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韓·美 국민 너무 먼 북핵인식

  • 2004-11-08
  • 스콧 스나이더 (경향신문)
[특별기고] 韓·美 국민 "너무 먼 北核인식"

스콧 스나이더(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새임기를 맞은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4년간 미국과 세계를 어디로 이끌어 갈까? 부시 대통령은 당장 이라크전, 테러와의 전쟁, 국내 경제성장, 예산안 등 수많은 긴급 현안들에 직면해 있다.

올 10월 시카고 외교협회(CCFR)와 동아시아연구원(EAI)가 미국인들의 국제관계에 대한 태도를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를 지구평화에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 부시와 존 케리의 북핵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내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 초당파적인 의견일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양측의 수석 고문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깊이 우려했으며 이 문제는 미국 안보정책뿐만 아니라 6자회담 참가국들에도 가장 큰 위험으로 평가된다.

북한 문제에 대해 의견일치가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선거기간중임에도 북한인권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미 의회는 가끔 외국에서 벌어지는 불의(不義)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결의안을 통과시키곤 한다. 이는 공식적인 언사나 외교 채널에 앞서서 이뤄지는 것이다. 시카고 외교협회 등의 조사는 미국인들이 북핵 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한국인들보다 훨씬 냉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일부 의원들은 북한인권법에 대해 불쾌해 하며 대북외교를 방해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북한의 유엔대사 역시 6자회담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이 법의 폐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법은 부시 대통령을 구속하거나 북한과의 외교 협상을 맺는 고유 권한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법률만으로는 북한에 불리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 법에는 정파를 떠나 많은 미국인들이 널리 공유하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미국인들은 국제문제 해결에서 외교적 방법을 먼저 쓰기를 원한다.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을 지지하는 것은 아시아에 대한 다자적 접근의 일환이다. 6자회담의 미래는 북한의 손에 달렸다. 북한이 6자회담에 전념하겠다는 신뢰있는 표현을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푸는 데 있어 선결 과제다. 미국인들이 아무리 외교적 방법을 선호한다 해도 북한이 협상을 안하겠다면 이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이라크에서 난관에 봉착했음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테러리즘이나 대량살상무기처럼 국익을 위협하는 요인이 임박했다고 느낄 경우 미국이 즉각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라크 문제 개입이 과연 테러와의 전면전의 일환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의 견해가 엇갈리지만, 시카고 외교협회 조사에는 83%의 미국인들이 테러리스트의 훈련캠프에 공습을 퍼붓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의 경험으로 동맹국과 유엔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게 됐지만, 부시나 케리 모두 일방주의적인 선제 조치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시카고 외교협회 조사를 보면 6자회담이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오지 못할 경우 엄청난 수의 미국인들이 유엔이나 한국 등 동맹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군사적 조치를 지지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인들은 군사적 행동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 하지만 이 부분에서 미국인의 견해와 결정적인 틈이 생긴다.

북한이 한국과의 민족적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이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북한과 공통된 민족적 내지 어떠한 유대감도 없고 한국인들이 호소하는 ‘동포애’에도 별로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가 심화됨에도 미국-한국간 공조가 실패하면 최악의 시나리오로 빠질 수 있다. 양국은 강한 안보 공조로 양국민들이 의견일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국민들간의 간극을 메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역할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는 매우 능숙하게 이라크 파병을 관철시켰고 6자회담을 통해 부시 행정부와의 협력도 강화하는가 하면 한반도의 미군 재배치 계획도 짰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력에 비해 비교적 약한 국제적 입지를 갖고 있으며 한국민의 공개적 지지를 받기보다는 다소 은밀하게 대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간의 견해의 차이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한국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간격은 양국 안보협력 관계와 동북아에서의 상호안보 이익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부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거 기간 내내 북한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국민들의 비판에 매우 취약했다. 2기 부시 행정부는 강한 리더십을 갖고 의회, 한국 정부 등과 공조해 승리하는 전략을 짜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