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미일 ‘新밀월’…‘동상이몽’ 안 되려면 [GPS코리아 ③]

  • 2023-05-29
  • 송오미 기자 (데일리안)

文정권 땐 상상할 수 없던 '한미일 신밀월'
'회복 궤도' 한일관계 더욱 발전시키려면
갈등 요소는 줄이되, 협력 요소는 늘려야
美 패권적 지위 전제 외교 정책 변화 필요

"대통령직에 취임한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뒀던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이같이 자평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한미동맹의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 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 한미일 3각 공조 공고화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다만 한미일 3국이 처한 국제적 상황과 우선순위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만큼, 잠재적 악재와 갈등 요소는 최대한 줄여나가되 협력 요소와 공통 이익은 최대치로 늘려나가야 하는 점은 향후 남은 과제다.

정상 궤도 오른 한일관계 뒤흔들 수 있는 잠재적 악재, 여전히 적지 않아
신각수 "가치 공유하는 양국 협력…시너지 효과 낼 수 있는 분야 많다"

날로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의 고도화 등 한국을 둘러싼 복합 위기 속 12년 만의 '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외교적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국내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대승적으로 제시해 악화 일로를 걷던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윤 대통령이 3월 16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윤 대통령 방일 이후 52일 만인 5월 7일 기시다 총리가 답방하면서, 문재인 정부 때 파탄 상태였던 한일관계가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 양국은 수출규제 철회,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복원,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 등 경제·안보협력 심화를 위한 토대도 닦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국무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은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경제·글로벌 어젠다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지난 21일에는 기시다 총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공동 참배했다. 한국 대통령의 위령비 참배와 한일 정상의 위령비 공동 참배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이처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일들이 한일 간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독도 문제, 동해 표기 문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한일 대륙붕공동개발협정 등은 정상화 궤도에 오른 한일관계를 뒤흔들 수 있는 잠재적 악재로 꼽힌다. 때문에 양국 간 협력 요소는 점차 늘려가면서 갈등 요소의 폭발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한일 관계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외교부 1·2차관을 모두 지낸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28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셔틀외교 재개를 통해 회복 궤도에 오른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려면, 갈등 요소는 줄이고 협력 요소는 늘려야 한다"며 "특히 한일 경제는 상호보완적인 만큼, 반도체 공급망 안정적인 구축, 제3국 공동진출, 에너지·환경·디지털 협력 등 상호협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분야가 많다"고 했다. 또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이 협력하면, 북핵 문제, 인도·태평양 전략, 미중 갈등 등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70주년 한미동맹, 협력범위 다각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
"한국의 협력을 더욱 요구하게 될 미국의 지위 고려한 외교 추구해야"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군사동맹을 넘어 첨단기술동맹, 경제안보동맹, 사이버안보동맹 등 양국 협력 범위가 다각화되면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국빈 방문 및 한미 정상회담 당시 '워싱턴 선언' 채택을 통해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하고, 한미 확장억제 실행력을 확고히했다. 한미 안보동맹을 핵 기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급망 강화, 사이버·우주·인공지능(AI)·양자 등 첨단과학기술 동맹도 구축했다. 국빈 방문 계기로 넷플릭스 등 8개 기업으로부터 총 59억 달러(약 7조8000억원) 규모의 첨단기업 투자 유치를 이끌어냈고, 양국 미래세대를 위한 '한미 청년 특별교류 이니셔티브' 등 인재 교류 프로그램 확대 등도 합의했다.

다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및 반도체법에 따른 한국 기업 피해 문제는 구체적인 구제 방안 없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만 공동성명에 담겨 아쉬움을 남겼다.

하나의 초강대국이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국제 정치가 너무 복잡해지고 국제 공공재에 대한 수요도 막대해진 만큼,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전제로 한 한국의 외교·안보·경제 정책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은 '2023년 세계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미 전략'이라는 제목의 특별논평 시리즈에서 "긴밀한 공급망 협력, 기술의 수평적 분산, 군사적 협력의 필요성 등 강대국들 간 혹은 중견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 간의 협력체계가 미래 거버넌스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한국 역시 반도체, 배터리 부문에서 강대국에 버금가는 정책 자산을 부분적으로 가지게 되었다"며 "한국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전제한 외교 정책을 펴왔지만, 앞으로는 점차 '보통' 강대국화되는 미국, 한국의 협력을 더욱 요구하는 미국의 모습을 고려한 외교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