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승만과 아데나워의 통찰력

  • 2006-12-04
  • 이홍구 (중앙일보)

월드컵 4강 신화가 남긴 큰 소득 중의 하나는 온 국민이,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이 목청 높여 한소리로 외친 "대한민국"이란 함성이었다. 그 함성 속에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무한한 자존심이 짙게 배어 있음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근래 들어, 그 대한민국을 출범시킴은 물론 북의 남침(南侵)을 막아내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역사적 위치와 업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처럼 나라의 운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자의 역할, 특히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한 달 동안에도 "이승만과 아데나워"(명지대),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의 국가관리 리더십"(연세대), "이승만과 독립운동"(서울역사박물관)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연달아 열렸다. 이는 난국 타개의 결정적 리더십을 제공했던 선인들의 업적을 역사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얻으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국가 위기 이전, 즉 국가 부재 상황에서 새롭게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역사적 과제를 떠맡았던 이승만과 아데나워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특별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35년간의 일제식민지에서 풀려나자마자 미국과 소련에 의한 국토의 남북 분단이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이승만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국토의 총체적 파괴와 연합국 점령 아래 동서분단이란 처참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아데나워. 그들은 처절한 역경 속에서 1948년 대한민국을 탄생시켰고, 49년 독일연방공화국을 출범시켰던 동서양의 정치적 영웅이었다.

 

이승만은 1875년생, 아데나워는 1876년생으로 한 살 차이인 동년배로 이승만은 항일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아데나워는 반 나치독재의 지도자로서 새로 탄생하는 국가의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48년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아데나워는 한 해 뒤인 49년 총리로 취임해 각각 12년, 14년을 집권하면서 뛰어난 건강으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두 사람은 초대 대통령과 초대 총리로 취임하기 이전에 제헌의회의 의장으로서 대한민국헌법과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을 제정공포 하는 데 주역을 맡았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공과에 대한 평가를 넘어 오늘날 역사적 지도자로 기억되는 것은 정치철학과 소신, 천하대세를 읽는 통찰력,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는 결단력,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집행하는 정치력을 고루 갖춘 예외적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아데나워는 조국의 독립과 통일, 그리고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건설에 대한 굳은 신념의 소유자들로 그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조국의 운명을 서방세계, 특히 미국과 연계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일찌감치 내렸던 지도자들이었다. 아데나워는 대서양 너머로, 이승만은 태평양 너머로 동맹 외교의 폭을 넓힘으로써 국가 발전의 활로를 개척했다. 냉전과 분단 초기의 혼미한 상황에서 이승만은 남한에, 아데나워는 서독에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성취시킨 것은 지극히 현명한 역사적 결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우고 이끈 정부가 유일 합법정부라는, 그리고 강력하고 번성하는 국가 건설만이 통일로의 지름길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았다. 모든 중립국통일안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무시한 것은 물론이다. 90년 독일 통일의 성공이 그러한 판단이 옳았음을 극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승만과 아데나워가 보여준 위대한 리더십의 핵심은 첫째, 지정학적 요건 및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능력과 둘째, 분단과 대결의 구도 속에서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 선택의 결단력, 그리고 국민적 합의와 단결을 이끌어내는 정치력의 삼위일체라 하겠다.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에 휩쓸린 채 다음 선거를 1년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막연한 불안에 떠밀리기보다는 우리가 새롭게 뽑아야 할 다음 지도자의 기준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고민하며 우리 모두 역사의 교훈을 되짚어보아야 하겠다. 역사로부터 배우는 지혜로운 국민만이 정말 훌륭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홍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