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반도의 잠 못 이루는 밤

  • 2007-04-02
  • 하영선 (중앙일보)

지난주 서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마지막 협상으로 시끄러웠다.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는 밤낮으로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진행됐다. 청와대와 관련 부처들은 협상 대책을 숙의하느라 밤샘을 계속했다. 여의도에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단식농성이 계속됐다. 서울광장에서는 연일 저지 시위가 열렸다. 그야말로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인 카란 바티아는 얼마 전 미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에 한.미 FTA가 왜 필요한지를 한.미 FTA의 이득과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치에 미치는 한.미 FTA의 중요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선 세계 11위 규모의 경제대국인 한국과의 FTA는 기존의 무역과 투자관계를 양과 질에서 한 단계 발전시키고 동시에 전략적 동맹관계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7%를 차지하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현재 FTA를 맺고 있는 싱가포르와 호주에 비해 무역 규모가 훨씬 큰 한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이 지역에서의 경제적 지위를 보다 확고히 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우선 한국 경제의 명실상부한 세계 경쟁력을 위해 한.미 FTA의 도움으로 지식기반 서비스 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다음으로 동북아에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앞서서 한.미 FTA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마지막으로 FTA의 대표적 피해 대상인 농업 분야는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키울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발언 내용을 보면 두 나라는 이미 자국 내, 동아시아, 지구적 차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불면의 국내 원인은 현실 자체에 있기보다 현실 인식의 단순성 때문이다. 한.미 FTA의 국내 찬반 논의가 겪고 있는 단순성의 혼란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런대로 문제의 복합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결정적이다. 비현실적인 개헌 논의에 힘을 분산하기보다 한.미 FTA의 복합성 설득에 전력을 경주하면서 불면의 국제 원인인 미국의 대국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선까지 남은 8개월 동안 어설픈 국내 및 남북한 정치보다 한.미 FTA 정착에 전력하는 것이 최선의 대선 운동이 될 것이다.

 

서울이 한.미 FTA 협상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는 동안 평양은 북핵 문제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6자회담의 2.13 합의에 따라 당사자들은 1단계의 초기 조치로서 영변 핵시설 동결 및 검증, 모든 핵 프로그램 목록 작성 협의, 5개 실무그룹 회의 개최 및 진행, 중유 5만t의 긴급 에너지 지원의 최초 운송을 60일 만인 4월 13일까지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어 다음 단계로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 완전 신고와 모든 핵시설 불능화, 6자 장관급회담, 중유 95만t 지원을 실천에 옮기도록 했다. 결국 완전 신고와 불능화 단계의 본격적 출발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북한의 수령체제는 현재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 길은 완전 신고를 하고 핵 폐기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이 길은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핵 선군정치로부터 개혁.개방 정치로의 변환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핵 선군정치 주도세력의 후퇴가 불가피하다. 두 번째 길은 핵 선군 수령체제의 마지막 담보인 핵무기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이 길을 선택하면 미국은 결국 중국의 도움을 얻어 국제적 대북 제재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수령체제의 국내적 불안정을 심화할 것이다. 결국 수령체제는 어느 길을 선택해도 체제적 불안정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시간을 벌 수밖에 없다. 완전 신고 단계를 양파 까기 전술에 따라 가능한 한 세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방편으로는 불면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 결국 영원히 잠들게 된다.

 

한반도는 서울의 한.미 FTA와 평양의 북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21세기의 꿈으로 설레는 밤을 맞이해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