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우리나라 유일의 <한글조선전도>

  • 2020-06-19
  •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조선일보)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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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한글조선지도>. (출처: 게리 레드야드의 스페셜 리포트)
2013년 동아시아연구원EAI 스페셜 리포트로 발표된 게리 레드야드Gari K. Ledyard 교수의 ‘독특한 18세기 한국지도 A Unique 18th-Century Korean Map’에 따르면 <한글조선전도>는 2011년 초여름 유럽의 경매에서 가버 루카스Gabor Lukacs 박사가 선뜻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버 루카스는 193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고, 1964년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퇴임 과학자이자 일본학자이다. 그는 2014년 <카르토그라픽 저널The Cartographic Journal>에 일본의 승려 소가쿠宗覺가 1691년에 모사한 대명성도大明省圖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만큼 지도에도 조예가 깊었다.
2014년 2월 8~9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개최되는 제21회 마이애미국제지도박람회 21st Annual Miami International Map Fair에 ‘순 한글 조선전도’가 예상가 10만 유로(약 15만 달러)에 경매될 것이라는 연락을 프랑스 딜러로부터 받은 김태진 국제지도수집가협회 IMCoS 한국 대표는 지도박람회에 참석한 뒤에 이 지도를 국내로 반입했다. 필자도 2015년에 그의 사무실에서 이 지도를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한글조선전도>는 한지에 먹·청ㆍ적ㆍ 황의 4색으로 필사했고, 크기는 가로 63cm, 세로 103cm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한반도의 북쪽이 납작해져 압록강과 두만강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 조선전기의 지도인 <팔도지도八道地圖>나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와 유사하다. 산줄기는 독립된 산(▲) 기호로 높이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 연총식連塚式으로 표현했고, 하천은 모두 쌍선으로 그리고 내부를 청색으로 채색했다.
334관官의 군현명은 붓두껍으로 찍은 원 기호 내에 표기하고, 8도별로 색을 달리했다. 경기도는 원 기호를 따라 황색, 충청도는 원 기호의 위쪽은 황색ㆍ아래쪽은 적색, 전라도는 적색, 경상도는 위쪽은 청색ㆍ아래쪽은 적색, 강원도는 청색, 황해도는 진회색, 평안도는 위쪽은 진회색ㆍ아래쪽은 적색, 함경도는 먹색으로 구별했다. 또한 수도인 ‘경京’은 군현보다 큰 원 기호에 적색을 덧그렸다.
일반주기로는 산ㆍ고개ㆍ하천ㆍ섬 등이 있고, 통영統營ㆍ병영兵營ㆍ수영水營은 원 기호 내에 표기하고 내부를 청색으로 채색했다. 해안가의 수군진水軍鎭과 포구의 명칭은 사각형 기호 내에 표기했는데, 명칭이 없는 것도 있다. 지명 가운데 한자로 표기된 것은 백두산白頭山과 전라도의 녹도鹿島뿐이다.
지도 사방에는 방위를 ‘동서남북’ 문자로 표기했고, 지도 우측에는 조선8도 별로 지방관地方官의 숫자를 적었다. 또 그 밑에는 ‘아국지형이 해좌사향亥坐巳向’이라고 우리나라 지형의 방향을 적고, ‘동서 1,073리’, ‘남북 3,373리’라고 국토의 크기를 적었다.
유서 깊은 군현명 옆에는 고대 부족국가 명을 덧붙였는데, 영변에 행인국, 평양에 낙랑ㆍ기자ㆍ단군, 함흥에 현도, 개성에 고려, 철원에 궁예, 춘천에 맥국, 강릉에 예국, 삼척에 실직국, 안동에 창녕국, 함창에 고령가야, 경산에 압독국, 선산에 감문국, 경주에 신라, 김해에 가락국, 고성에 소가야, 제주에 탐라국 등이다. 이밖에 압록강 상류에 진번, 압록강 북쪽에 여진ㆍ오국성ㆍ예숙신나라(예맥과 숙신)ㆍ말갈 등이 표기되어 있다.
의주 옆에 적힌 ‘의슌관義順館’은 조선 조정에서 파견한 접반사가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배웅하던 의주성 밖의 객관客館이고, 의주 북쪽에 적힌 ‘셔울셔북경가기삼쳔이백니’는 ‘서울에서 북경까지 3,200리’라는 뜻이다. 또한 진도 옆에 적힌 ‘즁원졀강셩명쥬정해의가기열흘로길이라’는 ‘조선에서 중국 명주明州(지금의 영파寧波) 정해政海(지금의 진해鎭海)까지 가려면 열흘 길’이라는 뜻이다.
<한글조선전도>의 제작연대는 현재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중반 사이’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군현명의 변천으로 추정한 결과이다. 지도에는 1662년(효종 3) 황해도 강음江陰과 우봉牛峰이 합쳐져 금천金川으로 바뀐 ‘금천’이 있고, 1767년(영조 43) 경상도 산음山陰과 안음安陰이 각각 ‘산청’과 ‘안의’로 바뀌었으나 ‘안음’은 그대로 있고, 1712년에 건립된 백두산정계비가 표시되지 않은 점 등을 미루어 이 연대 추정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역사학자이며, 우리나라 고지도를 연구한 한영우韓永愚 교수는 한문을 모르는 여자들이나 상인, 천주교를 포교하는 신부들을 위해 민간에서 이 지도를 제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제작 시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김대건 신부의 지도와 비교 연구하면 연대를 좀더 정확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글조선전도>의 지명 가운데 뇽천(용천)ㆍ녕원(영원)ㆍ녜안(예안) 등의 표기는 한자어 어두의 ‘i, y’가 ‘ni, ny’로 바뀌었고, 둉성(종성)ㆍ뎡읍(정읍)ㆍ댱슈(장수) 등의 표기는 ‘ㅈ’이 ‘ts/dz’로 발음되어 구개음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음운音韻은 평안도 지역에서 사용되는 서북방언西北方言이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평안도 지역이 아니면 서북방언을 쓰는 사람이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후기 천주교 전파를 위해 프랑스 선교사가 의주 변문邊門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때는 1829년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한글의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주저함 없이 한글을 교회 공식 언어로 받아들였고, 한글은 신앙 전파를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생각했다. 신유박해(1801년) 즈음 조선으로 유입된 120종의 한문 천주교 서적 가운데 65% 이상이 한글로 번역될 정도였다.
더욱 <한글조선전도>를 소장하고 있던 사람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가버 루카스 박사였고, 이 지도가 경매에 나온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프랑스 딜러인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 선교사가 선교사목을 목적으로 조선의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조선 사람에게 부탁해 이 지도를 그려 사용하다가 프랑스로 가져간 것으로 가정한다면, 제작연대는 19세기 후반 철종과 고종 시기로 추정된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글조선전도〉는 조선 후기에 순 한글로 제작된 지도로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우산도(독도)가 표기되고, 조선이 위치한 방향과 전국 지방관의 숫자까지 표시된 지도로 그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9년 4월 10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