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에 부쳐

  • 2007-07-08
  • 이홍구 (중앙일보)

5000년 유구한 민족사와 500년 왕조사에 뒷받침된 자랑스러운 이 나라가 전쟁이나 전투도 없이, 아니 단 한 방의 총도 쏘아보지 못하고 이웃나라 일본에 주권을 내어주고 말았던 것은 100년 전이다. 그 당시나 한 세기가 지난 오늘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변고였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딱하고 답답한 치욕의 역사다. 이처럼 통탄스러운 사태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미 기울어진 국운을 되살려 보겠다는 일념으로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이상설·이준·이위종 세 밀사는 얼마나 캄캄한 망국의 악몽에 시달렸을 것인가.

7월 14일은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순국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분께서 순국하시기 2년 전, 즉 1905년 을사늑약이란 주권 상실의 치욕을 당한 뒤 국가운영의 중심에 서 있었던 민영환 공께서 자결하셨다. 멀리 영국 런던에선 이한응 주영공사께서도 자결로서 나라 잃은 굴욕의 한을 매듭지으셨다. 또한 헤이그 밀사의 한 분인 이위종 참서관의 부친 이범진 주러시아 공사도 이른바 ‘합방’의 수치에 직면하여 191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의 치욕적인 망국의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항거하신 선열들의 죽음에 우리 국민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새삼 분노와 답답함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100년 전의 ‘만국평화회의’라는 이름 자체가 역사를 호도하는 표현임을 알았어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평화회의를 주창했던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등이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는 것을 예방하자고 나섰던 뜻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평화’란 어디까지나 19세기에 정립된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질서, 즉 열강의 식민지 분할 통치가 적절한 세력 균형으로 유지되는 질서를 정당화하고 안정시키는 데 일차적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쟁탈전에 희생된 약소국이나 식민지의 권리가 고려될 여지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제국주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 일본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 우리의 억울한 처지를 감안해 줄 수 있는 아량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제국주의 경쟁체제가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평화회의 이후에 폭발한 두 번의 세계대전이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 거대한 제국주의 물결 사이에서 꼼짝 못하고 희생당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100년 전의 국내 상황을 돌이켜보면 한마디로 답답하고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정세나 지정학적 압력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것이 조선조 말기의 국가적 실상이었다. 밖으로부터 조여 들어오는 위기의 낌새를 파악한 선각자들이며 과감한 개화와 개혁의 필요를 통감하고 있던 엘리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준 열사 자신이 중심이 되었던 신민회 같은 조직이 그러한 선각자 집단의 한 예다. 그러나 이렇듯 개화와 개혁을 주창하는 인사들을 국가 운영의 중심 세력으로 활용하기에는 조선조 말기의 정치체제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고 군사제국화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문전박대를 당한 헤이그 밀사의 수모와 고초를 통해 조선왕조는 국가체제의 한계를 보여 주었으며 우리에게 값진 역사적 교훈을 남겨 주었다. 첫째, 닫힌 사회의 시대가 지난 뒤 바로 열린 사회로 전환하지 못하는 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문을 열고 보다 넓은 사회로 나아가 국운을 개척할 용기와 자신감이 없으면 개인도 국가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애국 애족심만으로는 역사의 흐름과 방향을 간파하는 지혜를 대치할 수 없다. ‘애국심은 비겁한 자의 도피처’라는 경구를 가볍게 흘려버리면 안 된다. 천하대세를 읽고 이에 순응하는 국가전략을 다듬는 지혜를 갖지 못한 채 애국심과 민족만을 내세우는 우매한 지도자는 반드시 가려내야만 한다. 100년 전에 겪었던 민족의 수모는 한 번이면 족하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우리 모두가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홍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