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결정적 고비마다 北과 밀착…국민 42% "中, 北대화 이끌어야"[한·중 수교 30년]

  • 2022-08-23
  • 정영교 기자 (중앙일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에서 북한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양국은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외형적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은 대화의 중재자인 동시에 불협화음을 빚은 주체가 되기도 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전통적 우방이다. 특히 미국·러시아·일본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은 중국에게 완충지대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중국은 대외적으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중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공언하면서도 현실에선 한반도 문제를 미·중 간 권력 구도의 하부구조로 인식해 접근하고 있다. 즉, 중국은 한반도의 불안 요인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중국에 유리한 외부 환경을 만들려는 전제 속에서 움직였던 만큼 북한에서 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었던 주요 국면에서 한국의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한국에게 한·중 관계가 중요한 이유가 된다.

 

중국은 남북 관계의 주요 국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쳐왔다.

 

1991년 9월 17일, 북한과 한국은 각각 160·161번째 유엔 가입국이 됐다. 당시 북한은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하는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중국이 설득했다. 중국은 "북한이 반대하든 하지 않든 남북한의 유엔 가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압력을 행사하면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에 촉매 역할을 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북한에게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것은 물론 외교적으로 북한 문제를 유엔이라는 틀 안에서 다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창구가 되기도 했다. 2002년 10월 북한은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에게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했다. '2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그러자 중국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제시하며 중재에 나섰다. 회담 주최국으로서 북한의 참여를 설득했다. 당시 6자회담의 결과물이 북한의 핵 포기를 명시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국은 북한과 밀착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은 한국의 기대와 달리 "어떤 군사적 도발 행위도 반대한다"는 원칙적인 입장 만을 내놨다.

 

중국 내에선 사건 자체보다 이후에 전개될 한·미동맹 강화, 대북제재와 압박에 따른 북한의 혼란 가능성 등 역내 불안정성 증가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난 5월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에 반대하며 '북한 편들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특히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본격화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마지막 공급처' 역할을 했다. 당국 차원에선 국제적 제재에 동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북·중 접경 지역에선 밀수나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 등을 사실상 방조했다. 대북 제재를 앞세운 대북정책의 성패가 중국에 달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 고려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미·중 대결 구도에서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있는 만큼 중국은 전통적 우호·협력을 토대로 대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를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역설적으로 중국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레버리지 역할을 할 수도 있어서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평화와 안정, 비핵화 실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3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 저지를 위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도 동참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 체제까지 무너뜨릴 정도의 압박에는 반대한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와 공동기획으로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의뢰한 심층 면접조사에선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놓고 중국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 42.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응답이 34.2%였고, 핵실험 중단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14.8%로 집계됐다. 반면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은 8.3%에 불과했다. 중국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응답이 다수인 것으로 풀이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권 장관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4월 "중국도 한반도 핵 문제에 있어서는 (자국의) 핵심이익이 증가한다고 보지 않는 입장"이라며 "중국과 대화를 하다 보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된 태도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지난 10일 방중 기간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명확히 설명했다"며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로 복귀해 진정한 비핵화의 길을 걷도록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고 중국도 이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강태화·정영교·정진우·박현주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