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가치·체제 논쟁’ 격화될 미·중 갈등… 韓, 전략적 포지셔닝 중요 [한반도 인사이트]

  • 2020-11-27
  • 홍주형 기자 (세계일보)

바이든 행정부 더 심화 전망
美·中 ‘코로나 책임론’ 싸고 체제 갈등 
바이든, 기후 변화·인권 문제 등 중시 
동맹국과 공동가치 과시하며 對中 압박
홍콩·신장 위구르 문제 등 양국 대립 
韓, 북핵·경제문제로 中과 협력 불가피 
“평화 협력 지지” 文 정부 정책 딜레마

“우리는 북미와 유럽을 넘어 호주, 일본, 한국, 그리고 인도와 인도네시아까지 포함해 우리의 동맹국들과 미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공동의 가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월 발행된 국제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의 핵심 외교안보정책을 응축한, 총 12쪽에 달하는 이 기고문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한국(South Korea)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장은 이 한 문장이다. 그는 ‘민주주의 재정립(Renewing Democracy)’ 항목하에서 이 문장을 언급했는데,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을 언급했지만 사실상 대중국 압박을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27일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기존 미·중 경쟁구도가 경제분야와 군사·안보 경쟁이었다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이 분쟁은 인권과 가치 논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최근의 경향을 짚었다. 특히 기후변화, 인권 등을 중요하게 언급해온 바이든 당선인이 집권하면 이 흐름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주의 국가로,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임을 과시해온 한국으로선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가치 봉쇄’를 할 경우 훨씬 대응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가치 논쟁과 체제 논쟁으로 넘어가는 미·중 경쟁

지난 5월 미국 백악관이 출간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도전을 몇 항목으로 분류하면서 첫째는 ‘경제적 도전’, 둘째는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설정했다. 세 번째는 ‘안보에 대한 도전’인데, 안보에 대한 도전보다 가치에 대한 도전을 우위에 둔 것이다. 미국이 안보 위기보다 가치 위기를 공식보고서에서 더 우위에 뒀다는 점은 시사점이 작지 않다.

김 교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까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분리 호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이 신장위구르, 홍콩 등의 인권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이후다. 이전에는 남중국해 군사안보 갈등, 경제 문제가 주로 대립 전선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지나 최근의 ‘신체제 논쟁’ 갈등은 코로나19 이후 더 심화됐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수십만명에 이르고, 반면 중국은 오히려 코로나19가 빨리 발병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이른 확산 억제에 성공하면서 체제 우위 논쟁이 터져나온 것이다.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코로나19를 억제하는 데 더 도움이 됐고, 민주주의 가치를 압도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과 영국 등 유럽국가들에서 연일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체제에 대한 찬사가 계속된 것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이 훌륭하기도 했지만, 한편 민주주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코로나19 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믿고 싶어했다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으로선 홍콩과 신장 위구르의 인권 문제는 주권과 관계된 것이어서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이 분야는 미·중이 경제 분야보다 타협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기할 점은 미국은 가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가치 자체만을 언급하기보다는 이 부분에 상호주의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5월 백악관 보고서는 중국 공산당의 언론인, 학자, 외교관들은 미국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미 언론인이나 학자, 외교관들의 활동을 막는다고 지적했다. 가치 문제로 접근하지만, 실상 이 문제의 본질은 미·중 상호 경쟁임을 알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의 첨예한 갈등을 희석시키기 위해 가치 논쟁이 대두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가치’ 더 중시… “한국 대응은 더 힘들어”

이처럼 가치와 체제 경쟁이 시작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부터의 흐름이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존 군사·안보 영역에 이어 가치와 체제, 이념 논쟁까지 양국의 전선이 확대된 상황에서 원래부터도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외교의 중심에 뒀던 바이든 당선인이 이 부분에 더 적극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환경주의자인 바이든 당선인으로서는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을 약속했고, 기후변화의 책임론을 두고도 중국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동맹국들의 대응도 이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바이든 당선인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가 관계를 쌓는 기반이 된 ‘가치’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우리의 우정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진전시키기 위해 협력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바이든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을 강조했다. 다만 바이든 당선인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을 언급해 강조점이 미묘하게 다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지역 안보·번영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바이든 당선인이 미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인 2001년 8월 방한해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가치 문제로 들어가면 한국의 대응이 더욱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고리 삼아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맹국 대열에 끌어들이려 하지만, 북한 문제와 기타 경제적인 문제로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 한국은 이에 바로 대응할 수 없어서다. 한국은 지난 6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될 시점에도 “중·영 공동성명을 지지한다”며 원칙적 입장을 유지했는데, ‘주권 침해’를 주장하는 중국을 다분히 의식한 대응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핵 넘어 中 견제… ‘한·미·일 공조 복원' 핫이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가치 중심 외교의 복원을 강조하면서 동아시아에는 두 가지 핵심 전략과 공조가 주목된다.

 

하나는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북핵 등에 공동 대응하는 한·미·일 공조다. 외교가와 정부에선 최근 특히 한·미·일 공조 복원이 이슈다.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한·일 갈등 중재에 직접 개입했던 전례가 있을 정도로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공조를 중심에 둔다는 평가다. 바이든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 역시 북핵문제 해결에 한·미·일 공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27일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당선인 취임 이후 한국이 대미정책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점은 ‘한·미·일 삼각 공조의 복원’”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22일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며 “잇따라 중요 인물이 일본을 방문하는 배경에는 동맹을 중요시하는 미국 바이든 차기 정권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국내 외교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알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와 향후 북한과의 관계 모두를 염두에 둔 다목적 카드”라며 폭넓은 해석을 주문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미국이 특히 북핵 대응에서 3국 공조를 중요시했지만, 최근 미국의 모든 외교정책에 중국이 핵심 변수로 등장한 만큼 대중국 압박 측면에서도 이 대열을 중심에 둘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지난 13일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는 동아시아연구원(EAI)과 미 브루킹스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한국, 미국, 일본 등 역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을 통해 신장 위구르, 홍콩 인권문제 등에서 중국에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