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방관할 수 없는 지구온난화 문제

  • 2007-05-07
  • 이홍구 (중앙일보)

매사에 우리는 자손만대 무사히 잘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살기 좋은 지구촌이 앞으로 과연 얼마나 더 견디어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열흘이 멀다 하고 지구촌 곳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천재지변의 소식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변화의 심상치 않은 부작용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갈수록 에너지의 수요는 많아지고 그럴수록 공기와 물은 오염되며, 지진과 해일 등의 위협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핵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 무엇보다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의 혼란에 휩싸이다 보니 우리에게 천재지변까지 걱정할 여유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우매한 자세가 아닌가. 바로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날로 황폐해지고 있는 마당에 그 중대성을 깨닫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방관한다면 앞으로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천재와 인재가 겹친 기후 변화의 위기는 인류의 운명에 대한 비관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 2005년은 인류가 온도를 측정한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고 있다. 1990년부터 15년 동안 더위의 기록은 13번이나 경신되었으니 해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음은 우리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바다의 수면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학적 증거들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확실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인류 멸망의 코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비관적 종말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후 변화의 위기를 인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기술.전략.조직 및 리더십을 고루 모색하여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자세를 갖춰 가야만 한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본능과 지혜가 만들어내는 인간 창의력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유럽공동체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0% 감축하기로 결정한 것은 기후 변화의 위기에 대처하는 모범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영국은 유엔 안보리로 하여금 지구 온난화 문제를 국제사회의 안전을 위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를 공식 의제로 채택하는 데도 앞장섰다. 에너지 수요의 확대와 환경오염의 악화가 초래하는 지구촌 파탄의 위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급박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앞으로 환경 차원에서 유효하고, 경제 차원에서 지속가능하며, 국제 및 사회 차원에서 공평한 대응책을 위해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교토 의정서" 이후, 즉 2012년 이후의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세계적인 체제와 규칙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가 국제정치의 새로운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도쿄에서 열렸던 한.중.일 민간 지도자 30인회의에서도 에너지와 환경오염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는 중국이 에너지 수요나 환경오염 악화 차원에서 가장 우려되는 국가로 지목되는 것은 이미 상식화된 사실이다. 그런 중국이 문제의 심각성을 솔직히 시인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하여 국제사회와의 협력, 특히 한.중.일 세 나라의 협력을 강조한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환경기술개발센터"를 3국이 공동으로 세우자는 아이디어도 제시되었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석탄 매장량을 가진 중국은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기술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받을 용의가 있는 듯 보였다. 21세기 에너지와 기후 변화 문제의 대처 과정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상호 이해와 협조가 결정적 주도권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에너지와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입장은 과연 무엇인가. 뉴욕 타임스는 내년 미국 대선으로 질주하고 있는 후보들은 무엇보다 에너지와 환경오염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재삼 촉구하고 있다. 올 12월로 다가온 우리 대선 주자들도 마땅히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침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과 손자.손녀들의 안전과 운명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홍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