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박정희 따라하기

  • 2006-12-14
  • 강원택 (경향신문)

얼마 전 인터넷상의 개방형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Wikipedia)에 실린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가 영어판과 중국어판 사이에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을 한 외신이 꼬집은 바 있다. 영어판에서는 마오쩌둥이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문화혁명과 대약진 운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파멸로 이끌었다고 되어 있지만 중국어판에서는 부정적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이후 마오쩌둥에 대해 7은 잘했지만 3은 못했다고 그 공과를 평가했다지만, 중국판 위키피디아를 보면 여전히 마오쩌둥의 업적에 대한 해석은 중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인 듯하다. 그러나 평범한 중국인의 생활 속에서 마오쩌둥의 존재는 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오래 전 신문에서 본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그 사진은 중국 시골에서 트럭으로 행상을 하는 젊은 상인이 자신의 차에 마오쩌둥의 사진을 붙여놓고 웃는 모습을 찍은 것이었는데, 그에게 마오쩌둥의 사진은 자신의 사업에 부와 행운을 가져다 줄 부적이었다.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마오쩌둥이 이제는 부를 가져다주는 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행상에게 마오쩌둥은 이미 정치적 의미가 제거돼 박제된 이미지만이 남겨져 있었던 셈이다.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우리 사회 내부의 논의를 지켜보면서 중국에서 마오쩌둥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이 함께 떠올랐다. 수년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특집 기사를 내면서 붙인 제목은 ‘박정희가 세운 집(the House that Park built)’이었다. 구체적인 기사 내용은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할 수 없지만 제목만큼은 인상적이어서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를 너무도 정확하게 진단한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로부터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할 때마다 박정희는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고, 차기 대선에서도 "박정희 같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소망도 일부 유권자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교과서 포럼에서 있었던 해프닝처럼 박정희 시대의 모든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도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위 "박정희 신드롬"이다.

 

"박정희의 재부상"은 물론 노무현 정부의 정책상의 실패나 사회 전반에 깔린 무기력과 관련 있을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함 때문에 활기가 넘쳤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원인은 박정희 시대의 여러 가지 부정적 유산이 지난 15년 동안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상당히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 받고 탄압 받았던 이들의 권리와 명예가 회복되었고 정경유착의 문제도 크게 개선되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던 대통령의 권력도 이제는 제도적으로 견제받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 속에서 독재나 억압과 같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탈색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일부 신드롬의 대상이 되는 박정희는 그가 집권했던 시절의 박정희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마치 중국의 행상이 자신의 트럭에 붙여 놓은 마오쩌둥의 사진과도 같이 박정희 역시 정치적인 의미가 제거된 박제된 이미지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설픈 "박정희 따라 하기"는 반드시 좋은 선거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에게 원하는 모습은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치열함이기 때문이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