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스마트 파워와 매력론

  • 2007-05-14
  • 하영선 (중앙일보)

대통령선거가 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다가오는 5년의 국운이 아니라 21세기 백년의 국운이 걸려 있다. 주변 4대 강국들이 모두 21세기 백년대계의 기본 포석들을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판은 어지럽다. 여야를 막론하고 누가 최종적으로 판에 살아남아서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될는지조차 읽기 어렵다. 따라서 판은 백년대계의 포석대결이 아니라 후보되기 묘수풀이를 맴돌고 있다. 짜증나는 일이다.

 

대통령선거가 18개월 남은 미국의 정가도 요즈음 한참 시끄럽다. 이라크 추가 전비 승인을 둘러싸고 백악관과 의회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반테러 공작에 5000억 달러를 퍼부었다. 그중의 70%가 이라크 전비다. 그러나 미군 사망자가 4000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이라크 내정은 쉽사리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안정을 위해 2500억 달러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그중의 일부인 1000억 달러의 지출 승인을 요청한 것이다. 의회 결의와 대통령 비토권 행사의 공방 속에서 결국 이라크 전황의 개선 여부와 연관해 추가 지원을 하되 9월까지 개선의 방향이 안 드러나면 철군 논의는 본격화되고 내년 선거의 최대 이슈가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스마트 파워" 논쟁이다. 소프트 파워라는 말을 1990년대 초 처음 쓰기 시작한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는 21세기 정보화세기 세계정치에서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하드 파워 못지않게 문화-가치-정책 같은 소프트 파워가 절실하게 필요하며 21세기 미국의 성공 여부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균형을 이룰 줄 아는 스마트 파워에 달려 있다고 주장해 왔다. 올해 들어 내년 대통령선거의 정책 개발을 위해 미국의 대표적 정책연구소들이 스마트 파워에 대한 본격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라크 내정이 쉽사리 안정을 찾지 못하고 철군 논의가 진행된다면 스마트 파워 논쟁은 본격화할 것이다. 이 논의의 중요성은 단순히 이라크전의 공과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21세기 미국의 장래를 위해 네트워크와 지식의 세기인 21세기에 힘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제대로 읽고 전통적인 힘과 새로운 힘을 영리하게 결합하는 힘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선두로 한 주변 4강의 제국들이 21세기 스마트 파워 키우기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틈새에 끼여 한반도의 북쪽은 시대착오적인 핵선군사상에 기반을 두는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구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남쪽은 후보 되기 잔꾀 경쟁에 아까운 시간을 버리고 있다. 선거를 불과 7개월 앞둔 이 시기에 유권자들이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스마트 파워 제국들 사이에서 21세기 한국이 당당하게 키워야 할 힘의 구체적 청사진이다.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선거구호가 아니라 21세기를 내다 볼 수 있는 철학적 기저 위에 선 실천적 정책구상이 필요하다. 스마트 파워론을 넘어서는 매력론을 본격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 파워론은 제국형 강대국들의 제한적 매력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본격적 매력론이다. 스마트 파워가 하드 파워의 약점을 소프트 파워로 보완하기 위한 발상에서 생긴 것이라면 한국형 매력론은 과감하게 21세기의 새로운 힘인 정보지식력의 세계첨단화로부터 시작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전통적인 힘인 부강력을 21세기에 맞게 변환시켜 남과 함께할 수 있는 안보번영력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세계가 홀려서 따라오게 만드는 문화력을 꽃피워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힘들을 복합적으로 아름답게 결합할 수 있는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21세기 매력 한국을 건설할 수 있는 매력 있는 대통령을 뽑을 때가 됐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