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北 개방 지금이 적기다

  • 2007-08-22
  • 류길재 (세계일보)

북한이 살아갈 길은 무엇인가. 개혁개방이다. 특히 자원과 자본과 기술이 없는 북한은 외부세계로부터의 수혈이 필요한 중환자이다. 몸은 중환자지만 정신만은 또렷해서 여전히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정신병까지 앓는 환자다.

이성적인 북한을 위해 한마디쯤 해주고 싶은 말은 수혈을 받으려면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다. 1970년대 전반기에, 또 80년대 후반기와 90년대 초까지 북한은 나름대로 개방을 시도하려고 했다. 서방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고 대외무역을 확대하려고 했던 70년대의 시도는 결국 서방 차관에 대한 모라토리엄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의 시도는 합영법 등 각종 대외개방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나진선봉에 특구를 만들던 80년대 중반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핵문제 등 대외적인 상황도 문제였겠지만 내부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 같다. 김달현 전 정무원 부총리의 좌천과 죽음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는 80년대부터 당기관지인 ‘근로자’에 대외무역의 필요성과 방법론을 역설했던 인물이다. 92년에는 남한도 다녀갔다. 그가 김일성으로부터 총애받던 사람이었음에도 좌천된 것은 김정일의 견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디서나 내부가 문제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내부의 문제에 봉착하면 생각은 고사하고 그 생각을 갖는 사람이나 세력이 핍박을 받는다. 그리고 그때 그들을 핍박하는 이유는 그들의 생각 때문이라기보다 권력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 문제는 외부인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그렇다 치고, 외부적인 환경을 보면 북한은 지금 개방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노스코리아 어드밴티지는커녕 최빈국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노스코리아 어드밴티지는 뭔가. 하나는 값싼 노동력을 갖고 국제시장에서 행세할 수 있는 것이다. 친디아(중국+인도)나 동남아, 중앙아시아의 값싼 노동력보다 더 비교우위를 갖는 것이 북한이다. 교육 수준이나 노동 규율에서 그래도 나을 수 있는 북한이 지금 뛰어들지 않으면 앞으로는 북한이 이를 내세워 행세할 기회가 더 적어질 것이다. 노동자들을 벌목장이나 공사장으로만 내몰 것이 아니라 그런 노동력을 갖고 자생력을 가진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남한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자본을 축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

두 번째는 한국과의 경제협력 역시 지금이 적기이다. 한국은 지금 저임금을 벗어나서 고임금에 어정쩡한 첨단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친디아에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과 기능분업을 할 수 있다면 남한은 편하게 첨단산업 쪽에 전념하고 그 하청 역할을 북한이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생산능력이 올라가면 점진적으로 첨단산업도 가져가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메이드인코리아(디피알 코리아든, 알오케이든)가 다시 한번 휩쓸지도 모른다. 물론 친디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감안하면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인구 7000만의 만만찮은 인력이 어느 정도 버팀목 구실을 할 수 있지 않겠나.

민족 공조도 좋고, 무슨 무슨 방식의 통일도 좋은데,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북한이 그토록 내세우는 민족의 번영과 주체적인 삶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우리 민족 전체의 실력을 쌓는 것이다. 실력도 없는데 자존심이 세워지겠는가. 인민도 먹여살리지 못하면서 지도자의 위신이 서겠는가. 핵무기 몇 발을 갖고 수천발을 가진 나라들과 군비경쟁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지금 세상에서 가당한 노릇인가. 작지만 단단한 나라,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막상 접해보면 만만치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민족,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 할 길이 그런 길이라면 북한은 지금 그 길로 가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개방할 타이밍을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

 

류길재 EAI 북한연구패널 위원장 ·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