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군 재배치와 한국의 신안보전략] '지구넷 21' 정책 세미나

  • 2004-11-26
  • 박신홍기자 (중앙일보)
"한·미 동맹 확대 … 역할 분담 이뤄져야"

▶ "EAI 지구넷21" 이 서울클럽에서 한국의 신안보 전략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왼쪽부터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정책실장, 김은석 외교통상부 북미국 심의관, 한용섭 국방대 교수, 하영선 서울대 교수.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치밀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5일 서울클럽에서 열린 "주한미군 재배치와 21세기 한국의 신(新)안보전략 개념"이란 세미나에서다. 동아시아연구원(EAI)"지구넷21"(회장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주최로 민.관 전문가들은 2시간여 동안 진지한 토론을 하며 정책 대안을 모색했다.

하 교수를 비롯, 김병국 고려대 교수.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박철희 서울대 교수.한용섭 국방대 교수 등은 공동으로 한.미 양국 정부에 보내는 정책 대안을 발표했다. 하 교수는 "부시 2기 행정부를 맞아 한국의 국운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2대 과제는 북핵 문제와 미국의 군사 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이라며 "하지만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며, 이제부터라도 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토론자는 "주한미군 감축으로 한반도 연합방위력에 어떠한 손상도 초래돼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더욱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입장을 같이했다. 다음은 한용섭 교수가 밝힌 정책 대안과 토론 내용 요약.


새로운 안보.군사전략 정립할 때=한 교수는 먼저 "전 세계에 전진배치됐던 미군이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따라 급속히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추진하는 군사 변환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한미군도 예외가 아니다"며 "미군의 군사 변환은 단순히 병력 수를 줄이고 기지를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차원이 아니라 과거 60년 동안 유지했던 전략과 군사구조 및 작전 개념, 나아가 동맹 자체를 변환시키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과거 60년 동안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맡아오던 주한미군과 그를 바탕으로 한 한.미동맹은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주목할 부분은 미국은 전략적 이유에서 동맹의 변환을 얘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정치적.외교적 이유에서 새로운 한.미관계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이에 따라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 모두에서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으며, 더욱이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새로운 안보.군사전략을 정립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이를 위해 한.미 양국 정상은 과거 동맹의 존재 이유가 돼왔던 북한의 위협과 변화 유도책을 공동으로 분석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정세와 변화 방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한국군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이며, 주한미군의 역할은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한 뒤 동북아의 미래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협력적 자주국방, 대안으로 보긴 힘들어=한 교수는 "한국 정부는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의 병행 발전을 추구하겠다고 천명한 상태지만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협력적 자주국방의 개념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다. 이 개념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방위 임무를 한국군이 점차 인수해 간다는 것인데, 주한미군의 전력 공백만 메우면 된다는 생각은 군사 변환이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란 지적이다.

그는 "공백만 메우는 게 목적이라면 21세기 디지털 미래전쟁이나 네트워크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북 억지력만 목적으로 하는 한국의 의도와 전 세계적 군사 변환을 추진하는 미국의 구상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의 군사 변환과 한국의 자주국방을 잘 조화시킨 새로운 안보전략 개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국 정상이나 외교.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최고위 수준의 전략 대화가 필요하다고 한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향후 양국 간의 정책협의회도 기지 이전 문제나 규모 축소 같은 작은 의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한.미동맹의 변환, 신안보전략의 수립 등 전략적 의제로 논의 수준을 격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미동맹을 확대하는 동시에 양국 간에 적절한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동맹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은 지역안정을 달성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힘쓰는 한편, 한국은 한반도 방어에 전념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한.미 양국이 전략기획단을 만들어 모든 안보문제를 병렬적 지휘체제 속에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한.미동맹의 외연 확대를 위해 적어도 동맹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라도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념에서 외교 분리해야=토론자들은 지금의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적잖은 차이점을 드러냈다. 문장렬 국가안전보장회의(NSC)정책위원은 "남북관계의 변화.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미국이 우리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에 부합하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가장 우려되는 점은 기존 한.미동맹이 방어적 성격의 "위협 대응형"이었다면 앞으로는 공세적 성격의 "위협 초래형" 동맹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미동맹의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21세기 건전한 한.미관계 구축을 위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정책실장은 "현실적으로 부시 행정부와 우리 정부가 공감대를 이룰 부분은 극히 작다"며 "향후 한.미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긴 힘들 것이며, 더 악화되지 않고 현재만큼만 유지해도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현재 남북한과 미국 정부가 모두 강성이어서 앞으로도 타협보다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며 "우리 정부만이라도 이념에서 외교를 분리해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은석 외교부 북미국 심의관은 "GPR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너무 한국에만 국한해 볼 필요는 없다"며 "일각의 우려와 달리 한.미동맹은 아주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 참석자 명단=▶ 사회:하영선(EAI 지구넷 21 회장)▶ 발표:한용섭(국방대학교 교수)▶ 토론:김은석(외교통상부 북미국 심의관), 문장렬(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위원), 이상현(세종연구소 안보정책실장),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차두현(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