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기업 사회적책임 어디까지

  • 2006-05-23
  • 임현진 (매일경제)

얼마 전 외환은행 매각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린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1000억원의 기부금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도둑이 훔친 물건을 팔아 기부하는 꼴"이라는 비난이 네티즌 사이에 줄을 이었다. 4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각차익의 45분의 1에 해당하는 사회 기부금으로 면피하겠다는 론스타의 얄팍한 계산에 대한 분노였다.

 

론스타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국 정부가 어려울 때 은행 인수를 합법으로 유도하더니 이제 와서 인수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짜고 친 고스톱"을 원인무효라고 하니 "선 오브 비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외국자본에 대한 차별이라고 론스타가 국제 금융가에서 읍소하고 다닌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만큼 외국자본의 국내 투자와 운영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법과 제도를 가진 나라가 드물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론스타의 항변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적지 않은 액수의 사회 기부금을 낸다. 한때 이익금의 5%를 사회 기부금으로 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기업이 사회 기부금을 낸다고 불법이나 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평소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을 통해 사회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해 전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엔론이 회계부정으로 하루아침에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기업"으로 전락한 사실이 시사하는 바 크다.

 

최근 우리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CSR)에 대해 배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장사만 잘 하면 된다는 옛 기업관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는 새로운 기업관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은 일자리 마련을 통해 고용도 창출하고 재화생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환경보전을 위한 생산공정을 개발해야 한다. 지속가능 경영이란 맥락에서 사익뿐 아니라 공익이 사회적 책임의 덕목이 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나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모두 공통적이다. 경제활동, 사회공헌, 환경보전, 인권보호 등이 사회적 책임 범주에 들어간다. 통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주주자본주의에 비해 사회적 책임을 포괄적으로 정의한다.

 

사회적 책임 대상도 주주자본주의에서 주주, 종업원, 고객이 중시된다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그 외에 소비자, 가맹점, 지역사회, NGOs도 포함한다. 노사 사이에 공동결정(co-determination)을 채택하고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경영과 감독을 분리하는 지배구조를지님으로써 사외이사제도에 의해 감사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주주자본주의보다 사회적 책임에서 선취적이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 책임 문제는 정경유착, 분식회계, 주가조작, 탈법거래, 편법상속 등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연관돼 기업 안팎에서 제기되어 왔다. 기업이 여론 무마나 생색내기를 넘어 세계적 선도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기극복 과정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거론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력이 없는 기업이 지나친 사회적 책임의 하중에 눌려 본연의 경제활동을 하지 못할 때 사익을 매개로 한 공익의 확산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요즘 직장인 가운데 이벤트성 억지 봉사활동으로 인해 사회공헌 피로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가장 영향력 있는 지배조직이다. 물론 정부와 NGOs라는 막강한 존재도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대에 정부가 모든 것을 독점했다면, 민주주의 시대엔 정부와 별도로 기업과 NGOs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기업은 국가경제의 수호자로서 고용 창출이나 기술혁신을 넘어 상품 생산과 환경보전을 통해 국민 복지와 안녕에 기여해야 한다.

 

이제 사회적 책임은 지구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환경, 노동, 인권, 지역사회 기부 측면에서 평가해 지수화하고 있다. 2008년에 예정된 CSR라운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우리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업은 국제거래와 투자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현재 UN 지구협약(Global Compact)에 가입한 우리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중국 67개, 일본 44개와 비교하면 우리의 갈 길은 멀다.

 

임현진 EAI 이사 ·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