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대통령의 도리

  • 2007-01-16
  • 이내영 (경향신문)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이 돌발적으로 제안한 4년 연임제 개헌안이 야당들의 거부와 냉담한 국민여론의 벽에 부딪혀 실패로 끝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4당이 대통령과의 오찬회동을 거부하는 등 개헌 논의 자체를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강행하더라도 국회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 개헌추진 부정적 여론 높아 -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개헌 제안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여론이다. 주요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의 국민들이 4년 연임제를 5년 단임제보다 선호하면서도 이번 개헌 제안에 정략적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개헌을 추진하지 말고 차기 정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번 개헌 제안은 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도와 레임덕에 허덕이는 노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은 4년 연임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믿고 이번 개헌안이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설령 한나라당의 반대로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의 기대와는 달리 국민 다수는 이번 개헌 제안의 시기와 방식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노대통령으로서는 개헌의 성사는 물론 개헌 논의를 통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려는 정치적 효과도 거두기 어렵게 되었다. 이번 개헌 논의를 통해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노대통령이 올해 대선정국과 정계개편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는 매우 적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번 개헌 제안이 야당의 반대와 부정적인 국민여론으로 좌초할 가능성이 커지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개헌론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대국민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냉담한 국민여론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과 청와대가 개헌안에 집착하면 할수록 실패로 인한 정치적 부담은 커지고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한 여당의 일관성 없는 행보도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김근태 의장 등 여당 지도부는 초기에는 적극 지지의 입장을 보였고, 그 결과 당내의 신당 논의가 일시적으로 중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헌 카드가 야당과 여론의 반대에 부닥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신당파는 입장을 바꾸어 노대통령의 탈당과 신당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결국 노대통령의 이번 개헌 제안은 정국의 주도권을 찾아오기는커녕 여당 내의 분열만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 집착 버리고 국정 전념하길 -

야당의 반대로 개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한 국민 다수의 뜻이 지금은 개헌을 추진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이상 이제라도 노대통령은 개헌 제안을 접고 그동안 벌여놓았던 국정과제의 마무리에 애쓰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행여 노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을 발의하는 수순을 밟는다면, 민심을 거스르는 독선과 오기로 비춰질 뿐이다. 더군다나 일각에서 우려하듯이 대통령이 개헌 제안과 연계하여 임기단축 등의 새로운 카드를 제시한다면 큰 정치적 혼란이 예상된다.

 

현 정부가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개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그 결과 레임덕이 심화되어 국정이 표류하게 된다면 현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노대통령이 이번 개헌 제안에 정략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여 개헌 제안을 거두어들이고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운영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