는 미·중 사이 ‘부동국가(Swing state)’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을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필리핀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미국 유인 정찰기 P-8의 인도네시아 영내 중간 급유를 불허하였다. 베트남이 미국과 안보협력의 반경을 넓히고 있으나, 중국 공산당과 베트남 공산당의 당대당 관계는 돈독하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비동맹운동의 맹주국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부동국가’를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 안착시키기 위한 매개로 해양안보를 위한 ‘정보·감시·정찰(이하, ISR)’ 정보제공과 자산 공유를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시아 해상에서 해적, 불법어업, 인신매매, 환경오염, 대형 해난 재해 등 다양한 비전통안보 이슈가 복합적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해양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ISR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동남아 국가는 해양안보 능력배양을 위한 역외 국가의 기여를 환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동남아 거점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퇴역 함정, 항공기, 정찰 레이더 등을 공여하고 교육 훈련을 제공해 왔었는데 최근에 공여 물품의 질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국방부는 ‘남중국해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를 통해 총 34대의 무인 항공기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4개국의 ISR 능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다른 쿼드 국가인 호주는 남태평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일본도 한동안 동남아 국가에 차관(Credit) 형식으로 경비함을 지원해 왔지만, 최근에는 무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국내법을 정비하고 군사 장비 공여에 나서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미쓰비시사(Mitsubishi Electric Corp.)가 필리핀에 4기의 레이다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인도의 경우, 싱가포르,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 등에 방산을 수출하고 있으며 군사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중국은 쿼드 국가가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기여하는 목적이 표면적으로는 비전통안보 이슈에 대한 효율적 대응이지만, 공여국과 수혜국의 특성상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비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공여국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고, 주요 수혜국은 미국의 동맹국 또는 중국과 안보적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한 중국의 공여는 아직 성능이 낮은 소형 정찰선 정도에 머물고 있지만, 향후 Quad 국가가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한 헤징(Hedging)을 염두에 두고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주력한다고 판단하면 중국도 공여의 양과 질을 높여 나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ISR 정보를 제공하고 자산을 공여하는 데 있어 곧 중국과 경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남아에서 인·태 전략을 펼치는 데 있어 또 다른 시험대는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해온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 존중이 대다수 동남아 국가의 국내 정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가 권위주의 정부 체제인 바, 동남아 국가는 바이든 행정부가 양질의 거버넌스, 투명성,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아세안 정책에 투영하려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친중(親中) 국가는 차치하고서도, 미국이 동맹국인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인권탄압과 태국 정부의 비민주적 정통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미얀마와도 로힝야족에 대한 인권탄압을 둘러싸고 양국이 충돌할 수도 있다.

한편, 다자주의의 복원을 강조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EAS와 아세안-미국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바이든 재임 기간 아세안 의장국은 2021년 브루나이, 2022년 캄보디아, 2023년 인도네시아, 2024년 라오스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상황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 EAS와 아세안-미국 정상회의의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동남아에서 마찰을 줄이기 위해, 동남아 국가의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여 동남아에서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의 원칙을 완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에 동남아에서 직면할 수 있는 또 다른 시험대는 동남아 국가가 백신 확보와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 경제 재건에 있어 미국과 중국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남아 최대 인구국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여, 백신 확보가 최대 현안이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이 필리핀에 백신을 우선 공급하면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있어 필리핀이 중국에 완화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였고, 미국이 필리핀에 백신을 공급하지 않으면 잠정 연기되어 있는 미국과의 ‘방문군 협정(VFA)’을 폐지하겠다고 미국을 압박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백신 확보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남아 국가의 백신 확보에 미국과 중국 중 어느 국가가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향후 양국이 동남아에서 경합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 인·태 전략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설 지경학적 기제가 부족하다. 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코로나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국이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로 ‘포스트 코로나’ 경제 회복이 절실한 동남아 국가를 파고든다면, 미국의 인·태 전략은 타격받게 될 것이다. 중국은 2020년 5월에 개최한 양회에서 ‘신인프라건설(新基建)’ 정책을 채택하였고, 2020년 11월 27일 개최된 제17차 중국·아세안 박람회 개막식 축사에서 시진핑 주석은 아세안 국가에 ‘디지털 실크로드’ 제안했다. 중국 자본을 수용하면 ‘빚의 덫(Debt trap)’에 빠질 수도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코로나’ 경제 재건이 시급한 동남아 국가가 거대한 중국 자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중국도 일대일로가 수원국(受援國)의 재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하고 있는데, 중국 지도자들이 지속해서 ‘고품질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강조하고 있다. 이제는 채무 급증의 논리로만 역내 국가가 중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수용하지 않도록 설득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바, 미국이 동남아 국가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대규모 투자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시험대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의 고려사항: 인프라 투자 vs. 해양 능력 배양에 대한 기여

우리 정부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2017년 11월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을 발표한 이래, 동남아 국가 및 인도와의 경제협력 증진에 힘써왔다. 신남방정책의 추진 방향은 사람 공동체(People), 상생번영 공동체(Prosperity), 평화 공동체(Peace)를 지향하는 것인데, 지난 3년간은 세 번째 P보다는 첫째와 둘째 P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2021년부터 신남방정책 2.0을 추진하면서 ‘평화(Peace)’ 영역의 정책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이는 경제, 사회·문화 분야 뿐만 아니라 평화·외교 분야에서도 한·아세안 관계를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평화’ 분야 정책 강조는 미국이 우리에게 자국의 인·태 전략에 동참하기를 요청하는 가운데 우리가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간 접점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인·태 전략이 안보에서 지경학적 영역으로 반경을 확장하면서 경제 중심의 신남방정책과 인프라 투자 등에서 공통 관심과 이익이 도출되었다. 또한, 신남방정책이 경제에서 평화·외교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해양안보 등의 이슈에서 미국 인·태 전략과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양국이 2019년 11월에 발표한 ‘한미 양국 지역 내 협력에 대한 공동 설명서’와 2020년 11월에 발표한 ‘美인도태평양 전략- 韓신남방정책 간 협력에 관한 공동 팩트 시트(Fact sheet)’에는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간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양국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의 공통 관심사인 인프라 투자의 경우, 앞서 살펴본 대로 쿼드 국가와 중국이 ‘포스트 코로나’ 경제회복 국면에서 동남아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공동 개발 기금, 작업반(working group), 포럼 등을 결성하여 개별적인 정책을 조율하고 있는바, 우리도 동참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한국, 일본, 인도, 미국, 호주가 기술 선진국이므로, 첨단 기술이 필요하거나 보안 문제 등이 중요한 인프라 사업에 공동으로 입찰하거나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미국 인·태 전략의 지경학적 요소인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역설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에도 조건부로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일본은 미국, 호주, 인도와 함께 역내 국가의 인프라 개발 투자에 적극적이지만, 2017년에 중국의 일대일로에 조건부 참여를 결정하였다. 일본은 2018년에 중국과 ‘일·중 제3국 시장 협력포럼(Japan-China Third Country Market Cooperation Forum)’을 창설하고, 제3국에서 공동 투자를 위한 52개의 협력양해서를 체결하였다. 일본의 경우처럼, 우리도 인프라 투자를 위해 미국, 호주, 일본, 인도 등과 협업할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뒤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한다면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어 일대일로에 참여한다는 미국의 오인을 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2020년 10월 19일 화상으로 개최된 제16차 한·중 경제장관회의에서 양국이 신북방・신남방 정책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간 연계 협력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고무적이다. 동 회의에서 양국은 한·중 기업의 제3국 공동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협력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체적 방안을 지속해서 협의하기로 하였다.

한편,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의 새로운 접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해양안보의 경우, 우리는 아세안 국가 중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중점 대상으로 해양 능력배양을 위한 공여를 늘려왔다. 공여의 목적은 신남방정책 추진 방향 중 하나인 아세안의 ‘평화(Peace)’에 기여하는 것이었는데, 공여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방산 수출로 이어지는 경제적 실익도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쿼드 국가가 2021년 동남아 거점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우리의 개별적 기여는 지속하지만, 쿼드 국가와의 협력 및 조율 여부는 인프라 투자와 달리 전략적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동남아 국가와 실질적으로 안보협력 관계를 증진하고 방산 수출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지속해서 기여한다는 전제하에, 쿼드 국가와의 협력 및 조율 여부는 크게 세 가지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을 고려하여 우리의 개별적 기여에만 집중하고, 쿼드 국가와 협력하거나 기여를 조율하지 않는 것이다. 쿼드 국가가 해양 능력 배양을 위한 공여의 양과 질을 늘리고 쿼드 회합 때마다 해양 능력 배양을 논의 의제 중 하나로 상정하고 있어서, 만약 우리가 쿼드 국가와 협력하고 조율하는 가운데 역내 국가의 해양 능력 배양에 기여하면, 중국이 우리가 쿼드 국가의 중국 헤징에 동참한다고 인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이 자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를 강화·확대하면서 구성국들의 역할 분담(Division of Labor)을 요구하고 있는바, 미국 안보 네트워크를 위한 ‘안보부담 분담(Security burden sharing)’의 차원에서 쿼드 국가와 협력 및 조율하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 밖에서 동맹국인 미국의 인·태 전략에 협조함으로써, 미국과 한국이 갈등하는 한반도 동맹 이슈에서 미국이 동맹국인 우리의 이익을 좀 더 고려하게 하기 위한 ‘동맹을 위한 투자(Investment for alliance)’로 쿼드 국가와 협력 및 조율하는 것이다. 미국은 위의 세 가지 중 우리가 두 번째 경우를 취하기를 희망할 것이지만, 우리는 2021년 동남아에서 미국 인·태 전략의 전개 양상, 미국의 우리에 대한 인·태 전략 참여 요구 정도, 동남아에서 미·중 군사 대립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 저자: 박재적_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전공분야는 인·태지역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지역안보질서, 소다자 안보 협력, 미국-호주 동맹, 호주 안보 정책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2021), (2020), (2020), (2020). <인도·태평양 지역 ‘해양상황인지’ 현황과 ‘쿼드(Quad)’ 국가의 기여: 쟁점 및 전망> (2020)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서정혜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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